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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야마오 산세이
대안문화 언저리를 기웃거리던 시인 하나가 홀연 일본 남쪽의 한 섬에 또아리를 틀었다. 삼나무 그루터기를 식탁 삼아, 털머위 조림과 쑥수제비를 끓여내는 삶. 멀리 잎넓은 나무들이 바닷 바람에 두런두런 흔들리는 소리, 타닥타닥 잘마른 장작을 때는 즐거움.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섬에 사는 즐거움.
1977년, 온 가족과 함께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고,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자연과 벗하고 살았던 시인 야마오 산세이가 1996년부터 만 2년 동안 월간 <아웃도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시인은 개인과 개인, 문명과 자연이 대립하는 것이 아닌 혼연일체 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면서, 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영혼이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신애니미즘과,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는 것.
역자 : 이반
산이 좋아 틈나는 대로 가까운 산에 다니며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등 아홉 권의 번역서를 냈다. sunya30@hitel.net
저자 : 야마오 산세이
야마오 산세이는193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현대문명에 대항하여 원시 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1973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팔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였고, 1975년부터 도쿄에 호빗토 마을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였다. 1977년에 온 가족이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의 한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며, 그곳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한없이 자기를 초극해 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사는 한편 농사일 틈틈이 시와 글을 쓰는 문필 활동을 하며 살다가 2001년 8월에 그의 영혼의 별인 ‘오리온의 세 별’로 돌아갔다.
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석기문화를 즐기다
야생 사슴과 함께 사는 길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아웃도어 라이프
서부 숲길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토란
우수
숲은 바다의 연인
지구 크기로 생각한다
천사백만 년이라는 시간
내 별 내 나무 내 바위
햇살이 아프다
물의 길
아난다처럼 울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 집 짓기의 즐거움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끝없는 여행
좋은 땔감을 때면 자연스레 불길도 좋다. 또한 이상하게도 좋은 기분으로 불을 때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좋은 불길이 생긴다. 그날은 삼나무이기는 해도 손수 골라 온 좋은 땔감으로, 그리고 좋은 기분으로 불을 지폈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없는 불길이 조용히 타올랐다. 겨우 목욕물을 데우는 일뿐이기는 하지만 그런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생은 완벽한 것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는 듯이 느껴지곤 한다.
여름 방학이 깊어 가며 꽃 수가 점점 늘어났다. 100개에 가까워지자 그것에만 열중하여 어떤 날에는 아직 날이 다 새지도 않은 시각부터 눈이 떠지는 일조차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끝내 100개를 넘어 107개를 기록했을 때의 그 숫자는 그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커다란 기쁨의 숫자로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나팔꽃은 그만큼 소년인 나를 감동시키며 분발시켰던 것이다. 내가 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나는 마치 내가 피어나는 것처럼 분발했다.
한 식물의 이름을 고대 로마와 현대의 영어권에서 욥의 눈물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염주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 속에는 인류에 공통되는 기도의 마음이 들어 있는 듯하여 대단히 흥미롭다. 들에 있는 무수한 식물 또한 그 하나하나가 이 염주처럼 특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고, 그것만 조사하고자 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속에는 우리들의 일생은 물론 또 한 생을 바쳐도 다 찾을 수 없는 보물(가미,혹은 의미)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에서 5,6킬로 이상 떨어진 산속에 넓은잎나무를 심는 게 어째서 바다의 연인을 만드는 일이냐는 의문을 가질 사람도 적지 않을지 모른다. 전문가가 아닌 나는 정확한 답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넓은잎나무의 숲에서는 그 숲 특유의 부엽균이 생기며, 그 부엽균이 조금씩 강으로 흘러 들어 바다로 옮겨짐에 따라 바닷물 속에 플랑크톤의 양이 늘어나며 어패류를 증식시킨다는 것이 그 간단한 이론이다.
옛날부터 ‘어부의 숲’이라는 말이 있어 해안 지대의 수목은 어패류를 위해 결코 베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것은 인류가 수만 년 혹은 수십 만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로 그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플랑크톤의 증식을 들 수 있다.
