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합의보다 못한 9.12 잠정합의 ... 죄송하고, 잘못했다.

[국제주의자]

 8.18 합의보다 못한 9.12 잠정합의 ... 죄송하고, 잘못했다.

2003년 11명이 울산노동자신문 회의실에서 모여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를 논의한지 만 12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같은해 5월 2일 현대자동차비정규직투쟁위원회를 결성했고, 7월 8일 현대차비정규직노동조합을 건설했다. 그렇게 우리는 거침없이 달려왔다.

집에 있는 옛 회의 자료를 꺼내어 본다. 처음 불법파견 진정을 넣었던 그 진정서를 본다. 잠정합의. 정확하게는 실무교섭 노사 의견 접근안을 한 줄 한 줄 보며, 한 방울 한 방울 눈물을 흘린다. 요즘 몸이 아팠다. 합의 하는 날도 검사를 했다. 몸이 아파서 더 우울했는지 모르겠다. 현제 형에게 전화하고 혹시 내용이 나오면 문자라도 남겨달라고 통화하고, 전화기를 껐다. 그날은 그러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편한 잠을 자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기를 열자 문자만 100통이 넘게 왔다. 아침부터 걸려오는 전화. 하루 종일 전화에 시달렸다. 전국 사내하청 동지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며 묻는다. 그리고 여러 의견들을 주신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전화만 받지 않았다. 비조합원인 2차 업체 노동자 전화. 전화를 받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린다. 미안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답답하다. 전화기 넘어 들리는 울음소리가 지친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미안하다는 문자들에 일일이 답을 했다.

8.18 합의내용과 9.12 합의내용에서 도대체 무엇이 틀린지 눈을 뜨고 찾았다. 그런데 어떤 것 하나 차이가 없었다. 8.18 합의의 비판지점은 ‣불법파견을 부정(사과거부) ‣소 취하를 전제로 신규채용 수용(소송권 침해) ‣공정재배치로 합법도급 기준 강화(비조합원 권리 침해) ‣법원 판결 기준보다 못한 처우조건 ‣노동조합이 소송취하 보증기관으로 전락 등 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조합원이 개별 선택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9.12 실무교섭 의견접근 안은 8.18 합의 구조를 뛰어넘지 못했고, 오히려 사측 요구를 더 반영한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불법파견은 현대차 완승으로 끝나가는 듯하다.

첫째, 8.18보다 현대차에게 더 많은 불법파견 면죄부를 줬다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2010년 현대차 파견법 위반으로 고소고발 했지만 만 5년이 되어가도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다. 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정리되면 무혐의 처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은 파견대상업무위반(파견사업부, 사용사업주)의 경우 시정기간 25일을 주고 사용사업부가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기간 내에 시정하면 내사 종결처리 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만 진행하다가 모든 소송이 취하되고, 신규채용으로 조합원이 정규직이 되었다면 내사종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측은 지회와 금속노조에 보험까지 요구했다.

금속노조 및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합의 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파견법위반 관련 고발사건>에 대한 취하서 또는 탄원서를 관련 기관에 제출한다.

2015.9.12. 소 취하 관련 별도 합의서 중

 8.18 합의서에는 <탄원서>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주와 아산지회가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래서 굴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는 그 굴욕적인 문구가 합의서에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까지 탄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금속노조 산하 노조가 불법파견 투쟁을 하고 있고, 현대차와 동일자본인 기아차에서 ‘정몽구 구속’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현대차 탄원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둘째, 2~3차 배제! 법원 판결보다 못한 대상과 인원

서울중앙지법 42부는 9월 19일 판결에서 “만일 피고(현대자동차)가 2차 사내협력업체 등으로부터 위와 같이 직접 근로자를 제공받아 실질적으로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해당 업체들 사이에 명시적인 계약서 등이 작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에게 사용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다면, 실질적으로 위법하게 근로자를 파견받아 사용하면서도 제2의 도급업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파견근로자보호법의 적용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깃을 열어주게 됨으로써, 파견근로자의 상용화가 장기화 방지라는 입법취지를 훼손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면서 현대차와 2차 사내하청 업체 간 <묵시적 근로자파견계약>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당연히 1차 하청업체는 모두 파견법 위반으로 직접고용 의제(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3,582개 공정에서 불법파견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또 조반장과 2~3차 업체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인원이 고용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아산/전주/울산을 모두 합쳐 고작 2,000명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한다. 처우는 그렇다 쳐도 대상과 인원은 법원 판결에 따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채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2~3차를 배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도 인정한 2~3차의 불법파견을 원․하청노조가 동의하고, 배제할 어떠한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2~3차 노동자는 노사 모두에게 배제됐다. 그리고 조합원 전원을 보장받았다.

