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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산당과 곁사람들
김 정 한
추산당이 애첩(愛妾) 묘련의 집에서 오랫동안 시난고난하다가 말판에 가마에 실려가지고 절로 올라간 지가 벌써 두 달이 넘었으니까 그가 병으로 눕기 시작하고부터는 거의 반년이 다 되었다. 의사는 뭐라고 진단을 내렸는지 모르겠으나, 그를 보고 온 사람들은 혹은 위장병이라고도 하고 혹은 신경쇠약이라고도 하고 혹은 또 홧병이라고도 하되, 아무튼 연로하니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애초부터 기도 불공 등도 많이 해보고, 신장대*도 잡아보고, 또 약도 쓸 만큼은 다 써보았으나, 아마 신통한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승속간 안면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를 찾아보고 위로도 하고, 더욱이 속가의 일가친척들은 끊일 새 없이 문안을 드나들었으되, 오직 강첨지 부자만은 공연히 그러질 않았다. 그것이 유달리 표가 나고 소문이 떠돈 것은,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문중에선 그래도 제일 고집이 셀 뿐 아니라 또 경위를 따져 말마디나 한다는 강첨지의 지위 탓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강첨지의 아들 명호가 많았든 적었든 간에 추산당의 그렇게 아끼는 돈으로써 몇 해 동안 소위 일본 유학을 했다는 데 더욱 깊은 유래가 관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남들이 그렁성저렁성 꼬집는다든가 말썽올 부린다든가 하는 것이 두려워서 이 러고저러고 할 강첨지도 명호도 아니었다.
물론 애비가 아들을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니고, 아들이 애비에게 그렇게 하기를 권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또 부자간에 의논을 해서 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결과가 공교롭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지, 아버지 강첨지와 아들 명호의 사이가 결코 그렇듯 잘 어울리는 새가 못되었다.
이렇게 부자의 사이가 벌룩하게 된 것을, 강첨지는 오로지 추산당의 뒤넘스러운* 탓으로 돌리려 하였다. 그것도 그럴 성싶은 것은, 명호가 군청 고원으로 있었을 때는 아닌 게 아니라 자기의 말을 꽤 잘 듣던 것이 추산당의 원조로 그놈의 유학인가 뭔가를 시작하고부터는 아주 영 딴판이 되어서 자기의 뜻에는 필경 거역까지 하게끔 어긋났는데, 그나마 그길로 다행히 성공이나 했다면 혹 모르겠으되, 그것조차 추산당의 변덕으로 인해서 어중간히 중동이 나서 죽도 밥도 되지 않고 공연히 속에 화만 남아서 되레 집안사람들에게 신세만 끼치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호로서는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지를 않았다. 물론 그것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그는 아버지와 자기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서로 용납되지 않는 갭이 개재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불화의 가장 큰 꼬투리라고 명호는 일찍부터 믿어왔다.
그건 여하튼, 부자의 사이로서는 너무나 서로 의사가 맞질 못했다. 하는 수가 없어서 한집에 산다는 것이지 심지어 자리를 같이하는 것까지 서로 꺼리는 눈치였으며, 어쩌다가 마주치면 피차간 으레 시무룩하기 아니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짜증을 내고, 아들은 아들대로 또 딴생각을 하는:그러한 처지 였다.
그러니까 명호는 설혹 추산당에게 대한 자기로서의 감정 문제는 고사하고라도, 아버지가 어서 병문안을 가보라고 해보았댔자 얼른 쉽게 예 하지 않았을 터인데, 아버지 역시 추산당에게 대해서는 아들 명호를 그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까닭만이 아니고 그 밖에 자기네들은 또 자기네들끼리 서로 틀어진 곳이 있어서 이녁도 다른 조카들처럼 잘 들여다보질 않을뿐더러, 게다가 명호에게는 여태 한 번도 그런 수인사를 전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병석에 누운 지가 석 달이 넘도록 명호는 재종조인 추산당의 병문안을 끝내 한 번도 가지를 않았다.
하기야 추산당이 팔정도(八正道)는 능히 못 닦았더라도 승가오계 중 하불실* 단 한 가지나마 지켰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행히 가난하기나 했더라면 그저 불쌍해서라도 조카 된 강첨지거나 재종손 된 명호거나 그렇듯 몰인정 하지는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넓은 문중이, 지내던 정이야 좋든 궂든 간에 불각시* 앞을 다투어가며 아침저녁으로 병문안을 드나들던 터이라, 하필 명호네 집에서만 안 가보는 것도 미상불 너무 모가 나 보일 뿐 아니라 다소 이웃 체면에도 결리었으나 실상은 누운 이의 덕망으로써가 아니고 오로지 그가 개미 금탑 모으듯이 요행히 땅마지기나 톡톡하게 장만한 데에다가 공교히 또 고스란히 물려줄 제 낳은 자식조차 없다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빤한 엉너릴* 텐데, 꿍심을랑 바로 그런 데다 두면서 딴은 일가친척의 정분이란 겉탈을 뒤집어쓰고서는 늘어진 지렁이에 불개미떼 모여들듯이 장도감을 치게* 되니, 그 부로 더욱 거만스러워질 병인의 태도도 보기 싫겠거니와, 인제는 또 그를 에워싸고서 눈알맹이가 잔뜩 뒤집혀진 그런 축들 사이에 섞이기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도록 더럽다는 감정까지 더해진 것은 강첨지나 명호나 매 일반이었다.
