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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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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말한다 ! 3. 有無의 緣起 법담
기억하기 추천 0 조회 228 11.08.11 05:47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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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1.08.11 14:11

    보통 인터넷에서는 3줄만 넘어가도 피로감이 몰려온다고 하죠.
    진정으로 남의 말울 듣고, 남의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력이 필요한거죠.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1.08.12 09:36

    기억하기 선생님한테 한 소리가 아닙니만요, 저야 이렇게 퍼다 주시면 길이에 상관없이 좋을 뿐입니다.
    혼잣말과 비슷한 소리였습니다. 방문객님 글은 몇편 읽어봤는데, 정말 많은 인내심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시더라구요. 잘 안 읽혀집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소리를 하시니까 그럴테지만요.

  • 11.08.12 02:03

    무색계의 의식상태는, 유상과 무상을 자각하는 일등을 할 수 없죠... 그런 일들은 무자게 복잡한 것이거든요...

  • 11.08.12 15:55

     쭈욱 소위 없음을 부정하시는 편이신데요. 인정하기 쉽지 않죠... 그러니 선향님이 그 분의 견해가 옳다고 느껴지면, 그것을 따라가시면 되죠... 다만 그런 경우, 불교를 이해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불교에서 소위 "없음"이라는 법은 극히 중요한 문제이기에...제 입장에서는 소위 "없음"을 부정하는 경우, 반박을 할 수 밖에 엄거든요.

     부처님께서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라고 분명하게 설하셨죠. 환멸연기등을 설하셨다구요. 상좌불교도 "니로다 삼마빠띠"라고 "소멸의 증득"을 이야기하구요. 대승불교에서 무심, 무념등은 흔히 거론되죠. 무심이나 무념이, 대상을 놓친 멍청한 상태를 칭하는 거겠어요? 그런 뜻일 수는 엄죠.

  • 11.08.12 16:05

     적은 적 있는데...일단 소위 무색계 선정들에 돌입하면, "비춤(각)"이 없는 일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무색계의 각 선정들은, 그 각각이 요가의 최고 경지들 중 하나입니다. 요가의 최고 경지에 이른 행자가, 갑자기 멍청함에 빠진다... 그런 일을 말하는 전승은 없습니다. 요가등 인도 일체 전승들은 물론 불교에서도 엄어요. 장구한 역사속에, 그 많은 행자들 가운데에도 없었는데...오늘날 갑자기 생깁니까? 무색계가 어떠한 상태들인지 모를 때에나 그런 말이 가능합니다.
     "기억이 없는 상태"라는 말이, 좋은 표현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 경계를 가능한한 직접적으로 표현한 거죠. 그 상태는 분명 그러니까요...

  • 11.08.12 16:12

    그리고 그 상태가 알려지는 것은, 이미 "없음" 즉 "기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이러한 알려짐을 두고 [무념을 비춘다(각한다)]고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의 무념은, 비상비비상처를 확립했다고 말하시는 분이 제시한 무소유처가 아니예요... 념은, 알아차림입니다. 념이 각이죠... 념이 있다면, 무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무념이 알려진다면, 무념을 념한 것이구요. 하지만 이는, 념이라기 보다는 추론에 가깝죠...
     복잡하게 관계를 시설하는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무색계가 아닙니다. 다시 지적해 강조하지만, 무색계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욕계에서 가능하죠.

  • 11.08.12 16:21

    무색계는 매우 단조로운 세계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뻑 상태예요. 다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한 무색계선정에서 다른 무색계선정으로 옮아가는데, 옮아간 무색계 선정에서 무상을 알 수 있는가? 없어요... 일상에 돌아와야만, 앞의 무색계 선정은 무상하다는 판단이 성립합니다. 정작 옮아간 무색계 자체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나오지 않아요. 그러면 유상과 무상에서의 상이 항상함이 아니라, "상(이미지, 판단)"이라는 뜻으로 보면, 어떤가? 그래도 마찬가지예요. 자뻑 말고는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는 것이 무색계입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까? 그러하다면, 아직 집중이 부족한 거죠...