그런데 정말 조합원이 배제되지 않고 모두 채용될까? 조합원 한명이라도 배제되지 않고 채용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내하청이 정규직으로 전환(채용)될 때 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두에 조합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2000명 중에 아니 더 정확하게는 362명을 포함한 2,362명에 들기 위해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경쟁해야 한다. 이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은 회사만이 결정할 수 있다. 실제 울산에 한 조합원이 전주 조합원에게 8.18 이행 과정을 문의한 결과 이런 답변 문자가 왔다.

작년 8.18 합의후 280여명의 조합원중 4차까지 진행된 특별채용 예정인원까지 제외하면 35명 정도 남아 있구요. 남은 조합원 중에 조합원들에 대해 정규직 60세(59+1)신체검사 기준으로 하다 보니 색맹․색약도 있지만 장애나 병적 질환으로 신검에서 탈락자가 발생했고(회사와 해소방안 이야기 중) 문신은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8.18 합의당시 조합원전체에 대한 내용으로 3주체(회사.지부.지회) 모두 동의를 했지만 이면합의에는 구체적으로 담은 내용은 없습니다. 어쨌든 회사에서 조합원들에게 적용하는 59+1신체검사 기준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고, 정년도래자들의 문제점과 정년퇴직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조합원 전원이라는 말은 허울에 불구하다. 특히 소위말하는 이면합의는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 없다. 이번 교섭과정에서 2010년 해고자인 김명석 조합원은 복직대상에서 제외됐다. 촉탁계약직 사용이 불법파견 은폐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도 배제됐다. 도대체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셋째, 공정재배치로 합법도급의 길을 열었다

지난 금요일 4차 실무교섭을 앞두고 지회 집행부는 현대차지부와 논의한 내용을 보고하고, 핵심요구를 확정했다.

지부가 지회에 전달한 내용은 ‣근속 12년 6월 신규 채용 입시자 동일 적용. ‣ 500만원 위로금 ‣ 시기 16년 안에 조합원 전원 채용 ‣ 2010년 이후 해고자 복직(해고기간 근속 인정은 쟁점) ‣ 2차~3차 조합원 1차 전직 후 채용 ‣류기혁 열사와 사망 조합원 가족 하청으로 대체입사 후 신규 채용이었다. 지회 쟁대위는 ‣조합원 배제 없는(해고자 포함) ‣자기 공정 채용(전환배치 거부)는 최소기준임을 확인하고, 4차 실무교섭에 참여하기로 했다.

특히 자기공정채용(전환배치 거부)는 지회가 그동안 주장해 왔던 “우리가 정규직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유일하게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안이었다. 실제 지회쟁대위도 이것 하나만은 지키자는 심정으로 최종 안을 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8.18과 달라진 것이 없다.

4. 사내하도급업체 인원 직영화로 인한 전환배치 관련

(1) 상기 1항에 의거 사내하도급업체 인원의 직영화 등으로 인해 지역 및 공정 등 이동에 필요할 시 희망자에 한해 전환배치를 실시하되 세부내용은 실무협의체에서 논의한다.

(2) 금번 특별고용자에 한하여, 인력소요 감안 후 본인의 의사(희망공정 또는 유사공정)를 최대한 반영하여 배치한다.

2015.9.12. 사내하도급 관련 합의서 중

 단지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문구만 있을 뿐이다. 이 또한도 사측이 배치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오히려 배치뿐만이 아니라 처우에 대해서조차 재협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면서 이후 투쟁에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1. 합의사항 성실 이행

조합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 청구 소송, 행정소송, 노동부 고발사건과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고용의제 관련 위헌소송의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노사는 본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며, 향후 상기 내용관련 노사간 추가 협의요구 및 소송을 제기하지 아니한다.

2015.9.12. 생산하도급 인원 특별고용 관련 별도 합의서

 이후 정규직이 되더라도 정규직 임단투에서 채용자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근투위 같은 조직이 만들어지지 않게 한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투위가 이 합의를 반대하는 것은 정당하다.

넷째, 성과로 말하는 <근속 2년에 1년>, <소취하비 50만원 추가와 특별격려금 500만원>, <채용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공정배치>. <해고자 신규채용 시 해고기간 근속을 인정>은 좋아진 것이 아니라 8.18 기준으로 2012년에 입사자를 기준으로 맞춘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재직자에게만 특별2호봉을 승급했기 때문에 2016년 입사자는 2호봉, 2017년 입사는 더 큰 차이가 난다.

대략 내 입사일(2002년 3월 14일)을 기준으로 각 년 입사에 따른 호봉적용을 정리해봤다.

