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브라질에서 기적을 체험했다. 이번 세계청년대회(WYD) 기간 동안 주님과의 만남은 다름 아닌 기적이었다. 지금부터 3가지 기적으로 담긴 참관기, 아니 기적체험기를 시작하겠다.
24시간은 아주 긴 시간. 누구에겐 평범한 하루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브라질로 가는 기대되는 시간이다. 비행기에 타서 긴 시간동안 좁은 좌석에서 버티기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우리 대전교구 참가자 30명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24시간 넘게 걸려 브라질에 도착했다.
7월 19일, 처음 우리를 맞이한 곳은 깜삐냐스. WYD 공식 주제가를 불러가며 우리를 맞는 그분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환대에 어색할 즈음에, 우리들을 먹이고 재워줄 홈스테이 가족 분들이 앞에 서계셨다. 우리 가족 분들은 다름 아닌 신부님들이었다. 파드레(padre)라고 부르기에 이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깜삐냐스 신부님들. 놀랐다. 시작부터 특혜를 받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첫날이 지나갔다.
다음 날 우리는 세계청년대회를 맞이하기 전 깜삐냐스 교구대회에 함께하기로 되어있었다. 가톨릭대학 PUC에서, “칠칠칠레레레 비바 칠레!” 하고 외치면서 등장하는 칠레 청년들, 흥겹게 스텝을 밟으며 들어오는 브라질 청년들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비록 포르투갈어는 하지 못해도 그들과 몸짓, 발짓으로 의사표현도 해보고, 그렇게 재밌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 안에서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춰주면 좋아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CCM 가수 포엠. 그들의 ‘아리랑’ 공연. 내가 한국인인 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아리랑 선율에 맞춰 사람들이 손을 좌우로 흔들며 하나 되던 그 순간을. 아쟁의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구슬픈 우리나라의 가락을 그대는 아는지? 타국에 와서 들으니 더 깊이 와 닿았다. 그리고 브라질의 공연도 이어졌다. 역시 열정의 나라 브라질! 춤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배우고 싶었던 것 중 하나 ‘열정’. 종교 활동도 열정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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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삐냐스 교구대회 개막미사 (사진 제공 / 이윤태) |
다음날(7월 20일)이 밝았다. 신부님들이 가족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었다. 브라질 요리인 슈하스코, 페이조다도 먹고 사탕수수로 만든 술도 함께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회가 되어 우리는 한국 라면과 함께 소주를 대접했다. 그분들에게 들었던 말은 다름 아닌, 따봉(tá bom)! 무이또 봉(muito bom)!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파티를 끝내고 교구대회 폐막미사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폐막미사에서, 추기경님이 미사를 집전하시고 여러 각국에서 오신 신부님들이 함께 강복을 주셨다. 거기서 우리의 일행인 간사님에게서 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대사란 세계청년대회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이다. 이 기간에 함께하는 신부님들에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고, 장소는 고해소뿐만 아니라 여정 중에 함께 걸어가면서도 가능하다. 성사 후 미사를 보며 한 사람을 지향해 기도를 올리면 그 사람은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도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첫 번째 기적, 깜삐냐스에서 받은 노래 선물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면서 홈스테이 가족인 파베로 신부님, 아우구스토 신부님, 두 분께서 우리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축복해 주셨다. 떠나기 전 미사. 그동안 정들었던 홈스테이 가족 분들이 아침부터 울고 계셨다.
슬픔의 눈물이 모두의 눈에 흐르고 있을 때쯤 미사가 시작되었고, 그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분명 ‘사랑해’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 노래를 브라질 가족 분들이 알 수 있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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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삐냐스에서의 노래 선물 “사랑해 당신을” (사진 제공 / 이윤태) |
때는 홈스테이 첫날, 대구에서 오신 신부님들이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 이름은 역시 ‘사랑해’. 가사를 적어주며 노래를 선물하셨다고 한다. 노래와 선물에 감동을 받은 브라질 가족 분들이 우리가 아파레시다 성모성지로 떠난 이후, 연습을 해서 마지막 선물을 주시는 거였다.
