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
처음에 정부 일각에서 공식적인 포교허용 기준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기독교 포교금지 조처와 선교사 살육 및 추방을 추진한 일이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이어 민간에 사실과 다른 소문을 퍼뜨려 민중시험의 과정을 겪게 만들었다.
소문의 내용은 서양 사람들이 한국의 악질분자들을 매수하여 한국 어린이들을 유괴하고 이들을 삶아 먹으며 눈을 뽑아서 서양병원의 약으로 쓰거나 사진을 찍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모함하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서양인의 신변과 선교 기관들에 큰 위험이 닥쳤다(백낙준 한국개신교사, 기독교사전).
외국 공관 대표들은 한국 정부에 자국민의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심지어 제물포 주둔의 미 해병대가 상경, 공사관 수비를 맡았다. 그 밖에도 서양 여러 나라의 군대가 무력시위를 벌였다.
한국 정부는 풍문을 제지시키고 외국인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침내 이 소동은 6주일이 경과하면서 진정 기미를 보였다. 이 시험기를 거친 뒤 한국 선교 사업은 보다 확실한 민중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상게서).
기독신문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