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Le Devin du Village)>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루이 15세와 공식 애첩 마담 퐁파두르가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국왕의 연금 대상자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연금 수여식이 진행되는 날 루소는 다른 곳으로 가 버립니다. 연금을 거부한 것입니다. 루소의 '예민한 방광'은 궁정 의전의 긴장된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던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왕실의 연금에 의지하여 살아가길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그 연금을 받는다면, 남은 인생은 아첨과 침묵 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루소는 평생 '악보 필경사'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연금을 받는다면 진리, 자유, 용기와도 작별이다. 그 후에 어떻게 자주독립과
무사공정을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받음으로써 그 후부터는 오직 아첨과
침묵이 있을 뿐이다." (루소, 고백록, 제8권, 김붕구 역, 제2책, 229쪽, 성문각, 1976)
루소의 천재성은 음악에서도 훌륭히 발휘되었습니다. <마을의 점쟁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연주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을의 점쟁이>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렷을 적 많이 들어 보았을 "주먹쥐고 손을 펴서" 라는 동요가 그것입니다.
알고보니 그 동요의 원 모티브는 루소의 <마을의 점쟁이> 제8장의 '판토마임'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영국으로 넘어가 편곡되어 찬송가가 되고, 미국으로 넘어가 민요가 되었고, 마침내 일본에도 전해져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동요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고, 루소의 음악이 우리의 동요로도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였는데,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이미 그 내력까지 아주 자세하게 밝혀 놓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