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 출처불명 '이화영 진술' 받아쓰기 보도
언론윤리와 피의사실 공표금지 어긴 악의적 기사
노무현·한명숙·노회찬·윤미향·조국 등 낙인찍기로
정치검찰·언론 합작해 '유죄추정 여론몰이'에 악용
한국 언론의 고질병인 이른바 ‘~알려졌다’ ‘~전해졌다’ 보도가 또 등장했다. 법원에서 아직 확정되지 않고 검찰·경찰이 수사중인 범죄혐의와 관련한 사실을, ‘익명’ 취재원의 말을 받아쓰기 식으로 전달해 기사화하는 것이다. 이른바 ‘알·전 보도’다.
‘알·전 기사’의 특징은 ‘검찰 관계자’ ‘법조계 소식통’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지고 전해진’ 것으로 포장해 보도한다는 점이다. 검찰과 언론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합작해 만들어낸 기사로, 언론의 신뢰를 깎아먹는 대표적인 비윤리적 기사, 저질 기사다.
조선일보가 19일자 1면에 보도한 ‘(단독)이재명에 쌍방울의 방북비 대납보고-이해찬·李 연결고리 이화영 검찰에 300만달러 송금진술’ 기사와 같은 날 중앙일보 1면의 ‘이화영 “쌍방울 대북 송금, 이재명에 보고” 검찰진술’ 기사가 이런 기사다.
조선일보는 19일자 1면과 12면으로 이어진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최근 검찰에서 ‘쌍방울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기로 한 것을 당시 이 지사에게 사전에 보고했고 이후 대북 송금이 진행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이 기사에는 취재원이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12면에 이어진 기사의 중간 쯤에 ‘법조계와 정치권에 대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고 썼다. 기사의 핵심인 ‘이화영 전 부지사의 진술’을 도대체 ‘누가’ 전해준 것인지 알 수 없다.
핵심내용을 제시한 앞부분 8개 문장 서술어 중 6개는 ‘~전해졌다’ ‘~했다는 것이다’ ‘~라는 관측이 나온다’로 되어있다. 기자가 사실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전해듣고 쓴 문장, 누군가의 ‘관측’을 받아쓴 기사다.
중앙일보 같은 날 1면 기사도 비슷한 구성이다. 취재원인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수원지검 형사6부는 죄근 조사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서 “쌍방울 측이 북한에 이재명 대표의 방북비용을 낼 것이라고 이 대표에게 구두로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아냈다’라는 것이다.
이런 ‘알려졌다, 전해졌다’식 보도는 그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심각한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다. 익명 보도를 자제하고 확인된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취재보도준칙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기사화한 내용이 ‘피의사실 사전공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피의사실공표죄(형법 126조)는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과정에서 알게된 피의 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것으로 헌법상 명시된 피의자의 무죄추정 원칙(헌법 제27조)을 위배하는 것이다.
수사 내용은 검찰이나 경찰만이 알 수 있으므로 이 내용을 처음 흘린 것은 검찰·경찰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의도에 따라 불법적으로 누설된 이런 수사 내용을 언론은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특종’ ‘단독’을 붙여 받아쓰기해 온 것이다.
검찰·경찰이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리고, 언론은 받아쓰기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오로지 기소와 유죄판결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당국과 이에 동조하는 정치 언론의 ‘여론몰이’다.
검찰·경찰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피의자의 혐의가 언론에 보도되면 여론은 재판에서 유무죄가 확정되기 전에 이미 피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게 된다. 과거 정치인, 기업인들이 검찰과 언론이 만들어낸 여론몰이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입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한명숙 총리, 노회찬 대표, 조국 장관, 윤미향 의원 등이 검찰-언론이 공조한 ‘알·전 보도’ 여론몰이로 기소도 되기 전에 여론재판에 끌려갔고,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대표의 비극 이후에 언론은 이런 비윤리적 보도를 자제하는 듯했으나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언론과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실상 사문화한 법률이라는 점을 이용해 이런 ‘알·전 기사’를 이용한 악의적 보도와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정치검찰의 의도에 넘어가 검찰이 흘려준 사실을 받아쓰기 하는 것인지, 언론과 검찰이 공모해 여론몰이를 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어떤 경우든,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심지어 법을 위반하면서 여론을 조작하는 출처 불명 받아쓰기 보도는 언론이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나마 이번 ‘알·전 기사’ 여론몰이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두 군데에 그쳐 다행이다. 두 신문은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한국인이 가장 믿지 못하는 신문’으로 꼽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