		호봉 계산	2017년 4월 기준
법원 판결 적용 입사		입사 3호봉+근속 13년(26호봉)+2014년 임단투 특별승급호봉(2호봉)	31호봉
8.18합의 적용	2012년 입사	입사3호봉 + 경력우대 3년(6호봉) + 근속5년(10호봉) + 2014년 임단투 특별승급호봉(2호봉)	21호봉
	2013년 입사	입사 3호봉+경력우대 3년(6호봉)+근속 4년(8호봉)+2014년 임단투 특별승급호봉(2호봉)	19호봉
	2014년 입사	입사 3호봉+경력우대 3년(6호봉)+근속 3년(6호봉)+특별승급호봉(2호봉)	17호봉
	2015년 입사	입사 3호봉+경력우대 4년(8호봉)+근속 2년(4호봉)	15호봉
9.12합의 적용	2016년 입사	입사 3호봉+경력우대 7년(14호봉)+근속 1년(2호봉)	19호봉
	2017년 입사	입사 3호봉+경력우대 8년(16년)	19호봉

 문제는 기본급. 호봉차이만이 아니다.

 근속에 따라 적용받는 것이 7개(기본급, 근속수당, 년차유급휴가, 자녀학자금, 차량D/C, 경조금, 장기금속자 예우)로 제안된다는 것이다. 8.18 합의도 동일하게 7가지만 적용했다. 결국 근속에 따라 각종 처우를 소급적용받지 못하면 온존한 근속인정이 아니다. 예들들어 주간연속2교대 수당 등 경력을 인정받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수당인데 받지 못한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시성과급 차액이 매년 100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2016년부터 채용된 하청노동자들에게만 지급되는 500만원이 얼마나 적은 액수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2015년 입사자까지는 8.18을 적용하고, 2016년 이후 입사자부터 이번 합의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철폐해야할 파견법 기준보다 경력을 반만 인정하고, 550만원을 주는 조건으로 이후 처우에 대해 어떠한 것도 제기하지 말라고 한다. 말이 되는 것인가?

1. 적용대상 : 2012년 7월 말 이전 직접생산 하도급업체에 입사한 자로서 ‘16년 1월 1일 이후 특별교섭을 통해 현대자동차(주)에 입사한 자. 단, 제반 소송제기자에 대하여는 소송취하를 전례로 하고, 향후 재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며, 개별 소송자의 판결에 따른 추가 요구를 하지 않는다.

2015.9.12. 기능인력 우대방안 별도 합의서

그리고 이것도 중요한 문제인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투쟁에 함께 결합했던 정규직 동지들과 당시 금속노조 단협 국장이었던 박점규 동지에 대한 손해배상은 마무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합의를 지켜보며, 내가 왜 이 투쟁에 함께 했을까를 고민할 동지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비정규직 투쟁에 결합하겠는가?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쓴 것 자체가 우리 투쟁을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는 치욕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투쟁한 동지들의 문제에 대해 눈감는 우리의 모습이 참 안쓰럽다. 강호에 의리가 사라진지 오래라서 그럴까? 아니면 긴병에 효자 없듯 긴 투쟁에 동지가 없어서 그럴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오늘(14일) 14시부터 본 교섭이 열린다. 본 교섭에서 잠정합의하고, 15일 금속노조 중집에서 잠정합의 승인을 거쳐, 조합원 총회를 할 계획이다. 과거 8.18이 겪었던 형식적 문제를 완전히 보완해서 완벽하게 마무리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이게 마무리 될까? 아직 10년을 싸운 지회 조합원들이 있고, 이 투쟁에 자신의 많은 것을 걸고 싸우려는 동지들이 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어쩔 수 없어 울었던 그 많은 눈물들이 아마 우리가 최소한 지키고자 하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당연히 이 합의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에 이렇게 비판했던 내용들이 있게 한 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지회장과도 친하고, 지회 임상집들과도 친하다. 이 동지들과 많은 이야기 했고, 많은 고민을 했다. 지지를 했고, 마지막까지 믿고 의지했다. 어쩌면 나는 이 합의를 비판하거나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글을 쓴 이유는 최소한 이 합의가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 알려주고 싶어서다. 수많이 얘기했던 지회 임상집 동지들에게 나를 포함한 우리가 한 짓이 정말로 어떤 짓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을 책임지려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얘기할 것이다. 많은 동지들게 죄송하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한다.

<출처> 최병승 블로그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LeIx&articleno=7552122&maxNo=7552122&minNo=7552113&maxDt=20150914132307&minDt=20150804124833&maxListNo=0&minListNo=0&maxListDt=&minListDt=&currentPage=1&beforePage=1&category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