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개쵀되는 한미일 연합 기도회의
의의
일본에서 개최되는 하미일 연합
기도회의 의의
오는 11월 7-11일까지 일본 도교에서 한,미,일 합동 연합 기도회가 개최된다.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3 나라의
재림 신도들이 한 곳에 모여 4박 5일 동안 무신론의 본거지인 도교에서 영적 성회를 개최하는 것은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우리
교회사에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본래 재림 기별은 지금부터 109년 전 즉 1904년도에 쿠니아 목사님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다. 대체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들을 보내는 나라들의 교세는 선교사들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의 교세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예외이다.
일본이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복음의 씨앗을 뿌려 그것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기 기작 했는데 그 성장의 속도가 심히 빨라 한국 선교의 모국인 일본을
훨씬 크게 앞질렀다. 사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1904년부터 1950년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근 50년간 양국의 신자 수는 거의 비슷했다. 6.25 전쟁이 나던 해, 한국의 SDA 신자 수는 약
3,200명이었고 일본도 이와 비슷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기까지 약 3년간 그리고 전쟁
후유증으로 약 10년간 한국은 빈곤과 각종 어려움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바로 요 10년간 안식일 학교 반생 수는 17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 숫자는 현재의 재림 교회 신자수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 1960년도를 전후하여 탄생한 재림 신도 수는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과 다를 바 없다. 현재의 한국의 신자 수는 과거 50여 년 전 신자 수와 거의 같다는 말이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도 2차 세계
대전의 패전 후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고통이 지속되던 1950년 초반까지 일본의 SDA 신자 수는 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일본은 한국 전쟁의 덕분으로 경제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물질 면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반세기가
지날 동안 신자 수는 겨우 3천여 명으로 증가하여 현재 1만 5천명 안 밖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현상 이다. 번영과 부를 누리는
동안 신자는 증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나는 지난 4월 9일에서 7월 31일까지 약 4개월간 아프리카 5개국[케냐, 이디오피아,
우간다, 루안다, 탄자니아]에서 메디칼 팀과 더불어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 왔다. 가는 곳마다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수백 명씩 몰려 왔다. 나는
그들에게 하루 두 번씩 3천사의 기별을 전하였다. 너무나 기별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료 잘 받고 설교 몇 번 들으면 그리스도를 믿고 침례
받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료 진료를 하고 전도 회를 개최한 곳마다, 5명, 7명,10명씩 결심 자들이 생기면 그다음 안식일부터는 작은
집회소를 열고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4개월간 이처럼 개심자들을 위해 예배를 드리겠다는 곳이 근 30 곳에 이른다.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너무나 쉽게 침례 받겠다고 하며 너무나 쉽게 다음 안식일부터 예배드리겠다고 결심하는 분들이 많으므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꼭 이와 같았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마가, 바나바 등이 일주일이나 2주일 한 곳에 머물면서 전도하면 수십, 수백 명이
개심하여 침례를 받았고 집회소가 생겼다. 이것이 정상이고 순리인데도 요즘 우리는 아무리 방문하고 가르치고 봉사해도, 전혀 개심하거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으로 실망하고 포기 한다. 그리하여 수년간 한명도 영혼 구원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이러한 패턴에 익숙해진 우리가
영혼들이 쉽게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왜 기별을 잘 받아들이는가. 한마디로 가난하기
때문이다. 최근 내 마음 에 느껴지는 결론은 구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른 자들의 대부분이 가난한 자,
소경, 귀머거리, 문둥병자, 과부 절름발이 등등이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가난한 나라, 내란이나 소요사태로 인해
사회가 불안정한 나라, 혹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경제적 파탄, 질병이나 가정의 불상사들을 직면한 사람들이다. 돈이 있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문이 거의 닫혔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크게 외쳐보아야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이번에 일본에서 모이는 한미일 세 나라 대표들 모두가 물질적으로 부유한 나라 백성들이다. 거의 복음의 문이 닫힌 국가들의 국민들이다.
우리 모두가 불행한 시절에 복음을 받아들였다. 현 세계의 조류는 부유한자들이 복음을 안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앙을 가진 기성 신자들까지도 열을
내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너나할 것 없이 다 라오디게아 상태에 놓여있다. 지금 백성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이론이나, 신학적 논리가 아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행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역사적으로 보나, 재림의 징조로 보나 요즘 우리 교회 상태를
보나 분명히 늦은 비의 능력을 수반한 부흥과 개혁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오순절 이전과 오순절 이후의 초대 교회 상태를 비교해 보라.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확 바꾸어놓았다. 마지막 때의 늦은 비의 역사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오순절 당시뿐 아니라, 20세기에 접어들면서도
성령께서 강력히 나타난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물론 1844년 재림 운동 시 윌리암 밀러 전도 팀에게 성령께서 강렬하게 역사하셨다. 화잇 부인의
증언에 의하면 1888년도에 개최된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와 그후 1900년도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능력을 수반한 부흥과 개혁이 종종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1904년에 웨일즈에 사는 에번 로버츠와 그의 친구들은 서로 모여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면서 성령의 임하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의 결과 6개월 동안 웨일즈 지방에서 10만명 이상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나왔다. 온 종일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교회를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회심이 일어났고, 잘못된 생활 습관들을 버리는 생애의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하고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였다. 이제는 우리들의 차례다. 작년 원주 재림 연수원에서 개최된 집회에 참석한 많은 분들이 성령의 뜨거운 임재를 체험했다고
지금도 증언하고 있다. 저도 그중에 있었다. 금년 일본 집회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하자. 마크 핀리 목사님의 증언에 의하면
자기는 성령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할 때마다 개최되기 오래 전부터 그 집회에 성령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하였다. 이번 우리 집회에서도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틀에 박힌 관례 행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대표자들이 먼저 마지막 때에 약속된
뜨거운 늦은 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면 그 집회는 수많은 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 임원들은 이 순간부터 밤 낮
쉼 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이번 집회에 불과 같은 늦은 비가 내리도록 간절히 기도하자. 일본 기도회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십시요 기도 부흥 선교부흥 영적 부흥을 기원 합니다 조경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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