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m봉 내린 안부 윗미노리에서 바라본 가은 주변
3월 17일, 오츠는 동상에 괴저까지 걸린 두 발 때문에 다른 대원들마저 지체된다는 것을 깨닫
고 극지방 탐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씩씩한 말을 했다. “밖에 좀 나갔다 올 텐데. 시간이 걸
릴지도 모르겠소.” 그는 비틀거리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텐트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는 돌아
오지 않았다. 그날은 그의 서른두 번째 생일이었다.
--- 앤 패디먼,「서재 결혼 시키기」중 ‘스콧의 남극탐험 대원인 윌슨의 일기’에서
▶ 산행일시 : 2011년 12월 24일(토), 맑음, 바람
▶ 산행인원 : 15명(영희언니, 자연, 스틸영, 5-end, 드류, 김전무, 감악산, 대간거사,
산그림애, 신가이버, 도자, 해마, 임성철, 승연, 메아리)
▶ 산행시간 : 8시간 30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2.2㎞(1부 4.9㎞, 2부 7.3㎞)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9 : 00 -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上乃里) 한실, 산행시작
09 : 47 - 577m봉
10 : 02 - 윗미노리(未老里)
11 : 15 - 뇌정산(雷霆山, △992m)
11 : 35 - 954m봉, Y자 능선 분기, 왼쪽은 백두대간으로 감, 우리는 오른쪽으로 감
12 : 28 ~ 13 : 10 -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上乃里) 전담, 1부 산행종료, 중식
14 : 20 - 738m봉
15 : 06 - 백두대간 주능선 진입
15 : 32 - 백화산(白華山, △1,063.5m)
15 : 58 - 953m봉, Y자 능선 분기, 왼쪽은 옥녀봉으로 감
16 : 15 -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송이봉, 능곡산으로 감
16 : 40 - 성주산(聖主山, 721m)
17 : 30 - 문경시 마성면 정리(鼎里) 솥골, 산행종료
17 : 50 ~ 19 : 45 - 문경, 온천욕, 석식
21 : 40 - 건국대 앞 도착
1. 문경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주흘산 연봉
▶ 뇌정산(雷霆山, △992m)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백화산과 뇌정산 산행이다. 요컨대 ‘나의 관심은 그 산을 올랐느냐보다
는 그 산을 대체 어디로 올랐는가 이다’ 라고 평소 주장해온 바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또 간
다. 설령 같은 코스라도 계절을 달리하거나 하루 중 시각만 달리해도 다른 산인데 오늘은 진
행방향까지 거꾸로다.
특히 오늘 산행코스의 선정은 아무나 쉽게 흉내할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을 감탄케 하는 일대
수작(秀作)이다. 백화산과 뇌정산의 산행도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백두대간 길로 연결
하거나 면계를 잇는 능선만 보이기 쉬운데 361로(路) 반상(盤床)에서 묘수를 찾아내듯이 얼기
고 성긴 지능선을 자세히 살펴 준봉인 또 다른 백화산과 뇌정산을 만들어 냈다. 우리의 메아
리 님이 그랬다!
영강을 하내리에서 돌아 상내천을 거슬러 상내리 한실로 간다. 도로에는 어젯밤에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조용한 눈길이다. 살금살금 나아간다. ‘범죄 없는 마
을’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범죄 없다는 말이 낯설어 보인다. 이 궁벽한 산골마을에 무슨 범죄
를 저지를만한 거리가 있을까 싶어서다. 한실은 비알밭(경사진 밭)이라 농사짓는 데 땀을 많
이 흘린다고 땀골, 즉 한곡(汗谷)이라고도 했으며 1950년대에는 한가로운 곳이라고 하여 한
곡(閑谷)이라고도 했다 한다(박철순, 마성면 내력).
농가 오른쪽 뒤로 얕은 지계곡 비탈을 돌다가 사면을 올려친다. 깊지 않은 눈이지만 낙엽과
버물려 헛발질이 잦게 미끄럽다. 한 피치 오르자 산허리 구불구불 도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
따라 산모롱이 한차례 돌고 등변(等邊)으로 붙는다. 인적은 없다. 앞사람 발자국이 더 미끄럽
다. 저마다 숨 거칠게 뿜어가며 갈지자 크게 그린다.
