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2. 1940년대3. 1950년대4. 1960년대5. 1970년대6. 1980년대7. 1990년대8. 2000년대9. 2010년대
1. 개요[편집]
6.25 전쟁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을 겨냥해 일으킨 각종 도발 및 교전 목록. 군인의 경우 '정신전력'이라는 이름 하에 각 연도별 굵직한 사건들을 외워야 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도발의 특징을 살펴보면 80년대까지는 주로 공비나 간첩 침투가 절대적이었다면 90년대 이후로는 핵(核)이나 미사일, NLL(서해북방한계선) 관련 도발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 북한의 대남첩보원 발각횟수 : 5,500여 회 (1953년~1980년) (1.7일당 1회꼴)
- 한국군·경찰에게 잡히거나 사살된 북한측 공작원 및 무장공비 : 2,973명 (1953년~1980년) (3.3일에 1명꼴)[1]
2. 1940년대[편집]
1945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혼란한 해방공간의 상황은 곧 남북교전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정리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남조선 반동들을 맛깔나게 후려치면 우루루 허물어지겠지?" 라고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국지전을 감행했다. 훗날 이러한 상황은 한국전쟁 연구가들에게 교전확대설의 떡밥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교전확대설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교전이 확대된 것이 북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남침으로 확대된 것. 이러한 일련의 교전들은 사실 북한이 신생 조선인민군의 교리와 전투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부단한 시도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교전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신문지상에 안 실린 것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1948년 이후부터는 남한에 정치적인 침투를 위해 공작원을 보내기 시작한다.
- 영월발전소 폭파기도(1948. 11. 26)
- 서부전선 교전(1948. 12. 2)
- 개성 인근 교전(1949. 2. 6)
- 개성 내습 사건(1949. 5. 4)[2]
- 포천 전투(1949. 6. 12)
- 옹진 은파산 전투(1949. 5 .21~1949.11.15)
- 춘천 682고지 전투(1949. 8. 6∼ 8. 20)
3. 1950년대[편집]
1950년대 초반에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거짓으로 귀순한 간첩들이 정치적인 침투를 시도했으며 6. 25 전쟁이 끝난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자 정보 수집과 체제 교란을 위해 간첩을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남파 공작원이 일으킨 납북 사건과 월북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 성시백 간첩 사건(1950)
- 김수임 간첩 사건(1950. 4)
- 박정호 간첩 사건(1953. 5~1957. 10. 18)
- 정국은 간첩 사건(1953. 8. 31)
- 풍세면 무장간첩 사건(1954. 8. 24)
- 김정제 간첩 사건(1957. 8)
- 박상혁 간첩 사건(1957. 9)
- 창랑호 납북 사건(1958. 2. 16)
4. 1960년대[편집]
1960년대 후반은 무장공비에 의한 침투와 교전이 잦았던 시기이다. 7.4남북 공동성명 직전 김일성이 이후락에게 1.21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거 우리 군 내부의 극렬분자들이 저지른 짓이다. 나는 진짜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3] 당시 교전의 원인과 남북관계를 알 수 있는 약간의 실마리인 셈.
- 진주 덕의마을 무장공비 침투사건(1966. 5. 17)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1967. 1. 19)
- 중부전선 교전(1967. 4. 12)
- 격렬비열도 간첩선 격침 사건(1967. 4. 17)
- 화천군 비무장지대 침투사건(1967. 04. 12)[4]
- 서부전선 미군막사 폭파사건(1967. 4. 22)
- 강릉 고단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1967. 5. 21)
- 연평도 근해 어선포격사건(1967. 5. 27)
- 대성동 미군트럭 기습사건(1967. 8. 7)
- 서부전선 군용트럭 기습사건(1967. 8. 10)
- 판문점 미군막사 기습사건(1967. 8. 28)
- 경원선 초성리역 폭탄 테러 사건(1967. 9. 5)
- 경의선 운정역 폭 탄테러 사건(1967. 9. 13)
- 1.21사태(1968. 1. 21)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1968. 1. 23)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1968. 11. 2)
- 주문진 무장간첩사건(1969. 3. 16)
- EC-121 격추 사건(1969. 4. 15)
- 1차 흑산도 간첩선 격침 사건(1969. 6. 9)
- 2차 흑산도 간첩선 격침 사건(1969. 10. 23)
-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1969. 12. 11)
- 해군 방송선 피랍 사건(1970. 6. 5)
5. 1970년대[편집]
1970년부터는 화전양면전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불리한 상황에서는 대화를 주선하는 한편, 비무장지대를 은밀히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굴착했다. 반대로 유리한 상황에서 무력을 동원했다.
- 해군 방송정 I-2 납북 사건(1970.6.5)
- 현충문 폭파 미수 사건(1970. 6. 22)
-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1971. 1. 23)
- 소흑산도 근해 간첩선 격침사건(1971. 6. 1)
- 철원군 비무장지대 총격사건(1973 .03. 07)[5]
- 추자도 무장공비 침투사건(1974. 5. 20)
- 해경 863경비함 격침 사건(1974. 6. 28)
-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1974. 8. 15)
- 휴전선 남침용 땅굴 발견 사건(1974. 11. 5 등 1990년까지 총 4차례)
- 헨더슨 소령 사건(1975. 6. 30)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 8. 18)
- 광천지구 무장간첩 침투사건(1978. 11. 4)
-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1978. 1. 14, 1978. 7. 19 순차적으로 납치)
6. 1980년대[편집]
1980년대에는 주로 테러를 이용한 도발을 시행했는데, 범위를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제3국에서 실행해 테러의 주체를 알지 못하게 위장하려고 했다.
