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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卷 第一
삼국사기 권 제1
輸忠定難靖國贊化同德功臣, 開府儀同三司, 檢校太師. 守太保, 門下侍中, 判尙書吏禮部事
集賢殿太學士, 監修國史. 上柱國致仕臣金富軾奉 宣撰
수충정난정국찬화동덕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사이례부사
집현전태학사, 감수국사. 상주국으로부터 은퇴한 소신 김부식이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편찬함.
新羅本紀 第一
신라본기 제일
始祖 赫居世居西干 南解次次雄 儒理尼師今 脫解尼師今 婆師尼師今 祇摩尼師今 逸聖
시조 혁거세거서간 남해차차웅 유리이사금 탈해이사금 파사이사금 지마이사금 일성
尼師今
이사금
始祖, 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原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 卽位, 號居西
시조 성박씨, 휘혁거세, 전한효선제오봉원년갑자, 사월병진일왈정월십오일, 즉위, 호거서
干, 時年十三, 國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
간, 시년십삼, 국호서나벌, 선시, 조선유민, 분거산곡지간위육촌, 일왈알천양산촌, 이왈돌
山高墟村, 三曰觜山珍支村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산고허촌, 삼왈취산진지촌혹운간진촌, 사왈무산대수촌, 오왈금산가리촌, 육왈명활산고야촌,
是爲辰韓六部, 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往觀之, 忽不見馬,
시위진한육부, 고허촌장소벌공, 망양신록, 나정방림간, 유마궤이시, 칙왕관지, 홀불견마,
只有大卵, 部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及年十餘歲, 岐寲然夙成, 六部人, 以其生神異,
지유대란, 부지, 유영아출언, 칙수이양지, 급년십여세, 기의연숙성, 육부인, 이기생신이.
推尊之, 至是, 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故, 以朴爲姓, 居西干, 辰言王或云呼
추존지 지시, 입위군언, 진인위호위박, 이초대란여호고, 이박위성, 거서간, 진언왕혹운호
貴人之稱.
귀인지칭.
시조의 성은 박씨며,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 4월 병진⟨혹은 정월 십오일이라고도 함⟩즉위하여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고, 그때 나이는 13세, 국호는 서나벌이라 하였다. 일찍기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이곳에 와서 산곡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觜山(취산)의 진지촌(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이란 것이니 이것이 진한의 6부이었다. 고허촌장인 소벌공(蘇伐公)이 양산기슭 나정옆의 숲 사이를 바라보니, 말이 꿇어 않아 울고 있는지라, 가보니 말은 간데 없고, 다만 있는 것은 큰 알뿐이었다. 알을 깨어본즉 어린아이가 나왔다. 곧 데려다가 길렀더니, 나이 10여 세가 되매 유달리 숙성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이상하였던 까닭에 높이 받들더니 이때 이르러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았다. 진한 사람들은 박(瓠)을 박(朴)이라 할새, 처음 큰 알이 박과 같다 하여 박(朴)으로써 성을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의 말로 왕이란 뜻이다.⟨혹은 귀인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四年, 夏四月辛丑朔, 日有食之.
사년, 하사월신축삭, 일유식지.
4년 여름 4월 초하루 신축에 일식이 있었다.
五年, 春正月, 龍見於閼英井, 右脇誕生女兒, 老嫗見而異之, 收養之, 以井名名之, 及長有德
오년, 춘정월, 용견어알영정, 우협탄생여아, 노구견이이지, 수양지, 이정명명지, 급장유덕
容 始祖聞之, 納以爲妃, 有賢行能內輔, 時人謂之二聖.
용 시조문지, 납이위비, 유현행능내보, 시인위지이성.
5년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서, 오른쪽 갈빗대에서 한 계집아이를 낳았다. 늙은 할멈이 이를 보고 이상히 여기어 데려다 기를새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지었다.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를 갖추어 시조가 듣고 왕비로 받아들였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가 훌륭하여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두 성인이라고 하였다.
八年, 倭人行兵, 欲犯邊, 聞始祖有神德, 乃還.
팔년, 왜인행병, 욕범변, 문시조유신덕, 내환.
8년 왜인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변경을 침범하려다가, 시조의 신덕이 있음을 듣고 돌아 갔다.
九年, 春三月, 有星孛于王良.
구년, 춘삼월, 유성패우왕양.
9년 봄 3월에 살별(孛星)이 왕량성좌에 살별이 나타났다.
十四年, 夏四月, 有星孛于參.
십사년, 하사월, 유성패우삼.
14년 여름 4월 삼성좌에 살별이 나타났다.
十七年, 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 以盡地利.
십칠년, 왕순무육부, 비알영종언, 권독농상, 이진지리.
17년 왕이 6부를 순행할새, 왕비 알령도 따라 갔다. 농사와 양잠을 힘쓰도록 권장하여 토지의 생산을 충분히 이용 하도록 하였다.
十九年, 春正月, 卞韓以國來降.
십구년, 춘정월, 변한이국내항.
19년 봄 정월 변한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해 왔다.
二十一年, 築京城, 號曰金城, 是年, 高句麗始祖東明立.
이십일년, 축경성, 호왈금성, 시년, 고구려시조동명입.
21년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이 해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東明)이 왕위에 올랐다.
二十四年, 夏六月壬申晦, 日有食之.
이십사년, 하육월임신회, 일유식지.