그러나 추산당의 병세가 아주 더 위독하다는 소문이 나돌고부터는 강첨지도 가끔 문안을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명호에게는 자진해서 가자고도 안했고, 명호 역시 아직 그럴 생각도 없었다.
“다들 문안을 가는데 자넨 왜 안 가나?”
혹 친구들이 이렇게 물으면 그는 으레,
“글쎄, 한번 들여다봐얄 텐데……”
할 뿐이고,
“한번이 뭐냐 이 사람! 발이 닳도록 다녀야만 논마지기나 타잖나?”
하고 권하면,
“그것도 그럴 상싶네그려.”
하고 픽 웃을 따름이었다.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추산당도 결국 회복을 단념하고 재산 처분을 고려한다는 소문이 활짝 퍼지고, 친구들의 권유를 들은 날 저녁에는 아닌 게 아니라 명호도 다소간 어떤 야심이 바이* 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또 그 밤만 자고 나면 식전부터 문안을 올라가는 아버지의 뒤꼴이 얄밉고도 가련스러웠다.
병문안을 갔다 오는 사람들은 별별 얘기를 다 퍼뜨리었다. 모르지 오늘 해나 넘길까라는 둥, 아니 정신이 말끔한 걸 보니 아직 열흘은 더 살겠더라는 둥…… 그러나 그런 건 으레 하는 소리겠고, 역시 재산 처분 문제가 그들의 흥미의 중심이었다. 아무개 집에는 논을 몇 마지기 줄 것이라는 둥, 아무에겐 단 몇 마지기밖엔 안 줄 게라는 둥―그저 이따위 뒤넘스런 억측들이었다.
물론 명호에게 관계된 말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은 추산당이 명호의 공부를 중도에 파의시킨 것을 꽤 뉘우치는 듯한 말눈치를 보고는 적어도 논을 한 이십 마지기 정도는 물려줄 것 같더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문을 내기를, 추산당이 아주 영 화를 내가지고 “명호 고놈 고얀 놈! 내가 이 지경이 되어도 안 와봐? 망할 놈 같으니!”라고 하더란 둥, 이건 아마 보탠 말일 테지만 “논? 논? 아아 나 논!” 하더라는 둥 하는 따위였다.
앞의 말을 들을 때는 그럴 성싶어서 명호도 뒤퉁스럽게 맘이 조금 쏠렸고, 뒷말을 들을 때는 그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속은 잔뜩 뭉클하였다. 그러나 앞사람은 자기와 사이가 나쁘지 않은 분이고 뒷사람은 자기를 싫어하는 분이니깐, 어느 것이 사실인지 명호도 알 수 없었으나 공교히 두 편의 말이 모두 논을 주고 안 주는 데 관한 것인만큼 명호는 은연중 어떤 약점을 잡힌 것처럼 되어서 자못 마음이 불쾌하였다. 그럴수록 그는 연방 더 재종조 추산당의 존재를 자기의 마음속으로부터 송두리째 씻어버리려고 애썼다. 마치 죄악의 씨앗이나 되는 듯이.
곧 죽겠다는 소문만 자꾸 났지 추산당은 좀처럼 죽지를 않았다. 영락없이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그것참 이상한 일이더라고, 보고 오는 사람마다 말을 하게 되었다. 두고 봐라마는 그리 얼른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던 명호의 할머니의 말이 꼭 들어맞은 셈이었다.
“재물이 그리도 아깝고 맘에 걸려서…… 나무아미타불!”
할머니는 이렇게 안타까워했다. 할머니의 말마따나 확실히 그래서 추산당은 쉬 숨을 거두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명호는 생각하였다. 그러고 보니 명호는 재종조 추산당의 그렇게 지루한 죽음에 대하여 갑작스레 어떤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읽은 조지프 글랜빌의 『불멸의 의지』 란 것을 연상해보았다. 사람은 그 의지만 굳셀 것 같으면 결단코 악마에게도, 죽음에도 굴복되지 않는다고 한 구절이 있었다.
명호는 물론 이 신학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드시 아무 엉터리 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17세기의 영국의 신학자와 오늘날의 할머니의 관념이 우연히 비슷한 것을 알고서 명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왜 웃니? 그럴 상싶지 않은가?”
백발마저 민숭민숭 모지라진* 할머니는 단지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앞니를 들썩 거리며, 짜장 동의를 구하려는 듯이 물었다.
“글쎄요…….”
명호는 할머니의 무섭게 들어간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목정이에 힘줄이 앙상하게 딸려 드러난 것이며 깊다란 주름들이 얼굴을 덮은 모습들이 벌써 널감*이 늦어 보이기는 하나, 조금도 구지레한 빛이 없이 개자할* 뿐 아니라, 더구나 그녀의 구술같이 맑고 파아란 눈은 조촐하게 늙었음을 알리는 듯 빛났다.
“너도 논 얻구 싶으냐?”
“천만에요!”
“잘 생각했다. 그래야지!”
할머니는 자못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왜 그럴까요?”
명호는 여지껏 이처럼 깍듯이 할머니의 의견을 들으려 한 적이 없었다.
“논이면 그저 논인 줄 아니? 귀신이 붙었어, 귀신이.”