- 필승교 무장공비 침투사건(1981. 6. 29.)
- SR-71 정찰기 피격 사건(1981. 8. 26.)
- 저진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1982. 5. 15.)
- 임월교 무장공비 침투사건(1983. 6. 19.)
- 월성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1983. 8. 4.)
- 독도 근해 간첩선 격침 사건(1983. 8. 13.)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1983. 10. 9)
- 다대포 침투 무장공비 매복 생포 작전(1983. 12. 3.)
-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사건(폭탄 투척 사건)(1983. 9. 22.) - 체포된 공비 진충남과 이상규의 증언에 따른 발표.
- 청사포 간첩선 격침 사건(1985. 10. 19.)
-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1986. 9. 14.)
-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1987. 11. 29)
7. 1990년대[편집]
1990년대에는 국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확대하자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여 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화전양면전술을 구사했으며, 오히려 1980년보다도 침투 횟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 은하계곡 무장공비 침투사건(1992. 5. 22.)[6]
-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건(1995. 10. 17.)
- 부여 간첩 사건(1995. 10. 24.)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1996. 9. 18)
- 철원 GP 교전(1997. 7. 16.)[7]
- 망명자 이한영 암살 사건(1997.2.15)
-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1997. 10)
- 속초 앞바다 무장공비 침투 기도사건(1998. 6. 22)
- 동해 무장공비 사체 발견 사건(1998. 7. 12.)
- 강화도해안 간첩선 침투 기도사건(1998. 11. 19.)
- 여수해안 간첩선 격침 사건(1998. 12. 17.)
- 제1연평해전(1999. 6. 15)
8. 2000년대[편집]
2000년대에는 남북정상회담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이용해 핵실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특수부대, 수중전 등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 2001.9.19∼20 북한군 철원군 DMZ서 MDL 월경(아군 경고사격)
- 2001.11.27 북한군 파주군 장파리 DMZ서 아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 2002.6.29 북 경비정 NLL침범, 제2연평해전 발생
- 2003.1.10 북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 2003.2.20 북 미그-29기 1대 연평도 NLL 13㎞ 남하(아군 전투기 대응출격)
- 2003.7.17 북한군, 경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아군 경고사격)
- 2003.10.30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경고사격)
- 2004.7.14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함포사격)
- 2004.10.10 북 잠수함 동해침투 첩보(아군 폭뢰 투하)
- 2004.10.26 연천군 GOP 철책선 2곳 절단
- 2004.11.1 북 경비정 3척, 서해 소청도 동방 6.5 마일 및 연평도 서방 25마일 해상 NLL 월선, 해군 경고사격
- 2005.2.10 북, 핵무기 보유 선언
- 2005.5.11 북 영변 5MW 원자로에서 8000개의 폐연료봉 인출 작업 완료 발표
- 2006.7.5 북,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 미사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서 시험 발사 실시.
- 2006.10.9 북, 제1차 핵실험 강행
- 2008.7.11 박왕자 씨 피살사건 : 사실 이것은 윗줄의 2006년 미사일이나 핵실험보다도 훨씬 큰 전환점이다. 남북관계 경색의 시작점은 이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며 2015년 현재도 그대로다. 민간인 사망이니까! 그래서 굵은 글씨까지 쳤다.
- 2009.11.11 대청해전 발생.
9. 2010년대[편집]
2010년대에는 북한에서 3대 세습 체제가 진행되어 강성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가시적인 성과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기습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감행하거나 간접적인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 천안함 피격사건(2010. 3. 26)
- 연평도 포격 사태(2010. 11. 23)
-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협박(2011~)
- 연평도 해상 포격[8]
- 최고존엄 모욕 시위(2012년-)[9][10][11]
- GPS 교란(2012년 4월~5월 말)[12]
- 3차 핵실험 감행(2013. 2. 12)(#) - 규모 4.9~5.0급 인공지진이 발생했고 북이 중, 미에 전날 통보했다고 하며 국방부는 대략 10kt급으로 보고 있다.
-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 2014년 다수의 탄도미사일, 방사포 사격
- 2014년 3월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 어업 지도선 2척 NLL 침범[13]
- 2014년 5월 22일 연평도 인근 해상 초계 중이던 유도탄고속함 홍시욱함에 대한 북한 해안포의 협차 사격
- 2014년 6월 귀순현판 탈취사건
6월 19일 무장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경기도 파주에 있던 귀순벨을 손상시키고 귀순안내 현판을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도장 깨기 말 그대로 북한군이 우리를 농락한 셈. 게다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질타가 쏟아졌었다.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넘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밑의 대북전단일 이후 넘어오는 대로 경고사격을 하고 있는 중. -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2014. 10. 10)
- 북한군 10여명 군사분계선 침범(2015. 7. 11)
-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2015.08.04)
- 서부전선 포격 사건(201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