죽은 나뭇가지를 홀더로 잘못 잡아 함께 넘어지고 나서 일일이 가려잡는다. 577m봉. 울창한
나무숲으로 둘렀다. 탁주 막 들이키게 목말랐다. 약간 내리면 윗미노리(未老里)다. 벌목한 너
른 안부에는 감나무를 심었다. 남쪽으로 시원스런 조망이 트인다. 주변 산세로 보아 늙지 않
는 마을(未老里)이라는 작명이 그럴 듯하다.
왼쪽의 지계곡 건너 지능선으로 간다. 능선에 서면 날 벼려 세운 바람이 에워싼다. 마조히즘
적 쾌감도 잠시. 고개 푹 숙이고 발걸음 재촉한다. 암릉을 비켜 너덜로 오른다. 여느 때면 저
바위를 냉큼 올라 첩첩 산을 감상할 텐데 눈 핑계하고 참는다. 내내 우러르던 백두대간 백화
산을 내 눈높이로 하고서야 뇌정산 정상이다. 지난주보다 눈이 더 쌓였다.
바람 피한 사면으로 비켜 마가목주로 정상주 분음한다. 안주는 과메기. 주효 또한 메아리 님
걸작이다. 일단의 스님들이 뇌정산을 지난다. 날도 추운데 술 한 잔 하심이 어떠실지 권하자
웃고 만다. 우리가 말을 잘못 했다. 곡차라고 할 것을.
눈이 제법 깊다. 백두대간 쪽으로 우르르 쏟다가 954m봉에서 멈칫하고 남동진한다.
색 바랜 산행표지기가 앞서간다. 절반은 미끄럼 타며 뚝뚝 떨어진다. 707m봉이다. 바위 아래
로 크게 돌아 동진한다. 일부러 오지를 만드는 것 같다. 바글거리는 자갈 사면 지나 거친 잡목
숲 헤친다. 빈 밭으로 내리고 계류 건너 전담이다. 전(全)씨가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길옆의
문 열어놓은 창고로 들어간다. 비었다. 바람 피하고 버너 불 피우니 금세 훈훈하다.
2. 한실마을, 정면의 설산은 백두대간에서 뇌정산이 갈라지는 969m봉
3. 969m봉
5. 뇌정산으로 향하여, 577m 내린 안부, 윗미노리
6. 둔덕산, 뇌정산 오르면서
7. 앞은 954m봉, 뒤는 백화산과 백두대간
8. 뒤가 백화산
9. 나뭇가지 사이로만 보이는 희양산
▶ 백화산(白華山, △1,063.5m)
이제 백화산이다. 길 따라 오른다. 서낭당인가? 그 옆에 거목 두 그루가 있다. 표지석을 들여
다보고 알아본다. 가는잎음나무라고 한다. 봄날 데쳐먹어 그 매끄럽고 향기롭던 새잎의 엄나
무다. 수령 200백년. 이렇게 큰 엄나무는 내 생전 처음 본다. 수피 또한 형용키 어려운 연륜을
드러낸다. 신목(神木)의 그것이려니.
벌목한 사면을 오른다. 가파르다. 벌목한 사면에는 소나무 묘목을 심었다. 멀리서는 이 사면
이 데굴데굴 굴러도 좋을 잔디밭으로 보이더니만 덤불과 잡목의 크고 작은 그루터기가 사납
게 삐쭉 삐죽하여 지나기 아주 성가시다. 임도가 나오자 옳다구나 직등을 피하고(신가이버 님
만 직등하였다) 임도로 돌아 오른다.
하늘 가린 참나무 숲 지나고 완만한 낙엽송 지대가 나온다. 무덤이 있다. 아쉽다. 뇌정산을 오
를 때부터 체한 것 같다고 속 거북해하며 느릿느릿하던 김전무 님이 그만 탈출하였다. 혼자
서. 내 이리 박복한지고! 갑자기 내 뒤가 썰렁해짐을 느낀다. 내심으로는 뒷배가 든든하여 발
걸음이 사뭇 여유로웠다. 새삼 정색한다.
가파른 사면을 비스듬히 올라 한실 또는 효자동에서 오르는 능선과 만난다. 길은 있는 없는
듯 칼바람이 설원을 휩쓸며 난도질하였다. 바람소리조차 겁난다. 이 와중에 더덕이 도리어 나
를 잡는다. 땅이 얼어서다. 738m봉 넘고 바람은 더욱 거세다. 등로는 바위 섞인 봉우리 직등
을 피하여 너덜 사면으로 났다. 안부로 이어지리라.
