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결혼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3자녀를 둔 가장입니다. 또 저는 대한민국 철도청에서 새마을호 열차 운전을 주로 담당하는 기관사 직을 수행하고 있는 공무원이며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지 7년이 된 신자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한국의 작은 도시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발현과 관련된 이 같은 기적이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에 대해 제가 경험했던 일들과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으로 깨닫게 된 정황을 세상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저의 소개를 통해서 저의 이제까지의 삶을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문명에 자부심을 느끼며 과학문명의 신봉자였으며, 명색이 가톨릭 신자이기는 하였으나 성서속의 하느님 말씀을 문학인의 창작으로 여기고 또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도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을 더 신봉하며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20세기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신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무신론자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주일 1시간의 미사시간도 아까워하며, 그 시간에 가족들과 밖에 나가 여가 즐기기를 더 원하였으며, 가난한 이웃의 아픔이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였고, 저의 주변에서 이른바 세속적으로 잘 나간다는 교수, 의사, 사장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얕은 지식으로 인간의 삶과 신앙을 논하고 세상일을 적당히 비판해 가면서 교양인인 것처럼 행동해왔던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던 제가 나주의 성모님의 기적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저와 저의 가정을 위해 항상 주님께 기도해왔던 저의 사랑하는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본당 구역장으로 계시는 자매님으로부터 나주 성모님의 기적을 알게된 아내는 나주 기적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나주 경당에 매우 가고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99년 4월 23일 아내와 함께 나주 경당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꽤 진지하게 모든 것을 둘러보며 관심을 가졌지만 저는 왠지 경당 왼쪽 벽에 크게 모셔진 피흘리는 성모 상본이 섬찟하게 느껴졌으며 기적을 징표한 전시된 사진들도 징그럽고 이상해서 눈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의 아내는 계속 관심을 가지며 나주 성모님께 자주 가고싶다고 하여 "그런 곳은 안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서 종교에 너무 심취하게 되면 남편과 아이들을 팽개치고 이단으로 치달아 광신도처럼 될 수도 있고, 특히 교구의 인준도 받지않은 나주의 기적에 그렇게 마음을 빼앗겨서야 되겠느냐며 심히 나무랐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의 아내는 저보다는 열심이었지만 그다지 열심한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주를 다녀온 후 아내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기도생활, 특히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몹시 못마땅하였습니다. 가정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것이 주된 일일텐데 어찌하여 몸과 마음을 종교에 빼앗겨 신당을 차려놓고 빌고있는 무당처럼 기도만 하고 있을까? 누구보다도 가정적이고 자녀들보다도 아내밖에 모르고 살아왔건만 도대체 마음 한구석에 무엇이 비어 있어서 저렇게 기도에 열중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고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내의 기도를 막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여 제가 보는데서는 일체의 기도도 못하게 하고 나주에서 가져온 성모님의 메시지나 피흘리는 성모상본 등을 모두 불에 태워버리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기도책도 다 집에서 없애버렸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과 성모님상까지도 밖에 던져버려 산산조각이 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성모님의 메시지를 불에 태우면서 얼핏 읽어보기도 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 "세상이 썩어있다. 너희들이 잘못을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징벌이 내릴 것이다. 어서 회개하여 자아를 버리고 나의 품에 안겨라"하는 문구를 보고 '아 여기도 이단이구나! 그러니까 교구에서 인준을 내주지 않고 있지 요즘 일부 개신교에서 종말론으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는데 바로 나주의 성모님 집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이단이 틀림없다. 세속에 사는 사람이 자아를 끊어버리면 그게 인간이야 바보지. 틀림없이 율리아라는 사람은 성모님으로부터 자기에게 어떤 기적이 행사되었다고 하나 그것은 무당의 신내림 같은 것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혹세무민으로 광신도들을 끌어모아 이상한 교회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생각으로 성모님의 메시지를 보니 모든 것이 다 이상하게만 느껴지고 가슴에 와 닿기는커녕 어떤 큰 마귀의 역사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의 메시지중에 "내 아들 예수는 너희를 사랑하여 칠성사를 베풀어 주었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저는 이 칠성사를 칠성당으로 잘못 읽기도 하였습니다. 