“사랑해 당신을~” 난 이 안에서 첫 번째 기적을 보았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다름 아닌 이 노래가 아니었을까? 드라마 스토리라고 해야 믿을 법한 이 말도 안 되는 이별의 한 장면. 브라질 가족 분들은 ‘사랑’이란 것을 보여주셨다.
나도 홈스테이 신부님들과 이별할 때, 포르투갈인이면서 한국에 와 계셨던 알바로 신부님께 통역을 부탁드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고 울지도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언젠가 다시 만날 거니까요.” 진지한 순간에 “한국에서요, 브라질에서요?” 하고 농담을 하시며 웃는 신부님들. 나는 “둘 다!”라고 외치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이별을 마치고 버스를 탄 후,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로 출발했다. 우리는 세계청년대회 거점 성당에 도착해 체육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날 밤 브라질의 시위 소리를 듣게 되었다. 평화적인 시위였지만 리우는 뭔가 무섭게 다가왔다.
드디어 본무대! 세계청년대회 개막!
7월 23일, 세계청년대회 시작. 개막미사 장소는 코파카바나 해변. 우리는 WYD 공식 물품을 받고 지하철을 타서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정신을 못 차리면 수많은 인파에 섞여 떨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 그래도 지하철 안에서 세계 여러 청년들과 인사도 나누며 그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가지고 온 기념품들을 교환하고, 태극기와 함께 사진도 찍고 브라질 방송에도 나왔다. 그렇게 뜻 깊은 시간을 보내는데 개막미사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주님께서 우리가 기도도 안 하고 즐기기만 해서 화가 나셨을까?
이내 본부팀과 우리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사를 하고 가느냐.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느냐. 대신 집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을 탈 수 없어 3시간을 밤늦게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리우에서 10시 이후에 걸어 다니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하고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건 위험하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찰 때쯤, 우리 교구 국장 신부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추워도, 힘들어도, 우리가 여기 온 이유를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그 기도와 함께 모두 미사를 드리자는 의견으로 뜻을 모았다.
추위는 서로의 체온으로, 피곤함은 서로의 활기찬 대화로 떨쳐버리면서 미사를 드렸다. 그 넓은 코파카바나의 수많은 세계 청년들이 성체를 모시는 순간까지.
영성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해서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 만난 세계 청년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도 함께 모실 수 있다니. 그렇게 개막 미사가 끝나고 ‘우리가 아까 힘들어했던 그 사람들이 맞을까?’ 하는 것처럼 열심히 걸어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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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봉헌한 세계청년대회 개막미사 (사진 제공 / 이윤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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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이윤태 |
둘째 날(7월 24일), 이번 세계청년대회에서 교황님이 제일 강조하신 교리교육이 산타마리아 성당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대전교구에서 첫날을 준비했는데, 노래도 하고 율동도 배워가며 주님을 찬미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아시아 청년 모임(AYG)에 참석했다.
내년 대전에서 열릴 아시아청년대회(AYD)를 생각하며 나눔을 했다. 아시아 가톨릭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주님을 믿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가톨릭을 믿지 않는 청년을 교회의 품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뜻 깊은 시간 뒤에, 우리 교구 여자 분들이 준비한 부채춤 또한 모두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리우에서 맞이한 두 번째 기적
서울대교구의 교리교육이 끝났는데, 교황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알고 보니 교황님의 숙소는 우리 숙소와 가까웠고, 미사를 드린 곳에서 5분 거리였다. 그렇게 모두 교황님의 삼종기도를 볼 수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교황님이 강복을 주시는 사이에 나는 재빨리, 부모님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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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이윤태 |
그런데 기도가 부족했을까?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한 조원이 아프다고 했다. 내 사촌형이었다. 형은 몸이 안 좋아 보였고, 숙소로 혼자 가겠다고 했는데 난 왜 데려다줄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형을 보내고 난 후,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숙소는 닫혀있다는 것, 형이 갈 곳이 없다는 것. 설상가상 연락이 안 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통역봉사자 이사벨 자매님에게 말한 후, 형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불안감이 스쳤다. 형이 어떻게 된 건 아닐까? 또 어젯밤에 우리 교구 사람들이 흑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그 일이 생각나면서 형의 연락두절이 너무 두려웠다. 통역봉사자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났다. 연락이 안 되는 형에게 화를 내고 있으면서도 그 화는 나에게 난 것이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사실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정말 어떻게 된 건 아닐까? 그러던 차에 형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자다가 깨서 저녁을 먹고 있다”고.
