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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늘 법당에 현수막이 새로 하나 걸렸는데 스님들이 그동안 한 100여명이상씩 모여서『법화경』을 다 공부하셨어요. 그리고는 또『임제록』을 이제 다음달 한 번만 하면은 이제『임제록』.『임제록』은 어록(語錄)중에 왕이고『법화경』은 경(經)중의 왕이다. 이렇게 이제 고래(古來)로 그렇게 칭송돼옵니다.
語錄이라고 하면은 조사스님들, 부처님 제자들로서 아주 뛰어난 그런 그 도인들의 법문집이죠. 그걸 어록이라 그렇게하죠. 그 부처님도 설법을 많이 하셨지만은 숫자가 조사스님들이 훨씬 숫자가 많잖아요. 숫자적으로 보면 또 역사도 오래고 그래서 그 도인 스님들도 석가모니 부처님 못지않은 그런 그 훌륭한 깨달음으로 인해서 또 훌륭한 설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설법들중에서 그걸 이제 눈밝은 사람들이 다 검토하고는『임제록』이 어록중에 왕이다 그런 표현을 써요. 그래서『임제록』공부를 스님들이 다 하시기 이제 한 번 남았어요. 스님들이 한 번하면 세 시간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오기 때문에 한 번 오면 세 시간을 하는데, 그래서 이제 마치고는 스님들이 이제 오래전부터 상의를 해가지고『화엄경』을,『대방광불화엄경』을 공부하기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지금 차곡차곡하고 있고 현수막이 이제 준비되고 해서 미리 이렇게 걸어서 분위기 조성을 합니다.
『화엄경』은 뭐 몇 곳에서 그래도 화엄법회라 해가지고, 화엄산림이니 이런 이제 공부하는 기회가 있기는 있는데 그 뭐 그냥 법회지 제대로『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은 못되요. 강원(講院)에서『화엄경』과목을 공부하지만은 그것도 역시 제대로 하지를 못하고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금 맛만 보다 말고 이제 그러죠. 그러다보니까 이 여기서 와서 공부하는 스님들 100여명이 제대로『화엄경』을 공부해보겠다. 그래서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래서 이제 청을 해서 그래서『화엄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화엄경』은 참 그 경전이 양이 많습니다. 방대한 경전이에요. 옛날 권수로 하면 우리 요『법화경』도 일곱 권으로 돼있어요. 7권으로 돼있는데『화엄경』은 80권이라. 그래 어림잡아 계산해도 열 배가 넘는거요.『법화경』열 배가 넘어. 그 열 배라해도 70권이니까, 근데 그건 80권이거든 그와 같이 많은 경전으로서는 아직 권수가 제일 많은, 옛날 그 한장본으로 책을 매서 짊어지면 딱 한 짐이에요. 사람이 지면 딱 한 짐. 80권 딱 한 짐이 될 정도로 그렇게 그 방대한 경전입니다.
그러니까 강원에서도 제대로 볼 시간도 없고 또 그렇게 끈기있게 그 많은 것을 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공부하는 그런 그 시간도 사실은 쉽지가 않고 그래서 이 스님들이『화엄경』공부 한 번 제대로 배워봅시다. 뭐 몇 년이 걸리든지간에, 그 햇수로는 한 3년쯤 잡지만은 3년가지고 안되요. 6년이나 이제 걸릴 것같은 그런 대장정의『화엄경』공부를 시작을 합니다. 스님들이 곧 할건데, 미리 우리 불자님들한테 자랑 좀 하고 또 그날 봉사하시는 분들이 한 10여명 이상 와서 해요. 꼭 이제 와서 봉사하시고 싶으면은 와서 봉사하면 뒷방에서 또 이제 귀담아 들을 수도 있고, 그런 기회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동안도 봉사해오던 팀들이 다 있기는 있어요. 있기는 있는데 또 그런 것들도 알려 드립니다. 우리 신도님들이『법화경』공부, 스님들이 앞에 했고 뒤따라서 우리가 하는데『법화경』의 가치를 여러분들이 자꾸 이해를 깊이 해가시는지 숫자도 차츰차츰 늘어나고 또 요즘 사경도,『법화경』사경도 하니까『법화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제 재미가 날 정도로 그렇게 이해가 되가는것 같아요.
