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심연을 지나, 고통이 꽃이 되는 시간
- 4월 5일, 코요아칸의 푸른 집(Casa Azul) 앞에서
프리다 칼로의 생가이자 미술관인 ‘푸른 집’ 앞에 섰다. 골목은 고요했다. 그 집은 말 그대로 푸르렀다.
다가갈수록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빛깔은 단순히 시각적인 색채가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깊은 심연의 문장이었다.
나와 안나는 노랑과 초록, 브라운의 옷을 맞춰 입었다. 프리다의 푸른 외벽과 우리의 원색적인 옷차림이 어우러지니,
마치우리도 그녀의 캔버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부서진 척추, 거울 속의 나를 그리다
1907년 이곳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 그녀의삶은 고통이라는 단어와 떼어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야위었고,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당한 끔찍한 교통사고는
그녀의 척추와 골반을 조각냈다. 평생을 수십번의 수술과 끊임없는 통증 속에 살아야 했던 여인이다.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던 긴 시간 동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장에 달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화상들은 평이한 자기 복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일그러진 육체를 가진 한 인간의
비명과 그 고통을 응시하는 서늘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자화상은 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고통받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을 대변했다.
- 디에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큰 사고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의 전설적인 벽화가였던
그와의 만남을 프리다는 생애 두 번째 사고라고 했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수많은 배신과
갈등,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했던 잔인한 운명이었다.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선명한 피와 노출된 심장, 부서진 척추 기둥은 육체적 통증인 동시에 디에고를 향한 지독한
집착과 외로움의 형상화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을 일컬어꿈을 그린 초현실주의라 불렀지만, 정작
그녀는 “나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그린다.”고 말했다.
- 색채로 빚은 고통의 승리
미술관 벽을 채운 선명한 파란색, 그녀가 입었던 멕시코 전통 의상, 그리고 눈물이 고인 채 나를 응시하는 그림들. 그녀
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강렬하고 정직한 색으로 그 아픔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나는 박물관의 방들을 천천히 지나며, 프리다가 견뎌낸 어떤시간을 정면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뼈가 깎이는 아픔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치열한 삶이 ‘당신은 당신의 아픔을어떤 색으로 그려내고 있느냐’고
내게 묻는 듯했다.
그녀는 고통을 숨기지 않고 가장 화려한 색으로 피워낸 화가였다. 푸른 집을 나오며 머무른 자리마다 피어나는 꽃은,
때로 이렇게 처절한 통증을 거름 삼아 피는 것임을 알았다.
- 내 안의 예술적 DNA를 깨우는 푸른 빛
미술관 복도를 걷는 동안, 잊고 지냈던 오래된 기억 하나가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 역시 잠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던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매력에 이끌려 캔버스 앞에 섰
던 것일까.
문득 어린 시절, 화가였던 두 분의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분들의 전시회장을 찾았을 때 느꼈던
그 묘한 설렘과 인상적인색채의 향연들. 어쩌면 그때 내 어린 눈에 담겼던 예술의 씨앗이 오랜 시간 내 무의식 속에
숨죽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오랜 기다림, 그리고 만남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를 알게 된 후부터, 멕시코는 나에게언젠가 반드시 가야 할 성지가 되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것을 가장 화려한 원색으로 치유해냈던그녀의 삶은 나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멕시코에 가면 꼭 그녀의 푸른 집에 가보고 싶어.’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 막연한 바람이 현실이 되어 내 발밑의
공기로 느껴지던 순간,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그것은 단지 유명한 관광지를 보았다는 만족감이 아니었다.
내 안의 예술적 갈망과 프리다의 치열한 생명력이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는, 아주 특별한 재회의 순간이었다.
비록 지금 내 손에는 붓 대신 펜이 들려 있지만, 글을 쓰는 일 또한 프리다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듯
내 영혼을 정직하게 그려내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큰아버지들의 전시회장에서 시작된 나의 예술적 갈망은,
이제 멕시코의 푸른 집을 지나 나의 문장들 속에서 다시금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 코요아칸의 성당, 침묵 속에 흐르는 온기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을 나와 찾아간 코요아칸의 성당 안은더없이 따뜻했다.
낮은 조도 아래 촛불들이 작게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기도는 나지막한 강물이 되어 성당 구석구석을
적시고 있었다.