24년 여름 6월 그믐 임신에 일식이 있었다.
二十六年, 春正月, 營宮室於金城.
이십육년, 춘정월, 영궁실어금성.
26년 봄 정월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三十年, 夏四月己亥晦, 日有食之, 樂浪人將兵來侵, 見邊人夜戶不扃, 露積被野, 相謂曰, 此
삼십년, 하사월기해회, 일유식지, 낙랑인장병래침, 견변인야호불경, 로적피야, 상위왈, 차
方民不相盜, 可謂有道之國, 吾儕潛師而襲之, 無異於盜, 得不愧乎, 乃引還.
방민불상도, 가위유도지국, 오제잠사이습지, 무이어도, 득불괴호, 내인환.
30년 여름 4월 그믐 기해에 일식이 있었다. 낙랑인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침범하려다가 변방 사람들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으며 노적가리가 들에 가득함을 보고 말하기를 이곳 사람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지 아니하니 가위 도가 있는 나라라 할만 하다. 우리가 군사로 몰래 습격하는 것은 도적과 다름이 없으니 부끄럽지 아니하냐 하고, 곧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三十二年, 追八月乙卯晦, 日有食之.
삼십이년, 추팔월을묘회, 일유식지.
32년 가을 8월 그믐 을묘에 일식이 있었다.
三十八年, 春二月, 遣瓠公聘於馬韓, 馬韓王讓瓠公曰, 辰卞二韓, 爲我屬國, 比年不輸職貢,
삼십팔년, 춘이월, 견호공빙어마한, 마한왕양호공왈, 진변이한, 위아속국, 비년불수직공,
事大之禮, 其若是乎 對曰, 我國自二聖肇興, 人事修, 天時和, 倉庾充實, 人民敬讓, 自辰韓遺
사대지예, 기약시호, 대왈, 아국자이손조흥, 인사수, 천시화, 창유충실, 인민경양, 자진한유
民, 以至卞韓. 樂浪. 倭人, 無不畏懷, 而吾王謙虛, 遣下臣修聘, 可謂過於禮矣, 而大王赫怒,
민, 이지변한. 낙랑. 왜인, 무불외회, 이오왕겸허, 견하신수빙, 가위과어예의, 이대왕혁노,
劫之以兵, 是何意耶, 王憤欲殺之, 左右諫止乃許歸, 前此, 中國之人, 苦秦亂, 東來者衆, 多
겁지이병, 시하의야, 왕분욕살지, 좌우간지내허귀, 전차, 중국지인, 고진난, 동래자중 다
處馬韓東, 與辰韓雜居, 至是, 寖盛, 故馬韓忌之, 有責焉, 瓠公者未詳其族姓, 本倭人, 初以
처마한동, 여진한잡거, 지시, 침성, 고마한기지, 유책언, 호공자미상기족성, 본왜인, 초이
瓠繫腰, 渡海而來, 故稱瓠公.
호계요, 도해이래, 고칭호공.
38년 봄 2월에 호공을 마한에 보내어 예방하매. 마한 왕이 호공을 꾸짖어 가로되,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아니하니, 대국를 섬기는 예절이 이같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호공이 대답하되, 우리나라는 두분의 성인이 일어나면서 사회가 다스려지고 천시가 조화를 이루어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공경과 겸양을 알게 되었으며. 진한의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두려워하고 그리워하지 않는자가 없습나다. 우리 임금은 겸손하여 소신을 보내 예방하니 지나친 예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깨서 진노하여 군사로써 겁박하니 무슨 뜻이냐고 하였다. 마한왕이 격분하여 호공을 죽이려고 하매 좌우의 신하들이 간언하여 말리는지라, 귀국을 허락하였다. 이 앞서 중국 사람이 진(秦)나라의 난리에 괴로와 동쪽으로 오는 사람이 많을새, 대게 마한의 동쪽에 처하여 진한 사람들과 더불어 섞여 살더니 이에 이르러 점점 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한이 이를 꺼리어 책망한 것이었다. 호공의 집안과 성씨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본시 왜인으로 처음에 박(瓠)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온 까닭에 호공(瓠公)이라 일컬었다.
三十九年, 馬韓王薨, 或說上曰, 西韓王前辱我使, 今當其喪征之, 其國不足平也, 上曰, 幸人
삼십구년, 마한왕훙, 혹설상왈, 서한왕전욕아사, 금당기상정지, 기국불족평야, 상왈, 행인
之災, 不仁也, 不從乃遣使, 弔慰.
지재, 불인야, 불종내견사, 조위.
39년 마한왕이 돌아갔다. 어떤 사람이 임금에게 일러 가로되, 서한(西韓) 왕이 전에 우리 사신을 욕보인 일이 있으니, 지금 그 국상을 당한 기회에 이를 치면 그 나라는 족히 애써 평정할 것도 없다고 하였다. 왕이 가로되, 남의 불행을 다행히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라 하여 듣지 않고고 사신을 보내 조위(弔慰)하였다.
四十年 百濟始祖溫祚立.
사십년 백제시조온조입.
40년 백제 시조 온조(溫祚)가 즉위하였다.
四十三年, 春二月乙酉晦, 日有食之.
사십삼년, 춘이월을유회, 일유식지.
43년 봄 2월 그믐 을유에 일식이 있었다.
五十三年, 東沃沮使者來, 獻良馬二十匹曰, 寡君聞南韓有聖人出, 故遣臣來享.
