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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건축하자
2: 11-20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일에
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더라
14. 앞으로 행하여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 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 왔으나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
17.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18.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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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는 원래 러시아가 모피 공급을 위해 확보한 땅이었는데 모피 산업이 시들해지자 돈이 궁해진 러시아는 이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려고 제안을 합니다. 남북전쟁 직후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 대통령 때에 국무장관이었던 William Seward는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가운데 의원들을 설득했고 단 한 표 차이로 알래스카 매입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리고 1867년, 미국은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입합니다.
이 거래의 결과, 소련 대표단은 쓸모없는 땅을 비싼 값에 판 공로로 훈장 및 상금까지 받은 반면에 미국의 국무장관은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이런 Seward 장관의 행동에 '알래스카는 Seward의 아이스박스'라고 놀려댔으며 실패한 거래를 일컬어 'Seward의 멍청함(Seward's foll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였습니다.
알래스카 매입을 성사시킨 결과로 혹독한 놀림감이 되었던 탓인지 Seward 국무장관은 그로부터 5년 뒤인 1872년에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후 25년 뒤, 알래스카에서 우연히 금광이 발견되고 또한 무궁무진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됩니다.
그러자 그 때까지 놀림감이 되었던 Seward 장관은 일약 '꿈의 사람'으로 바뀌어 불리며 미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알래스카가 전략적 요충지로 변하면서 알래스카를 재인식을 하게 되었으며 1959년 1월 3일 알래스카는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안목과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추진력은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교회부지에 대한 에스크로가 끝나고 교회당으로 사용할 건물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볼 때 결코 만만한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단지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온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믿음을 표현하는 기회가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영력과 능력을 겸비한 느헤미야를 성경을 통해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과연 그 약속대로 주전 5세기 경 새로운 강대국인 메데 바사 제국의 등장과 함께 유대 백성들은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의 귀환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스룹바벨의 인도로 1차 귀환을 했으며 (주전 536), 그로부터 약 80년 후에 에스라의 인도로 2차 귀환을 했으며 (주전 457), 13년 후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오게 됩니다.
그러나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정착을 못마땅해 하고 방해하듯이 그 당시에도 이미 가나안에 정착하고 있던 이방인들의 거센 저항이 계속되었습니다.
무너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을 날마다 보아야 하는 예루살렘 주민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무너진 성벽을 통하여 언제 대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소망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유대인들을 일으켜 성벽을 재건하고 더 나아가 영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느헤미야의 사명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문제 해결에 관한 지혜를 얻으려고 합니다.
1) 신중하게 일을 추진합니다.
예루살렘은 이방 땅에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한 것처럼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대하여 늘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루는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거하고 있을 때 그의 형제 하나니를 비롯한 두어 사람이 예루살렘을 다녀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알려줍니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고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심하게 고생을 당한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황폐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느헤미야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하십니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올 수 있는 통행허가를 받고 성벽재건에 필요한 자재사용을 허락받습니다.
게다가 왕의 호의로 왕의 친위대와 함께 예루살렘에 안전하게 도착합니다.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느헤미야가 나타났다는 것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예루살렘 인근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가 왕의 공문을 가지고 친위대와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엇인가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것 같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도착한 지 삼일이 지나도록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알리는 거창한 환영행사도 갖지 않았습니다.
오랜 여행에 쌓인 피로를 회복하느라 푹 쉬었습니까?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가 외국인으로서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는 술관원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을 것이요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즉 성벽 재건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정찰하기 전에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찰 후에도 자기의 동정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룹바벨이 성전을 건축하려 했을 때는 주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반대가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예루살렘 안에 살면서 유대인들과 결탁되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들과 내통하고 있었는데 아직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자신의 입장을 섣불리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느헤미야가 겁을 집어 먹고 벌벌 떨지는 않았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은 리더의 당연한 책임입니다.
느헤미야는 아는 것을 다 말하지 않고 느낀 것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루려고 신중하게 때를 기다립니다.
