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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부(巨濟府) 발급, 수신처 항리(項里) 마을의 「절목(節目)」 3편 소개⑭>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는 조선후기 거제부의 「절목(節目)」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재까지 거제시에 전해오는 거제시 조선시대 「절목(節目)」은 총 15건(件)이 전해온다. 내용도 간단한 것부터 아주 긴것까지 다양하며 또한 발행처도 고을 사또, 암행어사, 말단 관리까지 다양하다. 왕조시대 최전방에 위치한 바닷가 거제도 주민들에게 펼쳐진 삶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채로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러 문중의 문서나 문집 속에서 여러 종류의 절목이 발굴될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그런고로 이번 편에는 거제도 절목의 개략적인 요지를 먼저 소개한다. 사실 전체 거제시 절목의 양이 너무 많아, 지면 관계상, 이번 편에는 항리 마을의 ‘절목(節目) 4편’ 중에 「경술년(庚戌) 1850년 4월 거제부(巨濟府) 항리각등진상구폐절목(項里各等進上捄弊節目)」, 「1854년 암행어사(暗行御史) 절목(節目)」, 「1873년 거제부(巨濟府) 오동절목(五洞節目)」 3가지 절목(節目)만 소개하겠다.[한편은 다음 편에 이어 소개]
○ [조선시대 「절목(節目)」, 조목 조항 항목] 조선시대에는 특정 정책이나 사업의 시행지침, 관청의 수세절목, 지방 사족층이 제정한 사창절목(社倉節目) 등 여러 종류의 절목이 있었다. 또한 규칙을 나열한 ‘절목(節目)’은 규칙의 조목 조항의 뜻하는 기록물인데, 사무를 인계할 때에 전하는 문서나 장부(帳簿)인 ‘중기(重記)’에 기록된 물목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록물의 유형이다. 절목은 규칙 규정 규율의 성격을 가진 용어 그대로, 조목 조항 항목을 일일이 나열하는 형식을 갖는다. 절목 외에도 비슷한 용어로 사목(事目)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는데 이 또한 항목 조목을 나열하는 방식이라는 점 외에 특정 규율 규정의 성격을 갖는 점 등에서 절목과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절목(節目)과 사목(事目)은 업무에 수시로 필요한 규정 규율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업무 활용과 참고를 위해 해당 부서에서 비치해야 하는 비치기록물의 성격을 갖는다.
한편 절목은 실록이나 문집에 나타나기도 하고, 단독으로 책자나 문서로 존재하기도 한다. 절목은 법조문의 범위에서 제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조선에서는 이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아 법전 규정과 달라지는 사례도 있다. 사안에 따라 편찬 주체도 다양하여 의정부에서 정하여 왕의 재가를 받는 것도 있고, 관청의 하급 관원이나 서리들이 자의적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절목들은 조선시대 각종 제도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덧붙여 조선시대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부터 향촌 조직의 특정 사안에 이르기까지 그 시행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규칙의 조목을 기술한 절목(節目)은 특정한 사안에 대한 시행세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정책이나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할 세부적인 실행 지침이 조목별로 기재되어 있다. 절목의 작성은 위로는 왕의 지시로부터 아래로는 지방관이나 향촌의 문중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구체적인 예로는 문과강경절목(文科講經節目), 논상절목(論賞節目), 흥학절목(興學節目), 구황절목(救荒節目), 어곽세절목(魚藿稅節目), 국휼의절목(國恤儀節目), 금양절목(禁養節目), 추쇄절목(推刷節目), 사창절목(社倉節目), 구폐절목(救弊節目), 종계절목(宗稧節目) 등이 있으며, 낱장의 문서 형태 또는 책자 형태로 작성되었다.
◉ [거제시에 전해오는 「절목(節目)」] 조선시대 특정 정책과 사업의 시행 지침 또는 규칙을 나열한 절목(節目)은 정부 사업지침, 관청 수세절목, 지방 사족층의 사창(社倉)절목 등 여러 종류의 절목이 있다. 거제시에 전해오는 절목은, 조선시대 거제부의 살림살이에 관한 「거제부 보민고 절목(巨濟府補民庫節目冊)」 4건과 제반 잡역을 부담키 위해 설치한 조목인 「무열고절목(懋悅庫節目)」 6건, 염전과 곽전의 세금 징수에 관한 「사다포(다포리)염전곽전절목(巨濟沙多浦塩藿田節目)」 1건 등이 있다. 이 중, 「사다포염전곽전절목」은, 경상도관찰사가 거제시 남부면 소다포(少多浦)의 염전과 곽전의 세금징수에 관한 새로운 절목을 만들어 시행케 한 문서다.