오십삼년, 동옥저사자래, 헌양마이십필왈, 과군문남한유성인출, 고견신래향.
53년 동옥저의 사자가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며 말하되, 우리 임금이 남한(南韓)에 성인이 났다는 말을 들었기에 소신를 보내 바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五十四年, 春二月己酉, 星孛于河鼓.
오십사년, 춘이월기유, 성패우하고.
54년 봄 2월 그믐 기유에 살별이 하고성좌에 나타났다.
五十六年, 春正月辛丑朔, 日有食之.
오십육년, 춘정월신축삭, 일유식지.
56년 봄 정월 초하루 신축에 일식이 있었다.
五十九年, 秋九月戊申晦, 日有食之.
오십구년, 추구월무신회, 일유식지.
59년 가을 9월 그믐 무신에 일식이 있었다.
六十年, 秋九月二龍見於金城井中, 暴雷雨, 震城南門.
육십년, 추구월이용견어금성정중, 폭뢰우, 진성남문.
60년 가을 9월 두 용이 금성 우물 안에 나타나더니 갑자기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으며 성 남문에 벼락을 쳤다.
六十一年, 春三月, 居西干升遐, 葬蛇陵, 在曇巖寺北.
육십일년 춘삼월 거서간승하, 장사능, 재담암사북.
61년(서기 4) 봄 3월에 거서간이 승하하여 사릉에 장사지내니 능은 담암사 북쪽에 있다.
南解次次雄立 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 巫事鬼神. 尙祭祀, 故畏敬之, 遂
남해차차웅입 차차웅, 혹운자충, 김대문운, 방언위무야, 세인이, 무사귀신. 상제사, 고외경지, 수
稱尊長者, 爲慈充 赫居世嫡子也, 身長大, 性沈厚, 多智略, 母閼英夫人, 妃雲帝夫人一云阿屢
칭존장자, 위자충 혁거세적자야, 신장대, 성침후, 다지략, 모알영부인, 비운제부인일운아루
夫人, 繼父卽位, 稱元.
부인, 계부즉위, 칭원.
남해 차차웅이 즉위하니 ⟦차차웅은 혹은 자충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이 이르되, 방언에 무당를 의미한 말이니 세인은 무당이 귀신을 위하고 제사를 숭상하는 까닭으로 사람들은 무당을 두려워 하고 존경하므로 존경받는 어른을 자충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는 혁거세의 적자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성품은 침착하고 지략이 많았으며, 어머니는 알영부인이요. 비는 운제부인⟨혹은 아루부인이라고도 함⟩이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이 해를 원년으로 하였다.
論曰, 人君卽位, 踰年稱元, 其法, 詳於春秋, 此先王不干之典也, 伊訓曰, 成湯旣沒, 太甲元
론왈, 인군즉위, 유년칭원, 기법, 상어춘추, 차선왕불간지전야, 이훈왈, 성탕기몰, 태갑원
年, 正義曰, 成湯旣沒, 其歲, 卽太甲元年, 然孟子曰,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년, 정의왈, 성탕기몰, 기세, 즉태갑원년, 연맹자왈, 탕붕, 태정미입, 외병이년, 중임사년,
則疑若尙書之脫簡, 而正義之誤設也, 或曰, 古者, 人君卽位, 或踰月稱元年, 或踰年而稱元年
칙의약상서지탈간, 이정의지오설야, 혹왈, 고자, 인군즉위, 혹유월칭원년, 혹유년이칭원년
踰月而稱元年者, 成湯旣沒, 太甲元年, 是也, 孟子云太丁未立者, 謂太丁未立而死也, 外丙二
유월이칭원년자, 성탕기몰, 태갑원년, 시야, 맹자운태정미입자, 위태정미입이사야, 외병이
年, 仲壬四年者, 皆謂, 太丁之子, 太甲二兄, 或生二年, 或生四年而死, 太甲所以得繼湯耳,
년, 중임사년자, 개위, 태정지자, 태갑이형, 혹생이년, 혹생사년이사, 태갑소이득계탕이,
史記便謂此仲壬. 外丙爲二君, 誤也, 由前, 則以先君終年, 卽位稱元, 非是, 由後, 則可謂得
사기편위차중임. 외병위이군, 오야, 유전, 칙이선군종년, 즉위칭원, 비시, 유후, 칙가위득
商人之禮者矣.
상인지예자의.