저쪽벽 책장을 하나 붙였는데, 저기는 사경을 해오면은 사람들이 비교해가지고 뭐 엄두도 못낸다. 내놓지 못하겠다. 뭐 이래서 그래서 이제 그런 마음을 갖지 말라고, 이 사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사경을 할 수가 있다. 원고지에다가도 쓸 수가 있는 것이고 노트에다가 쓸 수도 있는 것이고 무슨 화선지에다 쓸 수 있는 것이고 또 이렇게 인쇄한데다가 그 위에다 덮어서 쓸 수도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거는 전혀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하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자, 한 자 쓸때 내가 얼마나 마음을 담아서 쓰느냐. 붓으로 쓰던지 연필로 쓰던지 볼펜으로 쓰던지 그것도 또 아무 상관없는거죠. 내가 마음을 담아서 한 자, 한 자 쓰는 거기에 이제 공덕이 있고 수행이 있고 또 쓰다보면 깊이 이해해서 깨달음이 있고하는 것이지. 결코 글씨의 어떤 그 잘쓴 것과 못쓴 것, 보기 좋은 것 이런 것을 비교해가지고 엄두를 못낸다든지 그런 생각은 참 좁은 소견으로 하는 생각이니까 절대 그런 생각갖지말라고 해서 그래서 이제 견본으로 들어온데로 저기다 차곡차곡 이제 모아놓으면은 여러분들이 보시고‘아 이렇게도 쓰구나. 이렇게도 쓰구나.'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갖다놓고 싶은 분은 갖다 놓으세요. 못쓴 것도 갖다놓고 잘쓴 것도 갖다놓고 무슨 저 노트에 쓴 것도 갖다놓고 원고지에 쓴 것도 갖다놓고 그래 원고지에 쓰신 분 것이 아주 정성스럽게 잘써서 내가 저기다 보관용으로 받아가지고 저렇게 모셔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 전시회 사경이 나와서 일부러 가서 거기에 내가 친견을 했더니, 쓰신 스님이 내가 다녀갔다고 당신이 쓰신『금강경』을 한 벌 이제 보내왔어요.
그래서 그 옛날 전통법에 의해서 쓴『금강경』사경도 저기 이제 있습니다. 그런 것도 이제 구경하시고 또 그냥 화선지에다 길게 늘여뜨려서 쓴 사람도 있어요. 그건 이제 서울서 나를 위해서 써 온 것인데 그것도 이제 있고,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자기 편한 방법대로 이제 쓰시는거에요.
그러니까 오늘은 22일 강의시간이고 또 이제 다음 금요일은 사경시간이니까 또 그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참고로해서 우리가 강의듣고 한 자, 한 자 사경하고 그러면서 그 깊은 뜻을 부처님의 그 진심이 담긴 그 깊은 뜻을 이해하도록 그런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아주 뭐 어쩌면 유일한 그런 그 법회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그런 그 법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주 자랑스럽고 또 공부도 거기따라서 또 알뜰하게 잘된다 이렇게 이제 생각이 드는 그런 법회입니다.
중간에 오셔도 상관없고, 저는 그래요. 늘 이 경전에서 한 구절만 내가 이해를 하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도 그게 나로서는 큰 행운이고 복이다. 그런데 만약에 한 페이지에서 한두 구절만 내가 이해를 하고 그 뜻이 납득이 된다면은 그것도 큰 소득이고 행운이다. 그렇게 이제 생각을 한다면은, 뭐 이거 처음부터 공부했다 중간부터 공부했다 하는 것도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이제 계속 따라서 공부하시다보면은 또 앞뒤에도 연결이되고 따라서 이제 다른 참고서에도 찾아서 보시게되면은 더욱 이제 공부가 깊어지지요.
오늘은「화성유품」181페이지 네 째줄부터 할 차례인데, 이 이야기가 화성유(化城喩) 화성의 비유품이다. 이렇게 돼있어요. 아직 화성의 비유는 조금있다 나옵니다. 그 화성의 비유, 화성을 이제 마법의 성이다. 변화하여 조작으로 만든 성이다. 그래요. 그 마술로써 만들어놓은 성이야. 이런 이제 하나의 비유를 들자면 그런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인데, 그 비유를 말하기 전에 비유를 말하게 되는 까닭을 그동안 쭈욱 이야기해와요.
그 오늘도 이제 조금 나는 이제 두 단락이 비유를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그 이유를 여기서 아주 확실하게 밝힙니다.
