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도는데』(작사 정두수, 작곡 박춘석)는 1972년
「나훈아」가 부른 곡 입니다. 「나훈아」가 1965년 데뷔한 후, 한 차례
폭풍(1969년) 같은 인기 몰이가 "사랑은 눈물의 씨앗", "님 그리워",
"강촌에 살고 싶네"로 휘몰아치고, 두 번째 인기의 폭풍이 몰려올 때
부른 곡 중 『물레방아 도는데』를 빼 놓을 수 없을 것 입니다.
1차 폭풍 후에도 지속해서 대형 인기곡을 내고 있었지만, 다시 한 차례
광풍(狂風) 같은 2차 폭풍을 불러온 "고향역", "머나먼 고향", "찻집의
고독", "가지 마오", 바보 같은 사나이", "흰 구름 먹구름", 해변의 여인",
"낙엽이 가는 길", "너와 나의 고향", "두 줄기 눈물" 같은 곡들로 가득한
1972년은 인기곡 홍수에 빠져버린 「나훈아」였습니다.
그런 노래들 가운데서도 『물레방아 도는데』는 고향의 향수(鄕愁)를 불러
오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작사가 정두수(1937~2016)'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 고전면 상평리가
이 곡의 배경입니다. '정두수'는 그가 8살 되던 1944년 삼촌이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 중인 19세 때 일본군에 징집(徵集)되어 사지(死地)로
떠나게 되었으며, 고향에 들러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사귀던 '순이'의 손을 놓고 마을 어귀 징검다리를 건너 손을 흔들며
떠난 것이 이 노래의 사연(事緣)이 된 것입니다.
일본 관동군 소위로 임관한 삼촌은 마지못해 일본을 위해 싸우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옵니다. '정두수'는 이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안타까운 마음과 울분을 가사로 만들어 낸 것이죠.
여기에 '박춘석'이 곡을 붙여 ' 「나훈아」 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작가의 고향에는 이제 물레방아도 없고, 징검다리도 없어졌지만,
돌담 길은 여전하여 이곳과 가까운 '배드리공원(배더리)'에
정두수 작가 노래비가 두 개 세워져 있습니다.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와 진송남의 "시오리 솔밭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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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 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 타향 멀리 가더니
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 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이 다 가도록 소식도 없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