“논에 무슨 귀신이 다 붙어요?”
“어디면 안 붙어!”
“무슨 귀신인데요?”
“추산당 귀신이지, 추산당의·…‥”
할머니는 자칫하면 귀신을 잘 들먹거렸다.
“아무리 그렇다구 해도 온, 논에 무슨 귀신이 붙겠어요.”
“붙구말구! 두구 보지, 그 논 탄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명호는 그 이상 더 귀신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서,
“죽으면 곧 극락 가실 텐데 뭐!”
하고 씩 웃었다. ˙
“부처 팔아먹은 중이 어떻게 극락엘 가! 몸은 구렁이, 욕심은 귀신이 되는 거야.”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결국 추산당에게도 죽을 날이 닥쳐왔다. 그가 절로 실려간 지 네댓 달이나 되었을 때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었다. 명호는 그때까지도 병문안을 가지 않고서 버티어왔는데, 그날 아침에는 무슨 영문인지 뜻밖에 추산당의 양자이며 속가의 촌수로서 명호의 칠촌뻘인 구룡 아저씨가 약간 찌르퉁해가지고 일부러 찾아와서 추산당이 명호를 꼭 좀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하고 갔다.
물론 명호는 구룡 아저씨를 보고는 가겠다고도 아니 가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하기가 싫었다. 그건 구룡 아저씨의 마음속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룡이 역시 명호에게 대해서는 다짐을 받을 권리도 또 필요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그렇다는 말만을 전달하고 돌아서기가 바빴다.
그러나 명호는 구룡 아저씨를 보내놓고는 곧 생각했다. 무슨 일로 재종조 추산당이 나를 꼭 보자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하필 또 구룡 아저씨가 왔을까? 그 두꺼비 같은 상판대기를 해가지고서.
운명을 목전에 둔 추산당이 갑자기 자기를 꼭 만나고 싶어하는 것과, 또 달리 사환도 많을 텐데 병부의 머리맡에 있어야 할 구룡 아저씨가 일부러 그렇게 심부름을 온 걸 보면 필연코 어떤 중대한 까닭이 있는 듯이 명호에겐 생각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가 여지껏 병문안을 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했고, 저쪽에서 머리를 굽힌 것이 내심으로는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오랜만에 추산당의 파리해졌을 모습을 상상하여보았다.
그럴 즈음에, 방문이 다시 삐꺽 열리고, 이번에는 아버지가,
“너도 오늘은 가보지?”
하였다. 명호는 울컥 나는 마음으로 망설일 것도 없이 모자를 꺼내 쓰고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바깥에는 이슬 같은 빗방울이 철 늦은 샛바람에 바쁘게 흩날리고 있었다. 비는 비록 봄비나마, 가끔 얼굴에 부딪칠 때는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차가웠다. 강첨지와 명호는 다같이 우산을 앞으로 푸욱 숙여 받고 좁은 돌담 사잇골목을 빠져나와서, 산길을 더위잡았다.
이렇게 두 부자가 같이 길을 걷는 것도 퍽이나 오래고 또 드문 일이었지만, 앞에 선 강첨지나 뒤를 따르는 명호나 모두 애가 터지게도 묵묵하였다. 강첨지는 추레한 바짓가랑이를 단출하게 말아올리고는 행여 어설피 돌멩이 하나라도 헛디디는 법이 없게끔 날렵하게 발을 또박또박 옮겨놓았다. 명호는 아버지의 그 겨릅대*같이 여위면서도 민첩한 장딴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제딴은 숨이 가쁘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강첨지는 돌아도 안 보고 자꾸만 더 빨리 걸었다. 명호는 연방 더 발이 터덕거려지고 숨이 가빠졌다.
‘무슨 턱으로 온 저렇게 바뻐 날뛸까?’
명호는 참다 못해 말경에는 짜증이 슬며시 났다. 그럴수록 더욱 돌이 밟히고 발이 헛놓였다. 이윽고 그들은 겨우 어떤 언덕 위에 올라섰다. 그제야 강첨지는 비로소 발을 멈추고선 혼잣말삼아,
“어이구 되알지다, 그놈의 길!”
한숨을 후유 내쉬면서 지나온 데를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명호도 잠자코 따라 보았다. 물론 그들이 지나온 길은 또렷하지 않았다. 다만 보리가 파릇파릇한 언덕밭과 약간 질펀한 들판과 산기슭에 까마득한 마을들이 빗발 속에 희미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이 단순한 전망에 곧 싫증이 난 명호는 포옥포옥 다라지게* 고개를 숙인 할미꽃을 몇 떨기 툭툭 차 떨어뜨리고는 다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거기서부터야 바야흐로 정말 산길이었다. 좌우에 으쓱한 나무들이 에워 서고 안개조차 자욱하게 끼었는데, 게다가 길바닥까지 오랜 풍우에 패기만 해서 길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데는 바로 물 끊어진 개골창 같았다. 그래도 강첨지는 곧잘 걸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빠른 듯싶었다.
‘무슨 일이 온, 저리도 바쁠까!’
명호는 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아까처럼 그리 짜증은 나지 않았다. 그는 허덕허덕 아버지의 뒤를 따르면서 한동안 야릇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바쁘게 날뛰는 까닭은 물론 추산당이 숨을 거두기 전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겠지만, 그러면 그렇게 하는 꿍꿍이셈은? 명호는 그걸 추궁하고 싶었다.