그리고 일운면 <구조라(항리) 고문서(古文書)>에는 4건(件)의 절목(節目)이 전하는데 거제부와 암행어사가 발급한 문건들이다. 먼저 일운면 항리 주민들을 위해 거제부(巨濟府) 지방관이 발급한 ‘진상 업무의 폐단을 고치기 위한 규정(進上捄弊節目)’인 「경술년(庚戌) 1850년 4월 거제부(巨濟府) 항리각등진상구폐절목(項里各等進上捄弊節目)」은 당시 정해진 진상(進上) 물량 외에 관청의 지방관리들이 추가로 뜯어가는 부당한 세금 때문에 주민들이 고통을 받자, 함부로 수탈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 절목이다. 그리고 「1854년 암행어사(暗行御史) 절목(節目)」은 암행어사가 지방 관청의 비리를 적발하고 그에 따른 환수금을 마을의 구휼과 공공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해 작성한 절목(節目, 시행 지침)이고, 「1873년 거제부(巨濟府) 오동절목(五洞節目)」은 다섯 마을 대표들이 모여 표류하여 정박한 왜선을 지공(支供, 음식 대접)하는 일에 대하여 합의한 문서다. 마지막으로 「1888년 거제부(巨濟府) 구조라양화망치삼동방폐절목(舊助羅楊花望峙三洞防弊節目)」은 거제도 변방 민초들이 겪었던 '조선(造船) 관련 부역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기술자들이 공권력을 빙자해 주민들을 수탈하던 관행을 금지하고, '수혜자 부담 원칙' 역가(役價, 품삵)를 받은 자가 비용을 지불함을 명확히 하여 해안가 어촌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려 한 행정 문서다.
◉ 한편 앞서 언급한 거제부 「무열고절목(懋悅庫節目)」은 조선후기 거제부의 살림살이에 관한 가계부(수입,지출)다. 1801년(순조 1)경상도 거제부(巨濟府)에서 민고(民庫)로 무열고(懋悅庫)를 설치한 뒤 1807년 사이에 마련된 여러 변통절목(變通節目)을 모은 책이다. 1801년의 「원절목(元節目)」‚ 「1803년·1804년의 절목(節目)」‚ 「1807년의 부사리폐절목(府司釐弊節目)」‚ 「순영납년분지첨가마련절목(巡營納年分紙添價磨鍊節目)」‚ 「통영저 인력가 가급절목(統營邸人役價加給節目)」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열고(懋悅庫)」는 제반 잡역을 부담하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그 중 왜공결축(倭供欠縮)으로 인한 민호백징(民戶白徵)의 입본충수(立本充數)와 나졸, 관노(羅卒·官奴) 등의 공역(公役) 미비(糜費)를 방급(防給)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 그리고 「거제부 보민고 절목책(巨濟府補民庫節目冊)」는 거제부 살림살이를 기록한 책으로, 1830년 8월에 거제부(巨濟府)에서 1824년(甲申)에 이루어진 절목(節目)을 전년도 어사의 감사를 받고서 개정하고 가입(加入)과 지출(支出) 내역을 명확히 재 규정한 절목이다. 내용은 「절목조목(節目條目)」 「1824년, 갑신절목(甲申節目)」, 「개정절목(改正節目)」, 「부기(附記)」, 「가입질(加入秩)」에 ‘매년응하질(毎年應下秩)’, ‘간년상하질(間年上下秩)’, ‘불항상하질(不恒上下秩)’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 또 거제시 남부면 「사다포(소다포,多浦)염전곽전 절목(塩藿田節目)」은 1890년 경상도 관찰사가 거제군 남부면 소다포(少多浦)의 염전과 곽전의 세금 징수에 관한 새로운 절목을 만들어 시행하게 한 문서이다.
