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성전이 주목받는 이유
에스겔 성전은 종말에 세워지며 성도들이 들어가야 할 곳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어디인지, 누가 들어가는지, 어떻게 들어가는지, 성전의 식양이 가리키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인봉한 책처럼 감추어져 있었다. 예수님 이후로 지금까지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히브리 원문에 근거하여 완벽하게 밝혀낸 사람이나 저서는 없다. 구속사 시리즈 제11권에서는 에스겔 성전을 인류 구원 역사, 곧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한 내용이 소개될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 계시를 보여준 시기
BC 573년 정월 10일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으로 잡혀온 지 25년째 되는 해에 성전의 계시를 받는다(에스겔 40:1). 에스겔 선지자는 제2차 바벨론 포로(BC 597년)로 잡혀왔다. 제1차 바벨론 포로(BC 605년)로 왔던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포로생활 33년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소망의 등불이 꺼졌던 때이다.
에스겔 성전이 세워질 장소
지극히 높은 산, 거룩한 곳, 세상의 중앙이라고 에스겔서는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이스라엘의 가장 높은 산으로 데리고 와서 마지막 성전 지을 장소를 보여 주셨다
(에스겔 40:1-2). 이사야 선지자도 마지막 날이 올 때 세워질 여호와의 성전의 산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고 예언했다(이사야 2:2). 이는 말일에 예수님이 임재하실 때 세워질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있으며, 큰 임금의 성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마태복음 5:35).
에스겔 성전의 계시를 보여준 목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거룩한 성전 제도와 설계도, 출입하는 것, 모든 규례와 법도를 알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지은 죄를 부끄럽게 하여 회개시키는 목적이다(에스겔 43:10-11). 에스겔 성전은 죄가 침범할 수 없도록 지극히 높고 거룩한 곳에 세워진다. 마지막 날에 죄를 회개한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에스겔 성전을 쉽게 이해하려면
담(혹은 벽), 문, 방, 창, 현관을 잘 구분해야 한다. 에스겔 성전은 전체가 담과 문과 방, 창과 현관으로 가득 차 있다. 담은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완전히 구분한다(에스겔 42:20). 문은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하는 일을 철저히 통제한다. 방은 맡은바 사명 완수를 위한 거룩한 장소이다.
‘창’은 환기, 빛을 받기 위한 곳,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통로이다. 또한 안과 밖의 차단 역할을 한다(닫힌 창, 에스겔 40:16).
현관은 원어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종류가 기록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현관(에스겔 40:7-8)이나 기둥들로 이루어진 지붕 덮힌 회랑(에스겔 40:30), 혹은 기둥 자체를 가리킨다. 에스겔 40장 14절에서 히브리 원문은 ‘기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관으로 잘못 번역되었다. ‘20척’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쉿심 암마’는 ‘60척’(KJV)이다. 그런데 현관 너비가 60척(31.92미터)이나 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20척’(10.64미터)이라고 인위적으로 고치고 ‘광이(너비)’를 삽입했다.
에스겔 성전의 담은 속된 것은 통과시키지 않는다. 회개 없이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각 방의 역할과 각 문의 역할과 각 방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역은 뚜렷하게 성소와 지성소에 집중되어 있다.
에스겔서의 구조
에스겔서는 1장 1절부터 48장 35절까지 1,273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에스겔서는 1,273구절 가운데 한 마디라도 빠지면, 전체가 무너질 만큼 매우 완벽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에스겔 선지자가 소명을 받을 때 하늘이 열렸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순간 하늘이 열렸다. 이때가 BC 593년 에스겔 선지자 30세 때다. 동서남북 사방이 다 막혀 있는 암울한 현실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이스라엘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다는 말씀이다. 다 망해 버린 민족을 일으켜서 다시 시작하신다는 놀라운 섭리를 나타낸 것이다. 성경에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큰 징조로서 하늘이 열리는 역사가 있었다. 하늘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 열렸으며, 특히 때가 찬 경륜을 따라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이 의미심장하다. 이는 새 성전에 들어갈 종말에 사는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 인간의 생각으로 절망과 낙담 속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지라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하늘 문을 열어 주실 때, 보잘것없는 우리 자신을 다시 들어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는 교훈을 준다. 하늘의 개폐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에 달렸으며(열왕기상 17:1), 하나님은 하늘의 역사를 붙잡고 계시는 주권자이다. 주님 말씀과도 같이, 하늘에서 뜻이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겠기 때문이다(마태복음 6:10).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성도에게 큰 소망의 빛줄기요, 유일한 기쁨의 통로요, 하나뿐인 위로자요, 생명 양식이 된다.