론하여 가로되 임금이 즉위하면 다음 해를 원년이라고 하는 법은 『춘추』에 상세히 있으며 이는 선왕의 고칠 수 없는 법이다. 『상서(尙書). 이훈(伊訓)에 가로되 성탕이 죽었으매 태갑 원년이라 하고, 『정의』에는 성탕이 죽은 그 해가 곧 태갑 원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맹자
』왈 탕왕이 가봉하고 태정이 아직 즉위하지 못한채 외병 2년이요, 중임은 4년이다. 아마 『상서. 이훈』 에 글자가 빠져서 『정의』도 잘못된 설명이지 싶다. 혹은 말하되 옛적에 임금이 즉위하면 달을 넘겨 원년이라고 일컬기도 했고 또는 해를 넘겨 원년이라고 했다. 달을 넘겨 원년이라고 부른 경우로는 성탕이 죽었으니 태갑 원년이다가 그것이다. 『맹자』에서 말한 태정이 즉위하지 않았다, 라는 것은 태정이 즉위하지 못한채 죽었다는 것이다. 외병 2년중임 4년이다,고 한 것은 모두 태정의 아들인, 태갑의 두 형이 태어 난지 2년 혹은 4년 만에 죽었으므로 태갑이 탕왕의 뒤를 승계한 까닭이다. 『사기』가 중임과 외병을 두 임금으로 본 것은 오류이다. 전자에 의하면 남해 차차웅이 선와이 죽은 해를 즉위 원년이라 불렀으니이는 옳지 않으며 후자에 의하면 상나라 사람의 예절이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元年, 秋七月, 樂浪兵至, 圍金城數重, 王謂左右曰, 二聖棄國, 孤以國人推戴, 謬居於位, 危
원년, 추칠월, 낙랑병지, 위금성수중, 왕위좌우왈, 이성기국, 고이국인추대, 류거어위, 위
懼若涉川水, 今鄰國來侵, 是孤之不德也, 爲之若何, 左右對曰, 賊幸我有喪, 妄以兵來, 天必
구약섭천수, 금린국래침, 시고지불덕야, 위지약하, 좌우대왈, 적행아유상, 망이병래, 천필
不祐, 不足畏也, 賊俄而退歸.
불우, 불족외야, 적아이퇴귀.
원년 가을 7월 낙랑 군사가 와서 여러 겹으로 금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좌우에게 일러 가로되 「두 성인이 돌아가시고 내가 나라 사람들의 추대로 왕위에 잘못 올라 앉았으니 강물을 건너는 것처럼 두렵다 지금 이웃 나라가 침범하니 이는 나의 부덕한 까닭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고 하였다. 좌우 대답하되 『적이 우리가 국상이 있음을 다행히 여기어 함부로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치니, 하늘이 절대 돕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적은 조금 지나 물러갔다.
三年, 春正月, 立始祖廟, 冬十月丙辰朔, 日有食之.
삼년, 춘정월, 입시조묘, 동십월병진삭, 일유식지.
3년 정월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 겨울 10월 초하룻날 병진에 일식이 있었다.
五年, 春正月, 王聞脫解之賢, 以長女妻之.
오년, 춘정월, 왕문탈해지현, 이장여처지.
5년 봄 정월에 탈해의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맏딸를 그에게 시집보냈다.
七年, 秋七月, 以脫解爲大輔, 委以軍國政事.
칠년, 추칠월, 이탈해위대보, 위이군국정사.
7년 가을 7월 탈해를 대보로 하고 군국정사를 맡겼다.
八年, 春夏 旱.
팔년, 춘하, 한.
8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十一年, 倭人遣兵船百餘艘, 掠海邊民戶, 發六部勁兵以御之, 樂浪謂內虛, 來攻金城甚急, 夜
십일년, 왜인견병선백여소, 약해변민호, 발육부경병이어지, 낙랑위내허, 래공금성심급, 야
有流星, 墜於賊營, 衆懼而退, 屯於閼川之上, 造石堆二十而去, 六部兵一千人追之, 自吐含山
유유성, 추어적영, 중구이퇴, 둔어알천지상, 조석퇴이십이거, 육부병일천인추지, 자토함산
東至閼川, 見石推知賊衆, 乃止.
동지알천, 견석추지적중, 내지.
11년 왜인이 병선 백여척을 보내어 해변의 민가를 노략하므로, 6부의 정병을 보내 막게 하였다. 낙랑은 우리의 내부가 빈 줄로 알고 와서, 매우 급히 금성을 칠새, 밤에 유성이 적진에 떨어졌다. 적의 무리가 두려워하며 알천가에 주둔하고 돌무더기 20개를 쌓아놓고 물러갔다. 6부의 군사 1천인이 이를 쫓아 토암산 동쪽으로부터 알천까지 추격하다가 돌무더기를 보고 적의 무리가 많은 것으로 알고 그만 두었다.
十三年, 秋七月戊子晦, 日有食之.
십삼년, 추칠월무자회, 일유식지.
13년 칠월 그믐날 무자에 일식이 있었다.
十五年, 京城旱, 秋七月 蝗, 民饑, 發倉廩救之.
십오년, 경성한, 추칠월, 황, 민기, 발창늠구지.
15년 서울에 가뭄이 있고 가을 7월에 황충해를 압었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十六年, 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獻之.
십육년, 춘이월 ,북명인경전, 득예왕인헌지.
16년 봄 2월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을 얻어 왕에게 바치었다.
十九年, 大疫, 人多死, 冬十一月, 無氷.
십구년, 대역, 인다사, 동십일월, 무빙.
19년 역병이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었다. 겨울 11월에 얼음이 얼지 아니하였다.
二十年, 秋, 太白入太微.
이십년, 추, 태백입태미.
20년 가을에 금성이 태미성좌로 들어갔다.
二十一年, 秋九月, 蝗, 王薨, 葬蛇陵園內.
이십일년, 추구월, 황, 왕훙, 장사릉원내.
21년 가을 9월에 황충해를 입었다. 왕이 돌아가매 사릉원 안에 장사지냈다.