물론 일가로서의 체면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처럼 죽기를 싫어한다는 병인의 심상치 않은 운명(殞命)과, 그를 에워싸고 둘러앉았을 수많은 일가친족들이며 승가측 상좌들의 단대목* 동정(動靜)에도 필연코 어떤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오랫동안 수수께끼가 되어오던 소위 그 유산 처분에 관한 유언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에 어김이 없으리라고 명호는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는 별안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애달프고도 가련하게 보였다.
‘결국은 논에 대한 욕심인가……?’
명호는 별안간 멸시의 쓴웃음에 입이 절로 비쭉해졌다. 그러나 이그러진 입가가 미처 어울리기 전에 그는 아주 뜻밖에 어떤 자조(自嘲)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대관절 나는 뭘 보구 가는 건가? 뭘 생각하고 있는가……?’
명호는 이상한 표정을 하였다. 얼굴이 점점 더워졌다. 아버지에 대한 불쾌감이 그대로 저 자신에게도 돌아졌기 때문이다. 같은 때에 같은 길을 재촉하는 그들은 결국 마찬가지의 의도로써 움직이고 있는 듯싶었다. 아니, 자기의 야심이 더욱 얼토당토않게 크지나 않았을까?
명호는 한동안 아버지와 자기의 태도를 구별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심산을, 죽어가는 추산당이 그날 일부러 구룡 아저씨를 보내가지고 꼭 좀 와달라고 한 그 부탁을 표면상의 좋은 핑계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다 자기의 어스레한 야심을 되레 더 엄청나게 부추길 따름이지, 자기의 행동을 옹호할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았다. ‘추산당이 그만한 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룡 아저씨와 짜고 자기의 공부를 중단시킨 것이며, 또 귀국의 여비도 보내주지 않았던 것이 꽤 마음에 걸린 모양이니 아마 남보다는 땅마지기나 더 물려주실 테지?’ 하는. 제맘대로의 예감이 또렷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방하자면 추산당이 만나고 싶어한다고서 간다는 것은, 결국 가장 영리한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 아리수*다.
아버지도 그러한 낌새를 못 알아챌 리 없을 테지 생각하면, 명호는 더욱더 저 자신이 엉큼스러워 보이고, 말경에는 그러한 자기 자신이 그지없이 분하기도 하였다. 같은 비극이면서도, 자식들의 행복을 위하여 추산당 같은 이의 땅을 탐내는 아버지의 경우가 오히려 동정하고 싶었다.
수풀이 연방 짙어오고, 갈수록 길은 험해졌다.
“가기 전에 죽지나 않았는지?”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물론 돌아도 아니 보고.
‘죽으면 어때!’
명호는 또 자기의 감정을 속이려 하였다.
“넌 가서뭐라구 할 텐가?”
절이 가까워오니, 아버지는 짜장 궁금한 모양이었다.
“글쎄요…….”
명호는 사실 그런 수인사에 대해서는 궁리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소릴랑 말고, 어이쿠!”
아버지는 징검다리를 헛디디고서 무릎까지 오는 냇물을 한 번 철썩 밟고 나더니,
“……오래도록 문안 못 드린 사과나 해.”
“뭐랄까요?”
“그야 니가 알아서 할 일이지I
“글쎄요, 너무, 아니, 한 번도 못 가봬서…….”
“그런 변통성이 없으니까 너를 아직 덜 됐다는 거야. 취직운둠을 다니노라고 집에 잘 안 붙어 있었다구라도 하려무나.”
아버지는 핀잔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꼬이는 편이었다.
명호는 그러한 아버지의 태도가 한편은 다랍기도* 하고, 한편은 가련키도 하였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아버지 강첨지와 아들 명호 사이에는 다시금 말이 끊어졌다. 우거진 수풀 밑이라 보슬비쯤은 오는 듯 마는 듯, 가끔 솔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우산을 툭 때릴 따롬, 지극히 우중충하고 휘휘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제법 평평한 행길에 나섰으나, 역시 잠자코 걸었다. 물론 그 길에도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별안간 화닥닥하고 짐승이라도 뛰어나올 듯이, 길 옆에는 왕대숲까지 자욱하게 짜고 섰다. 이윽고 그들은, 이름조차 그럴듯한 세진교(洗塵橋)란 돌다리를 넘어섰다.
이미 절의 어귀라, 길가에는 이름자라도 남기고자 애타던 사람들의 수많은 이름들이 어슷비슷한 반석 면에 또록또록 빨갛게 새겨져 있고, 울창한 고목 사이로 이끼 낀 기와지붕들이 푸뜩푸뜩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상하게도 명호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은 재종조 추산당의 이야기가, 오랜 고담(古譚)처럼 안개 풀리듯 떠올랐다.
“……집안이 가난하던 차에 농사일이 하기 싫고 하니깐, 열두 살 때에 그만 절로 달아났겠지. 나무하러 갔다가 지게는 산에 벗어던지고…… 그러나 불도를 배우기는커녕, 부처 불자도 모르고서 그만 또 이내 바랑을 지고 동냥질을 나섰지. ‘동냥 왔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십여 년 해서 논도 사고 돈도 모았지그래. 하기야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고깔도 많이 부쉬고 배도 무척 곯았다더라만……”
하던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가 그대로 기억에 떠올랐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인제는 중도 제맘대로 취처를 해가지고 여염 살림을 할뿐더러, 어중이떠중이 모두 돈, 돈 하고 날뛰는 세상이 되고 보니, 절 안에 들어서도 역시 사람 그림자를 잘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진심으로 불도를 닦는 분도 없진 않겠지만 그런 분들은 함부로 싸댈 리 만무하고ㅡ 절 안은 지극히 한적하였다.
