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4-22
솔로몬의 대적 / 김봉수 목사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여대생이 방학이 끝나고 뉴욕에 있는 집에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밤에 차를 운전하고 갔습니다.
가다가 잠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 가지고 차를 운전합니다.
다시 고속도로를 진입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대형 트럭이 빵빵거리면서 바짝 쫓아옵니다. 거울을 통해 그 트럭 운전 기사를 보니까 아주 무섭게 생긴 흑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학생은 차의 속력을 높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트럭도 더 속력을 내서 바짝 따라옵니다.
하는 수 없이 고속도로를 빠져 나왔는데 그 트럭도 같이 빠져 나옵니다.
이제 여학생은 두려움 때문에 불이 켜 있는 주유소로 들어가서 차를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트럭도 따라서 주유소로 들어옵니다.
그 순간 그 여학생의 차 뒷문이 열리더니 어떤 남자가 쏜살같이 도망치는 것입니다.
이 트럭 운전기사는 여학생의 차 뒤칸에 남자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높은 트럭 위에서 보고, 치한으로 믿어 여학생을 도와주기 위해 경적을 울리며 뒤따라 왔던 것입니다.
여학생은 자기를 구하기 위해 뒤따라 온 사람을 오해하고 도망을 친 것을 미안해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현상이 우리 인간들에게서 종종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때로는 무관심하고, 때로는 귀찮게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운 분으로 여기고 도망을 칠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말씀을 지키고 살라>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솔로몬을 귀찮게 하거나 단순히 무서운 심판을 위해서 다가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다가오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복이었고, 평안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지키고 살라>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귀찮게 하거나 단순히 무서운 심판을 위해서 다가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진정한 복이고, 평안이 임하는 길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시절에 노라 페릭스라고 하는 기독교회 지도자가 로마 군인들의 수색대를 피해 산으로 도망을 치다가 어느 바위 틈 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수색대가 그런 정도의 굴을 못 찾을 리가 없기 때문에 페릭스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여 나의 생명을 받아 주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로마 군인들은 그 굴을 수색하지 않았습니다.
페릭스가 굴속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있는 동안 거미가 그 바위 틈 입구에 부지런히 거미줄을 쳤기 때문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거미줄이 잔뜩 쳐 있는 그 굴속에는 당연히 방금 사람이 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페릭스가 그 굴속에 들어간 후에 거미에게 명령을 내려서 쉴 틈 없이 일하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페릭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돌로 된 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로 된 문보다 더 강하다.>
오늘 우리는 솔로몬에게 곳곳에서 대적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 14절부터는 에돔 사람 하닷이 일어나서 솔로몬의 일평생동안 괴롭힌 사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3절부터는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이 일어나서 솔로몬의 일평생동안 대적이 되는 것이 나타나고 있으며,
26절부터는 솔로몬의 밑에 있던 신복 중에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이러나는 장면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열왕기상 5장 4절을 찾아봅시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무슨 말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동안에는 사방에 평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객관적으로 보면 왕으로서 더 자리가 잘 잡힌 11장에 와서 평안이 사라집니다.
주변 여러 국가들과 조약도 맺었습니다.
든든한 군사력도 갖추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제 솔로몬은 왕으로서 어느 정도 경험도 있어서 왕상 5장에서의 작은아이와 같은 왕도 아닙니다.
그런데 평안이 사라집니다.
페릭스를 통해 주어진 말이 솔로몬에게 아주 실감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돌로 된 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로 된 문보다 더 강하다.>
여러분 이것을 가슴에 새겨 두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어도 아주 쉽게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비록 무능해 보이고 아무런 가진 것이 없어도 든든히 그리고 평안히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생각대로 온갖 머리를 다 동원해서 성벽을 쌓으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새끼손가락으로도 무너뜨리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야 할 솔로몬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평안을 거두어 가십니다.
본문 14절 앞부분을 보면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라고 묘사합니다.
23절 앞부분도 보면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라고 표현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닷도 르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자기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야망이나 개인적이 복수심이 그 움직임의 원인이었습니다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대적이 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보내서 대적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 모든 대적들이 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혹은 복음 전파를 방해하려는 사탄의 책략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 같이 가는 곳마다 대적들이 득실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대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서 평안을 제하시고 일평생 대적을 두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다가 일어나는 대적은 우리에게 너무나 복된 사실입니다. 그것은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오는 대적이라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대적을 일으키도록 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또 한 가지 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은, 솔로몬을 일평생 괴롭히는 그 대적들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닷도 그렇고 르손도 그렇고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을 괴롭힐 만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적으로 일으키면 대수롭지 않았던 존재들이 무섭게 등장합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다가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는데,그 중에 개구리 재앙을 봅니다.
여러분 개구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정말 하찮은 존재 아닙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람이 개구리를 보고 피합니까? 아니면, 개구리가 사람을 보고 피합니까? 어렸을 때 개구리만 보면 잡아서 뒷다리를 쭉 빼고 구워먹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는데 그 개구리가 더 이상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무서운 존재로 바뀝니다.
이 개구리의 무서운 맛을 보고 애굽의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요엘서에도 보면 메뚜기라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메뚜기는 정말 대수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할 때 그 메뚜기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로 등장을 합니까?
남산에 올라가면 사람들이, 특히 어린아이들도 비둘기 모이를 가지고 비둘기에게 주면서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수많은 비둘기 떼가 여러분을 공격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비둘기를 감당할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갈 때에는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정말 무서운 존재도 우리를 돕는 존재로 바뀝니다.
하지만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면 계속 살아가면 개구리도 메뚜기도 우리들의 무서운 존재로 등장을 합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페릭스의 경우에는 징그럽게 생각하는 거미들이 페릭스를 도와서 구해주는 존재가 되지 않습니까?
저는 가끔 사자굴에 던져지는 다니엘을 생각해봅니다.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다니엘을 아주 곱게 굴속에 들어가도록 했겠습니까?
그냥 집어던지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에 자세히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어도 다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다니엘을 잡아먹도록 준비된 사자들이 던져지는 다니엘의 침대처럼 푹신하게 준비되어서 다친 곳이 없었다고 말입니다.
엘리야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든 이스라엘입니다.
까마귀라는 놈이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날라다 줍니다.
여러분, 자기 먹을 것 준비하기도 바쁜데 까마귀가 먹을 것을 날라다 주도록 하신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닷이나 르손 그리고 여러보암은 결코 솔로몬의 대적이 되어서 괴롭게 할만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면 우리의 대적이 될만한 것들, 우리의 평화를 깨뜨릴 것들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바라기는 우리 모든 상암의 성도들에게는 우리 주변에 있는 하찮은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도구가 되지 아니하고, 주위에 있는 아무리 사나운 것들도, 혹은 징그러운 것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 가지 더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솔로몬에게 그 대적들이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외부에서, 또는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선정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들의 가정 자체에서도 혹은 외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대적을 일으키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저는 솔로몬에게 나타나는 대적들을 보면서 단순히 두려워하자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갈 때에 무서운 대적들이 안팎에서, 그것도 정말 대수롭지 않았던 사람들이 무서운 존재로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에 무엇이 묻어있는지 바라보듯이 솔로몬에게 일어난 이 일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살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이 아니라, 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따라 살아감으로 아무리 무서운 존재들도 우리들을 돕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그 평강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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