2) 철저하게 상황을 파악합니다.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이 쉬거나 잠든 밤에도 준비하고 또 준비합니다.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더가 내리는 섣부른 결정이나 행동은 커다란 낭패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골방에서 기도만하고 책상에서 계획만 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무너진 성벽 재건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먼저 그 상태를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잠든 밤에 두어 사람만 데리고 성을 돌아봅니다. 서쪽의 골짜기 문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가서 용의 우물이라는 곳을 지나 분문으로 가면서 무너진 성벽과 불에 타 버린 성문들을 일일이 조사합니다.
예루살렘의 지명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느헤미야가 성을 아주 세밀하게 조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나귀를 타고 가다가 성벽이 심하게 무너져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나귀에서 내려 기드론 골짜기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성벽을 조사한 다음 오던 길을 되돌아 골짜기 문을 통해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컴컴한 밤에 횃불을 들고 성벽의 잔해를 헤치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 사이로 헤치고 다니면서 무너지고 불타버린 것들을 바라보는 느헤미야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른 치유책을 찾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구상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것입니다.
3) 열정적으로 동기를 부여합니다.
리더의 역량은 그가 가진 비전을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어떻게 잘 나누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 비전을 잘 이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 재건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셨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이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나름대로 계획도 있습니다.
이일을 추진하려는 열정도 있습니다.
문제는 함께 일할 유대인들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저 총독의 권위를 내세우며 밀어붙인다고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당면한 문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성벽 재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성을 쌓는 일은 너무나도 방대하였기에 한 두 사람이 움직인다고 될 일이 아님을 느헤미야는 잘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철저하게 현장을 답사하고 계획을 세운 후 백성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성벽 재건 계획을 말하며 그들의 협조를 구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벽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고 그 후에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재건하려 하였지만 유대인들이 회복되는 것을 경계한 주변 족속들이 끈질기게 방해하였습니다.
에스라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소문을 올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읍과 성벽이 건축되면 페르시아 제국에 커다란 손해를 줄 것이니 통촉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왕이 성벽재건을 그치도록 조서를 내리니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성벽 없는 성읍에서 불안하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전 재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먼저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보도록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곤경은 너희 눈에 보는 바와 같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성문은 불에 탔다. 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자 그래서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Let us start rebuilding. 예루살렘 성을 건축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다시는 수치를 당하기 않기 위해서. 그 당시에 성은 백성을 지키는 수단이요 국가 존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성벽을 다시 짓자고 한 것은 나라를 바로 세우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을 보다 설득력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왕을 언급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기를 어떻게 자기를 붙드셨는지 간증을 합니다.
자기가 예루살렘에 온 것 자체가 기적이고 하나님께서 도우신 결과라고 합니다. 더구나 왕도 이 프로젝트에 호의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페르시아 왕도 이 사역을 돕는다고 하니 예루살렘 사람들이 비로소 힘을 얻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체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용기를 주는 것을 봅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너무 재다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진하다가 실패했을 최악의 경우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그거 안 돼, 왕년에 다 해 보았어. 하면서 자기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도 못하도록 낙심시킵니다.
만일 보통 사람이 와서 성벽을 다시 짓자고 하였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왕궁에서 어떤 친구가 하나 와서 성벽을 다시 짓자 한다구? 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아니 우리가 이거 한두 번 해 보았나. 그럴 때마다 번번이 대적들의 방해로 좌절되었어. 공연히 일만 만들지 말고 잠잠히 있자. 그런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들은 느헤미야에게서 그동안 보아오던 총독이나 지도자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의 도전을 들으면서 그들도 마음이 뜨거워지며, 오랜 동안 잊어왔던 선택된 백성들로서의 정체성을 깨달으며 성벽 재건이라는 사명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을 확신합니다.
무기력한 삶을 살아오던 백성들이 ‘우리도 해보자’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모든 거민들이 한 마음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하게 됩니다.
4) 담대하게 위협에 대처합니다.
일을 하다가 언제 실망을 많이 합니까?
하려고 하는 일이 너무 초라하게 보일 때입니다.
혹은 참여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을 때입니다.
혹은 참여하지도 않는 사람이 곁에서 이러쿵저러쿵 비판을 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입니다.
