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닦고 보시(布施) 많이 하고 뭐 좋은 일 많이 하면 그게 부처님 공덕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여기는 그런 차원이 아니잖아. 그런 인위적인 차원이 아녀. 그대로 이 상태대로 이대로가 아무 문제없다.
그래서 『화엄경』은요. 『화엄경』은 가장 그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그 차원이 높은 가르침이다 라고 해서, 그래서 이제 심지어 저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부처님하고 동격(同格)으로 보는 것입니다. 완벽한 부처님하고 동격으로 보는 그런 차원이에요. 그래서 이제 궁극적으로 우리도 그것을 이제 알아야 된다 하는 입장으로 하는데, 그래서 이제 『화엄경』이 제일 수준 높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⑨ 衆生及國土가 一切皆寂滅이니 無依無分別하면 能入佛菩提니라
⑩ 衆生及國土가 一異不可得이니
중생급불토(衆生及國土)가 중생이니 세상이니. 불토(佛土)라고 하는 것은, 국토(國土)라고 하는 것은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이니 국토니 하는 것이 하나다 다르다 하는 것을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 국토라고 해도 중생이요. 중생이라고 해도 국토요. 국토와 중생을 나눌 수도 없고,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불가득(不可得)이요.
如是善觀察하면 名知佛法義니라
이와 같은 것이, 이와 같이 잘~ 관찰할 것 같으면, 시명불법의(是名佛法義)니라. 잘 관찰해. 그대로 현상 그대로 잘 관찰하자 이 말입니다. 현상 그대로 잘 관찰한 것이 이것이 불법의 이치다. 명지(名知) 이것이 이름이 불법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불법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불법의 이치 안다. 불교 안다 라고 하는 것은, 입을 떼는게 아니여. 가장 높은 차원은 입을 떼는게 아니여. 그 다음에 낮은 차원은 뭐여? 인과(因果)를 믿어라. 인과를 따라라. 인과의 법칙대로 살라. 고건 이제 낮은 차원이라.
그 여기에 가장 높은 차원으로 세상을 그대로 두고 보자. 그대로 완전한다. 그대로가 완전무결하다 이 말입니다. 그대로가 완전무결하다. 그런데 옳다 그르다 라고 하는 것은 전부 내 기준으로 하는 판단이다. 내 기준으로 하는 판단이다. 이렇게 보는 거요.
그럼 여기는 이제 그 우리 상식으로는 모순이 많을 거 아니여? 모순이 많을 거 아녀? 사실은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 생각이, 우리 판단이 모순이 많아. 우리 판단이 모순이 많지. 그 판단, 모순 많은 판단을 바꿔야 돼. 판단을 바꿔야지. 세상은 하나도 모순이 없어. 하나도 모순이 없어.
그게 납득이 잘 안되죠? 이게 지혜가 툭 터진 상태에서, 지혜가 툭 터진 상태에서 보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제 얼른 납득은 안되더라도, 납득은 안되더라도 화두로 이렇게, 화두로 해두고 넘어가야 되요.
八. 方便의 德
1. 光明遍照
爾時에 光明이 過百萬世界하야 遍照東方一億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이제 여덟 번째
方便의 德
방편(方便)의 덕(德)이라.
光明遍照
광명변조(光明遍照)라. 또 이제 똑같이 열 번 나오는 건데, 여덟 번째입니다.
爾時에 光明이 過百萬世界하야 遍照東方一億世界하고
그때 광명(光明)이 백만세계(百萬世界)를 지나서 동방일억세계(東方一億世界)를 두루 비추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남서북방(南西北方)과 사유상하(四維上下)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 같으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저 낱낱 세계(世界) 가운데 다 백억염부제(百億閻浮提)와 내지(乃至) 백억색구경천(百億色究竟天)이 있음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다 다 밝게 환~하게 나타났다. 광명이 갈수록 갈수록 그 저 세계 숫자가 커지죠? 많아지죠? 그렇습니다. 지혜광명은 그렇게 더 많은 것을 비춘다 하는 뜻이죠.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各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世尊坐座
세존좌좌(世尊坐座)라.