● 「경술년(庚戌) 1850년 4월 거제부(巨濟府) 항리각등진상구폐절목(項里各等進上捄弊節目)」
이 「절목(節目)」은 1850년(철종 1년) 4월, 거제시 일운면(一運面) 항리(項里, 구조라) 등지의 주민들을 위해 거제부(巨濟府) 지방관이 발급한 ‘진상 업무의 폐단을 고치기 위한 규정(進上捄弊節目)’이다. 당시 백성들이 정해진 진상 물량 외에 관청 관리들이 추가로 뜯어가는 부당한 세금 때문에 고통받자, 이를 공식적으로 삭감하고 정해진 액수만 걷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조선후기 수산업 진상은 당시 홍합과 해삼이 주요 진상 품목이었다. 특히 섬 지역인 거제시 일운면 주민들이 농사 대신 이 해산물 채취로 세금을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문서 내용 중 '원봉수 외에 섞여 들어간 부정한 가산 수량(加數)'이라는 표현은, 중앙 정부에 바치는 정량 외에 지방 관청 아전들이나 관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에게 더 많은 양을 착취하는 가렴주구(苛斂誅求)였음을 증명한다. 1850년 당시 지방관은 백성들이 도망가는 상황(隳突)을 막기 위해 부당한 추가 징수분을 과감히 삭감하고, 이를 문서화하여 마을에 비치하게 함으로써 아전들이 함부로 수탈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게다가 삭감한 양과 실제 거둘 양을 '리(里)', '허(虚)' 단위(소수점 아래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상세히 기록한 것은, 세금 징수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이 자료는 19세기 중엽 조선의 수산물 공납 제도와 지방 행정의 모순을 해결하려 했던 구체적인 사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1) **「경술년(庚戌) 1850년 거제부(巨濟府) 항리각등진상구폐절목(項里各等進上捄弊節目)」**
일운면 항리 등 각 마을의 진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절목(규칙)을 만들어 보냅니다. 본 고을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땅에는 산이 많아, 곡식을 생산할 토지가 부족하여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직 산과 바다에서 나는 산물로 바치는 각종 진상의 수량은 다른 곳보다 많아, 거두어들일 때마다 매번 급박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약탈에 시달려 더 이상 살길이 없으니, 이를 생각하면 매우 근심스럽고 답답합니다. 이에 각종 진상 물품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실상을 파악한 후, 원래 정해진 수량(元封數) 외에 섞여 들어간 부정하고 과도한 추가 수량은 관청 용도나 아전들의 몫을 막론하고 일제히 삭감하였습니다. 조항별로 바로잡은 뒤, 매년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진상 홍합·해삼과 동지사 사행에서 요청하는 홍합·해삼을 엄격히 구별하여 뒤에 나열했습니다.
이 절목을 작성하여 각 마을에 나누어 보내니, 이것을 영구적인 법식으로 삼아 시행하십시오. 다시는 정해진 수량 외에 추가로 거두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외에 특별 사신이 요청하는 홍합과 해삼은 매년 있는 일이 아니므로 이 절목에 싣지 않으나, 감영의 지시가 내려오면 그에 따라 시행함을 알아야 합니다. 경술년(1850년) 4월 일, 사또(使) [서명]
4월분 진상 홍합:3도 3합 3작 중 [7합 4작 6리 삭감 /2도 5합 8작 4리 남김]
7월분 상주소봉 진상 홍합:3도 9합 중 [8합 6작 9리 9허 삭감 /3도 3작 1허 남김]
11월분 진상 홍합:3도 1합 중 [6합 9작 1리 3허 삭감 /2도 4합 8리 7허 남김]
정월분 진상 홍합:3도 1합 중 [6합 9작 1리 3허 삭감 /2도 4합 8리 7허 남김]
동지사 요청 홍합:1두 2합 중[2도 2합 7작 4리 6허 삭감 /7도 9합 2작 5리 4허 남김]
(사신들의 요청은 동지사의 예에 따라 시행하며, 감영의 지시가 있을 때만 거행함. 윤달 진상은 평달의 예에 따르며, 이 또한 감영의 지시에 따라 시행함)