앞서 가던 임성철 님이 멈춰서있다. 신가이버 님이 자취 감추자 길 또한 사라졌단다. 신가이
버 님은 직등 했을 것. 우리가 가는 데가 길이다. 너덜사면으로 간다. 이따금 산행표지기도 보
인다. 백두대간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지난주와는 전혀 딴판으로 눈이 깊다. 오늘 백두대간
백화산 구간을 지나는 등산객이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눈길을 뚫는다. 걸음걸음이
오달지다.
전망바위에 들려 속리산에서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희양산, 이만봉,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짚어낸다. 눈부신 건 역광 탓이 아니다. 장관이다. 왼쪽 사면으로 살짝 돌아 오르
면 백화산 정상이다. 이럴 줄 알았다. 우리는 이마의 땀 훔치는데 진작 오른 신가이버 님이 달
달 떨고 있다. 10여분이 지나자 한기가 엄습하더라나.
백화(白華)를 백화(百花)로도 알았는데, 이 백화산의 ‘백화’는 불교에서 관음보살의 도량을 ‘백
화산’, ‘백화도량’을 말하며, 이는 비로자나불이 상주하며 설법하는 화장(華藏)세계의 제13중
(重)에 위치한다고 한다(월간 산, 1994년 11월 호, ‘김장호의 명산행각 - 상주의 명산 백화
산’에서).
10. 전담마을의 ‘가는잎음나무(Kalopanax septemlobus var. maximowiczi)’ 수령 200년
11. 가는잎음나무 수피
12. 정낭골과 뇌정산
13. 뇌정산 자락
14. 백화산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15. 가운데가 가은 옥녀봉
16. 백화산에서 조망
▶ 성주산(聖主山, 721m)
성주산 가는 길. 백두대간 길 벗어나고 가파르게 내린다. 밧줄 달린 바위지대가 나온다. 아무
렇지도 않았을 슬랩이 눈 쌓여 재미난 세미클라이밍 코스로 변했다. 스틱 먼저 던져놓고 내린
다. 옥녀봉 갈림길인 953m봉을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한다. 지난주에는 시끄럽게 간벌하던
톱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춥긴 추운 모양이다.
백화산에서 먼저 올랐다가 추워서 된통 혼쭐난 신가이버 님이 가다 멈추며 속도 조절한다. 다
시 Y자 갈림길. 오른쪽은 능곡산으로 간다. 우리는 왼쪽으로 간다. 한참을 쭈욱 내린다. 조심
스런 바위도 나온다. 안부 지나고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오른다. 성주산 정상은 하늘 가린 숲
으로 둘러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황혼의 주흘산이 장려하다.
하산. 정리(鼎里) 솥골을 향한다. 잠깐 완만하다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동네가 발아래로 보
여도 멀다. 교통호처럼 패인 골로 내린다. 낙엽이 무릎까지 차게 수북하다. 그런 낙엽에 묻혀
허우적대니 저절로 제동된다. 오히려 낙엽 지치느라 지친다. 골이 길기도 하다. 산기슭 가시
덤불을 뚫는다. 감나무 밭이 나온다.
솥골이다. 마을을 둘러싼 성주봉과 능곡산, 주지봉 이 세 산을 솥발로 보고 솥 거는 형상을 생
각해서 솥골이라고 한다. 정리(鼎里)도 솥골의 한자말일 뿐.
마을이 조용하다 못해 괴괴하다. 추운 겨울 이맘때면 집집마다 굴뚝에는 연기 나고, 담 넘어
아기 울음소리 들리고, 불 켠 창에는 여러 웃음 어른거려야 정겨운데 말이다.
텅 빈 마을에(김전무 님은 할머니 몇 분 보았다고 하지만)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그것도 앙
칼지게. 정리교회도 불이 꺼졌다. 트리장식 하나 보이지 않는다. 십자가가 한층 쓸쓸하다. 오
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 살며시 마을을 빠져나간다.
17. 멀리 하늘금 왼쪽은 대야산
18. 백화산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19. 뇌정산, 뇌정산 왼쪽 뒤로 멀리 속리산 연릉도 보인다
20. 운달산(왼쪽)과 단산(오른쪽)
21. 성주산으로 뻗은 능선
22. 성주산 가면서 바라본 주흘산 연봉
23. 해피 뉴이어
첫댓글 내가 이런 사진 때문에 속았다는 거 ......
재미없는 산세인데...사진속의 산은 멋지기만 하네요...
실제로도 아주 멋진 산세였어요
속는 산만 골라 가면서리..ㅋㅋ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산을 축하드립니다.^^*^^
새해에도 늘 즐산과 안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