  • 11.08.12 16:26

    자뻑 상태가 아닌 거예요. 합일 되지 않은 거라구요. 무색계에서는 합일을 벗어날 수 없어요. 오늘 올라온 글에서도 나오는데, 냄새를 맡으려고 해서 냄새가 없다는 직관이 성립했을 때, 그 직관에 자뻑 상태라면, 그 상태에서 있음이나 없음, 항상과 무상등등이 확고하게 알려지겠습니까? 그런 일은 불가능한 거예요... 마음이 무한한 허공에 머물면, 무한한 허공은 없어요... 무한한 허공과 합일된 상태인데, 어떻게 무한한 허공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왜 무한한 허공이라고 이름하나? 그것은 무한한 허공을 알아 무한한 허공과 합일하라고 제시된 거지, 무한한 허공이라고 계속 알라고 제시된게 아니예요...
     욕계에서는, 소설을 쓰기 쉽죠.

  • 11.08.12 16:39

    그리고 체험이 없으면 말로 합니다.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니, 아무 것도 엄고 무한한 허공만 있었다면서 공무변처를 안다고 해요. 하지만 공무변처가 아니니, 무한한 허공이 있는 거예요. 무소유처와 관련해 "아무 것도 없다"는 언명이 제시되기는 합니다. 그거는 식무변처와의 관계에서 그런 거죠. 그리고 식무변처에서 그걸 알라는 의미도 아니예요. 식무변처에서는 그런 마음을 낼 수 없어요. "아무 것도 없다"는 관념을 잡아 그 상태로 합일하겠다는 등의 의도를 낼 수 없단 말입니다. 그게 가능하면 식무변처가 아니죠. 현실에서 그러한 줄 알고, 강렬한 의지로 식무변처를 궁극으로 취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 11.08.12 16:45

    그리고 식무변처는 강렬하기에, 그 강렬함이 없는 다음 상태로 나아가라는 의미로 "아무 것도 없다"라는 언명이 제시되어 있는 겁니다. 현실에서 그렇게 알고 선정으로 돌입하라는 겁니다. 언제까지... 될 때까지... 될지 안될지는, 막말로 운수소관이예요. 무색계에서의 이행은 말 그대로 울퉁불퉁 그 자체입니다. 왜 그런가? 무색계에서는 그 어떤 의지적 노력도 할 수 엄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집중력을 가지고, 자동으로 이행하든가... 아니면 멈춰진 상태로 남겨지든가... 무색계의 신들은 의지가 엄습니다. 무색계의 의식상태에서는, 의지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가능하지 않아요... 노력할 수 있다면, 무색계가 아니예요...

  • 11.08.12 17:00

    //
     ㅇ ㅏ... 빼 먹은 부분이 있네요. 선정과 관련해서는 끝이 없는 거니, 더 말할 필요는 엄구요. 넷에서 단금이 행님이랑 저랑 의견일치를 보는 부분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단금이 행님이 잠적을 하신 후 다시 나타나셨는데, 의견 일치가 되었더라구요. 일단 큰 줄기에서 의견에 대립이 사라지면, 나머지는 옵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후 충돌이 엄었는데요...
     좌우당간...단금이 행님이 잠적하셨을 때, 체험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교학 공부도 하시구요. 어차피 돈오점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체험 유무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죠... 그런데 체험파들은 아무래도 견해가 아주 강해서 말이죠. 저도 무지 강하죠?

  • 11.08.13 01:55

     위에 적었듯, 체험 유무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특별한 필요가 엄는 한, 타인의 체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도 엄구요. 개인의 성취따위야, 제 알 바 아니란 말이죠...
     솔직히 인용된 서술은 터무니 없는데요... 서술 내용을 아무리 좋게 봐도, 욕계 선정의 끝머리란 말이죠. 욕계 선정의 끝머리는 색계 선정의 끝머리와 대등해요. 그리고 인용된 내용은 분명, "없음(식의 소멸, 오온의 소멸)"을 부정하죠?
     최대한 선해해서, 선향님처럼 이해하더라도...그와 같이 이해한다면, 선불교를 부정하는 거죠? 소위 견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선향님이 바라는 바가 아닐 걸요? 그렇지 않습니까?

  • 11.08.13 02:09

    ===
     무색계 선정은 빼어난 경계지만...빼어난 만큼, 열등한 경계이기도 합니다. 위에 적었듯, 무색계의 경계 그 자체에서는 노력할 수가 없어요... 수행할 수 엄는 거죠... 그래서 소위 상좌불교에서 거론되는 아나함은, 무색계에서 재생한 다음 반열반하지 않습니다. 무색계에 태어난다면, 바로 그 생에서는 반열반할 수 엄어요... 무색계가 어떠한 상태인지 모를 때에는, 의문이 들 수 있죠... 왜 아나함은, 비상비비상처에서 태어나 반열반하지 않는가? 하지만 무색계 선정이 어떠한 것인지 알면, 그러한 의문은 생기지 않아요. 또한 비상비비상처에 스스로를 확립시키면, 비상비비상처에서 태어납니다. 결국 다음 생에서도 반열반 몬해요.