※ 성경에서 하늘이 열리는 순간
이스라엘의 죄악과 에스겔 성전을 통한 회복의 역사
1)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의 북향(北向)한 문에 우상을 세우는 악을 행했다(에스겔 8장). 하나님은 더 이상 성전에 머물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 안(에스겔 10:4) → 성전 문지방(10:18) → 동문(10:19) → 동편 산(11:23)으로 점점 떠나가게 된다. 우상 숭배의 죄가 하나님이 떠나는 것을 자초했고, 결국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했다.
2) 에스겔 성전을 통한 회복의 역사
하지만 회개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복됨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동편(에스겔 43:2) → 동문(43:4) → 마침내 성전에 가득하게 된다(43:5). 성읍 동편에 머물러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에스겔 성전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역사다. 에스겔 선지자는 새 성전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고 소망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새로운 성전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예배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 땅에서 신령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시작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 때 종말에 에스겔 성전에 들어갈 자격자가 된다.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
에스겔 성전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실제로 이 땅에 한 번도 지어진 적이 없다.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은 주님이 재림할 때 변화되는 사람, 거듭난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네모 반듯한 에스겔 성전
1) 동서남북 사방이 완전히 똑같은 정방형(正方形)의 구조로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공의를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증거하고 있다.
2) 예수님께서 만인간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신 속죄 사역이 모든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구속의 섭리를 가르쳐 준다. 인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높은 사람과 천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차별하고 서로 다르게 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우리 마음도 하나님처럼 네모 반듯해져야 한다. 차별하지 말고, 눈 흘기지 말고, 길고 짧은 것이 없어야 한다.
3) 에스겔 성전은 악하거나 속된 것이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는 완전 보호의 성전이다.
※ 네모 반듯한 에스겔 성전의 치수(길이×너비)가 동일하여 정방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
※ 에스겔 성전을 척량한 단위인 ‘장대’는 히브리어 ‘카네’로 갈대, 지팡이를 뜻한다. 영어성경에서는 rod(지팡이)나 reed(갈대)로 번역됐다. 히브리어 ‘카네’는 헬라어(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로는 ‘카논’인데 ‘자, 표준, 규례, 경계’의 의미이다. 즉, 측량의 도구는 성도의 규례와 법도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현대 영어로도 그대로 이어져 ‘canon’은 ‘규범, 계율, 성경의 정전(正典)’을 뜻하며 ‘cane’은 ‘지팡이’라는 뜻이다.
거룩하게 드릴 땅을 나누는 역사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지는 거룩한 땅의 장과 광이 모두 25,000척이고, 이 땅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땅을 받은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공통점은 성전에서 수종 드는 일이었다.
에스겔 성전 ‘척량’의 의미는?
에스겔 성전의 척량은 곳곳마다 치수가 정확하다. 에스겔 성전에 나오는 독특한 단어가 ‘척량(尺量)’이다. ‘척량’은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로서 종말적 심판과 연관된 것이다. 이는 이전의 성전과 성막 역사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척량하고 죄를 깨달아 부끄러워하고 회개할 때 그 사람에게만 말씀을 주라는 것이다. 말씀을 주어도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행동이 없는 자들, 하나님 없는 생활을 하는 자는 마지막 때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에스겔 성전도 볼 수 없다. 우리도 속사람과 겉사람이 모자람이 없이 하나님의 척량에 합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에스겔 성전은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상(vision)을 통해 속속들이 모습을 보이시고 곳곳의 치수를 직접 척량하여 그 정확한 치수를 세밀하게 알려 주셨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에게 처음 이상을 보여 주실 때부터 ‘지으라’는 말씀은 없었으며, 잘 듣고 보고 ‘백성들에게 모두 고하라’는 명령만 있었다(에스겔 40:4). 이처럼 실제로 지어진 적이 없는 성전이어서 ‘이 땅에 주소 없는 성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 2013년 1월 23일 수요예배 설교 ‘종말 성도에게 주시는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2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설교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 주신 마지막 성전’과 2013년 2월 24일 주일 2부 예배 설교 ‘왜 척량했는가? 그리고 각 집회마다 에스겔 성전에 대해 증거된 말씀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출처: 대한 에스라 성서 연구원 글쓴이: 장기용(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