성벽 재건을 하겠다고 의견을 모으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반대하기 시작합니다. ‘네까짓 것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조롱을 합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왕정제도에서 가장 위협적인 말을 합니다
. 그런데 느헤미야는 전혀 위축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종인 우리들은 중건을 시작할 것이다. 예루살렘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런 지분도 없고 주장할 권리도 명분도 없다’면서 그들의 위협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위기를 맞을지라도 그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일을 원하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방해는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와 유혹을 하던 마귀가 성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반대하는 사람을 무서워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본문을 통하여 배우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기도가 최상의 방책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이라는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많았습니다. 정치적인 여건, 지리적인 여건, 경제적인 여건, 어느 것을 보아도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기도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누구를 찾아가거나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경험과 직위와 권력을 의지하지 않고 먼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넉 달 동안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나아가 금식함으로써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추구했습니다.
술을 따르면서도 근심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왕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왕으로부터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입니까?
그 짧은 동안에도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왕후도 함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느헤미야는 그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무하고 그 성문에 불에 타버렸음을 말하고 자신으로 하여금 그 성을 중건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왕은 기꺼이 그 간청을 승낙합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방 땅에 있으면서도 여호와 앞에 경건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무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아닥사스다 왕이 순순히 그의 부탁을 들어준 비결은 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의 반대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52일이란 짧은 기간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렸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지혜를 주셨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문제가 없을 수 없으나 그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믿음을 동반한 기도입니다. 지속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간절함으로 진실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감각과 더불어 일을 수행하는 추진력을 가진 균형 있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들과 더불어 일하기 원하십니다. 느헤미야에게 은혜를 베푸신 좋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느헤미야처럼 항상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2) 목회자에게 헌신된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에스라는 위대한 성경학자요 제사장입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와서 14년 동안 애를 썼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 때문에 제대로 부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가 와서 에스라를 도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고 예루살렘을 안정되게 하여 에스라로 하여금 마음 놓고 말씀을 전하게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목회자에게는 헌신된 평신도 리더들이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분명한 신앙관을 가지고 자신이 먼저 헌신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습니다.
교회의 일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힘을 합쳐서 해 나가야 합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세우신 목적은 평신도를 온전케 훈련시키고 양육을 시킴으로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를 목회자라 한다면 느헤미야는 믿음이 좋은 평신도 리더라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비전을 가지고 나가면 리더들이 뒤에서 받쳐주며, 아름다운 헌신의 본을 보이며 교우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나고 주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집니다.
3) 거룩한 백성으로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출애굽이후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교훈이 무엇입니까? 먹을 양식이 없거나 마실 물이 없어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들이 깨달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보다 강하시다, 하나님을 붙들 때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앞뒤좌우가 막힌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는 자들에게는 위로 길이 열려져 있기에 믿음으로 기도할 때 길이 열립니다.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소망의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
성전이나 성벽의 재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한 백성으로의 회복입니다. 외적 부흥을 넘어 내적 부흥을 있어야 하며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를 돌아보십시다.
성령의 전인 내게 무너진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나의 가정, 교회, 내가 속한 삶의 현장에서 무너진 부분, 불탄 부분, 중건해야 할 부분, 개혁될 부분은 없습니까?
사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을 다 세우는 자, 개혁하는 자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무너지고 황폐해지고 mess-up 된 것을 우리를 통하여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불황의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많은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바울이 가진 자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힘들지만 어렵지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여주기 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새교회당 마련의 project가 있습니다. 지난 8년은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열매를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겠다는 거룩한 부담을 가질 뿐 아니라 맡겨진 사명을 제대로 끝까지 해보겠다는 열정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짓자” 외쳤던 유대인들처럼 모든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보여드리기 위해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엄마 아빠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도 기도하며 힘으로 모아 하나님의 집을 마련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합니다.
새 교회당을 마련하면서 성도들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는 간증을 갖기 원합니다.
기도로 시작하였고 기도로 마쳤다는 고백을 하기 원합니다.
온 교우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귀한 역사를 이루었다고 간증하기 원합니다.
건축을 하는 동안에 각 가정에 역사한 ‘우리만의 이야기’를 갖기 원합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원합니다.
느헤미야는 신중하게 성벽재건을 준비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감동 주실 때까지 때를 기다립니다. 철저한 현장답사를 합니다. 그리고 말을 아낍니다.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동기를 부여합니다.
범사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성도들이 느헤미야와 같이 비전의 사람, 기도의 사람, 열정의 사람이 되어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온전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선한 손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