도시 생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숲에서 살자면 자연스레 자기가 사는 장소 정도는 어떻게든 스스로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 보고 싶은 기분이 일어난다. 일종의 집 짓기 본능 같은 것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그 방면에는 재주가 없어 초·중학교 때의 공작 시간은 그저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섬에 살게 된 뒤에는 어느새 서투른 대로 내 거처 정도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습성이 몸에 배게 되었다.
집 본체와는 별도로 이제까지 앞뜰에 아이들을 위한 작지만 독립된 방을 하나 세웠고, 세 평 정도의 부엌을 집 동남쪽으로 늘려 지었고, 그리고 서쪽에는 침실용 방을 하나 내어 붙였다. 목수들이 보면 어이가 없어 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해 가며 손수 내 둥지를 짓는 일은 그 어떤 일과도 바꾸기 어려운 기쁨과 즐거움을 내게 줬다.
집이란 물론 훌륭해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비바람을 막고, 더위와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미학과 철학이 내게는 있다. 서투른 자가 생각해 낸 얼치기 미학이자 철학이지만 그것 역시 속일 수 없는 내 인생의 하나이다.
그때도 장마가 지고 있었고, 나는 우산을 쓰고 쏟아지는 빗속에 오래도록 서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들어 보니 흰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섬배롱나무가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이 내게 보여준 것은, 비를 맞으며 흠뻑 젖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꽃피어 있는 시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위로였다. 5분 정도 나는 깊은 위로를 받으며 그 나무에 홀려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 나무는 몇만 그루가 있는지 몇십만 그루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야쿠 섬의 수많은 나무 속에서 조몬 삼나무에 이어 두 번째 내 나무가 되었고, 가미가 되었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이 책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살며시 가져다 주는 수필이자 사상서이다.
우리의 외로운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이 책은 신애니미즘, 석기시대 충동, 생명지역주의라는 저자가 일생을 걸고 꿈꾸고 바래왔던 세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다. 그것이 지구 위의 어느 장소이든, 사람이 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나고 죽을 각오를 하면...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이 책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살며시 가져다 주는 수필이자 사상서이다.
우리의 외로운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이 책은 신애니미즘, 석기시대 충동, 생명지역주의라는 저자가 일생을 걸고 꿈꾸고 바래왔던 세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다. 그것이 지구 위의 어느 장소이든, 사람이 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나고 죽을 각오를 하면 그 장소에서 끝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삼라만상 속에서 삼라만상의 지원을 받아 가며 거기에 융화돼서 사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 야마오 산세이 -
일본에서는 야마오 산세이를 ‘현대의 미야자와 켄지’라고 한다. 야마오 산세이 역시 미야자와 켄지처럼 많은 시와 산문을 쓴 시인이다. 한편 그는 30대 후반 야쿠 섬으로 이주한 뒤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산 농부이기도 하다. 동시에 실천하는 사회 운동가이자 구도자였다. 지구 크기로 생각하고, ‘여기’, 즉 자기가 사는 곳에서 꾸준히 실천해 가는 것을 삶의 바탕으로 삼았다.
야마오 산세이의 풀두고 가꾸는 농사
그는 야쿠 섬에 살면서 하루 중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화학비료 대신에 음식 쓰레기, 똥오줌, 나뭇재를 밭에 낸다. 잡초는 베어 낸 다음 그대로 밭에 덮는다. 잡초는 끝도 없이 나지만, 그는 잡초를 미워하지 않고 잡초는 베어서 땅에 덮으면 마침내 비료가 되기 때문에 밭에 잡초가 무성해 있으면 실은 비료가 무성해 있는 셈이라고 한다.
그의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 놓은 밭 같다.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벤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는 일 이외는 하지 않는다.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는 일 외에는 비료도 하지 않는다.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는 ‘풀 두고 가꾸기’라 부르고 있다.
지구 위 모든 생물과의 공생을 꾀한다
야쿠 섬에서는 사슴과 원숭이의 피해가 심하다. 그냥 두면 과일과 야채는 모두 그들의 차지가 돼 버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 철책을 치지만 그는 버려진 그물을 이용하거나 사슴과 원숭이가 손을 대지 않는 토란, 아스파라거스, 자소와 같은 작물을 택해 그들과의 공생을 꾀한다. 왜냐하면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푸른 풀들은 우리의 생명의 조상이자 고향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제자매이기도 하다.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다
석기문화, 혹은 석기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문화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다.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되찾아야 문화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 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낚시,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그 충동을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 충동이라 부르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였는지 어땠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는 여기서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램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는 그런 작업을 통해 생의 근원적인 충동(석기시대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게리 스나이더의 ‘생명지역주의’와 야마오 산세이의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
이삼십 년쯤 전부터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는 사상인 ‘가이아 철학’이 나타났고, 십 년쯤 전부터는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철학이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등장했다. 게리 스나이더의 ‘생명지역주의’도 물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철학이다.
