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막 6:1-6 / 사람을 통해 공격해 오는 원수 마귀를 이기는 길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지난 마가복음 5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모든 세력들이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지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마귀의 타격을 받은 사람의 일생은 병마와 신음하다가 결국 죽는 것이었는데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사탄은 자신의 처소까지 공격을 받자 다른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사탄은 사람을 이용해서 일을 합니다. 사람을 사용하는 방법은 같은데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몸과 같이 지체로 사용하시지만, 사탄은 도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는 자들을 보십시오. 우리 가족이거나 친지이거나 이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 마귀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용해서 나를 멸망 길로 이끌어 감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고정관념, 편견을 심어 넣습니다.(3절)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고향사람들이니 어릴 때부터 다 보아왔습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이것을 딱 고정관념으로 심어 넣고, 편견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하여 “목수의 아들 주제에 무슨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란 말인가?” 이렇게 마귀는 우리의 기억에 고정관념, 편견을 집어넣어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싹부터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속담이면 다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속담쓰기를 좋아하는데 속담이 좋은 것도 있지만 아주 해악을 끼치는 속담도 있습니다.
에스겔 18:2-3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아들의 이가 신 것이다.” 이 속담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심판받는다는 뜻입니다. 과연 이 말이 성경적입니까? 아버지의 죗값은 아버지가 감당해야 하고, 아들의 죗값은 아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 탓을 한들 내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걸고 이 속담을 못 쓰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속담도 대부분 좋은 속담이 많지만 잘못된 속담도 있습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 사람은 열이 아니라 하나도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런 속담은 사람의 가능성을 죽이기에 빨리 폐기해야 됩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해도 예수님의 고향 동네사람들은 사탄이 심어 넣은 고정관념,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단지 목수, 동네 젊은이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고정관념과 편견의 나라입니다. 남과 북, 동과 서, 출신 지역별로, 출신 학교별로, 남자와 여자로, 여당과 야당으로 사람들이 다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과 편견은 사람의 가능성을 짓밟고 평생 피해자만 양산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눈으로 그 영혼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2. 헛된 자존심(위신이나 체면)으로 남을 존경하지 못하게 만듭니다.(4절)
4절에 존경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는 존경을 받는데 나사렛의 고향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 못 박았고, 자신들의 위신이나 체면으로 볼 때 예수님을 존경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집안 출신입니까? 학벌이 있습니까? 경상도 말로 “우리가 다 안다 아이가?” 예수님은 동정녀 탄생, 즉 사생자였습니다. 이걸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말인가? 2절처럼 예수의 기적과 지혜의 말씀은 알겠는데, 자기들 자존심으로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경하기보다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어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4:29-30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자기를 높이는 위신이나 체면은 헛된 자존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의 자존감입니다. 그 자존감으로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니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것은 위신이나 체면의 헛된 자존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라’는 것은 무슨 돈이나 먹을 것을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존경심을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누구든지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시다. 이것이 영으로 사는 길이요 승리의 길인 것입니다.
3. 종교형식에 빠지게 함(5-6절)
5절 말씀을 보니 안수하셨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수하지 않으셔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그분의 옷자락만으로도...
그런데 안수라는 형식을 사용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나사렛 사람들이 종교형식에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를 주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생명은 연결되어 있어야 생명이 됩니다. 끊어지면 안 됩니다. 종교형식으로도 연결할 수 있겠죠. 그러나 종교형식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연결된다 할지라도 생명으로 연결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나무와 작대기를 붙인다고 해서 다 연결되어 한 나무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종교형식을 주장할수록 예수님과 더욱 멀어져만 간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로마서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생명이 종교형식에 갇혀 있으면 그 결국은 사망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기도 해주셔서 저들의 병을 고쳐주셨건만 그들은 믿음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명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존중되어져야 사랑으로 연결될 때에 생명의 연합을 이루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열매를 맺되 풍성히 맺는 것입니다.
ex1)성령의 능력을 받는 방법을 물어온 청년에게 –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방법은 오직 사랑 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나사렛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고 교통을 얻어 만족과 누림을 얻는 자리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만은 마귀가 사람의 마음에 틈을 타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찢어버리고 맙니다. 방법은 너무나도 교묘하게 ①고정관념, 편견 ②헛된 자존심 ③종교형식 등으로 생명의 예수님과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5장 27절, 4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두 구절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옷에만 손을 대어도, 아이의 손을 잡고... 즉 거룩하신 예수님과 접촉,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연결은 오직 사랑입니다. 34절, 딸아... 41절 소녀야... 애틋한 사랑이 읽혀지지 않으십니까?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악한 사탄이 사람을 타고 들어와 서로 원수가 되게 하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게 만드는” 이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편견으로 낙인찍고, 헛된 자존심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종교형식으로 사람을 옭아매어도 지극히 당연한 줄 압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니까 안 돼! 저 사람은 저러니까 지옥간다니까... 이렇게 마귀가 틈타 악감정을 가지고, 또 이용하고, 무시하고, 짓밟고... 결국은 모두 다 사망하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탄을 이기려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 사람과 멀어지게 하면서 결국 하나님도 멀어지게 하는 사탄의 이 음흉한 전략에 이기는 길은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처럼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자꾸 끊어버리려고 합니다. 어떻게든지 비집고 들어와서 쪼개버리는 것입니다.
ex2) 옛날 솥뚜껑이 작은 금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완전히 쪼개지듯이...
사랑은 서로 접촉되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 맘 다해 사랑으로 예배드리며 기도하여 연결되고, 교통되어야 합니다. 이웃과는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십시오. 이것이 원수 마귀를 영으로 이기는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 동문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생명의 한 덩어리를 이루어 요한복음 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처럼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