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계 회사에 부장으로 근무하는 강모(44)씨는 월급 명세서를 받아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10년 전 연봉이 4000만원을 돌파한 이후 매년 꼬박꼬박 연봉의 30%에 가까운 세금을 납부하는 게 억울한 심정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사교육비로만 매월 200만원씩 드는 등 지출이 감당 못할 만큼 늘어나는데 세금은 왜 이렇게 많이 내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억대 연봉이라면 30%씩 세금을 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80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연봉에 세금을 내고 나면 솔직히 남는 게 없습니다. 요즘은 ‘봉급자들의 지갑은 유리알’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지방대 교수 최모(44)씨는 근로소득세 부담에다 종합부동산세 ‘벼락’까지 맞은 경우. 작년에 분양받은 50평대(공시가격 10억원) 아파트가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이 되면서 재산세를 포함해 600만원의 보유세를 내게 됐다.
“막상 종부세를 내야 할 때가 되니까 화가 치미네요. 아파트 하나 갖고 있다고 연봉의 10% 가까이를 세금으로 뜯긴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부가 정책을 잘못 펴서 아파트 값을 올려놓았는데 왜 내가 그 피해를 받아야 합니까.”
최씨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내가 근무지에서 월세를 살면서 두 집 살림을 하는데 사교육비랑 은행 이자 내고 나면 항상 가계가 마이너스”라며 “근로소득세도 부담스러운데 이처럼 ‘세금 폭탄’이 이어지면 아파트를 팔고 서울을 뜰 수밖에 없지만 지금 팔면 양도세만 차액의 50%라니 더욱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세금 원성(怨聲)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날아들기 시작한 종부세 고지서가 폭등하는 세금 압박을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종부세의 경우 전국 1777만가구의 1.3%에 지나지 않는 ‘소수 가진 자의 문제’로 치부되지만 “세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원성은 비단 ‘가진 자’만이 아닌 일반 봉급자들의 입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재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봉급자가 내는 근로소득세는 급증하는 추세다. 근로소득세는 1996년 5조9484억원에서 2005년에는 10조3822억원으로 74%가 늘었고, 근로자 한 사람의 근로소득세 부담 역시 같은 기간 85만원에서 163만원으로 91%나 급증했다.
세금이 늘더라도 소득이 오르면 견딜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물가상승을 반영한 근로자의 실질 소득은 35% 증가하는 데 그쳐 세금 증가율 74%에 크게 못 미쳤다. 17년 경력의 교사 손모(47)씨는 “4000만원대 초반인 연봉에서 세금이랑 건강보험료, 연금 등을 내고 나면 하루 용돈 5000원도 갖다 쓰기 미안할 정도”라며 “왜 이렇게 항상 쪼들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근로소득세는 현 정부 출범 이후만을 따져도 급증하는 추세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7조6189억원이 걷혔던 근로소득세는 내년에는 13조7764억원이 걷힐 예정. 현 정부 들어 5년 사이 81% 가량 세금이 늘어난 셈이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670만명을 기준으로 한 1인당 근로소득세 부담액도 2002년 132만원에서 내년에는 206만원으로 56%가 늘어난다. 정부는 올해보다 6.4% 증가한 내년 예산(238조5000억원)을 위해 근로소득세를 올해보다 13% 더 걷을 계획인데, 이는 자영업자가 주로 내는 종합소득세 증가폭(11.9%)보다 높은 것이어서 ‘유리알 지갑’이라는 봉급자들의 불만이 근거가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세금에 대한 정부의 ‘무신경’은 고가주택 기준에서도 드러난다.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제외 대상인 ‘실거래가 6억원 초과’ 주택, 이른바 고가주택 기준은 6년째 6억원에 묶여 있다.