게리 스나이더는 1974년에 출판한 “거북섬turtle island ”이란 시집으로 다음 해에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받고, “끝없는 산하Mountain And Rivers Without End(1996)”라는 시집으로는 볼린겐상Bollingen Poetry Prize을 받았다. 그는 그 외에도 수많은 시집과 에세이집을 내고 있고, 미국의 인디언 문화, 인류생태학, 문화인류학, 동양 사상(특히 선)에 바탕을 둔 그의 저작은 현대 미국 사회에 크고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과 동시에 미국의 근본적인 변혁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그는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잭 케루악Jack Kerouac 등과 함께 Lost Generation의 뒤를 이은 1960년대의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on을 이끈 사람으로,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서는 교토에 살며 다이토쿠 사의 선방에서 참선했다. 게리 스나이더는 우리들이 이제까지처럼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를 주장한다.
야마오 산세이는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 우리는 카메라의 눈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밖에 지구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게리 스나이더의 생명지역주의와 상통하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가미란 무엇인가
야마오 산세이에게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가미다. 가미란 무엇인가?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다. 그러나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신을 가미라고 표현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가미란 우리를 초월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깊고 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고, 깊고 강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미라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연인이 가장 리얼한 가미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이가 가미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만물은 절로 가미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가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그는 그것을 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나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자연 또는 가미에 가 닿게 되고 거꾸로 자연 혹은 가미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 이른다고 그는 말한다.
신애니미즘- 현대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야마오 산세이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는 암석이나 강이나 우주 그 자체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안쪽에는 영성, 혹은 영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며, 우리는 모두 친화력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과 깊이 이어져 있음과 동시에 자기 외의 수많은 나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면 행복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산에 대해서나 강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친화력으로 깊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이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을 신애니미즘이라 부르며, 자연 환경을 어떻게 지키고 되살릴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가 된 현대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희망으로 신애니미즘을 제시하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와 ‘부족’ 공동체
그는 20대부터 ‘부족部族’에서 활동했다. ‘부족’은 생명과 환경을 끊임없이 파괴해 가는 현대 문명에 대항하여 세계 각지의 원시 부족민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을 공경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기를 힘썼던 그들의 뛰어난 삶과 문화를 부활하자는 공동체 운동이다.
‘부족’이 꿈꾸던 것은 ‘사랑에 의한 혁명’이다. ‘영혼의 자유’, ‘대지로 돌아가자’ ‘자기 자신의 신성 실현’이란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부족’은 중앙 집권적 정치 형태, 종교, 국가 권력 등 기존의 체제 전체를 부정하고 있다. ‘부족’은 전국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으며, 여러 군데 거점을 확보해 간다. 퓰리처상 등을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인 게리 스나이더 역시 지지자의 한 사람이었다. 야마오 산세이가 쓴 <부족의 노래>를 읽어보기로 하자. 이 글은 ‘부족’의 선언서에 해당되는 글이다.
