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흡혈귀>
-에도가와 란포/이종은 譯/도서출판 b 2022년판/365page
탐미주의가 깃든 일본식 추리문학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돈을 준다면 거기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요. (본문중)
1
-‘다니야마’라는 자는 정말 엄청난 복수를 한 것 아닌가. 미치광이다. 아니, 귀신이다. 인간이 아닌 흡혈귀다. 아무리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인간이 그런 비정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본문중)
이 작품 <흡혈귀>에 등장하는 살인마에 대한 평가다. 일본 추리소설 문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에드가와 란포’가 창조한 일본 근대 최초의 살인마 모습이다.
줄거리는 오히려 현대 추리소설 작가보다 더 탄탄한 느낌을 준다. 일본에서 추리 소설이 막 탄생되던 시기라고 해서 기본 플롯이 모든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보다 못 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현대 추리 문학 작품처럼 빠른 속도의 전개감은 없지만 대신 지루할 틈 또한 없다.
2
작가의 소설적 창의력이 돋보이는 말미.
주인공인 탐정 ‘아케치 고고로’가 범인을 밝혀내는 장면에서 사용되는 수법인데, 아주 독특한 나머지 액자소설의 기법을 살짝 연상시키기도 한다.
탐정 ‘아케치 고고로’와 일본 경시청 소속 ‘쓰네가와’ 경부, 그리고 잠재적 범인으로 추정되는 ‘미타니’(부잣집 과부 시즈코의 연인) 해서 세 사람이 범행 장소에 모인다. 여타의 추리소설 작품이 탐정의 브리핑 형식을 빌려 관계자들에게 추리 과정을 설명해 나간다면, 이 작품에서는 탐정의 조수 둘을 등장시켜 범인의 살해 과정 전체를 무언극의 형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참석한 주요 관련 인물들은 관객석에서 연극을 보듯 지켜봐 나간다는 점이 독특하게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장황한 탐정의 설명보다 극적인 전개를 선택함으로서 장면을 읽어나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고 신선함 느낌을 얻을 수도 있다.
3
한 가지 더 이 작품에서 독특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작품 줄거리에 깃든 근대 초기의 일본 문학에 유행했던 ‘허무주의적 탐미주의’다. 이런 성향의 사조는 현대 일본 문학에서 추리 소설이 아니라 본격적인 일본 문학에서조차도 보기 드물다.
사조(思潮)라는 개념의 특성상 시대상을 반영하다 보니 과거 정신을 계승하기는 하되 온전한 형태로 지금껏 유지되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는 관점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범인 ‘미타니’가 원한의 연인 ‘시즈코’와 그의 아들 ‘시게루’를 납치하여 모든 과거의 원한을 밝히고 마지막으로 냉동기계로 그들 모자를 얼음 속에 가두어 알몸상태로 얼려서 죽게 만든다. 그 냉동상태의 죽은 시체를 바라보며 탐정 ‘아케치 고고로’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것이 나타났는데 힐끗 보기에는 거대한 꽃 같았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악몽처럼 기괴하면서도 요염한 광경이라 두 사람 모두 탄성을 지르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 이리 처참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이 다 있나. 거기에는 꽃을 넣어 얼린 몹시 커다란 얼음이 전등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리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꽃 얼음! .....(중략) 사람,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여인과 소년의 나체상을 얼린 꽃 얼음이었다. 지금껏 이토록 잔혹하면서도 요염한 살인 수법을 고안해낸 자가 누가 또 있을까. .....(중략) 쓰네가와 경부는 <살인예술론>의 존재는 전혀 몰랐지만 얼음에 쌓인 피해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묘한 곤혹감을 느꼈다. (본문중)
다음 장면 또한 그런 근대 초기 일본의 문학예술 사조를 엿보게 한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힘을 짜내 핏기 잃은 손을 시즈코에게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벌레처럼 아주 조금씩 다가가 마침내 시즈코의 차가운 왼손에 닿았다. ...(중략) 시즈코의 손을 잡은 것이다. 차가운 손과 손이 맞잡아졌다. ...(중략) 사람들은 이상야릇한 감상에 젖어 깊은 침묵 속에서 손을 맞잡은 남녀의 시체를 바라봤다. 더 이상 어떤 적개심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동반 자살한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처럼 사이좋게 잠들어 있었다.
4
이 작품이 씌어진 1930년 가을과 이듬해 봄 사이, 식민지 치하의 조선의 일상을 같이 엿보며 읽어가는 것도 작품의 흥미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시 동아일보를 찾아보았다.
독자Q :
아직 인류가 북극조차 정복하지 못했는데 지구가 구형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오?
기자A :
물론 지구 곳곳에 아직 미답지가 많기는 하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정설입니다.
독자Q:
남자는 유처취첩(부인이 있지만 첩을 취한다), 여자는 불경이부(두 남편을 섬기지 못한다)라 하니
대관절 이 법을 누가 제정하셨습니까? (재(在)동경 절대미인)
기자A: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왕촉의 말이 있지만은,
유저취첩하는 것은 어떤 남자들의 월권적 행동이지 법적 제정이야 있을 리 없습니다.
독자Q :
예수가 재림한다고 예수쟁이들이 자꾸 떠드는데 대체 언제 내려온답니까?
기자A :
언제 내려오는지 알려드리면 재림 전날에 예수 믿으시게요? 그건 하늘만이 아실 일이지요.
(독자가 묻고 기자들이 답하는 코너 <살롱>에서 발췌)
(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