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국회에서싸워서가 아니다
제 이익만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우기에 믿지 않고 싫어한다
우리 자화상은 생생하게 이걸 보여준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어김없이 불어오는 가을 바람은 변화를 분명히 느끼게 한다. 겨우 일년 전,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모두 불안해했지만, 이제 그 위기감마저도 우리 곁을 가볍게 비켜간 듯하다. 정부는 연일 서민 대중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대통령은 오늘은 남대문 시장 찍고, 내일은 대구, 그리고 포항까지 열심히 돌고 있다. 떡볶이 집이나 시장통 또는 군대 훈련소 탐방 등의 이미지 세일즈에 몰두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는 불행 끝, 행복 시작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위기와 불안 후의 안정을 경험하는 듯하다. 그런데, 여전히 제자리를 못 찾는 곳이 있다. 장관이나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를 파렴치범 수준의 의혹과 비리 캐기 경연장으로 만들어 놓는 국회이다.
대한민국 장관이나 총리 후보의 수준이 일반 시정잡배와 큰 차이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믿는 것은 자유일 것이다. 의혹이나 비리로 점철된 것이 우리 사회지도층의 수준이니 정치인들이 그리 하는 것도 탓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핵심리더 검증이 이 사회 지도층의 몰염치한 과거 삶의 방식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적어도 그들이 지향하는 이 사회는 무엇인지, 그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가 어떤 모습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의도에 있는 정치인 그 사람들부터 그것을 잘 알지 못하니, 청문회에서 묻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마치 엑스레이 찍듯이 탐색하는 일련의 심리분석 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우리 사회를 어떤 이미지로 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왜 여당과 야당 모두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국민들은 그들이 국회에서 싸우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우기에 믿지 않고 싫어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찾아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생생하게 이것을 알려준다.
"우리 사회에서, 학연이나 지연 등이 일의 과정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대기업은 특권과 특혜를 누린다. 유력 방송이나 신문에 의해서 국민 여론이 만들어진다. 영남, 호남 등 지역 중심의 정치 구도가 여전히 유지된다.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법을 안 지킨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잘난 분들의 모습에서, 감언이설처럼 쏟아지는 정부의 서민 정책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느끼는 이 사회의 이미지이다. 그들의 심리는 바로 이 사회에서 이제 특권은 너무나 당연하기에 단지 자신이 피해는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막연한 피해의식이 있다.
국민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그리 만족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만을 해결할 거창한 수단이나 목표는 없는 체념한 심리 상태가 드러난다. 점점 대중들은 구세주나 영웅과 같은 인물이 나와 한방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음에 드는 정당은 없지만, 새로운 무엇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내가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들이 정치 리더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특혜나 특권이 없는 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 공무원들이 국민을 기업의 고객 대하는 듯한 마음으로 서비스를 하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통을 다니면서 서민의 생활을 살피고 지방을 다니면서 경제를 살리려 하고, 세계를 다니면서 한국을 세일즈한다는 우리의 대통령은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할까?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정치인의 거대한 담론보다 훨씬 소박했다.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한 삶을 누린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하기로 한 일은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처리한다. 공적인 일처리가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투명하게 처리된다. 국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정치인은 당의 입장이나 결정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힌다. 공무원 비리는 민간인에 비해 더 엄격하게 처벌한다. 법원, 검찰 등 사법부가 정권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선진국 수준이다. 의사,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자·부자에 대해 세금 징수를 강화한다."
특별하고 대단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현실은 이런 상식조차 기대하기 힘든 것 같다. 서민행보와 통합의 메시지로 지지도를 회복한 듯한 현 정부는 일시적인 인기가 아닌, 국민들이 기대하는 사회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감언이설이 가득한 뻔한 드라마로 반짝 인기를 누리지만, 분명 대중과 공감하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