  • 11.08.13 02:21

     그냥 대충 대충 설렁 설렁 말하는 것 같지만, 대충 대충 설렁 설렁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위 대승불교권에서는 멸진정을 포함하여 9가지 선정을 논합니다. 상위에 위치한 선정이라고, 더 좋은 것만은 아니예요. 무색계라고 색계보다 빼어난 것은 아니예요. 색계라고 욕계보다 빼어난 것도 아니구요. 멸진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이라고, 선정보다 저열한 것도 아니구요. 수행과 관련해, 각 경계는 모두 나름의 단점이 있습니다. 물론 멸진정이 다 같은 멸진정은 아니겠죠. 오온의 소멸이라고, 다 같은 오온의 소멸은 아니죠. 오온의 드러남에 포텐셜이 다르듯, 오온의 스러짐에도 포텐셜은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 11.08.14 11:23

     요가에서 성취를 이룬 분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 많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죠. 별 다른 성취를 이루지 못했어도,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 많습니다. 제가 성철스님을 비롯해 스님들 비판하는 견해를 올리지만, 성철스님을 비롯해 훌륭한 스님들 많습니다.
     성취와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것은, 같은 궤가 아니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착각합니다. 견해에 대한 비판은, 견해에 대한 것일 뿐입니다. 견해가 모자란다고 하여,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견해를 비판하면, "그 분은 훌륭한 분이다"와 같은 말을 흔히 듣게 됩니다.
     가만 보면...훌륭하다는 말에는, 강요된 완벽성이 있는 듯...

  • 11.08.14 12:30

    특히 종교와 관련한 영역에서는 더 그런데요. 그러한 일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상대 전체를 자신의 평가에 맞출 까닭이 없습니다. 불법 하나도 모르는 할머니 불자일지라도, 그 신심만은 따라갈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와 같이...불법 하나도 모르지만, 훌륭한 불자 많습니다.

     저는 스스로 밝히듯...계행에서 나이롱이고, 호전적이며, 정통 교학을 제대로 암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 무지 많아요. 하지만 제가 빼어난 부분도 있는 거예요. 예로...쌩 기초교학일지라도, 교학의 현실 접목에서는 뛰어난 편입니다. 다양한 경험에서는 뛰어난 편이예요.
     부처님의 소위 십대제자는, 모두들 아라한이었습니다..

  • 11.08.14 11:37

    많은 아라한 중 십대제자가 있는 것이고, 십대제자라도 각각 뛰어난 부분이 있었어요.

     그 분이 요가행자가 아니라 불자이고, 지금도 접할 수 있다면...비상비비상처에 항존은, 불법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해줬으면 합니다. 불교에서는...비상비비상처를 떠나면, 비상비비상처의 의식상태는 없습니다. 비상비비상처도 조건성립이예요. 비상비비상처에 있었다면, 글을 적거나 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가능하다면...위에서 제가 적은 내용, 무색계에서 그러한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려주면 더 좋죠.
     자...위와 같은 지적이 있다고 해서, 그 분이 비상비비상처 내지 어떠한 경계를 성취한 바 없다는 뜻입니까? 인격을 폄하했나요?

  • 11.08.15 07:02

     견해에 대한 지적은, 견해에 대한 지적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뜻입니다.
     [비상비비상처에 항존]이라는 표현은, 선향님처럼 받아들이기 어렵구요. 이현령 비현령도 한계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일상에서 8식을 자각한다면, 역시 마찬가지가 됩니다. 일상의 의식상태에서는, 비상비비상처의 의식상태일 수 없어요. 요가행자들이나 그렇게 말하죠. 이러한 점은, [일상의 세가지 의식상태 등]이란 본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어요.
     불자라고 했고, [경]등을 잘 모른다고 했으니...[경]에서 부처님이 지적한 바는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그 분에게 더 유익하다고 판단해서, 그 분에게 알려주면 더 좋겠다고 했을 뿐...강요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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