[一運面 項里各等進上捄弊節目 爲節目成給事, 本邑四面環海, 一境多山, 穀生之土不敷, 民活之計極艱, 而惟以山海之所産, 各等進上比他數多, 當限收捧, 每致窘急, 窮民隳突, 無路堪居, 言念及此, 極爲愁㦖, 各等進上逐一査實後 元封數外 殽雜不正之加數, 並與官用色監, 而一倂削減, 逐條矯正後, 每年每等恒有應納進上紅蛤海蔘及冬至使求請紅蛤海蔘, 秩秩區別 列錄于後 成出節目, 分置各里爲去乎 以此爲恒式, 一遵施行, 無復有科外加斂之弊爲旀, 此外別等使臣求請紅蛤海蔘段, 係是不恒年擧行 故不載節目中 此則依營關知委擧行 並湏知悉宜當者. 庚戌(1850)四月 日 使〔押〕]
[四月等進上紅蛤 參刀參合參夕內 [減柒合肆夕陸里/存貳刀伍合捌夕肆里]
七月等尙州所封進上紅蛤 參刀玖合內 [減捌合陸夕玖里玖許/存參刀參夕壹許]
十一月等進上紅蛤 參刀壹合內 [減陸合玖夕壹里參許/存貳刀肆合捌里柒許]
正月等進上紅蛤 參刀壹合內 [減陸合玖夕壹里參許/存貳刀肆合捌里柒許]
冬至使求請紅蛤 壹斗貳合內 [減貳刀貳合柒夕肆里陸許/存柒刀玖合貳夕伍里肆許]
列等使臣求請段, 依冬至使例施行之, 若或有本邑輸納之知委是去等, 一依營關擧行是齊. 閏朔進上段, 依元朔例擧行之, 亦依營關知委施行是齊]
[주1] 휴돌(隳突) : 들이받아 무너뜨림. 심각하게 훼손
[주2] 가렴주구(苛斂誅求) : '가혹하게 거두고, 빼앗고 요구한다'는 뜻으로,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고,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것을 가리키는 사자성어
[주3] 일중시행(一遵施行) : 지키고 받들어 어기지 아니하고 시행함
[주4] 동지사(冬至使) : 조선시대, 매년 동짓달에 중국으로 보내던 사신
● 「갑인년(1854) 6월 암행어사(暗行御史) 절목(節目)」
이 문건은 1854년 6월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발급하고 항리(項里) 마을이 수취한 절목이다. 1854년(철종 5년) 6월, 암행어사가 지방 관청의 비리를 적발하고 그에 따른 환수금을 마을의 구휼과 공공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해 작성한 절목(節目, 시행 지침)이다. 내용인즉, 암행어사는 이 지침(절목)을 영구히 준행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문서 끝에는 암행어사와 행부사(行府使) 이복희(李宓熙)의 서명(수결)이 들어 있다. 당시 지방관의 수탈과 이를 바로잡으려는 암행어사의 행정 처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비리 적발과 환수와 시정 요구] 지난해(1853년) 서원(書員, 구실아치)들이 재해 입은 토지의 재결(災結, 재해 입은 논밭)을 속여 가로챈 액수가 90결 63부 2속에 달했다. 이에 해당 서원들을 엄히 처벌하고, 올해 결가(結價)인 1결당 18냥을 기준으로 총1,631냥 4전을 징수했다. 또 최근 3년(1851~1853년) 동안 균역청 해세(海稅, 바다 세금)를 과다하게 징수한 자들에게서 인당 100냥씩 총300냥을 환수했다. 환수된 금액은 총 1,931냥 4전이다.
○ 이어 환수금을 배분하고 구폐 대책을 세웠다. 고마청(雇馬廳)에서 억울하게 징수된 비용 50냥을 돌려주었고 땔감(柴), 콩(太), 돼지 사료(糠) 등의 비용인 702냥 3전 6분을 조세로 충당했다. 또 상(進上) 의무가 있는 산저 지역 12개 마을(山底 十二洞)의 폐단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 규모에 따라 큰 마을은 30냥, 작은 마을은 20냥씩 배분했다. 이 돈을 각 마을의 대표(頭民)에게 지급하여 본전은 보존하고 이자만 취하게 함으로써(存本取殖), 그 수익으로 마을의 공적 부담을 해결하도록 했다.
그리고 아전(서원)들이 재해 토지 세금을 가로채고, 해안 세금을 과다 징수한 비리를 암행어사가 적발하였고 비리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고 총1,931냥 가량의 돈을 환수하였다. 이 돈을 억울한 비용 변제에 쓰고, 특히 산저 12개 마을에 나누어 주어 기금(본전)을 만들어 그 이자로 마을의 공적 부담을 해결하게 하였다. 이에 이 지침을 앞으로도 계속 지킬 것을 명하였다.
2) **「갑인년(1854) 6월 암행어사 항리 절목(項里 節目)」**
암행어사가 지침(절목)을 작성하여 지급함에 있어서, 지난해 서원(書員, 구실아치) 놈들이 재해를 입은 토지의 세금(災結)을 가로채고 농간을 부린 것이 무려 90결 63부 2속에 달하니, 결정(結政, 토지 행정)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한심한 일이다.