儒理尼師今立, 南解太子也, 母雲帝夫人, 妃日知葛文王之女也或云妃姓朴許屢王之女, 初南解
유리이사금입, 남해태자야, 모운제부인, 비일지갈문왕지녀야혹운비성박허루왕지여, 초남해
薨, 유리당입, 以大輔脫解素有德望, 推讓其位, 脫解曰, 神器大寶, 非庸人所堪, 吾聞聖智人
훙, 유리당입, 이대보탈해소유덕망, 추양기위, 탈해왈, 신기대보, 비용인소감, 오문성지인
多齒, 試以餠噬之, 儒理齒理多, 乃與左右奉立之, 號尼師今, 古傳如此, 金大問則云, 尼師今
다치 시이병소지, 유리치이다, 내여좌우봉입지, 호이사금, 고전여차, 김대문칙운, 이사금
方言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 壻脫解曰, 吾死後, 汝朴昔二姓, 以年長而嗣位焉,
방언야, 위치리, 석남해장사, 위남유리, 서탈해왈, 오사후, 여박석이성, 이연장이사위언,
其後, 金姓亦興, 三姓以齒長相嗣, 故稱尼師今.
기후, 김성역흥, 삼성이치장상사, 고칭이사금.
유리이사금이 즉위하니, 남해의 태자다. 어머니는 운제부인이요 비는 일지갈문왕의 딸이었다.⟨혹은 이르되 비의 성은 박씨로 허루왕의 딸이라 한다⟩당초 남해가 돌아간 후 유리가 당연히 즉위해야 할 터인데, 대보 탈해가 본디 덕망이 있으므로 왕위를 그에게 밀어 사양하니, 탈해는 말하되 신기대보는 용렬한 사람의 감당할 바가 아니다. 내가 들어매 지혜있는 사람은 이(齒)가 많다 하니 떡을 물어 시험하자고 하였다. 유리의 잇금이 많으므로, 이에 좌우로 더불어 그를 받들어 왕을 삼고 호를 이사금이라고 하였다. 옛부터 전하는 말은 이와 같거니와, 김대문은 이르되 이사금은 즉 방언으로서 잇금을 의미한 말이니 옛적에 남해가 장차 돌아가려 할 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죽은 후 너희 박. 석 이성이 년장자로 왕위를 이어라 하였더니, 그 후에 김씨도 또한 일어나 세 성씨들 중에 나이 많은 자를 선택하여 왕위를 잇도록 한 이유로 왕을 이사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大赦.
이년, 춘이월, 친사시조묘, 대사.
2년 봄 2월 친히 시조묘에 제사지내고 대사면 하였다.
五年, 冬十一月, 王巡行國內, 見一老嫗飢凍將死, 曰予以眇身居上, 不能養民, 使老幼至於此
오년, 동십일월, 왕순행국내, 견일노구기동장사, 왈여이묘신거상, 불능양민, 사노유지어차
極, 是予之罪也, 解衣以覆之, 推食以食之, 仍命有司, 在處存問, 鰥寡孤獨老病不能自活者,
극, 시여지죄야, 해의이복지, 추식이식지, 잉명유사, 재처존문, 환과고독노병불능자활자,
給養之, 於是, 鄰國百姓聞而來者, 衆矣, 是年, 民俗歡康, 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급양지 어시, 인국백성문이래자, 중의, 시년, 민속환강, 시제도솔가, 차가낙지시야.
5년 겨울 11월 나라안을 순행하다가 한 늙은 노파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감을 보고 가로되, 내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왕위에 있어 능히 백성을 기르지 못하고 늙은이와 어린아이로 하여금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니, 이는 나의 죄라 하고, 옷을 벗어 그를 덮어 주고 밥을 주어 먹게 한 후 이내 유사에게 명하여 곳곳마다 홀아비. 홀어미. 고아. 아들 없는 이. 늙은이. 병든 이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를 위로하고 보살펴 양식을 나누어 주어 부양하도록 하였더니, 이에 이웃나라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오는 자가 많았다. 이 해에 백성들이 즐겁고 편안하여 처음으로 도솔가를 지어니 이는 가악의 시초이었다.
九年, 春,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
구년, 춘, 개육부지명, 잉사성, 양산부위양부, 성이, 고허부위사량부, 성최, 대수부위점량
部一云牟梁, 姓孫, 干珍部爲本彼部, 姓鄭, 加利部爲漢祇部, 姓裵, 明活部爲習比部, 姓薛, 又
부일운모량, 성손, 간진부위본피부, 성정, 가리부위한기부, 성배, 명활부위습비부, 성설, 又設官, 有十七等, 一伊伐湌, 二伊尺湌, 三迊湌, 四波珍湌, 五大阿湌, 六阿湌, 七一吉湌, 八
설관, 유십칠등, 일이벌찬, 이이척찬, 삼잡찬, 사파진찬, 오대아찬, 육아찬, 칠일길찬, 팔
沙湌, 九級伐湌, 十大奈麻, 十一奈麻, 十二大舍, 十三小舍, 十四吉士, 十五大烏, 十六小烏
사찬, 구급벌찬, 십대나마, 십일나마, 십이대사, 십삼소사, 십사길사, 십오대오, 십육소오
十七造位,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
십칠조위, 왕기정육부, 중분위이, 사왕녀이인, 각솔부내녀자, 분붕조당, 자추칠월기망, 매
日旱集大部之庭, 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
일한집대부지정, 적마, 을야이파, 지팔월십오일, 고기공지다소, 부자치주식, 이사승자, 어
是, 歌舞百戱, 皆作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起舞, 歎曰會蘇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
시, 가무백희, 개작위지가배, 시시, 부가일녀자기무, 탄왈회소회소, 기음애아, 후인인기성
而作歌, 名會蘇曲
이작가, 명회소곡
9년 봄에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을 내려 주었다. 양산부를 양부라 하여 그 성을 이(李)라 하고, 고허부를 사량부, 그 성을 최(崔)라 하고 대수부를 점량부,(혹은 모량이라고도 함) 그 성을 손(孫)이라 하고, 간진부를 본피부, 그 성을 정(鄭)이라 하고, 가리부를 한기부, 그 성을 배(裵)라 하고, 명활부를 습비부, 그 성을 설(薛)이라 하였다. 또 관직을 베풀어 17등급을 두니 제1은 이벌찬, 제2는 이척찬, 제3은 잡찬, 제4는 파진찬, 제5는 대아찬, 제6은 아찬, 제7은 일길찬, 제8은 사찬, 제9는 급벌찬, 제10은 대나마, 제11은 나마, 제12는 대사, 제13은 소사, 제14는 길사, 제15는 대오, 제16은 소오, 제17은 조위였다. 왕은 6부를 정하고 절
반씩 나눈후 왕여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리어 편을 짰다. 가을 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대부의 마당에 모이어 길쌈을 시작하여 밤 10시경에 마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지는 편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행하는데 이를 가베라 한다. 이때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답거늘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이라 했다.