그러나 강첨지는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명호는 마음이 한결 뒤설레었다.
추산당이 몸져 누운 백련암(白蓮庵)은 본당(本堂)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나 본당보다는 훨씬 깊숙하고 적적한 곳이었다. 앞에는 잔잔한 시내가 숲속으로 흐르고 뒤에는 층암절벽이 회색 병풍을 두른 듯 한데, 해묵은 이끼가 굳게 덮인 기와지붕! 그 아래 죽어가는 추산당이 누워 있을 것은 사실이나, 너무나 조용한 데 명호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 탈이 난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면, 곡성이라도 들릴 텐데……’
명호는 대중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도 심상치 않게 여기었던지 부리나케 대문턱을 넘어섰다. 그러나 명호는 ‘백련암’ 이라고 파랗게 쓴 현판(懸板)을 일부러 물끄러미 쳐다본 다음 짐짓 천연스럽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과연 안에는 문병객이 수두룩하였다. 마루가 비좁도록 짜고 앉아있었다. 어떤 사람은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여 한쪽 구석에 서서 어름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눈을 일제히 명호 부자에게로 돌렸다. 더구나 명호에게는 날카로운 눈총들이 쏠리는 듯싶었다.
그 바람에 명호는 되레 더 야릇한 용기를 얻어가지고, 지질한 그 일가친척들을 헤치고서 아버지와 함께 비좁은 방 안으로 비비고 들어갔다.
방 안에도 추산당을 한쪽에 눕혀놓고서 울가망한 얼굴에 ˙파리한 빛이 떠도는 애첩 묘련과 어느새 이미 돌아와 머리맡을 지키는 양자 구룡이를 비롯하여 승속간의 수많은 친족들이 떼관음보살처럼 빽빽하게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확실히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긴장되어 있었다. 총중에는 방금 눈물이 빙 돌듯한 얼굴도 있고, 이미 눈물 흔적이 면상에 또렷이 남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방 안은 지극히 조용하였다.
물론 추산당도 아주 영 죽은 듯이 늘어져 있었다. 그처럼 동글고 기름기까지 번들거리던 얼굴이 광대뼈가 불쑥 드러나도록 시퍼러죽죽한 껍데기만 남아 있고 언제 봐도 찬김이 나게 꼬옥 다물고 지나던 그 야멸친 입술조차 인제는 하는 수 없이 헤벌어져 있었다. 물론 눈도 꽈악 봉해져 있었다.
명호는 이러한 방 안 공기에 그만 갑갑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쩐지 속이 자꾸만 뭉클뭉클해졌다. 무슨 까닭으로 자기가 거기 앉아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끝내 추산당이 그러고만 있었더라면 그는 곧 거기를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추산당이 이상한 몸부림을 시작하였다.
“이놈들!”
그는 마침내 허공을 흘기며, 고함을 질렀다.
“예끼, 도적놈들 같으니!”
병인으로서는 놀라울 만큼 빽 소리를 치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스님, 왜 또 이러십니까?”
곁에 있던 수상좌(首上佐)가 부리나케 그의 두 손을 꽉 눌렀다. 그러자 추산당은 또 감쪽같이 발악을 그치고, 본래대로 늘어져버렸다.
“나무아미타불!”
수상좌는 겨우 마음을 놓은 듯이 웅얼거렸다. 그리고 스님의 좋은 열반(涅槃)을 축원하는 듯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명호는 추산당의 이러한 발악을 볼 때 하마터면 킥킥 웃음이 터질 뻔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그렇게 웃어버리고 말 희극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 발악의 현상에서 어떤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하였다.
‘도적놈들이라니, 대관절 누굴 보고 하는 소릴까……?’
명호는 갑자기 일종의 흥미를 느꼈다.
‘쳇, 저승차사가 눈에 보였던가?’
여태껏 적선 보시 (布施)를 안하고 지냈으니 최판관(崔判官)*이 무섭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만 관세음보살이니 대자대비(大慈大悲)니 하여왔지, 그렇듯 재물만 알고 허욕에만 철저하던 그가 비록 파리 목숨이 되었을망정 새삼스레 그리 쉽게 저승의 단죄 (斷罪)를 두려워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명호는 추산당의 넓적한 안장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침 그때였다. 그 콧구멍이 성낸 말코처럼 한참 벌름벌름하더니,
“명호, 그놈은 아직 안 왔나?”
추산당은 불각시 또 눈을 번쩍 떴다.
“벌써부터 와 있어요!”
하는 묘련의 대답을 뒤이어,
“접니다.”
명호는 무슨 좋은 소리나 들을 듯이 고개를 쳐들어 보였다.
추산당은 명호의 얼굴을 힐끗 보자마자,
“이놈, 고얀놈!”
눈에서 그만 불이 떨어질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명호는 추산당의 앙심이 사무친 눈을 피하듯 외면을 하였으나 속은 극도로 뭉클거렸다.
