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9월 19일부터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1951년 시작돼 17번째 대회를 맞는 아시아경기대회는 ‘50억 아시아인의 축제’라는 별명답게 지구촌에서 올림픽 다음으로 규모가 큰 국제 종합스포츠 이벤트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인하는 대륙별 대회는 아시아경기대회, 팬아메리칸게임, 올아프리카게임, 퍼시픽게임과 함께 2015년 출범하는 유러피언게임이 있다. 45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주최하는 아시아경기대회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4년마다 아시아의 스포츠인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고 화합과 우정을 다지는 아시아경기대회는 60여 년의 역사를 쌓으면서 오늘날의 안정적인 모습을 갖추었지만 초기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고,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갈등도 많이 빚었다. 초기 회원국이던 이스라엘은 인도네시아 등 회교권 국가들과의 갈등 때문에 결국 빠져나갔고, 가장 최근에 동티모르가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7회를 맞는 아시아경기대회 역사에서 한국은 1986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렀고, 인천에서 3번째 대회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다.
50억 아시아인에게 기쁨과 희열, 도전과 재기의 의지와 희망을 안겨준 아시아경기대회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대회가 열리기까지
아시아경기대회가 생기기 전에는 극동아시아게임이 있었다. 극동아시아게임은 일본·중국·필리핀을 중심으로 1912년 계획돼 이듬해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음 개최됐다. 일본·중국·말레이시아·홍콩 등이 참가해 10회 대회까지 이어지다가 1934년 제2차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중국이 탈퇴를 선언했고, 1938년 열릴 예정이던 대회는 취소됐다. 이후 극동아시아게임은 다시는 개최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각국의 우호와 세계평화를 촉진할 목적으로 아시아 전체가 참가하는 스포츠대회를 창설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경기대회 기간 중 IOC가 아시아의 13개국 대표들에게 아시아 지역대회 개최를 위한 사전 협의를 요청했다. 이에 한국, 필리핀, 미얀마, 인도, 타이완, 스리랑카 등 6개국이 모여 대회 개최를 논의했다. 처음엔 극동아시아경기대회를 부활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인도 대표인 그루 손디가 완전히 새로운 대회를 창설하자고 제창했고, 이후 논의 끝에 극동아시아게임과 1934년 뉴델리에서 1회 대회를 치른 서아시아경기대회를 합병해 아시아경기대회를 창설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역사적인 첫 대회
1951년 3월 4일 인도 델리에서 첫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렸다. 당초 이 대회는 1950년에 열리기로 했지만, 유럽에서 각종 경기 시설과 기구가 기일 안에 도착하지 않는 등 개최국 인도의 사정으로 1년 연기됐다. 한국은 아시아경기대회 창립 멤버였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때문에 첫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인도·인도네시아·일본·필리핀·스리랑카·싱가포르·태국 등 7개국은 1회 대회부터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아시아경기대회에 개근했다.
역사적인 첫 대회 개회식에는 인도 초대 대통령인 라젠드라 프라사드와 초대 수상 자와힐랄 네루를 비롯한 내각 각료들이 대거 행사에 참가했다. 4만 관중이 경기장을 빼곡히 메웠다. 16세기 무굴 제국 시대에 건설된 고성 푸라나 킬라 성벽에서 쏘아올린 31방의 축포 소리가 델리 하늘에 울려 퍼졌다.
프라사드 대통령이 개회를 선언했다. 그는 “아시아경기대회가 아시아 모든 나라의 이해와 우호를 증진할 것”이라며 “시간이 흐르면서 아시아 각국 국민들 사이의 우정 어린 결속도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네루 수상이 대회 슬로건 ‘정정당당하게, 스포츠 정신 속에서(Play the game, in the spirit of the game)’를 외쳤고, 11개 참가국이 알파벳 순서대로 경기장에 입장했다. 개최국 인도 선수단이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인도 멀리뛰기 대표로 나섰던 달립 싱이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이어 역시 인도 멀리뛰기 대표로 이 대회에 참가한 발데브 싱이 선수 대표로 선서했다.
종합순위
1951년 3월 4일부터 11일까지 8일 동안 11개국 489명의 선수단이 6종목에서 열전을 치른 결과 일본이 금 24·은 21·동 15 등 총 60개의 메달을 쓸어 담아 첫 아시아경기대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개최국 인도가 금 15·은 16·동 20으로 2위에 올랐다. 2위는 역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인도가 거둔 최고 성적이다. 뒤를 이어 금메달 8개를 비롯해 16개의 메달을 획득한 이란이 3위를 차지했다. 네팔·아프가니스탄·태국 등 3개국은 단 한 개의 메달도 얻지 못했다. 대회 종합순위는 금메달 획득 수를 기준으로 매겼다.
종목별 결과 & 주요선수
• 육상
육상은 대회에 참가한 11개국 모두 선수를 내보낸 유일한 종목이다. 남자 24개, 여자 9개 등 모두 금메달 33개가 육상 한 종목에 걸렸다. 일본은 여자 종목 금메달 9개를 싹쓸이하는 등 육상에서만 금메달 20개를 거머쥐었다. 일본 여자 육상 대표 도요코 요시노는 포환·창·원반 등 던지기 3종목 모두 1위를 기록해 3관왕에 올랐다.
• 수영
다이빙·경영·수구를 모두 합해 금메달 11개가 걸렸다. 싱가포르 수영 대표 네오 취 콕은 수영 1500m에서 대회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취 콕은 남자 자유형 400m와 800m, 400m 계주 등 자유형 전 종목을 휩쓸어 대회 4관왕에 올랐다. 취콕은 초대 아시아경기대회 최다 금메달리스트의 영예도 안았다. 수구는 인도와 싱가포르 2팀만 참가했다. 단 1경기로 메달이 확정됐다. 6-4로 이긴 인도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싱가포르는 ‘참가상’이나 다름없는 은메달을 받았다.
• 농구
미얀마·인도·이란·일본·필리핀 등 5개 나라가 참가했다. 1970년대까지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한 필리핀이 풀리그 4경기를 모두 이겨 금메달을 차지했다.
• 축구
미얀마·인도·인도네시아·이란·일본·아프가니스탄 등 6개국이 참가했다. 인도가 결승전에서 이란을 1-0으로 꺾고 우승했다. 인도 대표팀 스트라이커 사후 메왈랄은 4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메왈랄은 토너먼트로 진행된 3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 역도
이란이 7개 전 체급을 휩쓸며 역도 강국의 위용을 뽐냈다. 이란은 은메달 3개까지 더해 역도에 걸린 메달 21개 중 절반에 가까운 10개를 가져갔다.
• 사이클
도로와 트랙 2개 종목에 걸린 금메달 4개를 일본이 독식했다. 일본은 도로 종목 금·은·동을 휩쓰는 등 11개 메달 중 8개를 차지했다. 인도가 남은 메달 3개(은1·동2)를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