十一年, 京都地裂, 泉湧, 夏六月, 大水.
십일년, 경도지열, 천용, 하육월, 대수.
11년 서울에 땅이 갈라지고 샘이 솟았다. 여름 6월 홍수가 났다.
十三年, 秋八月, 樂浪犯北邊, 攻陷朶山城.
십삼년, 추팔월, 낙랑범북변, 공함타산성.
13년 가을 8월 낙랑이 북변을 침범하여 타산성을 쳐서 함락하였다.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십사년, 고구려왕무휼, 습낙랑멸지, 기국인오천래투, 분거육부.
14년에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매 낙랑사람 5천이 와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十七年, 秋九月, 華麗. 不耐二縣人, 連謀率騎兵犯北境, 貊國渠師以兵, 要曲河西敗之, 王喜
십칠년, 추구월, 화려. 불내이현인, 연모솔기병범북경, 맥국거사이병, 요곡하서패지, 왕희
與貊國結好.
여맥국결호.
17년 가을 9월 화려. 불내 두 현의 사람이 공모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경을 침범하므로 맥국의 거사가 군사로써 곡하 서쪽에서 가로막아 이를 깨트리니, 왕은 기뻐하며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十九年, 秋八月, 貊師獵得禽獸, 獻지.
십구년, 추팔월, 맥사렵득금수, 헌지.
19년 가을 8월 맥국의 거사가 사냥을 하여 새와 짐승을 바쳤다.
三十一年, 春二月, 星孛于紫宮.
삼십일년, 춘이월, 성패우자궁.
31년 봄 2월 살별이 자궁성좌에 나타났다.
三十三年, 夏四月, 龍見金城井, 有頃, 暴雨自西北來, 五月, 大風拔木.
삼십삼년, 하사월, 용견금성정, 유경, 폭우자서북래, 오월, 대풍발목.
33년 여름 4월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나더니 얼마 있다가 폭우가 서북으로부터 쏟아져 왔다. 5월에는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혔다.
三十四年, 秋九月, 王不豫, 謂臣寮曰, 脫解身聯國戚, 位處輔臣 屢著功名, 朕之二子, 其才不
삼십사년, 추구월, 왕불예, 위신료왈, 탈해신련국척, 위처보신 루저공명, 짐지이자, 기재불 及遠矣, 吾死之後, 俾卽大位, 以無忘我遺訓, 冬十月, 王薨, 葬蛇陵園內.
급원의, 오사지후, 비즉대위, 이무망아유훈, 동십월, 왕훙, 장사릉원내.
34년 가을 9월 왕이 병으로 편치 못하여 신하들에게 이르되, 탈해는 그 몸이 임금의 친척이고 위가 대신의 자리에 있고 여러 번 공명을 나타냈다. 나의 두 아들은 재주가 탈해에게 미치지 못하니, 내가 죽은 뒤에는 탈해로 즉위케 하여 나의 유훈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그 해 왕이 돌아가매 사릉원내에 장사지냈다.