“예끼, 도둑놈! 망측한 놈!”
추산당은 악치듯 후욕패설을 늘어놓으면서, 주먹까지 들먹들먹 냅다 떨었다.
“왜 갑자기 이러세요 온!”
묘련이와 수상좌는 추산당을 진정시키기에 바빴고, 구룡이는 짜장 당황한 듯이 ,
“너가 밖으로 나가게!”
하며 명호에게 눈짓을 하였다.
추산당의 뒤퉁스럽게 아드득거리는 꼬락서니도 가관이었거니와, 그걸 마치 명호의 탓이나 되는 듯이 능글능글하게 구는 구룡이의 뒤넘스런 엄평소니*에 눈꼴이 틀린 명호는 아랫입술을 무겁게 비쭉할 뿐 간대로* 썩 물러서지는 않았다.
“이놈, 너 뭘 하러 왔어?”
추산당은 눈을 더욱 날카롭게 떴다.
“논 타런 안 왔어요!”
명호는 뱉듯이 해던졌다.
“논? 논? 아아나 논! 주제넘은 놈 같으니……!”
“글쎄요, 누가 어디 논 보구 왔답니까? 그까짓 논 만 두락 줘도 싫어요!”
명호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뭐, 뭐? 예끼 거지가 되어 죽을 놈!”
추산당은 분을 못 참고서 이를 아드득 갈아붙였다. 바깥 사람들도 무슨 구경거리나 되는 듯이 끼웃끼웃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명호 너 썩 저리 나가거라!”
보다 못해서 아버지 강첨지가 나선다.
“……”
명호는 암말도 않고, 뚱해가지고 앉아 있었다.
“그래도 썩 못 물러가겠니?”
“……”
“예끼 더러운 놈 같으니!”
강첨지는 불현듯 일어나 서더니 아들의 뺨을 몰강스럽게 한 번 갈기고는 그만 자기가 먼저 밖으로 핑 나가버린다.
“아아, 내가 이게 무슨 짓인가!”
추산당은 그제야 겨우 자기를 반성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 어서 이리 들오라게. 냉큼 좀 불러오게!”
추산당은 수상좌를 보고 분부하였다.
갑자기 기진한 소리로써, 마치 애원이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강첨지는 이미 백련암의 사립을 나섰을 뿐만 아니라, 되돌아설 사람은 아니었다.
헛걸음만 하고 돌아온 수상좌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사람은 왜 안 와?”
추산당은 기다린 듯이 물었다.
“글쎄요, 그새 어딜 가셨는지, 잘 안 보입니다.”
수상좌는 이렇게 얼버무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만 가버렸나봐…….”
추산당은 가는 한숨만 길게 뽑았다. 그는 확실히 실망을 한 모양이었다.
“명호야!”
이윽고 그는 명호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다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방 안은 다시금 잠잠하여졌다. 적어도 반 시간을 그러하였다. 그동안 추산당의 숨은 연방 깔딱깔딱 가빠졌다.
“이놈들!”
그는 다시금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은 아까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그리고 이상한 광채까지 떠돌았다. 그는 악을 한 번 바락 쓰더니 머리맡에 두었던 토지대장을 덥석 꺼내 쥐고는 눈을 무섭게 희번덕거리며 경풍 든 사람처럼 별안간 전신을 덜덜 떨어댄다. 아무도, 그리고 어떠한 일도, 인젠 그를 진정시킬 수는 없을 듯하였다. 모두 잠자코 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묘련이는 눈물만 흘리고, 수상좌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염주만 헬 뿐이었다.
추산당은 토지대장을 마치 누가 뺏어가려고나 하는 듯이 연방 더 꽈악 거머쥐었다. 그리고 방금 숨이 끊어질 듯이 깔딱거리면서도 발악은 더욱 심해졌다.
“이놈들! 이 도둑놈들!”
그는 누런 이뿌리까지 꺽 물고 떨어댔다.
명호는 이렇게 처절한 단말고(斷末苦)를 보는 것은 물론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서 추산당의 일동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일일이 살피었다. 추산당의 안색은 볼 동안에 자꾸 푸르러져갔다. 극히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의 미묘한 경로라든가 정도까지를, 또렷이 인지할 수가 있는 듯싶었다.
“앍……! 앍……!”
추산당은 급기야 마지막 숨을 모으는 모양이었다.
“아이구 여보세요, 이게 웬일이세요?”
묘련이는 미칠 듯이 영감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러나 인젠 아무도 그걸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앍…… 앍으르르……!”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추산당의 입에서는 누르께한 거품이 무덕지게* 불쑥 솟아 엉키고는 그만 사지가 좌악 뻗어지기 시작했다.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
명호는 드디어 그의 얼굴에서 외면을 하였다. 그러나 토지대장을 쥐고서 떨어대는 그의 뼈다귀손만은 아주 영 동작이 그칠 때까지 꼬옥 지켜보았다. 추산당은 숨이 끊어진 뒤에도 그 토지대장만은 결국 놓질 않았다.
마치 기다리기나 한 듯이 곡성이 한바탕 벌어졌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명호만은 눈물이 나지를 않았다.
“나무아미타불!”