彼一一閻浮提中에 各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저 낱낱 염부제(閻浮提) 가운데 각각 여래(如來)가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座)라고 하는 법상에 앉아 계시는데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십불찰미진수보살(十佛刹微塵數菩薩)이 다 에워싸고 있다. 또 그들은 다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써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시방(十方)으로 각각 한 대보살(大菩薩)이 있는데, 낱낱이 각각 십불찰미진수보살(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함께 있어.
여기도 보면 이제 뭐 대구그룹, 창원그룹, 울산그룹 또 무슨 뭐 진주그룹 그렇지 진주 빼면 안되지. 또 그 나름대로 여기 또 이제 화엄회그룹도 최근에 들어왔어. 신기해. 화엄회그룹. 화엄회가 화엄회에 들어왔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또 뭐 무슨 그룹 아 원각그룹 등등 그룹이 여러 그룹이 있어. 그게 다 리더가 있어.
근데 내가 늘 이야기하지. 버스 한 차가 될 때까지 해라. 버스 한 차. 여 울산팀들 오늘 왔어요? 버스 한 차 아직 안되죠? 봉고 한 차 정도는 돼 보이네. 그 버스 한 차가 되게 해라. 화엄회도 버스 한 차가 되게 하고 원각도 버스 한 차 되게 하고 진주도, 울산도, 어디도 전부 버스 한 차가 되게 해라. 내가 그런 부탁을 자주 하지.
그 자꾸 이제 늘어나서 이 좋은 회상에, 법회회상에 법공양을 많이 하시라는 그런 뜻이죠. 뭐 숫자 불릴려고 하는 뜻이 아니고, 부처님의 그 귀하신 진리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은 그러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기 인격이 향상되고, 또 그 바이러스(virus)가 세상에 퍼져가지고 세상이 좀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고, 그렇습니다.
나는 크게 여기에 「광명각품」에서 말하는 차원 높은 그것까지는 “참~ 좋다!” 라고는 하지마는, ‘제발 세상 사람들이 인과만 바로 믿어가지고 인과대로만 좀 실천하고 살았으면 세상은 저렇게 사기협작으로 세상이 얼룩지지는 않을텐데’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도 이제 그 늘 보아왔듯이 낱낱이 각각 십불찰미진수보살을 거느리고 있어.
來詣佛所하시니
그리고 부처님에게 같이 왔어.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그 대보살(大菩薩)은 이를테면 문수사리등(文殊師利等)이며 소종래국(所從來國)은 금색세계(金色世界)고, 뭐 울산이다 진주다 부산이다 대구다 하는 그런 식이죠.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섬긴 바 부처님은 부동지불(不動智佛)이다. 부동지불은 간단해요. 우리 마음이 부동지불이야. 그냥 그대로 참선도 필요없고, 염불도 필요없고, 수행도 필요없고 뭐 어떤 공덕도 필요없고, 움직이지 아니한다는게 그 뜻입니다. 아무것도 필요없이 본래부터 부처인 자리. 뭐라고 했죠?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옛날부터 아무 수행이 필요치 아니한 상태, 부동한 상태 그대로가 부처님이다. 부동지불이여. 부동(不動)이란 말은 그래 좋은 거요. 참~ 좋은 것입니다.
뭘 첨가하고 꾸미고 다듬고 수행하고 공덕 쌓고 하면 그게 언제 되겠어요? 언제 되겠어? 답이 없어요. 그거는. 뭐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 가지고도 안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더라도 하기에 달렸으니까. 도저히 그거는 답이 없어요. 본래 갖춘 것이라야 그게 진짜여. 본래 갖춘거. 추우면 추운 줄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알고 뭐 좋고 나쁜거 다~ 분별할 줄 아는, 그 기가막힌 능력.
