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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이 행운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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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겉모습만 보고 있나요? 씨앗이 품은 숲을 보세요
연담(만다라) 추천 0 조회 19 14.07.16 2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겉모습만 보고 있나요? 씨앗이 품은 숲을 보세요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기록하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패턴과 관계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관심 없이 그냥 보면(see·見) 안 보이지만 관심을 갖고 유심히 관찰하면서 보면(watch·觀) 무질서 속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고, 패턴을 발견하면 법칙을 정립할 수 있으며, 법칙을 정립하면 미래의 현상을 예언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 창조는 통찰에서, 통찰은 관찰에서 생긴다. 뭔가 위대한 창조를 하려면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일상과 주변을 남다른 눈으로 관찰하라. 관찰은 관점(觀點)과 시점(時點), 그리고 시각(時角)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남다른 관찰 결과를 얻으려면 관점, 시점, 그리고 시각을 바꿔보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경험적 범위 내에서 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보이는 것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다. 열십(十)자 모양을 보여주면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교통경찰은 사거리, 기능공은 십자드라이버, 약사는 녹십자, 목사는 십자가, 간호사는 적십자를 각각 떠올린다. 자기 경험적 지식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이외수 작가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눈이 있다고 얘기한다. 먼저 ‘육안(肉眼)’은 물리적으로 얼굴에 붙어 있는 눈이다. ‘육안’은 사물의 물리적 특성을 보는 눈이다. ‘육안’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사물의 물리적 특성을 보는 눈이라면 ‘뇌안(腦眼)’은 사물의 과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눈이다. 콩을 보면서 콩이 까맣거나 동그랗다고 보는 눈은 ‘육안’이지만 콩의 종류별 영양성분이 달라서 각각 다른 요리재료로 사용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눈은 ‘뇌안’이다. 햄버거 포장지를 보면 영양정보가 과학적 분석에 의해서 제시되어 있다. 사물의 속성이나 특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눈이 바로 ‘뇌안’이다. ‘육안’과 ‘뇌안’은 누구나 갖고 있다. ‘육안’과 ‘뇌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삶이 무미건조하다. 무엇이든지 보이는 대로만 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 특히 ‘뇌안’은 느낌보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눈이다. 감동과 감흥이 없다.

 

똑같은 ‘육안’과 ‘뇌안’을 갖고 있지만 남다른 성취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남이 갖고 있지 않은 ‘심안(心眼)’을 갖고 있다. 햄버거를 보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눈은 ‘육안’이며, 햄버거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눈은 ‘뇌안’이다. 과학적 분석으로 포착되지 않는 깨달음을 보는 눈은 ‘심안’에서 비롯된다. ‘심안’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햄버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심안’은 겉으로 보이는 피상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이다. ‘심안’은 한마디로 사물을 머리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눈이다.

 

똑같은 물질적 피상을 보고도 거기서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시적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는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삼라만상의 미물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이 하나의 시요, 문학적 재료다. ‘심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깊은 관심과 뜨거운 애정을 갖고 다른 사람과 사물을 바라본다. 햄버거를 먹을 때 겉으로 드러난 영양성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햄버거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시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이다. 햄버거에 담긴 소의 아픔을 읽고 햄버거를 생산하는 패스트푸드의 역기능적 폐해를 읽어내는 눈이다.

 

남다른 문제의식은 물리적 특성을 보는 ‘육안’,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뇌안’, 시적 상상력을 떠올리는 ‘심안’을 넘어 ‘영안(靈眼)’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영안’은 일상의 작은 사물이나 현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구조적 질서와 체계를 읽어내는 눈이다. 작은 사물 및 실체가 다른 전체와 맺고 있는 구조적 관계를 꿰뚫어 읽어내거나,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혜안(慧眼)’이다.

 

‘영안’은 부분 속에서 전체를 읽어내는 직관적 통찰력의 눈이다. ‘햄버거 커넥션(Hamburger Connection)’이라는 말이 있다. ‘햄버거 커넥션’이란 햄버거의 재료가 되는 소고기를 얻기 위해 조성되는 목장이 열대림 파괴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햄버거용 소고기 100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 2000ℓ가 필요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점점 더 빨리 소비되는 햄버거용 소고기를 대량 양산하기 위해 숲을 태우고 목초지를 만들면서 숲이 그만큼 빨리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숲의 25% 이상이 소를 키우는 목초지 조성을 위해 벌채되었다고 한다. ‘햄버거 커넥션’이란 배고픔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내가 먹는 햄버거 하나에도 이렇게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햄버거를 많이 먹을수록 소화시키면서 소가 내뿜는 가스와 더 빨리 파괴되는 숲으로 인해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을 아는 눈이 바로 ‘영안’이다.

 

눈은 세계를 읽어내는 필터다. 내가 어떤 필터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동일한 세계라 할지라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해되고 해석된다. ‘육안’을 넘어서 ‘뇌안’으로, ‘뇌안’을 넘어 ‘심안’으로 사물과 실체의 본성을 읽어내는 시적 상상력을 의도적으로 연마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심안’을 보이는 현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구조적 관계나 힘을 읽어내는 ‘영안’으로 개발해야 남다르게 볼 수 있고 남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생각지도 못한 생각은 ‘육안’이나 ‘뇌안’에서 비롯되기보다 마음으로 읽는 ‘심안’과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안’에서 유래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사물을 ‘육안’으로 바라보면서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사물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편협된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나는 지금 ‘육안’과 ‘뇌안’을 넘어 세상을 ‘심안’으로 바라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 보이는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영안’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남다른 ‘혜안’은 영혼의 눈, ‘영안’에서 비롯된다.  

 

유영만<지식생태학자>

 

 

창조는 통찰에서, 통찰은 관찰에서 생긴다. 똑같은 현상을 관찰하더라도 보는 사람의 관점과 시점, 시각에 따라 다른 관찰 결과를 얻게 된다. 따라서 남다른 관찰 결과를 얻으려면 관점, 시점, 그리고 시각을 바꿔보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사물 및 실체가 다른 전체와 맺고 있는 구조적 관계를 꿰뚫어 읽어내는 것을 ‘혜안’이라 한다. 남다른 ‘혜안’은 영혼의 눈인 ‘영안’에서 비롯된다. 지금 당신은 ‘영안’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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