수상좌는 추산당의 손아귀에서 토지대장을 빼내면서 비참한 표정을 하였다. 물론 구룡이는 흐들갑스럽게 엉엉거렸다. 곡성이 그치자, 잇달아 상좌들의 청승스런 독경소리가 일어났다. 스님은 비록 돌중이었으나 제자들은 그래도 불경 마디나 외우는 모양이었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멀위락(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癌威爲樂), 나무아미타불, 극락정토열반(南無阿彌陀佛 極樂淨土涅槃)·…….”
시체의 머리맡에 놓인 향로에서는 파르스름한 향연이 쌍(雙)으로 뽑혀 올라가고, 독경소리 처량하게 끊일 줄을 모르는데, 장단인 듯 처마끝 풍경소리조차 한가롭게 딩그렁뎅 울려왔다. 이윽고 큰절에서 우렁찬 종소리가 꽈앙 꽝 추산당의 열반을 아뢰자, 가사 장삼을 걸친 노소 중들이 끊일 새 없이 문상들을 왔으나, 저녁 안개 깊숙이 싸인 백련암은 어딘지 무한한 적멸이 깃들고 있었다.
유산 처분에 관한 유서 개봉은 장례를 죄다 치른 뒤에 하라는 유언만 있었고, 장례에 대해서는 아무런 분부도 없었기 때문에, 승속간의 관계자들은 대부분 장례를 빨리 치르고만 싶었던 겐지, 한 이틀 더 두어도 괜찮을 텐데 죽은 지 사흘 만에 비조차 부릅쓰고, 결국 장례를 시작했다. 수상좌와 강첨지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결국 대세에 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장례를 치르는 데 대해서, 누구보다도 골머리를 앓은 것은 역시 양자인 구룡이었다. 절에서도 말이 그랬고, 친척들의 의사도 모두 망령(亡靈)의 명예를 위하여 장례만큼은 돈 가졌던 보람이 있게 시리 그럴듯하게 하여드리자는 터이었으므로, 만약 그렇게 하고 보면 장비가 수월찮게 들 모양이며, 그건 또 으레 체면상이라도 자기가 안아 맡아야 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는 시무룩해가지고 음두꺼비상을 하고서는 말도 잘 아니하였다.
결국 불은 장롓날 아침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상옷[喪服]이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는 광목으로 해주고 누구는 북포*로 해주고 또 누군 왜삼베로 해주었다는 불평들이었다. 재종손들만 해도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게 삼십 명이 후딱 넘는데 멱진 놈 섬진 놈 모두 합쳐놓으면 승속간 남녀 친족이 근 백 명 되는 걸 그걸 죄다 꼭같이 해주려면 그것도 여간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때의 불평은 으레 여자들의 입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왜 다 같은 손자뻘인데, 내 자식은 왜삼베로 해줘?”
이렇게 앙탈을 쓰면서 입고 있는 상옷을 확 벗겨 던지고는,
“옷도 남같이 못 얻어입을 녀석이 오긴 뮐 하러 왔어!”
하며 뺨따구니까지 갈겨서 도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걸쌈스런* 에미가 있는가 하면, 주는 치마를 입지도 않고서 내던지는 고집쟁이도 있었다. 게다가 말경에는 사내들 가운데서도 데되게* 부추기는 치들이 있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짓들이여?”
하고 강첨지가 만약 나서지 않았던들 가문 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의 강첨지의 말은 특별히 위엄이 있었다. 아무도 불평을 못한다. 물론 자질구레한 불평이야 많았겠지만.
그래도 상여의 뒤를 따르는 속가의 친척들은 모두 엉엉 목을 놓아가며 울었다. 화장터에 당도했을 때는, 광목옷이고 왜삼베옷이고 모조리 행주처럼 비에 흠뻑 젖었다.
절간의 불목하니들과 허드레꾼들은 어느새 화장 준비를 말끔히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체를 담은 관이 화장대 위에 놓이었다. 서까래만큼씩한 소나무로써 짠 화장틀 위에 관이 올려놓이자, 곡성은 산중이 터져나가게 일어났다. 볼 동안에 관은 장작 속에 묻히고, 장작 위에는 푸석푸석 마른 솔가지가 무덕지게 덮이고 솔가지에는 석유가 흐뭇하게 끼얹히었다.
목탁과 바라를 두드리며 청승스럽게 경문을 외우는 젊은 수도승들을 선두로 승속간의 수많은 관계자들이 화장대를 에워싸고 줄을 지어 돌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수상좌의 구슬픈 독경소리와 함께 그의 떨리는 손에서 불이 옮기어졌다. 그와 동시에 속가 친족들의 입에서는 별안간 울음소리가 또 터졌다. 절측에서는 그걸 매우 기(忌)하면서 곧 말리었다.
“나무아미타불만 부르세요, 나무아미타불만.”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묘련이만은 좀처럼 울음이 들어가질 않는 모양이었다.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이 행렬의 뒤를 따랐다.
“나 ㅡ 무아미타 一 불!”
수많은 목청이 한꺼번에 뭉쳐서 얼마 동안 망령의 극락세계 발원을 읊조릴 때, 어느덧 벌써 관에까지 불김이 들어갔는지 갑자기 연기빛이 달라졌다. 그러자 부슬비를 맞아가며 화장터를 돌던 행렬은 곧 헤어지고, 노장들을 비롯하여 승속간의 친족 친지들도 흐지부지 흩어졌다. 원원이* 말하면, 수상좌와 구룡이는 좀더 남아 있어야겠지만 웬일인지 그들까지 새어버리고, 결국 남은 건 명호와 인부 세 사람뿐이었다.