脫解尼師今立一云吐解, 時年六十二, 姓昔, 妃阿孝夫人, 脫解, 本多婆那國所生也, 其國在倭
탈해이사금입일운토해, 시년육십이, 성석, 비아효부인, 탈해, 본다파나국소생야, 기국재왜
國東北一千里, 初其國王娶女國王女爲妻, 有娠七年, 乃生大卵, 王曰, 人而生卵不祥也, 宜棄
국동북일천리, 초기국왕취여국왕여위치, 유신칠년, 내생대란, 왕왈, 인이생란불상야, 의기
之, 其女不忍, 以帛裹卵並寶物, 置於櫝中, 浮於海, 任其所往, 初至金官國海邊, 金官人怪之
지, 기녀불인, 이백과란병보물, 치어독중, 부어해, 임기소왕, 초지금관국해변, 금관인괴지
不取, 又至辰韓阿珍浦口, 是始祖赫居世在位三十九年也, 時海邊老母, 以繩引繫海岸, 開櫝見
불취, 우지진한아진포구, 시시조혁거세재위삼십구년야, 시해변노모, 이승인계해안, 개독견
之, 有一小兒在焉, 其母取養之, 及壯身長九尺, 風神秀朗, 智識過人, 或曰, 此兒不知姓氏,
지, 유일소아재언, 기모취양지, 급장신장구척, 풍신수랑, 지식과인, 혹왈, 차아불지성씨,
初櫝來時, 有一鵲飛鳴而隨之, 宜省鵲字, 以昔爲氏, 又解韞櫝而出, 宜名脫解, 脫解, 始以漁
초독래시, 유일작비명이수지, 의성작자, 이석위씨, 우해온독이출, 의명탈해, 탈해, 시이어
魡爲業, 供養其母, 未嘗有懈色, 母謂曰, 汝非常人, 骨相殊異, 宜從學以立功名, 於是, 專精조위업, 공양기모, 미상유해색, 모위왈, 여비상인, 골상수이, 의종학이입공명, 어시, 전정
學問, 兼知地理, 望楊山下瓠公宅, 以爲吉地, 設詭計, 以取而居之, 其地後爲月城, 至南解王학문, 겸지지리, 망양산하호공택, 이위길지, 설위계, 이취이거지, 기지후위월성, 지남해왕
五年, 聞其賢, 以其女妻之, 至七年, 登庸爲大輔, 委以政事, 儒理將死曰, 先王顧命曰, 吾死
오년, 문기현, 이기여처지, 지칠년, 등용위대보, 위이정사, 유리장사왈, 선왕고명왈 오사
後 無論子壻, 以年長且賢者, 繼位是以, 寡人先立, 今也, 宜傳其位焉.
후 무론자서, 이년장차현자, 계위시이, 과인선입, 금야, 의선기위언.
탈해이사금이 즉위하니 이는⟨혹은 吐解(토해)라고도 함⟩그 때 나이 62세이며, 성은 석씨요 비는 아효부인이다. 탈해는 본시 다파나국의 출생으로,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 1천리 되는 곳에 있었다. 처음 그 국왕이 여국왕의 딸을 데려다 아내를 삼았더니,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거늘, 왕이 가로되 사람으로서 알을 낳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버리라고 하였다. 그 아내는 차마 그러하지 못하고 비단에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갈대로 가게 하였다. 처음 금관국 해변에 가서 닿으니, 금관국 사람들이 이를 괴이히 여기어 거두지 아니하고, 다시 진한의 아진포구에 이르니 이때는 시조 혁거세가 재위한 지 39년 되던 해였다. 그때 해변의 노파가 이를 줄로 잡이당기어 바닷가에 매고 궤를 열어본즉 거기에 한 어린아이가 들어 있었다. 그 노모가 이를 데려다 길렀더니, 자라자 신장이 아홉자나 되고 인물이 동탕하고 지식이 남에게 뛰어났다. 어떤이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성을 알지 못하니 처음 궤짝이 와 닿을 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짖으며 따라다녔으니 까치 작(鵲)을 줄여 석으로 성을 삼고, 그 아이가 궤짝을 열고 나왔으니 이름을 탈해라 지으리라 하였다 한다. 탈해가 처음에는 고기잡이로 업을 삼아 그 노모를 봉양할새 한때도 게으름 피운 적이 없었다. 모가 일러 가로되, 너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요 골상이 특이하니 학문을 배워 공명을 이루라고 하였다. 이에 탈해는 학문에 오로지 힘쓰고 겸하여 지리를 아는지라 양산 밑에 있는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 그 터가 길지라고 하여 거짓 꾀를 내어 이를 빼앗아 살았으며 그 땅은 뒷날 월성으로 되었다. 남해왕 5년에 이르러 왕이 그 어짊을 듣고 딸을 주어 아내를 삼게 하였고, 7년에는 그를 대보로 등용하고 정사를 맡기었는데, 유리가 돌아갈 때 가로되 『선왕의 부탁하신 말씀에 내가 죽은 뒤에는 아들이나 사위를 막론하고 나이 많고 어진 사람으로 위를 잇게 하라 하셔서 과인이 먼저 왕위에 올랐다. 지금은 마땅히 왕위를 물려주어야 겠다.
二年, 春正月, 拜瓠公爲大輔, 二月, 親祀始祖廟.
이년, 춘정월, 배호공위대보, 이월, 친사시조묘.
2년 봄 정월에 호공을 대보로 삼았다. 2월 왕이 직접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三年, 春三月, 王登吐含山, 有玄雲如蓋, 浮王頭上, 良久而散, 夏五月 與倭國結好交聘, 六月
삼년, 춘삼월, 왕등토함산, 유현운여개, 부왕두상, 양구이산, 하오월, 여왜국결호교빙, 육월 有星孛于天船.
유성패우천선.
3년 봄 3월 왕이 토함산에 오르매 일산 뚜껑과 같은 검은 구름이 왕의 머리 위에 뜨더니 한참 있다가 흐트러졌다. 여름 5월 왜국과 친교를 맺고 사신을 교환하였다. 6월에는 천선성좌에 살별이 나타났다.
五年, 秋八月, 馬韓將孟召, 以覆巖城降.
오년, 추팔월, 마한장맹소, 이복암성항.
5년 가을 8월 마한장수 맹소가 복암성을 바치며 투항하였다.
七年, 冬十月, 百濟王拓地, 至娘子谷城, 遣使請會, 王不行.