해당 아전들을 형장으로 신문하고 엄히 가두고 나서, 올해의 결가(結價, 토지세 가격)인 1결당 18냥씩으로 계산하여 징수하니 그 합계가 1,631냥 4전이다. 또한 신해(1851), 임자(1852), 계축(1853) 3년 동안 균역청 세액 중 해세(海稅, 바다 세금)를 함부로 징수한 것 역시 매우 많으므로, 관련자들에게 각 100냥씩 형장을 쳐서 징수하니 합계가 300냥이다.
모두 합친 금액은 1,931냥 4전인데, 이 중 50냥은 고마청(雇馬廳)에서 억울하게 징수된 비용으로 내어주고, 702냥 3전 6분은 땔나무(柴), 세금용 콩(太), 겨(糠) 등의 비용으로 그 해의 조세 방납에 충당하도록 한다. 남은 금액은 진상을 바치는 각 마을(洞)과 이방·노령청(吏換奴令廳)의 폐단을 구제할 수 있도록 참작하여 분배하되, 진상을 바치는 산저(山底) 12개 마을 중 마을의 크기를 비교하여 돈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라. 큰 마을(大洞)은 30냥, 작은 마을(小洞)은 20냥씩 마을 대표(頭民)를 불러 직접 나누어 준 뒤, 본전은 보존하고 이자만 불려(存本取殖) 이를 통해 마을의 폐단을 구제하라는 뜻으로 지침을 만들어 주니, 영구히 준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갑인년(1854년) 6월 일, 암행어사 (수결), 행부사 이복희(李宓熙)(수결). (추신) 나중에 30냥을 더 보냄
[暗行御史爲節目成給事, 昨年書員輩之災結偸弄, 至爲九十結六十三負二束之多, 揆以結政萬萬寒心, 該書員等刑推嚴囚後, 依今年結價每結十八兩式徵捧則合錢爲一千六百三十一兩四錢是遣, 辛亥壬子癸丑三年均役色之海稅濫捧亦甚夥多, 故每人一百兩式刑推徵捧, 則合爲三百兩, 都合錢一千九百三十一兩四錢內, 五十兩雇馬廳寃徵捧出給, 七百二兩三錢六分柴租太殼猪糠年分租, 當年租防給是遣, 餘數則進上各洞及吏換奴令廳, 可以捄弊者, 參酌分排是如乎, 進上所納山底十二洞中, 參以洞之大小量其錢之多寡, 大洞則三十兩, 小洞則二十兩式, 招致頭民面面出給後, 存本取殖, 以此捄弊之意, 節目成給永久遵行宜當向事. 甲寅(1854)六月日 暗行御史〔押〕 行府使李〔押〕 後錢三拾兩]
[주1] 남봉(濫捧) : 수량(數量) 등을 규정(規定)에서 벗어나게 함부로 더 받음.
[주2] 징봉(徵捧) : 행정기관이 법에 따라 조세나 수수료 등을 국민에게서 거두어들임
[주3] 고마청(雇馬廳) : 민간으로부터 징발한 말을 관리하는 관청을 이르던 말
[주4] 산저 12동(山底 十二洞) : 산 아래 12개 마을.
[주5] 존본취식(存本取殖) : 그 돈의 본전(원금)은 살려두고 이자를 불러 사용함.
[주6] 이환·노령청(吏換奴令廳) : 아전, 구실아치, 관노, 사령의 집
● 「계유년(1873) 1월12일 거제부(巨濟府) 오동절목(五洞節目)」
이번 「절목(節目)」은 거제부(巨濟府)에서 발급하고 항리(項里) 마을에서 수취한 「1873년 거제부(巨濟府) 오동절목(五洞節目)」을 소개하겠다. 여기 1873년(고종 10) 당시 거제부의 5개 마을(五洞)은 일운면의 항리동(項里洞) ‧ 망치동(望峙洞) ‧ 양화동(楊花洞) ‧ 왜구동(倭仇洞) ‧ 와현리(臥峴里)를 말하며, 각 마을 대표들이 모여 표류하여 정박한 왜선을 지공(支供)하는 일에 대하여 합의한 절목이다.