명호만은 좀처럼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꽤 오래도록 현장에 남아서 인부들이 하는 일을 재미있는 듯이 보고만 있었다. 그는 화장 구경이 처음이었던 것 이다.
상제들이 떠나자마자 인부들은 곧 대창을 하나씩 찾아들고서 피피 소리를 내며 타는 시체를 사정없이 쿠욱쿡 들쑤셨다. 시체에서는 이따금 뼈가 튀는 듯한 소리가 탁탁 하고, 시퍼런 불꽃이 확확 내밀었다. 인부들은 상을 찌푸려가며 대창질을 더욱 빨리 하였다. 그러한 일에는 퍽이나 익숙한 모양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나무아미타불’도 부르지 않았다.
명호는, 이번에는 화장 그것보다도 그 인부들의 하는 일에 더욱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 그들의 곁에 가까이 가보았다.
“왜 안 가고 계시요?”
인부 중에서 명호와 안면이 있는 노인이 수상스러운 듯이 물었다.
“화장구경을 좀 할까 해서……”
“구경? 이게 무슨 구경이 되오?”
“그래도 첨 보는 게 돼서…….”
“글쎄요, 그만 돌아가시죠. 여간 비위 가지곤 못 봅니다.”
하며 그는 일부러 이걸 보라는 듯이 손에 든 대창으로써, 시퍼런 불덩이가 되어 있는 시체를 한 번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대창질을 안하면 안되나요?”
명호가 얼굴을 찌푸리니까,
“그냥 두면 언제까지 탈지 아나요, 더구나 비도 오는데.”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어디 한번 해보려우?”
하였다.
명호는 차마 그럴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미구에 명호는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몇 발짝 안 가서 갑자기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에 무슨 일일까 하고 그는 이내 돌아가서 슬그머니 화장터 안을 엿보았다.
“저런!”
명호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인부들은 추산당의 두골을 대창으로써 이리저리 굴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허허야 하고 웃어댔다. 장난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나 몰강스런 그들의 태도에, 명호는 별안간 노기가 뭉클 치밀어서 우산을 덜컥 접어들었다. 만약 그들이 곧 그 두골을 에워싸고 조용히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명호는 그곳으로 뛰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이 다 이젠 소리를 내서 웃지도 않고 가만히 그 두골에 손을 대는 것을 본 명호는 그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쭉 끼치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들었더니, 정말 금니를 빼는구나!’
명호는 인간의 더러움에 갑자기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는 보아서 아니될 것을 보기나 한 듯이 두 번 돌아볼 생각도 않고 산을 내려 쏘았다.
절 어귀에서 명호는 뜻밖에 아버지와 마주쳤다.
“넌 어디 있다 인제 오니?”
아버지도 그런 장소에서 아들을 만난 것이 이상스러운 듯이 물었다.
“화장터에 있었어요.”
명호는 그런 데서 홀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대하자 이상한 생각을 하였다.
“절엔 들어갈 필요 없어! 바로 집으로 가자.”
아버지는 앞장을 서면서 명령하듯 말했다. 명호도 두말없이 발을 돌렸다.
“진작 왔으면 그 좋은 구경을 좀 했지그래.”
아버지는 돌아도 안 보고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하였다.
“또 무슨 굿이 벌어졌던가요?”
명호는 오래간만에 아버지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굿이면 이만저만한 굿이게? 백련암에서는 아주 큰 쌈이 벌어졌지.”
“왜요?”
“유산 처분 문제로써 .”
“유서 개봉을 했던가요?”
“개봉은커녕 그 유서란 것이 송두리째 간 곳이 없어졌잖아! 영감의 도장도 없어지고…….”
강첨지는 잠깐 돌아보며 웃다가 이내 발을 빨리 떼어놓았다.
“원랜 누가 맡아 있었는데요?”
명호도 한결 호기심이 더 났다.
“둘 다 구룡이가 가졌던 모양이지.”
“그럼 구룡 아저씨의 수작일 테죠 뭐.”
“그런데 그 사람이 아주 딱 잡아떼거든. 자긴 모른다고…… 어제 저녁때까지는 확실히 자기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는데, 밤새 누가 주머니째 떼어갔다고 되려 제 쪽에서 떠들잖느냐 말야.”
“그따위 꾀에 누가 어디 속아넘어가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얻어맞았지. 아마 대리가 하나는 부러진 모양이야. 그만하면 만행이겠지만, 여러 사람들 성난 손길에 모르지, 오늘밤이나 무사히 새울는지……에이, 억척같은 놈! 그렇게 복날 개 맞듯이 얻어맞고서도…….”
“아주 환장이 되었구먼요!”
“환장도 되고, 술도 어디서 그렇게 처먹었는지 아주 인사불성 이지!”
“일부러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명호는 우중충한 절방 구석에 엎드려서 주리를 당코 있을 구룡 아저씨가 어쩐지 갑자기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가 부디 그날 밤을 무사히 새우고 돌아오기를 축원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결국은 양부인 추산당의 뜻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겠고, 따라서 그것도 한 가지의 효도가 되기 때문에.
『문장』 19호(1940. 10); 『김정한소설선집』 (창작과비평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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