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연중 제 20주일 가해 (마태 15,21-28)
영어를 못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니
+찬미예수님
유럽권에서 생활하다 보면 끊임없이 드는 생각이 있는데,
현지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가 혹은 인종차별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유럽 사람들은 영미권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나에게 불친절하면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나의 발음이 그들과 다소 다르다고 비웃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마음에 미움이 쌓이고 악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유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신부들과 함께 동네 외곽의 레스토랑에 갔는데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빠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잘 살펴보니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에게 먼저 가서 주문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시아인이라고 해서 우습게 생각하는 건가?
지금 여기서 나가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격이 온순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할 말은 다 하고 부정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왜 우리의 주문은 받지 않느냐고 물어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종업원들은 가게 한 쪽에 둘 셋이 모여 있었는데, 제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태리어로 대화 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네가 저 테이블에 가서 주문 받아”
“싫어”
“그래도 네가 제일 낫잖아?”
“아니, 나 영어 못해”
“난 아예 못해”
라는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고 봤더니 그들은 우리가 이태리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라 착각했고
자신들의 영어가 부족하니 주문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주문을 받아줄 수 있겠냐고 이태리어로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그 순간 종업원들이 동시에 저를 쳐다봤고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저를 둘러싸고는
“이태리어를 할 줄 알았냐, 우리가 영어를 못해서 한참 고민 중이었다,
어떻게 이태리어를 이렇게 잘 하냐, 관광객이 오는 식당이 아니라서 우리가 영어를 못한다”
라고 한참을 떠들어 댔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친절하게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서비스를 해주는지 황송할 정도였습니다.
이 경험은 그 이후 저의 이태리 생활에 매우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나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오해할 수 있구나,
이태리 사람들은 사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도 많은데 괜한 몇가지 주관적인 생각으로
내 안에 미움이 생길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딸의 완쾌를 청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가나안 사람으로서, 유대인들과는 조상 때부터 원수처럼 지내오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의 시각으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여인의 청을 거절하십니다.
여기에서 자녀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고 빵은 구원을, 강아지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주로 강아지 혹은 돼지에 비유했습니다.
소위 말해, 예수님의 표현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관용적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처지에서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이 아닌
대단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고,
애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분명하게 거절을 당해도 그녀는 참고 견디어내는 사랑과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라는 답변을 얻어냅니다.
이 모든 과정을 봤을 때 앞선 예수님의 거절은 여인의 요구를 허락하시기 전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즉 그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여인은 예수님을 대면함으로써 더욱 더 굳건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구원의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한 여인의 태도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겸손하고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하고 경건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전히 청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인간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고
이에 좌절을 느끼며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기도 하고 주님의 마음에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공생활 중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아이들과 같은 순수한 믿음, 아무런 의심 없는 확고한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복음 말씀의 여인의 태도를 지니도록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모든 현실적 상황과 선입견을 모두 포기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내보이는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서 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실천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