무슨 상황이 생긴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형이 밉기도 했지만, 무사하다는 것만으로 내겐 큰 행복이었다. 주님께서 또 하나의 선물을 주셨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기적이었다. 숙소에서 만나 화를 내면서도, 많이 걱정했노라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7월 27일, 오늘은 바로 철야기도가 있는 날. 밤을 새며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날이다. 세계청년대회 기간 내내 비가 왔지만, 철야기도를 드리는 우리의 정성에 주님이 감동을 받으셔서 비 대신 뜨거운 태양을 선물해주셨다. 세계청년들과 함께 “에스타에 유벤투드 파파(우리는 교황님의 젊은이입니다)”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면서 함께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도착해서 침낭을 일사분란하게 펴고 있는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을까? 우리 앞으로 바리케이드와 경찰이 등장했다. 이것의 의미는? 교황님이 이곳을 지나가시는 것이었다. 그저 우린 정말 해변으로 가기엔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서 교황님을 바라보려고 했을 뿐인데, 앞으로 지나가신다니 정말 이 또한 선물이었다. 그렇게 교황님도 눈앞에서 보고 밤에 노래를 부르다가 WYD에 오게 된 이유와 자기 나름의 스토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폐막미사가 시작되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우리는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폐막미사에 함께했다. 통역봉사자인 마리아 자매님이 교황님의 말씀을 해석해주셨는데, 나긋나긋한 목소리 덕분에 우리는 주님을 뵈러 꿈나라에 빠졌다. 너무 졸음이 몰려와서 잠을 자 버렸다, 하하. 그렇게 세계청년대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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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막미사 드리러 가는 길 (사진 제공 / 이윤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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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막미사 (사진 제공 / 이윤태) |
여러분과의 만남이 바로 기적입니다
이후 우리는 상파울루로 향했다. 우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주신 천사를 보러. 브라질 한인성당에 계신 이윤제 신부님,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출발.
브라질 현지 상황을 계속 알려주신 신부님과 한인 신자 분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앞서 말한 두 가지 기적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기적이다. 그분들 앞에서 내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도착 후 한식 밥과 김치를 오랜만에 먹을 수 있었다. 입가에 한국의 향이 닿았을 때, 웃음이 나왔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행복하다고 느꼈다.
상파울루 한인성당의 일정을 마치고 브라질에서 봉헌하는 마지막 미사. 함께 행복을 나눴던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남자는 노래, 여자는 부채춤. 우리가 ‘섬집 아기’라는 동요의 시작인 “엄마가 섬 그늘에”라며 운을 떼자, 한국을 그리워하는 그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성가를 부르자 함께 찬양을 시작했다. 내 마음 안의 세계청년대회도 끝을 알리고 있었다.
그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지는 순간에 깨달았다. “그리스도 보내시네”라는 WYD 주제가 가사처럼 그렇게 나를, 우리 모두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는 단순한 ‘순례’가 아니라, 나에게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임을.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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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파울루 성 김대건 한인성당에서의 기념사진 (사진 제공 / 이윤태) |
이윤태 (시메온) 대전교구 목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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