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보고 있다
계절의 밀린 일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세세하지 않았던 게으른 믿음이
이제는 하늘에 차서 내려오지 않는다
야행성의 유래를 동물에게 듣고서
방랑 중에 잇댔던 필요한 물음들은
낯설게 미간 사이를 머물다 지나간다
인중에 손을 얹고 전생을 닫았다는
마당의 서사들이 양갹으로 돋았다
불빛이 짧은 별들이 동공에서 사라진다
다비목, 사르다
먼 암자 뒤꼍에서 장작이 말라간다
매움이 한차례 이정표를 쓸고 간다
흩어질 가벼움조차 데려갈 곳 있나 보다
속도를 끄집어낸 햇살이 망설이다
머문 곳의 기억을 돌려주려 일어선다
가져갈 빛깔에서는 명현이 없을 둣하다
초봄을 갉아먹던 애벌레와 모시나비
사뭇 다른 개체들의 수를 놓는 구별법을
산 밖을 다 나와서야 잠깐 볼 수 있었다
이후라는 것은
퇴근한 빈 작업장에 벌레들이 들어온다
햇살 나고 미물들을 흔들어 쓸어낸다
노숙은 너무 슬퍼서 이슬 근처 놓아둔다
그래 여름이리라, 발꿈치라도 볼라치면
구애는 속수무책 안달을 넘어서서
덩그렁 맴맴 끝 돌다 주저앉은 허기였다
재촉하는 계절 앞에 애도는 꺾어진다
하릴없이 미어지고 휘어지는 등허리에
적막을 안은 것처럼 바람기가 파고든다
-《나래시조》 2023, 가을호
카페 게시글
시조 작품
은하수를 보고 있다/ 다비목, 사르다/ 이후라는 것은/ 이화우 시인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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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3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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