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에도 자주 출현하는 시중 하나인 문태준 시인의 '맨발' 시와 시평을 소개한다....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간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ㅡ현대시학.2003.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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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었다. 오랫동안 가슴 저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던 내 부르튼 맨발들이 자꾸만 밖으로 빠져 나왔고, 나는 ‘아-, 하고’ 오래오래 전율했고, 깊숙하게 저려오는 가슴을 어찌할 줄 몰라 내내 안과 밖에서 서성거렸고,
끝내는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개조개의 맨발 위에 질척한 세상의 뻘밭에서 부르튼 내 맨발을 포개놓고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개조개가 걷고 만나고 헤어져 돌아왔을, 아니 내 맨발이 걷고 만나고 헤어지고 견뎌내었던 길들이, 잃어버린 사랑이, 막무가내로 아파왔다. 왜 ‘맨발’은 이렇게 애처롭고 쓸쓸하고 아픈가.
구겨져 들앉았던 맨발이 빠져나온 내 가슴은 이렇게 텅 비어 있는가. 구겨 넣었던 맨발의 힘으로 그동안 내 가슴은 버티었단 말인가.
이윽고 밤이 되고 어둠이 나를 들이마시자 잠시 나는 편안했다.
하지만 이내 어둠은 속내를 드러내고 어둠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맨발’을 다시 만난다.
비로소 나는 고요하게 심안을 뜨고 맨발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먼먼 탁발의 길에서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와 반짝,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맨발!
부르튼 그 맨발을 끌어안고 나는 한 번 더 속울음을 터뜨린다.
남은 길들이, 굶주린 것들이, 견뎌야할 시간들이,
잃어버린 사랑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나를 붙들고 흔들어댄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맨발이다.
ㅡ권애숙(權愛淑)
*문학과 의식 2003년 가을호 "좋은 시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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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이구나.
<문학과 의식>으로부터 좋은 시 릴레이 청탁을 받고 잡지들에 발표되는 신작시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때 '현대시학 2003.8월호'에서 문태준의 신작시 '맨발'을 만났다. 나는 그 달의 모든 시들을 젖히고 이 시를 택했다.
그 뒤 이 시는 그해의 가장 좋은시로 뽑혔다.
나는 지금도 이 시를 보면 눈물이 난다.
첫댓글 굿
감사~^^
고단한 삶의 여정이
느껴지는글 이에요 ~_~
이러니 제가 시에 범접을...ㅜㅜ
@퍼플
덕분에 귀한글
마중 감사해요 ㅎ
감사합니다.
감사
수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기자님 모습이 나왔네요~
지가 친형 닭띠형과 바꾸고 싶은 모습이~~ ^^
에효...즐건 주말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