“이 세계 위에는 여러 가지 피라미드가 설치돼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는 전 세계를 모조리 뒤덮고 있는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형태이다. 러시아와 미국에서, 중국과 일본에서 사람들은 이 피라미드를 만드는 하나의 작은 돌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정치 세계만이 아니다. 세계 전체로 퍼져 있는 기독교, 불교, 회교, 힌두교와 같은 종교의 세계도 역시 욕망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합법적인 방법의 하나다. 중세의 유럽이 종교 피라미드의 모양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힌두교 신자들에 의한 카스트 제도 또한 같은 욕망에 뿌리를 두고 유지돼 가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우리는 이 피라미드의 암흑 속에 있다. 학교에 간다. 그것은 계단을 하나 올라가는 일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다. 이것도 또한 계단을 하나 올라가는 행위다. 회사에 들어간다. 계장이 된다. 또 계단을 하나 올라간다. 스스로 원하며 그와 같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욕망의 대 피라미드 속의 작은 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욕망의 피라미드가 지배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우리 ‘부족’의 인간은 이와 같은 피라미드의 게임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경찰관을 앞세운 법률이란 큰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안 우리는, 더욱이 그들 권력이 금전에 대한 욕망과 견고하게 유착돼 있다는 것을 안 우리는, 이 사회를 버리고 정해진 직업이 없는 방랑자가 되었다.(중략)”
그들은 ‘부족’의 주거지에 ‘프리 박스’는 이름의 상자 하나를 마련한다. 그 상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상자 하나로부터 세계 경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모든 경제학자가 달라붙어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바로 그 문제를 우리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요컨대 돈이 있는 사람은 이 상자 안에 넣는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이 상자 안에서 가져간다. 아아, 어째서 이처럼 간단한 일을 우리는 이제까지 몰랐단 말인가. 자유의 상자여, 늘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부족’ 시절, 야마오 산세이는 네 명의 동지들과 함께 ‘원시 공산제의 직접적 실현’이란 목표 아래 ‘소라고둥’이라는 일본 최초의 록 음악 카페를 열었다. 그들의 하루 노동 시간은 6시간으로 두 사람씩 교대한다. 남는 한 사람은 1개월간의 휴가다. 다섯 달에 한 번 1개월 휴가가 돌아온다. 3년 정도 소라고둥에서 일을 하면 1년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이 기간에 무엇을 하는가는 기본적으로 자유지만 대개는 여행을 떠난다.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그 휴가를 쓴다. 1개월 휴가는 국내 여행, 1년짜리 휴가는 외국 여행이다. 야마오 산세이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동지들은 ‘소라고둥’이란 장소에서 일을 하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카페는 신의 소유물이다. 모든 장소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모든 장소는 신의 소유물이다. 우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아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이 카페는 개점한 지 3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그 정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호빗토 마을
인도, 네팔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부족’ 때부터 알던 친구들과 함께 ‘호빗토 마을’이란 도심지 속 공동체를 만든다. 호빗토 마을이 생긴 것은 1976년이고, 일본의 수도인 도쿄 스기나미 구의 니시오기쿠보에 있다. 마을이라지만 이 마을은 매우 작다. 겨우 4층짜리 건물이다. 제일 아래 층에는 ‘나가토모 형제 상회’라는 무농약 야채 전문점이 있다. 이곳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야채와 과일을 판다. 그 안쪽에는 ‘쟈무 하우스’가 있다. 이곳에서는 손으로 만든 목공품이나 악세사리를 팔고 있다. 2층은 여러 가지 음료수와 밥을 먹을 수 있는 카페다. 3층은 ‘나와 프라사드’라는 뉴에이지 및 정신세계 관련 서적을 파는 전문 서점이 있다. 안쪽에는 호빗토 마을 학교의 교실이 있다.
The Colours Of Love - Bandari
첫댓글 좋은 기분으로 불을 때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좋은 불길이 생긴다..이말이 참 좋은 말 이네여~~무엇이던 좋은 맘으로 해야겠어여~~
느끼미~맨날 새식시 가터요~~모오~~젊다는건 올매나 조운가!!시삼 느낍니데이~~감사드리옵니더~~~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맞는 글이네요~~
좋은 책 소개에 감사합니다~~~
도사님 가터요~~!!ㅎㅎ~~ 언제 함 뵙지요~~
어디에 살든 그곳에 만족하면 행복이라생각해 봅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넉넉해보이는 지기님!! 늘~~행복하소서~거창사는 아림의동 ~저도~늘쌍 맑음 이옵니다~
중요한건 '이대로 충분히 행복해 하는것!!
한권의 책을 보기엔 많은 시간이 소요되더이다~젊음때 가지고 있었던 그 무언가 지금은 마니 쇠하였지만-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에 감사하면서 살고자 합니다~언젠가 뵈올날이 있다면 기대감도 한층 성숙한 맴으로 다가 서고 싶소이다~~~
네~책을 읽는다는것은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책을 일고 싶은 마음이 먼저 이기에 ' 마음먹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좋은책 있으면 많은 정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