이 기준은 1999년 도입 당시 ‘전용면적 45평 이상’에 ‘실거래가 6억원 초과’로 정해졌다가 2003년부터는 면적 기준이 사라지고 ‘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는 1가구 1주택 여부에 상관없이 양도세가 실거래가로 매겨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강남, 분당 등 일부 지역에서는 20평대 아파트도 고가주택에 포함되는 등 고가주택 기준의 현실성이 없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업체에 따르면, 내년에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되는 ‘시세의 80%가 6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만도 전국적으로 29만여가구로, 1999년의 ‘실거래가 6억원 이상 아파트’에 비해 20배 가량 늘었다. 이 때문에 양도세를 매도가에 전가해 집값이 더 오르고 거래는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몇 년간 일반인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것은 통계청의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342만3494원으로 2002년 286만3384원보다 19.6%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가계 지출은 24%나 늘었다. 무엇보다 월 지출액에서 세금이 8만8334원에서 14만965원으로 59.6%나 급증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과 사회보험 역시 11만7538원에서 16만6990원으로 42%나 올랐다. 또 주거비용도 5만9494원에서 8만3758원으로 40.8%나 치솟았다.
주부 신정민(36ㆍ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우리처럼 전세를 사는 사람은 종부세가 남의 일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종부세를 내지 않는 우리 같은 서민도 살림살이가 어떻게 갈수록 힘들어지는지 모르겠다”며 “300만원 남짓한 남편 월 수입으로 한 푼이라도 아끼며 살고 있는데 내년에 건강보험료가 또 인상되고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요금까지 오른다고 하니 더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자유주의연대 회원들이 정부의 예산안 확대에 반대하는 '알뜰정부 구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이 급증한 것은 세금도 세금이지만 무엇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장성 기여금이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회보장성 기여금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0.4% 수준이었지만 2004년에는 8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OECD 평균인 3%대로 올라섰다.
지난 9월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펴낸 ‘조세ㆍ이전 소득의 분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4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지난해 부담한 사회보장성 기여금은 155만원으로, 세금과 사회보장성 기여금을 합할 경우 연간 소득의 12.5%에 이르는 496만원이 지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금과 사회보장성 기여금 외에 준(準) 조세 성격의 각종 부담금까지 고려하면 국민의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부담금은 담배를 구입할 때 담뱃값에 포함되는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처럼 국가 또는 공공 단체가 특정 사업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돈.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이 지난 9월 기획예산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부담금 관리 현황’에 따르면 2002년 7조8215억원이던 부담금은 지난해 11조4296억원으로 46%나 급증했다.
국민부담률 증가 속도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빠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재경부는 국민부담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보장부담률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며 “국민연금 가입대상자 확대, 고용보험 대상사업자 확대 등 공적 보험 혜택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사회보장부담률이 증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조세부담률만 따지면 1995년 18.1%에서 2004년 19.5%로 1.4%포인트 올라 OECD 국가 중 증가율 11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민부담률의 경우 OECD 평균인 35%에 아직 못 미치고 사회 양극화 해소 등의 이유 때문에 지속적인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종부세의 경우도 ‘소수 가진 자의 문제’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세금 폭등의 전형을 보여준다. 종부세는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겠다는 취지로 2003년 10ㆍ29 대책 때 도입돼 작년부터 누진세율을 적용해 시행하고 있다. 특히 부과 기준이 지난해 ‘개인별 합산 공시가격 9억원 초과’에서 올해 ‘가구별 합산 6억원 초과’로 확대되면서 ‘세금 폭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세액과 납부 대상자가 폭증했다. 올해 종부세 신고 대상자는 35만1000명, 세액은 총 1조7273억원으로, 지난해 7만4000명이 6426억원을 낸 것과 비교하면 대상자는 4.8배, 세액은 2.7배 늘어났다. 특히 토지를 제외한 주택에 부과된 종부세는 대상자 24만명(법인 포함), 세액이 4572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대상자는 6.2배, 신고세액은 무려 11.7배가 늘었다.
지난 10월 ‘2006 아시아ㆍ태평양지역 납세자연맹대회’ 참석차 방한한 비외른 타라스 발베리 세계납세자연맹 사무총장은 “높은 세금은 경제성장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 한국은 세금을 줄여 복지보다 경제성장에 치중하는 것이 좋다”며 “통상 부유층을 겨냥한 세금은 결국 서민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정장열 주간조선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입력 : 2006.12.10 10:47 / 수정 : 2006.12.11 0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