1873년 거제부 「오동절목(五洞節目)」은 합철 1책 6면의 고문서로, 표제에 문서 작성의 시기를 1월12일(日) 단위까지 기록하였다. 절목의 내용은, 이 다섯 동리의 포구에 왜선이 표류하여 정박할 때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일(支供)에 대한 것이었다. 왜선의 표류는 매우 빈번했으며, 이들을 지공(支供)하는 일은 지역민에게 큰 고역이었다. 이에 관아에서 처분하여 한꺼번에 지공하고, 와현리는 두 차례에 한 번씩만 지공하도록 하였다. 왜선은 1873년 2회, 1875년(고종 12) 1회, 1876년(고종 13) 3회, 1878년(고종 15) 1회, 1879년(고종 16) 1회 총 8차례 표류 정박하였으며, 와현리는 이 중 두 차례에 한 번씩 총 4회를 지공(支供)하였다. 이를 통해 절목의 합의대로 지공이 이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조라의 여러 문서에 의하면, 이 지역의 가장 큰 어려움은 첫째, 수시로 표류 정박하는 왜선들의 처리 문제였고, 둘째는 지역의 내도 외도(內, 外島)를 수시로 수색하고 조사하는 수토(搜討)였다. 셋째는 태풍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천재지변이었다. 1873년 거제부 오동절목은 지역의 가장 크고 우선적인 폐해에 대한 해결책을 지역의 대표자들이 합의하고, 또한 그 합의 내용이 실제로 잘 이행되었음을 보여주는 문서로, 민(民)의 자발적인 대처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문서이다.
3) **「계유년(1873) 1월12일 거제부(巨濟府) 오동절목(五洞節目)」**
*계유년(1873, 고종10) 1월 15일 오동절목
이 문서는 절목을 작성한 것이다. 우리 다섯 동리가 접경한 포구에 왜선이 표류하여 정박하면, 영내 읍진에서 크고 작은 빈객들에게 음식을 제공(支供)하는 것은 대단한 고역이고 폐해이다. 그러므로 관아에서 처분하여 한꺼번에 제공하되 그 중 와현리는 두 차례에 한 번씩만 제공하도록 영구히 준행할 일이다.
* 다섯 동리 중, 항리 동수, 강도림〔착명(着名)〕. 망치 동수, 최석규〔착명〕. 양화 동수, 이덕량〔착명〕. 왜구 동수, 박석순〔착명〕. 와현 두민, 김대업〔착명〕.
* 계유년(1873, 고종10) 1월 15일 왜선에 1차례 제공함. 와현리
계유년(1873, 고종10) 9월 15일 제공하지 않음.
을해년(1875, 고종12) 6월 8일 왜선에 1차례 제공함.
병자년(1876, 고종13) 1월 29일 제공하지 않음.
병자년(1876, 고종13) 8월 6일 왜선에 1차례 제공함.
병자년(1876, 고종13) 9월 18일 표류한 왜선에 1차례 제공하지 못함.
무인년(1878, 고종15) 1월 29일 왜선에 1차례 제공함.
기묘년(1879, 고종16) 10월 7일 제공하지 않음.
[癸酉正月十五日 五洞節目 右文 爲節目事 惟我五洞境浦口良中 倭船漂風止泊 則營邑鎭 大小賓供饋 大端苦弊 故自官處分 一體支供是矣 其中臥峴里段 二次中一番式 支供之意 永久遵行事 五洞中 項里洞首 姜道林〔着名〕 望峙洞首 崔錫奎〔着名〕 楊花洞首 李德良〔着名〕 倭仇洞首 朴石順〔着名〕 臥峴頭民 金大業〔着名〕.
癸酉正月十五日 倭船一次支供 臥峴 同年九月十五日 勿爲支供 乙亥六月初八日 倭船一次支供 丙子正月二十九日 勿爲支供 同年八月初六日 倭船一次支供 丙子九月十八日 漂倭一次不爲支供 戊寅正月卄九日 倭船一次支供 己卯十月初七日 勿爲支供]
[주1] 오동(五洞) : 5개 마을, 거제시 일운면의 항리동(項里洞), 망치동(望峙洞), 양화동(楊花洞), 왜구동(倭仇洞), 와현리(臥峴里)를 말함.
[주2] 지공(支供) : 음식 따위를 대접하며 받듦
[주3] 공궤(供饋) : 윗사람에게 음식을 드림. 음식 제공
[주4] 수토(搜討) : 몰래 조사하여 알아내다.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調査)하거나 엿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