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정(鄭蘭貞. ? ~ 1565)은 조선 중기의 척신(戚臣) 윤원형(尹元衡)의 첩(妾)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아버지는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鄭允謙)이며, 어머니는 소실(小室) 출신이다. 그녀는 스스로 미천한 신분을 벗어나기 위하여 윤원형(尹元衡)에게 접근하여 그의 첩(妾)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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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신분으로 인간을 차별하였던 조선시대에 출세하려면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잘 만나야 했다. 아무리 양반집 딸이라 해도 정실(正室)이 아닌 첩실(妾室)로 시집가거나 재취(再娶)로 들어가면 자식들의 앞날은 암담하였다. 종모법(從母法)이라 하여 모계(母系)가 천인(賤人)이면 그 소생은 마땅히 천출(賤出)로 분류되어 엄혹한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이 종모법(從母法)은 양반의 숫자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태종 14년인 1414년 부계(父系) 신분을 잇는 종부법(從父法)이 제정되기는 하였지만, 형식에 그칠 뿐 차별 관행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 악법(惡法)이 폐지된 것은 고종 31년인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의 일이다.
조선 11대왕 중종(中宗)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난 덕흥대원군(德興大院軍)은 정인지(鄭麟趾)의 손자인 '정세호'의 딸과 9살에 혼인하여 세 아들을 두었으며, 셋째 아들 '균(均)'이 훗날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선조(宣祖)이다. 중종(中宗)의 정실(正室) 장경왕후(章敬王后)가 낳은 인종(仁宗)이 계모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등쌀에 즉위 9개월 만에 죽고 문정왕후가 낳은 명종(明宗)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모후(母后)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수렴청정(垂簾聽政)과 대윤(大尹)과 소윤(小尹)파의 파벌싸움으로 왕실과 조정은 백성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을사사화(乙巳士禍)와 '양재역 벽서사건 (良才驛 壁書事件)'으로 대윤파(大尹派 .. 장경왕후의 오빠 尹任)를 제거한 소윤파(小尹派 .. 문정왕후 동생 윤원형)는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았으니, 이것이 바로 조선왕실 역사에서 처음 맞이하는 외척시대(外戚時代)의 시작이다. 윤원형(尹元衡)은 권력을 독점하자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친형(친형) 윤원로(尹元老)마저 유배시켜 사사(賜死)하였다. 권력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윤원형은 자신의 애첩(愛妾) 정난정(鄭蘭貞)과 공모하여 정실부인 '김씨'를 독살하고, 노비(奴婢)출신인 그녀를 정경부인(貞敬婦人)의 자리에 밀어 올렸다. 정난정(鄭蘭貞)은 윤원형의 귄세를 배경으로 봉은사(奉恩寺)의 승려 보우(普雨)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 직에 오르게 하였으니, 조정의 위계질서는 무너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이때 조선 팔도에 도적떼가 날뛰었으니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이 임꺽정(林巨正)이다.
정난정 鄭蘭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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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정(鄭蘭貞)은 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경상남도 합천, '초계 정씨(草溪 鄭氏)' 도총관 정윤겸(鄭允謙)과 소실(小室)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하고 있지만, 또 다른 야사(野史)에서는 허균(許筠)의 스승이 되는 한문과 문장에 능한 '손곡 이달(蓀谷 李達)'과 정윤겸의 소실(小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하여튼 '정난정'의 어머니는 관가(官家)의 계집종인 관비(官婢) 출신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이씨'가 겪는 눈물의 세월을 지켜보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은 첩(妾)살이를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정난정이 혼기(婚期)에 접어들자, 그녀를 데려 가겠다는 청혼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나 모두가 소실(小室)자리 뿐이었다. 소실의 딸이기 때문에 소실(小室)로 출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법도이었다. 올곧고 야멸찬 '정난정'이 매파(媒婆)가 다녀갈 때마다 자작시(自作詩)를 지어서 매파(媒婆)를 돌려 보내곤하였다. 바로 그 시(詩)가 당시 장안을 떠들석하게 하였다.
서녀절세한 庶女絶世翰 소실의 딸로 태어난 것이 절세의 한이 되어
여의단간장 汝意斷肝腸 간장이 끊어지는 듯 서러워라
명부시정경 名婦是貞敬 명가의 며느리는 정경부인이라
방소조혼객 放笑嘲婚客 혼담 가져온 사람을 크게 웃어 조롱하네
이 무렵 조선의 정국은 바로 가관이었다. 임금 인종(仁宗)이 재위 8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어린 이복동생 명종(明宗 ... 문정왕후의아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명종(明宗)의 외삼촌되는 윤원형(尹元衡)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와 윤원형(尹元衡) 두 남매는 자신들의 권력 독점과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왕권을 빙자하여 상대 정파(政派)를 죽이거나 유배 보내고 사건을 조작하여 매장했다. 이들에게 국가 안위나 민생 안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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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이 되려고 기생의 길을 선택하다
정난정(鄭蘭貞)은 미천한 신분을 떨치고 천출(賤出)의 한(恨)을 푸는 길은 당대 최고의 권세가 윤원형(尹元衡)의 첩실(妾室)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정난정은 '윤원형'이 자주 출입하는 술집을 알아내 그 집의 기생(妓生)이 되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정난정을 보고 첫눈에 반한 윤원형(尹元衡)이 정난정을 자신의 첩실(妾室)로 삼았다. 이때 윤원형은 적처(嫡妻) '연안 김씨'와 원수지간이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폐위)를 기도하다가 사사(賜死) 당한 불구대천의 정적(政敵) 김안로(金安老)의 당질녀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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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명종(明宗) 20년 4월 6일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세상을 떠나자 세상은 급변하였다. 명종(明宗)은 이양(李樑)을 중용(重用)하여 윤원형을 견제했을 정도로 외삼촌 윤원형(尹元衡)을 싫어하였다. 명종(明宗)은 문정왕후의 사망 이후 경연(經筵)에서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외삼촌 박소(薄昭)를 죽인 사례를 언급하였는데, 이는 '윤원형'을 공격하라는 신호이었다.
