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쌔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에워싸. - 야이로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의 집으로 출발하는 장면 묘사이다. "가실새"란 부정 과거 시제를 취하여 예수께서 곧바로 출발하셨음을 암시한다. 즉 예수는 즉각적 응답으로써 그의 간청에 호응하셨다. 이렇게 예수께서 급히 이동하자 바닷가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이동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무리들의 행동을 표현한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는 표현은 각각 미완료시제를 사용하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수를 좇으며,
더욱이 예수께 접근하기 위해 계속 몸을 부딪히는 혼잡함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 이 같은 장면은 그 당시 예수를 중심한 분위기가 매우 열기가 있음을 보여 주며, 따라서 예수의 명성과 인기가 대단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막 5:25]"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 여기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야이로 회단장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12년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등장한다. .. 혈루증은 현대의학 용어인 "혈루병"이 아니다. "혈루병"은 여자에게 유전 인자로 잠재할 수는 있어도 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남자에게는 유전으로 잠재성과 병으로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여기서의 혈루증은 만성 하혈증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틱적으로 피가 흐르는 중세일 것이로 간주했다. 따라서 종교 생활 뿐 아니라 사회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특히 이 여인의 병이 12년는 완전수 또는 하나님의 계회과 성취를 나타내는 수로 상징됨)이나된 병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병이 치유될 수 없는 불치의 병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 이 여인이 병으로 받는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그녀가 파네아스 출신의 이방인 베로니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막 5:26]"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 혈루증을 앓는 이 여인은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위한 노력을 한 것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적 노력을 더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의원들은 그녀에게 더 심한 고통만을 안겨 주었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인 누가는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했다"는 말로써 동료 의사들의 한계 상황을 깊이 배려하며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이 여인의 가정은 어느 정도 부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는 부자가 아니면 의사를 찾아 갈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치료비로 다 써버리고 이제는 가난한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병은 더 악화되었다는 묘사는 25절에서 12년 동안 병을 앓아왔다는 표현과 함께 ① 병의 불치성과 ② 의술의 무력함을 나타내 보이고 ③ 인간적인 모든 수고가 허사로 돌아 갔다는 절망적인 상황 묘사와 ④ 그 여인이 받고 있는 고통이 진퇴 양난의 절박한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다.
재산을 치료비로 다 허비하고 남은 것은 병든 몸 하나이고 그나마 병은 더욱 악화되고 병의 부정함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여인의 모습은 인간 최악의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삶과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상실되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이 여인의 모습은 4장의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과 2-5절의 귀신들린 사람과 2,23절의 죽음 직전에 이른 야이로의 딸과 함께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인간의 유한성과 인간적인 노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그 혈루증의 여인은 더 이상 자기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구원자 예수를 찾게 된 것이다....[막 5: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소문을 듣고.... 옷에 손을 대니. - 절망의 벽에 부딪힌 이 여인은 예수의 치병 기적에 대한 소문을 상세하게 들은 것으로 보인다. 이 여인의 믿음은 예수의 옷에만 손을 대도 자신의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야이로의 믿음처럼 예수께서 주체가 되어 환자와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환자가 예수에게 접촉을 함으로써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만지게 해 달라거나 옷에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는 간청은 예수에게 치유의 능력이 충만하다는 확신에 찬 믿음의 결과이다. 따라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치유받고자 하는 사람의 믿음을 강조하는 점이다. 이 여인은 직접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소문을 통하여 믿게 된 것이다. 그녀는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예수를 만지게 되는데, 이 같은 사실은 그녀의 담대함(간절함)과 겸손함을 대변해 주는 행동이다.
그녀는 사회 통념상 여자로서 뿐 아니라 부정한 자로서 공중 앞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으나 그러한 사회,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께 접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몰래 감추고 자신의 병을 가만히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예수의 "뒤로" 온 것이다. 한편 마태는 그녀가 예수의 "겉옷 가"를 만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예수와 접촉함으로써 율법적으로는 예수를 부정케 만든 결과가 되었다. 생명의 주께서는 이 모든 의식적 부정을 초월하여 그녀의 믿음을 받아 들이셨다.
[막 5: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얻으리라 함일러라. - 그녀가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이유를 설명한다. 그녀의 이 같은 심정에는 미신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예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구원자이심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한편 "함일러라" 미완료 시제로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 같은 사실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음을 보여 준다....[막 5:29]"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여인의 믿음대로 병은 즉각적으로 치료되었다. 실로 12년 동안 한시도 그녀의 몸에서 출혈이 떠나지 않은 그 지독한 병증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다. 이 상황을 공동번역은 "출혈이 그치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특히 "혈루의 근원"이라는 표현은 병의 치료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치료된 것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표현법은 치료의 즉각성과 피료의 완벽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써 그녀는 12년 의 정신적 고통이 함께 해결된 것이다.
치료는 예수와의 전인격적 접촉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예수의 능력과 권위를 더 높이는 것이었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 병이 나았다는 것을 자신이 직접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즉 그녀는 혈루의 근원이 근절되자 곧 자신의 치유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자각은 곧 그 치유가 몸으로 직접 느낄 정도로 완전하고도 신속하게 치유되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즉각적이고 근원적인 치유 기적이 발생한 놀라움과 대조를 이루는 것은 27절에서 묘사된 여인의 행동이다.
그녀는 환자의 연약한 몸과 여자라는 핸디캡을 갖고 그 많은 군중 속에서 겨우 예수의 뒤쪽에서 손을 옷에 대었다. 간청을 한 적도 없고 믿음을 예수께 밝힌 적도 없는 이 여인에게 기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실은 이 여인이 갖고 있는 믿음이 공개된 사실은 없지만 이미 숨겨진 믿음도 기적을 일으킬 만한 가치가 있음을 암시한다. 실로 예수는 인간의 심령을 살피는 분으로서 그 소원의 깊이를 조용히 알아보고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