|
[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더불어민주당이 창당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20대 대선 패배에 이어 6.1 지방선거에서마저 기록적인 대참패를 당하면서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다. 친문 주류와 친명 비주류간 해묵은 계파갈등이 확산될 경우 최악의 경우 분당사태마저 우려된다. 이번 지방선거 성적표는 4년 전과 정반대였다.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전국을 휩쓸었던 과거와는 달리 호남과 제주를 얻었을 뿐 피말리는 접전 끝에 경기지사를 건진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부 지표는 더 나쁘다. 20대 대선 당시 0.73%포인트라는 박빙 패배였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 이후 민주당이 전국단위 선거에서 기록한 역사상 참패였다. 대선후보를 지낸 거물인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지방선거 과반 승리를 호언장담했지만 처참하게 무너졌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의 앞날과 차기 당권의 향방을 짚어봤다.
- 이재명 책임론 봇물 속 비대위 총사퇴·지도부 공백
- 친문 주류 vs 비주류 친명, 차기당권 놓고 대격돌
- 이재명 전대 출마 변수…최악의 경우 민주당 분당
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은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특히 윤호중·박지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붕괴하면서 지도부는 진공 상태다.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과 혁신이 시급하지만 책임공방만이 한창이다. 이른바 ‘이재명 책임론’을 둘러싼 전방위적인 격돌이 끝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 한동안 잠복해있던 ‘친문 vs 친명’ 진영간 전면전이 재점화한 상태다. 시선은 오는 8월 차기 전당대회로 향한다. 차기 당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권력지형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 차기 당 대표는 22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다. 변수는 이재명 고문의 전대 출마 여부다. 이 고문이 당권도전을 선택하면 친문진영도 대반격에 나설 전망이다. ‘친명 이재명 vs 친문 전해철’라는 빅매치가 성사될 수도 있다.
보선·대선·지선 충격 3연패…‘명길 책임론’ 봇물
민주당은 민심의 회초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중도층 외연확장을 포기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의 무리한 추진에 ‘이재명·송영길’ 투톱의 무리한 출마, 선거막판 지도부 자중지란과 반목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선, 20대 대선에 이어 충격전인 3연패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석권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김동연 후보의 인물론에 기대어 경기지사를 건져지만 승부처인 수도권과 캐스팅보트인 충청권에서 완패했다. 특히 지방선거 내내 격전지였던 대전·세종·충남 등 중원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이재명은 살았고 민주당은 죽었다” 선거 패배 이후 이재명 고문의 ‘나홀로 생환’을 놓고 책임론이 들끓었다. 대선 패배 이후 이른바 ‘졌잘사(졌지만 잘싸웠다)’를 명분으로 이재명 고문과 송영길 전 대표가 출마한 것이 선거참패의 최대 요인이었다는 평가였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일촉즉발의 내전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 이후 민주당의 참패가 기정사실화된 1일 심야부터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자생당사(自生黨死).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며 “당이 살고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고 이재명 고문을 정조준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석현 전 의원도 “한 명 살고 다 죽었다. 면피용 반성문, 진정성 없는 혁신에 국민은 식상하다. 쇄신은 책임이 큰 사람들이 물러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3선 중진인 이원욱 의원은 “이재명 후보는 정치고향인 분당 갑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짐에도 '안전한 지역'을 찾아 계양으로 도망갔다”고 맹비난했다.
주류 친문 진영은 선거참패의 책임자로 이재명 고문을 지목했다. 2018년 경기지사 경선 당시 라이벌이었던 전해철 의원은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이 있는 분들은 한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2선 후퇴를 주문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전 대표와 맞붙었던 홍영표 의원은 “사욕과 선동으로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면서 “이제 민주당은 당원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송영길 두 분이 대선 한 달 만에 출마한 게 결정적이었다”며 “이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였다”고 비판했다. 강병원 의원도 “대선 패배 이후 당이 사당화되면서 건강한 토론과 생산적 비판이라는 민주당의 강점은 사라지고 오만과 아집만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냈던 윤영찬 의원도 “더 이상의 침묵은 죄악”이라면서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과 송영길 전 대표는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에서 가장 책임이 큰 분들”이라고 가세했다. 대선 경선 당시 이 고문과 경쟁했던 이낙연 전 대표 역시 “민주당은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에 '졌지만 잘 싸웠다'고 자찬하며 패인 평가를 밀쳐두었다”며 “책임지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아마도 국민들께 가장 질리는 정치 행태일 것이다. 민주당은 그 짓을 계속했다”고 꼬집었다.
친명계는 쏟아지는 책임론에 전면대응을 자제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재명 고문은 침묵한 채 잠행을 이어갔다. 다만 일부 의원들은 중심으로 친문계의 공세에 대한 반발도 터져나왔다. 선거패배의 책임을 이재명 고문에게만 지우는 것은 한마디로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국민들께서 다시 매서운 회초리를 내려치면서도 가느다란 희망은 남겨놓으셨다”며 “사심을 버리고 오직 선당후사로 단합해야 한다”고 통합을 강조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특정인을 겨냥해서 책임을 지우는 평가는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 책임 회피”라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자산인 이재명과 김동연이 살아온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윤·박 지도부 총사퇴…비대위냐 조기전대냐
이재명 책임론을 둘러싼 어수선한 내홍 속에서 민주당은 지도부 공백사태를 맞았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갈등을 노출했던 윤호중·박지현 비대위 체제가 총사퇴한 것이다. 당헌·당규에 따라 박홍근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직을 맡았지만 민주당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선거참패에 대한 반성과 혁신을 주도할 지도부 구성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당헌당규에 따르면 민주당은 오는 8월로 예정된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다만 당 안팎의 상황은 약 두 달 동안의 지도부 공백사태를 방치하기만도 어렵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계제로의 상황이다.