정난정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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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20년 8월 3일 대사헌(大司憲) 이탁(李鐸)과 대사간(大司諫) 박순(朴淳)이 윤원형을 탄핵(彈劾)하는 첫 포문을 열었다. 이들이 윤원형(尹元衡)을 공격한 첫 번째 사유가 ' 관비(官婢)의 소생을 올려서부인(婦人)으로 삼은 것 '이었던 점은 '정난정'에 대한 사대부(士大夫)의 반감(反感)의 크기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한 달 후에 다시 첩(妾)으로 강등되었고,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어 가있던 윤원형(尹元衡)을 따라갔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명종 20년 9월, 윤원형의 전(前) 부인 '김씨'의 계모 '강씨'가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毒殺)하였다고 고발하였다. 정난정(鄭蘭貞))이 전부인 '김씨'의 몸종 '구슬이'를 시켜 음식 속에 독약을 넣어 독살(毒殺)했다는 주장이었다.
고소장(告訴壯)을 접수한 형조(刑曺)에서는 강상(綱常 .. 삼강오륜을 범한 죄)에 관계되는 일이라서 자신들이 처리할 수 없다며 역모(逆謀) 등 체제(體制) 사건을 다루는 의금부(義禁府)로 이첩하였다. 의금부(義禁府)는 '구슬이'는 물론 10여 명의 여인들을 소환하여 문초(問招)했는데, 짜맞춘 구도대로 진술하기를 거부하는 여인들은 심한 고문(拷問)을 당하였다. '명종실록' 10월 22일자의 기록에 ' 전일 형문(刑問)한 사람은 모두 죽고 단지 주거리(住去里 .. 정난정의 여종)만 남았다 '는 위관의 보고는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는 그녀들이 심한 고문(拷問)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부인(否認)했다는 뜻에 다름 아니었다.
관련자들이 모두 죽자 의금부(義禁府)는 '정난정'을 잡아다가 심문하자고 청했다. 의금부가 원하는것은 사건의 진상(眞相)이 아니라 '정난정'의 목숨이었다. 명종(明宗)은 어머니 문정왕후(文貞王后)의 무덤에 풀이 돋기도 전에 어머니의 형제인 '윤원형'를 내쫓고 어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정난정'마저 장하(杖下)의 귀신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빠르다는 생각에서 일단 거부하였다.
정난정(鄭蘭貞)은 자신의 부인첩(夫人帖)을 거두라는 주장을 한 달 동안 거부하는 체 하다가 윤허(允許)한 것 처럼 이번에도 결국에는 허락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끌려가면 장하(杖下)의 귀신이 되리라고 직감한 그녀는 사대부(士大夫)들의 조롱 속에 신음하지는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녀는 명종(明宗) 20년인 1565년 11월 3일 ' 금부도사가 온다'는 종의 말을 듣고 ' 남에게 제재를받느니 스스로 죽음만 못하다 '며 자결하였다. 정난정이 죽자 그녀를 가슴 깊이 사랑하였던 윤원형(尹元衡)도 뒤를 따라 음독(飮毒) 자살(自殺)하였다. 그녀는 죽은 후 다시 천인(賤人)으로 환원되었고, 사대부들은 그녀를 성리학(性理學)과 강상(綱常 .. 삼강오륜)을 어지럽힌 만고의 죄인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명종실록의 기록
윤원형의 첩(妾) 정난정이 자살하였다. '김씨'를 독살(毒殺)한 정상은 환하게 드러나 의심이 없어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인데, 다만 윤원형을 두려워해 감히 신인(神人)이 함께 격분할 죄상을 발설치 못함이 여러 날이었다. 그 일에 간여된 계집종들을 다 문초(問招)하였는데, 그 음흉한 비계(秘計)는 정난정(鄭蘭貞)도 스스로 천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항상 독약(毒藥)을 가지고 다니면서 ' 사세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반드시 나를 잡으러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독약을 먹고 죽을 것이다 '라고 하였었다. 마침 금부도사(禁府都事)가 평안도 진장(鎭將)을 잡아 가지고 금교역(金郊驛)에서 말을 바꾸어 타고 있었는데, 윤원형의 집 종이 이를 보고 달려와 고하기를 ' 도사가 금방 오고 있다 '하니, 윤원형은 소리내어 울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정난정은 ' 남에게 제재를 받느니 스스로 죽음만 못하다 '하고 약을 마시고 바로 죽었다.
또한 정난정(鄭蘭貞)의 죄(罪)는 주모(主母)를 독살한 것만이 아니었다. 이미 부인(夫人)에 오른 뒤 종기(腫氣)가 등에 났었는데, 의원 송윤덕(宋潤德)으로 하여금 침(鍼)으로 이를 째게 하였다. 송윤덕(宋潤德)은 세침(細鍼)을 가지고 치료하면서 여러 번 그 종기(腫氣) 난 곳을 빨아주어 '정난정'의 마음을 사려고 했다. 이로부터 '송윤덕'이 거침없이 드나드니 추문(醜聞)이 파다하였다. 그런데도 윤원형만 이 사실을 모르고 송윤덕을 보기를 아들처럼 하였다. 사람들은 '윤원형'이 속고 있는 것을 욕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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