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추억/이명철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라 해도 계속 비만 오는 게 아니라 깨끗이 씻은 듯 맑은 하늘에 별빛이 유난히 빛날 때도 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옛 여름밤의 추억들이다.
마당에 맷방석 깔고 모깃불을 놓아 줄부채로 모기를 쫓으며 할머니를 졸라 이야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던 추억이다. 오래 되었지만, 지금도 아득한 그 시절 생각하면 까닭모를 그리움과 아쉬움 같은 가슴시린 사연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 내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예닐곱 살 때쯤일 것이다.
여름밤이면 큰집 마당 맷방석에 앉아 쩌 내온 옥수수 감자 등을 먹으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곤 했다. 나는 눈치코치 없이 할머니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하시면서도 못이기는 척,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은혜를 갚은 까치 이야기며, 사냥꾼에게 죽은 백년 묵은 여우가 사냥꾼 집 막내딸로 태어나 사냥꾼의 닭이며 돼지, 소 등을 잡아먹고 사람까지 해치려 달려들자 도망가면서, 스님이 준 주머니 세 개를 차례로 던져 가시밭이 되고 강물이 되고 불바다가 되어 살아났다는 이야기,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에 올라간 남매가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님이 되고 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렴프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뒤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그해 6.25사변이 일어나 우리 가족은 큰집은 큰집대로 우리 집은 우리 집대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때 큰집에는 걸어서만 가야할 피난길이기에 빨리 걷지 못하시는 할머니 혼자만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83 세였다. 혼자 남겨 두고 피난을 떠난 아들 며느리 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본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 혼자 있는 집에 빨치산들이 불울 질렀고, 이 소식을 들은 부모님과 어른들, 누님은 위험해서 못가고 나더러 할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피난처에서 할머니한테 가려면 왕복 80 리는 족히 되었다. 그때 내 나이 아홉 살,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점심때쯤 할머니계시는 불난 큰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잿더미 옆에 쪼그리고 앉아계셨다. 다 타버리고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있을 리가 없었다.
잿더미뿐 가져올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할머니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나는 배 짜는 북통하나 남아 있기에 그걸 들고 출발하였다.
할머니의 걸음은 너무나 느렸다. 해가 긴 여름날.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어느덧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빨리 좀 가게.”란 말도 못했다.
그때 마침 빈 소달구지가 지나갔다. 나는 달구지를 끄는 아저씨께 사정했다.
“우리할머니를 좀 태워주세요.”라고. 아저씨는 순순히 태워주면서 나더러도 타라고 했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하면서 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혹시 나 때문에 할머니까지 다시 내려라 할까봐 타지 않은 것이다.
걸어가면서 어둠발이 짙어져 가기 시작했고,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돋아나고 있었다. 무섭기도 하고, 할머니 걱정도 되어 괜히 서러움에 복받쳐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할머니 모르게 울었는데, 나중에 내가 울더란 말씀을 하셨단다.
어머니와 누님이 마을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어깨를 들먹이며 우셨다.
나는 그 때 아침밥을 조금 먹고 점심은 걸은 상태에서 저녁도 시늉만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배고픈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런 상태를 달쳤고 하던가!
며칠 후 할머니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 피난하고 계시는 집으로 다시 걸어가셨다. 큰아들네 집에서 돌아가셔야 하는 것이 그 당시의 죽음의 풍습이랄까 뭐 그런 것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때 할머니께서 큰집으로 가신 후 나는 다시는 살아생전의 할머니를 봬온 기억이 없다.
할머니는 심심하면 “저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주인이 타라는데도 소달구지를 타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를 가끔 하셨다고 한다. 집안 어른들도 나를 칭찬할 일이 있으면 내가 상당히 클 때까지 그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할머니의 산소를 이장하였는데, 십년 남짓 세월뿐이 안 흘렀는데도 할머니는 작은 뼈 조각 하나와 머리카락 몇 올 뿐이었다. 그냥 흙과 영혼만 모셔다 다시 모신 것이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시던 그 모습과 나와 같이 피난길을 걸으시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하염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보다 나 어렸을 때 서러움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여름밤 이후 나는 맷방석에 앉아 하늘의 별을 헤아리거나 옛 이야기의 꽃을 피워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내 나이, 당시 할머니 나이 가까운 팔십 줄에서 생각하니 다 부질 없고 허망한 일이지만, 형체 있는 몸은 비록 늙었어도 형체 없는 추억만은 지금도 아련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어쩌면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마음을 잠시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