민주당 비대위는 2일 국회에서 비공개 회의 끝에 지도부 총사퇴를 결정했다. 대선 패배 이후 꾸려진 윤호중·박지현 공동 비대위 체제가 80여일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입장문에서 “민주당 비대위 일동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했다”며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해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먼저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민주당의 더 큰 개혁과 과감한 혁신을 위해 회초리를 들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후보들께도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8월 전당대회 직전까지만 임시 비대위를 새로 꾸리거나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당겨 조기 전대를 치르는 방안이다.
우선 비대위 구성이다. 과거 여의도 차르로 불렸던 막강 권력의 김종인 비대위와 같은 외부 비대위 구성은 현실적으로 난관이 너무 많다. 외부 비대위 구성이 물건너 가면 남은 방안은 내부 비대위 구성이다. 민주당 안팎에서 김부겸 전 국무총리, 정세균·문희상 전 국회의장,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당 일각에서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민주당 비주류였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의원)의 일원도 거론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 비대위 구성과 관련, “제일 두려운 조합은 당 대표에 김해영 전 의원, 원내대표에 한정애 의원”이라면서 “김 전 의원 같은 개혁적 성향의 대표가 있으면 제가 메시지 내는 게 힘들어진다. 한 의원도 우리 당에서 싫어하는 분이 없을 정도로 원만한 성격과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은 대안은 조기 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이다. 어차피 지도부 구성을 서둘러야 하는 만큼 8월로 예정된 전대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 “물리적으로 조기 전대가 불가능하지 않다”면서도 “의원총회를 통해 소속 의원 전원의 의사를 취합하는 것은 물론 임시 비대위 체제에서 조기 전대를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만일 조기 전대가 확정되면 임시 비대위 구성 없이 박홍근 원내대표의 대행 체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3일 4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선거 패배와 향후 수습책을 논의한 자리에서 조기 전대 불가론과 더불어 8월 전대를 예정대로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재명 당권도전 변수…친명vs친문 빅매치?
결과적으로 선거 참패 수습과 민주당의 혁신을 놓고 친문 vs 친명간의 주도권 다툼은 피할 수 없다. 최대 관건은 이재명 고문의 당권도전 여부다. 직전 대선후보로 원내에 진입한 만큼 이 고문은 가장 강력한 당권주자다. 다만 선거참패를 뒤로 하고 곧바로 당권접수에 나서는 게 정치도의적으로 부절적하다는 반론이 거세다. 박용진 의원은 “당대표로 나오는 것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 판에 대한 일정한 조율 정도 그리고 숙고의 시간을 갖는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 고문 역시 친문 주류와 대척점에 서기보다는 관계개선이 필수적이다. 이 고문은 인천 계양을 캠프 해단식에서 △선거참패 책임론 △지도부 총사퇴 △차기 당권도전 여부 등 쏟아지는 기자들과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만큼 장고가 길어지는 셈이다.
설왕설래가 한창이지만 민주당 안팎에서 이 고문의 전대 출마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돌파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원내로 진입한 만큼 남은 수순은 전대 출마다. 이 고문은 민주당의 참패가 확정된 지난 1일 밤 당선인사에서 “좀 더 혁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성과를 내고 계양구뿐만 아니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말을 아꼈지만 사실상 당권도전을 시사한 대목이다.
대선 경선 이후 사실상 2선 후퇴해 있던 친문 진영은 적극적인 견제에 나섰다. 특히 익명을 요구한 상당수 의원들은 당이 풍비박산 지경인데 당권을 노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면서도 이 고문이 전대에 출마할 경우 당이 심리적 분당 상태를 넘어 물리적으로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결과적으로 친문 진영의 반발과 여론이 악화될수록 이 고문의 당권행은 어려워진다. 만일 양측이 물러날 수 없다면 ‘친문 전해철 vs 친명 이재명’이라는 주류 비주류간의 물러설 수 없는 당권경쟁 시나리오도 흘러나온다. 당 분열을 각오한 사실상의 전면전 양상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선거참패로 민주당 안팎이 시끌벅적하지만 냉정하게 고려해보면 향후 민주당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선장은 이재명 고문밖에 없다”며 “이 고문이 당분간 낮은 자세로 잠행을 이어가겠지만 어느 정도 정국구상을 마치면 전대 출마를 선언하고 당권장악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당 일각에서 홍영표 전 의원이나 전해철 전 장관 등 친문주자를 대항마로 고려하겠지만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이 고문의 핵심 지지층의 전투력을 고려하면 전대는 의외로 싱거운 게임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에 정반대의 시각도 없지 않다. 또 다른 한 평론가는 “이재명 고문의 나홀로 생환에 대한 비판여론은 폭발일보 직전이다. 이 고문이 전대에 출마한다면 당 쇄신은 물건너간다”며 “최악의 경우에는 민주당이 분열을 넘어 쪼개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직속 김한길 초대 국민통합위원장은 과거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민주당 분당과 정계개편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사 원문 보기]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