신부님의 강론도, 신자들의 응답도 여전히 나에게 스페인어는 낯선 외국어일 뿐이었다.
한마디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흐름에서 단 한 번도 소외되지 않았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앉으며, 함께 침묵 속으로 몰입하는 동안 내 마음은 이국땅이라는 긴장을 내려놓고 깊은 평안함 속
으로 잦아들었다. 기도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명하는 것임을 그곳의 공기가 말해주었다.
-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흘린 은총의 눈물
성체를 모시고 돌아서는 길,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무엇 때문인지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내 영혼은 이미 그 눈물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안도감이었고, 또한 깊은 위로였다. 저마다 다른 삶의 무게를 지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비록 피부색도 언어도 다르지만 결국 같은 간절함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낯선 땅에서도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신에게 손을 내민다는, 그 간단하고도 위대한 진
실이 내 마음의 가장 연약한 곳을 건드린 것이리라
-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치유
성당 문을 나설 때, 내 마음의 우물에는 아까의 눈물 대신맑은 평화가 고여 있었다.
낯선 이들과 손을 잡지 않았어도,우리는 이미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가장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머무른 자리마다 꽃이 핀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낯선곳에서 예기치 않게 터져 나오는 눈물 한 방울에서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언덕 위에서
성당에서 영성체를 모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우리는 가방만 챙긴 채 다른 짐들은 자리에 두고 나섰다.
그때 뒤에 앉아 있던 한 분이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모든짐을 꼭 챙겨 나가라고 일러주었다.
관광지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단단히 챙겨 들고 차플테펙 성으로 향했다. 차풀테펙 언덕은 생각보다 길었다.
완만해 보였던 길은 조금씩 숨을 끌어올렸고, 발걸음은 자꾸 늦어졌다. 어젯밤의 피로가
남아 있었고, 몸은 아직 이곳의 시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듯 했다.
중간쯤에서 한 번 멈췄다. 아래로 펼쳐진 도시가 햇빛이 비추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시 걸었다. 돌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성의 외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두꺼운 벽, 거칠게 다듬어진 돌,
오랜 시간을 버텨낸 성벽이 따스해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어보니 햇볕에 데워진 돌이 정말 따뜻했다.
성 안으로 들어서니 넓게 펼쳐진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긴 복도와 높은 천장 아래 아래로 수많은 관람객의 발소리와 웅성거림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벽에는 오래된
그림이 걸려 있었고, 창문은 차픙테펙 성 아래로 쳐진진 도시를 향애 길게 열려 있었다.
차풀테펙 성의 화려한 회랑을 지나 천장을 올려다본 순간,그곳에는 불타는 하늘 아래로
한 떨기 꽃처럼 추락하는 소년이 있었다. 멕시코의 자존심인 국기를 몸에 감고, 적의 손에 더럽
혀지느니 스스로 절벽을 택한 어린 영웅들이 있었다.
1847년, 차풀테펙 전투에서 이곳은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직 어린 생도들이 남아 있었다. 니뇨스 에로에스 6명의 소년.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이미 결과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총성과 연기, 무너지는 벽,
혼란 속에서도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중 한 소년은 국기를 몸에 감고 성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나는 난간 가까이로 다가갔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지럼증이 일 정도로 까마득했다. 그 순간 전해져오는 이야기
가 더 이상 전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실제였고, 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옷자락이 가볍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바람은 가볍지 않았다.
이 벽화는 ‘어둠과 불길’ 속에서 피어난 지독한 애국심을 노래하고 있었다.
고통을 화려한 색채로 이겨낸 프리다 칼로처럼, 멕시코는 자신들의 가장 아픈 역사조차 이토록 강렬하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켜 기억하고 있었다. 소년이 머물렀던 그 비극의 자리에도, 결국 조국을 향한 뜨거운 꽃이 피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의 평온함과 그날의 긴장 사이에서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첫댓글 여행중에 느낀 그 심오하고 아름다운 느낌은 자매님께 내려주신 주님의 귀한 은총이~~아닐까? 생각됩니다.
곳곳에서 느끼고 마음에 담은 기억들은 오랜 세월속에서도 자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저는 믿습니다.
잘 다녀오셨습니다. 진심으로 저도 감사하며 손뫃아 기쁨의 기도와 찬미를 주님께 드립니다.
정말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댓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여행 중 받았던 은총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선물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기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늘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