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쪽에는 투구봉으로도 불리는 장군봉(780미터)이, 북쪽 중앙에는 큰지붕으로 불리는 회문봉(837미터)이 솟아 있다. 동쪽 산줄기에는 천마봉과 깃대봉, 남쪽 산줄기에는 돌곳봉과 시루바위가 있다. 주요 수종은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일중리와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의 경계에 속하며,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회문산의 물줄기는 일중천을 통해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흐른다. 고려 말기에 무학이 이성계를 위해 기도했다는 만일사와 무학바위가 있는 등 무학에 대한 전설이 전한다.
1846년 천주교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의 일가가 피신했던 곳으로서 이들의 묘소가 남아 있다. 조선 말기에는 최익현과 임병찬이 이 곳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감싸듯이 휘감고 있어, 지형적으로 피난처로 삼기에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중에는 조선로동당 전라북도 도당 위원장 방준표가 이끄는 조선인민유격대가 회문산에 아지트를 설치하여 격전이 있었다. 이 때문에 양민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과 빨치산 사령부를 재현한 비목공원이 세워져 있다.
증산교에서 김제시와 완주군에 걸친 모악산을 어머니 산으로, 회문산을 아버지 산으로 삼고 있어 증산교 도인들이 자주 찾는 산이다. '한국의 5대 명당'으로도 불려 암반 위에까지 묘지가 많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자연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청정고을 순 창군 쌍치와 구림에 위치한 세자봉~여분산~회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주변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 향토사학자 양상화씨와 산악인 최운곤씨의 고증에 의하면, 여분산 북쪽의 금상골은 풍수지리상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될 군왕이 태어날 명당으로 임금을 지칭하는 금상(今上)인데, 금이 나온다는 금상(金箱)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따라서 장군봉(일명 투구봉 또는 신선봉)은 투구를 쓰고 장검으로 무장한 임금을 호위하는 호위대장 역할을 하고, 세자봉은 임금(금상굴) 앞에서 스승격인 북쪽의 국사봉(지형도에는 깃대봉으로 표기)의 가르침을 받는 형국이다.
또한 회문산 주변의 산들은 증산교 교주 강증산이 말하는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 형상으로, 회문산 정상(회문봉)은 주인이며, 서쪽 신선봉(장군봉)과 남쪽 무직산은 바둑을 두고, 동쪽 성미산과 서쪽 여분산은 훈수를 하는 형상이다. 한편 풍수의 대가 홍성문이 쓴 회문산가에는 한국의 5대 명당으로 그곳에 묘를 쓰면 59대까지 집안이 번창한다고 나와 있다.
같을 여(如), 가루 분(粉)을 쓰는 여분산은 꽃가루와 같은 산이라는 의미로 산 남쪽에 벌통산이 있는데, 벌은 꽃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분산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운항 마을 앞 호랑이바위 전설을 이야기해 주던 김정근옹(2001년 당시 78세)은 무자년 벽두에 찾아갔더니 벌써 고인이 되셨다. 마을의 액운을 없애려면 호랑이가 먹이로 가장 좋아하는 개바위가 함께 있어야 하는데, 도로개설 때 두 개의 개바위를 없애버리고 호랑이바위만 남겨놓아 마을에 액운이 많고, 50호애 달하던 마을이 17호로 줄어들었다고 혀를 차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자봉과 여분산 정상에서 조망은 사방이 탁 트여서 막힘이 없다. 남으로 호남정맥 용추봉과 무등산, 동으로 지리산 연봉들이 아스라이 마루금을 이룬다. 서로는 용추봉과 세자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북으로는 쌍치와 산내의 오두봉, 깃대봉이 손짓하고, 북동쪽으로는 장군봉(투구봉)과 회문산이 눈을 가득 채운다.
금남호남정맥 완주 소양면과 진안 부귀면의 경계인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남으로 달리며 만덕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을 지나 용추봉에서 동쪽으로 지맥 하나를 나눈다. 이 지맥은 세자봉을 지나 여분산 삼거리에서 남쪽에 여분산을 솟구쳤다. 여분산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뻗어가며 장군봉을 지나 회문산을 일구어 놓는다. 여분산 물줄기는 구림천, 새자봉 물줄기는 서쪽은 추령천, 동쪽은 구림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살을 섞고 광양만의 남해로 골인한다.
[등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