칠년, 동십월, 백제왕척지, 지낭자곡성, 견사청회, 왕불행.
7년 겨울 10월 백제왕이 땅을 넓혀 낭자곡성에 이르러 사자를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가지 않았다.
八年, 秋八月, 百濟遣兵, 攻蛙山城 冬十月, 又攻狗壤城, 王遣騎二千, 擊走之, 十二月, 地震
팔년, 추팔월, 백제견병, 공와산성, 동십월, 우공구양성, 왕견기이천, 격주지, 십이월, 지진 無雪.
무설.
8년 가을 8월에 백제가 군사를 보내어 와산성을 치더니, 10월에 또 구양성을 치므로 왕이 기병 2천을 보내어 공격해 쫓아버렸다. 12월에 지진이 있고 눈이 오지 아니하였다.
九年, 春三月, 王夜聞, 金城西始林樹間, 有鷄鳴聲, 遲明, 遣瓠公視之, 有金色小櫝掛樹枝,
구년, 춘삼월, 왕야문, 금성서시림수간, 유계명성, 지명, 견호공시지, 유금색소독괘수지,
白雞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櫝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寄偉, 上喜, 謂左右曰 此
백계명어기하, 호공환고, 왕사인취독개지, 유소남아재기중, 자용기위, 상희, 위좌우왈 차
豈非天遣我以令胤乎, 乃收養之, 及長聰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櫝姓金氏, 改始林名
개비천견아이영윤호, 내수양지, 급장총명다지략, 내명알지, 이기출어금독성김씨, 개시림명
雞林, 因以爲國號.
계림, 인이위국호.
9년 봄 3월 왕이 밤에 금성 서편 시림의 나무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남을 듣고, 새벽에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니, 나무 가지에 금색의 작은 궤가 걸려 있고 그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그대로 고하니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궤를 가져다 열어 보니 그 속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는데, 그 외모가 동탕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좌우에게 일러 가로되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준 것이 아니냐 하고 거두어 길렀다. 차차 자람에 총명하고 지략이 많을새, 이름을 알지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해서 성을 김씨로 하고 시림을 고치어 계림이라 하여 국호를 삼았다.
十年, 百濟攻取蛙山城, 留二百人居守, 尋取之.
십년, 백제공취와산성, 류이백인거수, 심취지.
10년 백제가 와산성을 쳐 빼앗아 2백인을 머물러 두어 지키게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이를 다시 빼앗았다.
十一年, 春正月, 以朴氏貴戚, 分理國內州郡, 號爲州主, 郡主, 二月, 以順貞爲伊伐湌, 委以
십일년, 춘정월, 이박씨귀척, 분리국내주군, 호위주주, 군주, 이월, 이순정위이벌찬, 위이
政事.
정사.
11년 봄 정월 박씨의 귀척으로써 국내의 주. 군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 직위를 주주 와 군주라고 하였다. 2월에 순정으로 이벌찬을 삼아 정사를 맡기었다.
十四年, 百濟來侵.
십사년, 백제래침.
14년 백제가 침입하였다.
十七年, 倭人侵木出島, 王遣角干羽烏禦之, 不克, 羽烏死之.
십칠년, 왜인침목출도, 왕견각간우오어지, 불극, 우오사지.
17년 왜인이 목출도를 침입하니 왕이 각간 우오를 보내 보내어 막다가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
十八年, 秋八月, 百濟寇邊, 遣兵拒之.
십팔년, 추팔월, 백제구변, 견병거지.
18년 가을 8월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매 군사를 보내 막았다.
十九年, 大旱, 民饑, 發倉賑給, 冬十月, 百濟攻西鄙蛙山城, 拔之.
십구년, 대한, 민기, 발창진급, 동십월, 백제공서비와산성, 발지.
19년 큰 가뭄이 있어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겨울 10월 백제가 서쪽 변경의 와산성을 쳐 점령하였다.
二十年, 秋九月, 遣兵伐百濟, 復取蛙山城, 自百濟來居者二百餘人, 盡殺之.
이십년, 추구월, 견병벌백제, 복취와산성, 자백제래거자이백여인, 진살지.
20년 가을 9월 군사를 보내어 백제를 쳐 와산성을 도로 뺏고 백제에서 와 사는 사람 2백여인을 모두 죽이었다.
二十一年, 秋八月, 阿湌吉門與加耶兵, 戰於黃山津口, 獲一千餘級, 以吉門爲波珍湌, 賞功也.
이십일년, 추팔월, 아찬길문여가야병, 전어황산진구, 획일천여급, 이길문위파진찬, 상공야.
21년 가을 8월 아찬 길문이 가야 군사와 황산진구에서 싸워 1천여급을 얻었다. 길문으로써 파진찬을 삼으며, 공로를 포상하였다.
二十三年, 春二月, 慧星見東方, 又見北方, 二十日乃滅.
이십삼년, 춘이월, 혜성견동방, 우견북방, 이십일내멸.
23년 봄 2월에 혜성이 동쪽에서 보이고 또 북쪽에서 보이더니 20일 만에 없어졌다.
二十四年, 夏四月, 京都大風, 金城東門自壤, 秋八月, 王薨, 葬城北壤井丘.
이십사년, 하사월, 경도대풍, 금성동문자양, 추팔월, 왕훙, 장성북양정구.
24년 여름 4월 서울에 큰 바람이 불었고 금성 동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8월에 왕이 돌아가 성북 양정구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