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미리보기
붓으로 표상한 밝고 행복한 사랑
- 명진 홍정임의 서예전에 부쳐-
우리는 서예작품을 제작할 때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는 옛사람들의 글을 가져와 무작정 덧옷을 입히고 있지는 않는가. 전시를 하면서 주제도 없이 대충 작품 몇 점을 한 자리에 모아서 보여주지는 않는가. 자신의 철학과 동떨어진 박제된 작품을 내놓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면서 남들이 서예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지는 않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필자는 작가 명진이 작품을 대하는 자세와 작가가 가진 분명한 생각을 접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젊지만 당찬 각오와 뚜렷한 조형시각을 갖춘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명진은 청주에서 아버지께서 화랑을 하던 집에서 2남 2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문방사보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시절 글씨 잘 쓴다는 칭찬을 듣고 교내 환경정리나 학생서예대회에 단골로 참여하면서 곧 잘 상을 받아오자 주변에서 서예에 조예가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북대에 입학하자마자 서예동아리에 들었고, 결혼하여 대전으로 이주한 뒤에도 늘 곁에 문방사보를 가까이 하면서 오늘날 붓과 함께하는 서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듯이 그가 작가관을 형성한 근간에는 주변환경과 연계된 면들이 있다. 명진은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묵향의 길은 가족과 주변에서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모은 전시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 ‘붓을 들고 살아온 경험을 표상’ 한 매듭전이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지필묵을 대하면서 경험하였던 작가의 조형언어들을 푸근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번 첫 개인전에 <밝고 행복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있다. 또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에 <희망의 속삭임>, <인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하루는 짧지만>, <처음빛 사랑 그대로> 등의 제목을 붙여 놓았다. 그의 작업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 회화가 아니고 대부분 남의 글을 가져와 사용하는 특수성을 지닌 서예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나 작품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목들은 작품제작을 둘러싼 작가의 의지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가령 작가의 작품세계가 <사랑>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의 작품은 사랑이 표상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이 주제 위에 다양한 이미지들을 담은 작품들을 경작하고 있다. 농부가 자신의 밭을 정성으로 일구듯이 서예가는 화선지에 온갖 형상들을 꽃피우기 위해 온 몸과 시간을 바친다. 그 과정에서 구상과 사색이 교차하여 흐르고 반복적인 휘호의 수고로움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결국 그의 작품은 삶과 휘호의 표현행위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창조의 정원이라 할 수 있다.
명진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한글이 주를 이룬다. 전각과 한문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 연마한 다양한 한글서체를 자신이 선택한 글귀에 맞추어 적절하게 구성했다. 충북대 서도회 시절 만난 우송 이상복 선생, 대전에서 만난 석정 윤병건 선생, 평천 이상민 선생,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난정 이지연 선생 등 여러 선생으로부터 한문, 한글, 전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이제부터 자신이 홀로서기를 해 자신의 시각으로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민하고 연구한 나머지 그의 작품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한글전문 작가들은 필획이 여리고 운필의 활달함이 적은 편인데 그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은 바로 박습(博習)한 결과이고, 똑같은 문방용구라도 선택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기른 나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주제에 따라 선택적 혹은 종합적으로 자신의 조형시각을 적용함으로써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그것은 동일한 씨앗과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농사의 결과는 달리 나타나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몇 가지 조형적 특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한글 궁체를 철저히 학습한 흔적이다. 작품 <모란꽃>을 보면, 세로 5행의 단아한 궁체를 통해 마치 궁체 정자 고전인 ‘옥원듕회연’을 보는듯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명진이 철저하게 궁체고전을 공부하였음을 알게 된다. 둘째, 중체(重體)를 혼용해서 응용한 작품이 많은 편이다. 한글과 한문 및 전각의 요소까지 한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평이한 통일감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희망의 속삭임>을 보면 문장의 사이 사이에 전각작품으로 내용을 새겨서 찍었다. 젊은이다운 발상이고 전각을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연>에서는 한자 몇 자를 크게 쓰고 그 아래에 한글을 세로로 여러 행 발문처럼 배자하였는데 한글과 한자를 섞은 혼서(混書)작품 역시 잘 어울리게 처리함으로써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장법(章法)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에서는 세로 11행의 본문 하단에 가로 3행을 넣어 한 작품을 꾸몄고, <떠나는 길에도 머무른 듯>에서는 ‘한가지 소망’이라는 중심어를 크게 하고 나머지는 작은글씨로 처리하여 주제어가 돋보이게 하였으며, 은은하게 배경색을 칠하여 시각적 주목성을 도모한 장법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대중적인 글감들을 채용하고 있다. 서예작품이라고 해서 박물관에 진열된 캐캐묵은 자료들만 글감으로 사용하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대중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친근한 글감들을 사용함으로써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가을이 오면>에서 용혜원 시인의 시를 글감으로 사용하여 현대인과 정서적 공감도를 높힌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명진의 작품에는 작가가 꿈꾸는 ‘밝고 행복한 사랑’이 녹아있다. 그는 붓끝으로 순백의 화선지에 행복한 사랑의 먹글씨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 먹글씨들은 그에게 있어 사랑의 꽃들로 환생한다. 그 꽃들의 정체는 한 마디로 규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조형언어가 지닌 특권으로서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 덕으로 그가 피워내는 먹꽃들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관객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더없이 자유롭다. 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서예세계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온 것이라는 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의 작품에서 작가의 순수한 작품관과 지향점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꽃이 더욱 개화하여 서단에 공명(共鳴)하는 이가 많아지길 기원한다.
2010.3.15
정태수(월간 서예문화 주간)
홍정임 인사말
밝고 행복한 사랑을 작품에 담으면서
상큼한 봄햇살이 눈부신 3월입니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밝고 행복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작품전을 가집니다.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으로 알고 가는 동안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이제야 인생의 참된 맛과 멋을 생각하고 가야하는 전환기를 맞아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흔적을 남겨 봅니다.
늘 이웃과 친구들이 서로 같이 밝고 행복한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저와 함께 진심을 소통하고 있는 분들과 작품을 통한 따뜻한 사랑을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3.
홍정임 삼가
홍정임 약력
홍정임(洪丁壬) 아호(明眞, 윤슬, 淸幽堂)
개인전
한국서예여류유망초대작가 초대개인전(이형아트센타(2010)
주요 공모전 및 단체전, 초대전
아름다운 한글전(대전문화방송 문화공간 '95,'98)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입선 5회(서울 예술의 전당('99~)
동행오인전(대전 한림갤러리 2004)
대전 충남 서예전람회 우수상, 초대작가(2005~)
강암서예휘호대회 입선 6회, 특선 1회
세종한글서예대전 입상(서울 예술의 전당)
한글서예대축제 초대출품(서울 예술의 전당 2008)
한국여류중견작가초대전(이형아트갤러리 2009)
한글서예대축제(서울예술의 전당 2008~)
교육경력
대전 상지초, 원평초, 진상중, 서예 및 한문강사 역임
대전 교차로 문화센타 서예강사 역임
현재
충청서단, 소원회, 석정서회, 한국여류중견작가회 회원
명진서예운영
주소 및 작가연락처
대전광역시 중구 유천동 203-11 4층 명진서예
전화 042-536-3666, 휴대폰 010-3204-9871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