131 諸比丘야 若如來가 自知涅槃時到하고 衆又淸淨하야 信解堅固하며
제비구 약여래 자지열반시도 중우청정 신해견고
了達空法하야 深入禪定하면 便集諸菩薩과 及聲聞衆하야爲說是經하리니
요달공법 심입선정 변집제보살 급성문중 위설시경
世間無有二乘이 而得滅度요 唯一佛乘이라사 得滅度耳니라
세간무유이승 이득멸도 유일불승 득멸도이
諸比丘야 若如來가 自知涅槃時到하고
여러 비구들이여, 만약 여래가 만약에 여래께서 스스로 열반할 때가 이르렀다고 하는 것을 알고
衆又淸淨하야
또 대중들도 또한 청정하다는 것을 알아가지고
대중이 청정하다하는 것은 그동안 이제『법화경』은 부처님 연세가 70이 넘어서 그야말로 최후에 그 정말 설법다운 설법을 하신 경전이 말하자면은 열반직전에 설하신『열반경』이 있고 고거 바로 앞에 설한게『법화경』이에요. 그래 법화· 열반 이걸 같이 봅니다. 왜냐하면은?『법화경』은 부처님 열반을 예고하면서 내가 열반을 앞두고 내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중요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이제 하겠다. 이제 내가 눈감으면 더 이상 못하니까 정말 내가 그동안 진실한 말을, 그동안 방편 거짓말에 가까운 그 방편의 이야기를 많이했지만 지금은 정말 진실의 말을 하겠다라고 하는 그런 그 뜻으로 설해진 것이『법화경』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서 이제 스스로 열반할 때가 이르렀다하는 것을 알고 그 쯤됐으니까 대중들도 세월이 오래갔으니까 훌륭해졌다. 청정했다하는 것을, 대중도 또한 청정하다하는 말은 아주 훌륭하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성숙했고 수행도 됐고 어떤 그 귀도 열려서 법문도 알아들을 줄 알고 한 그런 뜻이 이 淸淨이라고 한 낱말 속에는 포함돼있습니다. 그렇죠. 뭐 세속에 찌들려있는 그런 그 어떤 생각에서 그래도 법문을 좀 듣고 어느 정도 부처님의 법이 이와 같다라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마당이 됐다하는거죠.
信解堅固하며
믿고 이해하는 것이 견고하다. 아주 굳어졌다.
믿는 것도‘아 이『법화경』가르침은 정말 틀림없어. 최고야. 내가 열심히 못해서 그렇지. 이것만 제대로 우리가 공부하고 이해한다면 이건 최고야.’또 이해 해(解)자 믿고 이해하는거. 열심히 공부하면 저절로 이해가되죠. 그것이 이제 상당해졌다 하는 뜻입니다. 堅固하다하면 굳어졌다 이거여. 요지부동이 됐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법이외에 어떤 것을 보면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정법에 자기 소신이 확고하게 서졌다하는 거에요. 그 다음에
了達空法하야
了達 깨달았다. 통달했다. 이런 뜻이에요. 了達이란 말은, 법이 공한 것을 모든 존재 法을 모든 존재라 그래요. 모든 존재 空法 여기 이제 空法이네요. 法空이 아니고 空法 공의 이치를 요달했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지금 이렇게 눈앞에 멀쩡하게 있지만은, 이것은 한 편 세월이 가면은 무상으로 돌아가고 공으로 돌아가고 또 세월이 가기 이전에도 정말 안목있는 사람이 보면은 정말 이미 공한거야. 그래서 본래 공한 것까지도 다 깨달아 아는 거 그게 이제 了達空法이야. 空의 이치를 了達했다.
우리가『반야심경』을 늘 외우는데,『반야심경』은 순전히 空法 공의 이치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뜻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라면은 불법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지만은 있는 것을 다른 차원, 다른 차원의 어떤 속성, 있는 것의 어떤 내면을 꿰뚫어보자고 부처님의 지혜를 공부하는 것이고 불법을 공부하는 것이니까 그 내면은 공한 이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까지도 요달해서
深入禪定하면
깊이 선정에 들어갔다.
아주 탁 마음이 안정이돼서 뭐 세속에 있다 없다 잘났다 못났다 너다 나다 옳다 그르다 하는 그런 것이 다~ 공한 도리야. 了達空法했으니까, 空한 이치를 깨달았으니까 그럼 뭐 옳다 그르다 너다 나다 하는데 여기에 크게 흔들릴 까닭이 없는거야. 그게 深入禪定입니다. 선정에 깊이 들어갔다는 것에요.
