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석일지(2022년 6월 18일, 토요일, 흐림 /24551일째)
각각의 물건과 임자
성공회 청주수동교회에서 대금반을 만들고 대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는 11년 전인 것 같다. 대금반에 많은 동우회원들이 들락거렸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금을 가지고 노는 고수들을 만났다. 그 때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대금의 주인은 따로 있어 대금이 주인을 찾아 간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읽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대금도 내가 불면 소리를 잘 내주지 않았지만 어느 방문객이 불어보는데 대금소리가 좋았고 그 사람도 그 대금이 자꾸 마음에 든다고 하기에 "대금의 임자가 따로 있다더니 이제 주인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하며 나는 그에게 대금을 준 일이 있다.
10일 전에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의 책 <없이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에 선배님이 서재를 정리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였다.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아 책을 정리하고 마땅한 사람을 찾아 책을 보내려고 한다" 하셨다.
"<없이 계시는 하느님> 책을 읽으며 나의 관심사와 겹치는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비슷한 분야의 책을 담고 있습니다. 공동체에 도서실도 만든다고 하셨는데 괜찮다면 책을 드리려고 합니다."
"염려마시고 서재를 정리하신다면 더운 날에 수고하시겠지만 저에게 보낼 책을 따로 담아 놓으셔요."
"상자에 담는대로 택배로 보낼려고 합니다."
"아니예요, 제가 시간을 내서 교수님을 찾아 뵙고 책을 가져오고자 합니다."
어제 나는 선배님을 찾아뵙고 쌓아둔 책 14박스를 나의 트럭에 싣고 왔다. 대전지역에 소나기 예보가 되었다며 책이 비에 젖지 않을까 염려를 하셨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집을 향해 달렸다. 비가 내릴 것 같은 상태인데도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밤 10시 30분 경에 "염려 덕분에 비 맞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 귀하게 쓰고 애장하셨던 책들이 뜻 깊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늘 강건하시기 바라며 평화를빕니다" 라고 문자로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훌륭하신 주인을 만나 책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감사하오며 평안을 기원합니다." 책 주인은 따로 있다더니 제 주인을 잘 만난 것 같다던 김흥수 교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책을 책꽂이에 넣는데 아이들이 장난치며 방해를 한다.
김교신 접집, 성서조선 영인본, 우찌무라 간조 전집, 노평구 성서연구 11권, 함석헌 기념문집, 씨알의 소리 전집, 장준하, 장기려에 관헌 책과 동아세계대백과사전 전집과 에크하르트, 폴 틸리히, 한스 큉, 갈 라너의 책들과 동양학에 관한 책, 노자, 장자, 공자, 다산, 화담, 서산대사 어록, 그리고 불교 선어록과 경전, 티벳불교, 국어대사전, 성서대사전, 원어 성서, 성서 70인역인 셉투아진트 등 귀한 책들이 책장을 장식한다. 나는 김흥수 교수 서고라는 이름을 붙인다.
책을 주신 김흥수 교수님은 한남대학교 법정대학 학장을 하시고 은퇴한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