아까 그 여래 첫 게송에 그랬죠? 여래최자재(如來最自在)하사. 우리 자성여래는 너무너무 자유자재하다 말이야. 초세무소의(超世無所依)라. 세상을 훌쩍 뛰어넘어가지고 아무데도 의지하는 바가 없다 하는 그런 소식입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文殊菩薩의 偈頌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게송(偈頌)을 또 읊습니다.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그때에 일체처문수사리보살(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각어(各於) 부처님 처소에서 동시(同時)에 소리를 내가지고서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1) 從體起用方便
智慧無等法無邊하시며 超諸有海到彼岸하시며
壽量光明悉無比하시니 此功德者方便力이로다
從體起用方便
종체기용방편(從體起用方便)이라 그랬어요. 종체기용(從體起用) 체용(體用)이라고 하는 거, 우리 국어에도 체언(體言), 용언(用言)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전부 불교에서 나간 말인데, 그 우리 몸은 체(體)에요. 몸짓은 용(用)이라. 몸과 몸짓. 지금 앉아 있는 것은 몸짓입니다. 움직이는 것도 몸짓이에요. 그 몸짓이 몸하고 어떻게 보면 하나라. 하나가 그렇게 돼. 그건 이제 몸의 입장이고, 우리 마음. 마음과 마음짓이 있어. 마음작용이 있어. 마음 그 자체는 체고 마음 작용은 용이라. 그 체언, 용언도 거기에서 따온 것이죠.
물은 체에요. 물의 작용은 용이라. 작용이라. 그 물결 친다든지, 흘러간다든지, 물이 흐리다 맑다 하는 외형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작용입니다. 근데 그 작용은 물이라고 하는 본체를 떠나 있지 아니해. 금(金)도 마찬가지여. 금. 금도 뭐 불상을 만들었거나, 비녀를 만들었거나, 반지를 만들었거나, 시계를 만들었거나, 그 형상은 작용이라. 그런데 금 그 자체는 체라. 그런 식으로 이제 봅니다.
모~든 것은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일체가 다 그렇게 구성이 돼 있어요. 그걸 이제 이(利)와 사(事) 그래요. 이와 사. 이는 체가 되고 사는 용이 되고 그렇습니다. 절에도 이판(理判), 사판(事判)이 있어요. 이판사판. 공부만 하는 사람을 이판이라 그래. 공부하는 사람을 잘~ 보조하고 도와주고 시봉하고 불편없도록 해주는 그런 그 소임자를 사판 그래요.
그런데 이제 요즘은 사판이 득세를 해가지고 서로 사판할려고 그래. 주지할려고 머리가 터져 그냥. 그거 사판 아주 천한 일이거든요. 이판이 아주 고급일이고, 공부만 하는 거니까. 사판은 천한 일로 그렇게 보는 거요. 그런데 이상하게 세상이 가치관이 뒤바뀌어가지고 사판할려고 기를 쓰지. 이판할려고 하는 사람 별로 없어.
공부 좀 처음에 절에 들어와서 공부 좀 하다가도 서로 그냥 주지할려고 그렇게 나서는 거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 그래도 그 가운데서도 또 이제 주지같은 거 관심없이 공부할려고 하는 사람들도 또 있습니다. 그러니까 또 이제 유지가 되는 거요.
여기 그 종체기용 한 마디 가지고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네요. 체로 쫓아서 작용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전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체로 쫓아서 작용을 일으키는 거요. 집에서 “오늘 공부하러 가는 날이니까 공부하러 갑시다.” 그 어디 그렇게 했어. 그러니까 여기 온 거야. 그렇게 시키는 것은 체가 하는 일이고 오게 된 것은 작용이야. 한 표현이라. 그게. 전부 그렇게 돼 있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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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명지(名知) 이것이 이름이 불법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_()()()_
如是善觀察하면 名知佛法義니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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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글에 이어 다음 글이 궁금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애쓰주시는 덕분에 볼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십시요
편안하십시요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