칠성사를 칠성당으로 잘못 읽으면서 '율리아 자매가 만들려고 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는 우리 고유의 무속신앙을 토대로 하면서 겉으로만 성모님을 내세우고 있구나' 하는 터무니없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알고 보면 참으로 오해가 무서운 것이고, 일부 교회의 몰지각한 행태들이 진실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렇게도 장애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시 율리아 자매에 대한 생각이나 나주 경당의 성모님의 기적을 이토록 오해하고 있었던 저는 저의 삶이 갑자기 초라해지고 한없이 근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고통을 모르고 순탄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저는 아내가 이상한 종교에 빠져 우리 가정이 파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어 가정이 파탄된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저의 걱정은 어디에 비할 데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우리 가정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나주를 못 다니게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아내를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위의 나주 신봉자들로부터 아내를 철저히 격리하고, 아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저의 아내의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내가 종교에 대해서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도 아내를 감시하며 열심히 다니고 또 시간을 내어 피정 행사도 아내와 함께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나주 경당에서 도대체 어떤 형태로 기도모임을 하는가 한번 보고싶어 여러 차례 첫 토요일 철야기도회에도 참석하였습니다. 아내를 감시할 목적으로 다니기는 하였으나 나주 경당에 자주 다니다보니 차츰 율리아 자매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도 풀리며 이 절박한 시대에 왜 성모님께서 피눈물로 호소하시는가에 대해서도 적게나마 머리로는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비하면 저로서는 대단한 변화였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성모님의 말씀이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가령 자기 자신을 끊어버리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느님 무서운 줄만 알고 살면 되지 이유도 없이 무슨 희생과 보속, 고통을 달게 받으라고 하시는 것인지 저의 마음은 그야말로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아내를 감시하기 위해 나주 경당에 함께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일 제쳐놓고 나주를 찾는 아내가 몹시 못 마땅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만 한다면 세상이 바로 설 것인즉 나부터 바르게 마음먹고 살면 됐지 어떻게 그릇된 남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내가 희생과 고통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며 그 고통을 달게 받으라고 하시는 것인지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저의 마음을 알게된 아내는 성모님 메시지를 전처럼 건성으로 읽지 말고 진지하게 읽어보라고 저에게 여러 차례 당부하였습니다. 수없이 거절하는 저에게 간곡히 권유하는 아내의 정성에 못 이겨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의 소원도 못 들어주랴"하는 심정으로 성모님 메시지를 아주 진지하게 읽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15일 동안 무려 8차례를 읽어보고서야 세상 자녀들에게 피눈물로 호소하시는 성모님의 말씀의 의미가 조금씩 제 가슴속에 와 닿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지극히 혼탁한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저의 머리는 무엇으로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믿음은 저 높은 산을 들어 올릴 수 있지만 깊은 사랑은 세상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성모님께서는 제가 그 동안 고통이라면 고통이었을 아내와 율리아 자매에 대한 오해의 터널에서 막 빠져 나오자마자 저에게 참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시는 커다란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류와 혼탁에 빠져 지옥의 길을 가고 있는 세상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 자녀들에게 한없이 낮아지는 겸손과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게하여 이 세상을 악의 위협으로부터 건져 올려 천국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세계의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것이 사랑이 부족하여 일어나는 병리현상들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감히 짧은 신앙과 지식으로 세계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선언합니다!
성모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이러한 세상의 모든 오류를 그대로 따른다면 하느님의 징벌이전에 인간 스스로 자멸할 것이라고, 또한 성모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다수의 종교인에게도 당부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이 참된 진리의 교과서라면 성모마리아께서는 스승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참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입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우리 성모님은 바로 나주에서처럼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발현을 통하여 신앙인의 교과서인 성서 말씀에 의하여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참스승의 도리를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큰 스승으로 모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야말로 참으로 선택받고 축복 받은 자녀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큰 고통을 겪지 아니하고도 이처럼 성모님의 말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제자신의 생활 개선을 하게 되었고, 감히 세계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죄많은 저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성모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은총은 제가 교만하고 하느님 말씀을 의심했을 때 거두어 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상을 정복하기보다는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총은 받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은총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는 더 낮아지는 겸손을 실천하여 주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동안 저의 아내는 기도를 열심히 한 덕분에 만성피로, 치질 등의 질병이 나았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13층에 사시는 어떤 자매님은 성모님의 집에서 떠온 기적수로 얼굴에 가득했던 기미가 거의 벗겨졌습니다. 또한 율리아 자매께서는 교구의 방침에 순종하시느라 일체 공식석상에 자리를 피하시어 그 동안 수없이 나주 경당을 방문하였지만 율리아 자매를 한번도 직접 만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