무슨 뭐 삼매에 들어가가지고 밤이 가는지 낮이 가는지 모르는 그런 식으로 선정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내 어떤 그 사물을 보는 어떤 내 안목이 투철해가지고‘동요가 없다.’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다 부처님이 알고는
便集諸菩薩과 及聲聞衆하야 爲說是經하리니
便集 곧 모았다.“너희들 다 모여라. 내가 열반할 때가 되었으니까.”그런 말이요. 그래서 보살도 모으고 성문대중도 모으고 온갖 대중들을 다 모아서 위하야 이 경을 설하리니.
그랬습니다. 是經 시경은 뭡니까?『법화경』이요. 최고로, 정말 그동안 근기를 성숙시켜서 성숙된 철든 그런 어떤 제자들에게 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법화경』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이 그거요.
世間無有二乘이 而得滅度요
세간에는, 이 세상에는 二乘으로써 그러니까 성문, 연각 중간 가르침이 많죠. 그런 그 중간 가르침, 방편의 가르침 이것으로써 멸도를 얻는 것이 없고 멸도라고 하는 것은 제도, 제도되는 것이 없다하는 것입니다. 二乘의 가르침으로 제도되는 것이 없고
唯一佛乘이라사 得滅度耳니라
唯 오직 一佛乘 오직 一佛乘이라야 멸도를 얻는다. 제도를 얻을 따름이다. 귀 이(耳)자는 여기서는 이제 끝에 이래 붙으면, 귀라고 하지 않고 따름이다. 멸도를 얻을 뿐이다. 멸도를 얻을 따름이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럴때 귀 이자는
그러니까 불교의 결론은‘一佛乘의 삶’입니다. 一佛乘의 삶. 一佛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유치원에 그 수준에 맞는 가르침,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가르침, 중학생의 수준에 맞는 가르침 별별, 사실은 사회에는 단계가 얼마 없어요. 하지만 불교에는 단계가 너무 많습니다. 뭐 등불을 켜면은 수명이 길어진다. 칠성단에 실을, 실타래를 갖다놓으면은 또 수명이 길어진다. 별별 방편이 많습니다. 수만 가지가 되거든요. 수만 가지가
그런 등등이 말하자면은 중생을 이끌어 오기위한 하나의 방편이고 그렇게 이끌어 와가지고는 그 다음에는“아니야.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도 방편으로 인도하기까지는 필요하지만은, 사실은 여기에 오도록 하기위한 것이다.”여기라고 하는건 뭐냐? 부처의 삶이다. 부처의 삶으로 이끌기위한 그런 그 방편이다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 삶에 별로 관심이 없어도 결국 우리는 성불의 길로 가도록 밖에 안돼있는거요. 갈 수 밖에 없게 돼있어요.
그래서 이것이 이제 한 마디로 표현하면은‘자신이 완전한 인간임을 알아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로 우리는 완전무결한 부처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다. 다른 존재가 아니다. 또 보석으로 치면 본래가 완전무결한 다이야몬드지 저기 구리나 철이나 이런게 아니다. 정말 사람의 가치처럼 위대한게 어디있습니까? 이 세상에 가~장 가치있는 것은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꿰뚫어본거. 그 진정한 가치를 꿰뚫어 봤다고 하는게 이게 중요한겁니다. 다 사람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 다 알죠. 세상에 뭐 이런 성인들, 저런 종교 별별 종교에서도 다~ 이야기하고 뭐 세상 사람들이 사람의 가치는 다 이야기하지만은 성인(聖人) 특히 불교의 성인처럼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 그 내면의 속속들이 그 깊은 가치를 꿰뚫어보고 설명한 그런 그 성인과 종교는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부처라고 하는 말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사람의 진정한 가치’그러니까 그 가치대로 살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뭐 성문이니 연각이니 뭐 또 세속적인 다양한 그런 그 어떤 그 소망들이 있죠. 물론 그런 그 소망이 눈앞에 정말 시급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좀 더 다른 안목으로 보면은 우리 인간은 그런 차원으로 살고말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이죠.
첫댓글 ...여기서는 부처라고 하는 말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사람의 진정한 가치’그러니까 그 가치대로 살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_()_ _()_ _()_
'자신이 완전한 인간임을 알아라.’하는 것. 그리고 본래로 우리는 완전무결한 부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