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이 농심배에서 막판 5연승으로 우승했던 사건은 2005년 상하이에서의 일이었다. 2000년생 신진서는 당시 다서살, 바둑을 막 배운 때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다시 상하이, 상황은 그때보다 더 험악했다.
중국의 선봉 세얼하오 9단이 파죽의 7연승으로 밀어 붙이며 판을 장악했다.
한국과 일본은 5명중 4명의 선수가 탈락했다.
이 대목에서 신진서가 출전해 세얼하오를 꺽고 돌풀을 잠재웠다.(세얼하오는 자기 몫을 200% 해냈으니 싸잡아 욕을 먹는 상황이 억울할 것이다.)
이후 신진서는 일본의 마지막 선수 이야마 유타 9단과 중국의 자오천위, 당하오, 커제, 구쯔하오 까지 6명을 모조리 꺽었다.
자오천위는 중국 7위, 당하오는 최근 LG배 우승자이고 신진서가 "가장 무서운 신예"로 주목해온 인물이다.
커제는 비록 랭킹 2~3위를 오가고 있지만, 이세돌 시대를 종식시키며 이른 나이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자다.
그리하여 맞이한 마지막 한판, 마지막 상대인 중국 1위 구쯔하오는 역시 난적이었다.
부득탐승(不得貪承)
"마지막 공배를 메우고 승리가 확정됐을 때는 막상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디선가 해했다는 부르짖음이 들려온 것 같기도 하다."
바둑 10결 중 신진서가 가장 좋아하는 항목은 10결이 첫 번째 부득탐승(不得貪承)이다.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 승부사라면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나 구쯔하오와의 마지막 판은
너무나 절실하게 이기고 싶었고 그 바람에 신진서도 크게 흔들렸다. 악마의 시험같은 이 고비를 넘어선 것은
"운이 아니었을까"라고 신진서는 말한다.
신전서는 2000년생이다. 구쯔하오는 1998년, 커제는 1997년, 당하오는 2000년생이다.
신진서는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어 앞길이 창창하다. 그게 신진서의 자랑이고 한국의 자랑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신진서의 압제를 언제까지 견뎌야 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억제하기 힘들 것이다.
신진서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AI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AI는 현재 저의 바둑 친구입니다."는 답이 올아왔다.
(중앙일보 박치문의 검은돌 흰돌 / 바둑칼럼니스트24.3.6일자)
[정구에서도 이길려고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생각지도 못한 에러로 우승을 망친 결과가 종종 보여 진다.
마음을 비운 게임운영, 즐기는 게임 운영이 기달려 집니다.]
참고로
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최고수 왕적신이 설파한 대표적인 바둑격언으로 바둑 뿐만아니라
우리들의 인생살이에도 귀감이 될만한 소중한 교훈들인 듯 싶다
1. 부득탐승 (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이기지 못한다)
마음을 비우고 두어야 한다
2. 입계의완 (入界宜緩; 적의 진영에 들어갈때에는 완만하게)
상대의 집 모양을 삭감하러 강때 욕심을 내서 지나치게 깊게 들어가는 것은 금물..
3. 공피고아 (功彼顧我; 공격할 때는 나의 약점을 먼저 살피라)
자신의 약점을 남긴채 무작정 공격에 혈안이 되는 것은 과욕..
4. 기자쟁선 (棄子爭先; 돌 몇 개를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라)
선수를 잡아 주도권을 행사해 나가는 것이 중요..
5. 사소취대 (捨小就大; 작은것은 버리고 큰 곳으로 나가라)
부분적인 실리에 급급하지 말고 대세관에 입각하여 반면을 운영하라...
6. 봉위수기 (蓬危須棄; 위기에 봉착하면 버려야 한다)
'죽은자식 불알 만지기' 는 바둑에서 가장 미련한 짓...
7. 신물경속 (愼勿輕速; 빠르고 경솔하게 두는 것을 삼가라)
"경적필패" 의 경구와 일맥상통하는 교훈...
8. 동수상응 (動須相應; 상대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하라)
바둑은 상대성의 게임
상대를 의식하지 않은 행마는 제 논에 물대기 식의 수읽기에 빠지기 쉬움을 경고한다....
9. 피강자보 (彼强自保; 적이 강할때에는 자신을 보호하라)
상대의 돌이 강한 곳에서는 늘 자신의 약점을 돌보며 두텁게 두어야 한다....
10. 세고취화 (勢孤取和; 세력이 약한 곳에서는 싸움을 삼가하라)
상대가 우세한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만큼 무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