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글 이름에 들어가 있는 낱말들부터 설명해야겠다. ‘다이비엣’은 ‘위대한 비엣’이라는 뜻이며(‘비엣[Viet]' 족은 비엣남[Vietnam]의 다수민족이다. 이는 제하[諸夏 : 수도 북경]의 다수민족이 ’한족[漢族]‘인 것과 같다. 비엣남에는 비엣족 말고도 많은 민족들이 산다. “비엣”족은 “낀[킨]”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경[京], 그러니까 ’도읍‘을 비엣남 식으로 읽은 이름이다. 비엣 족이 비엣남의 도읍을 차지하고, 비엣남의 중심부에서 활동한 민족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자(정확히는 한국식 한자 발음)로는 ‘대월(大越)’로 쓴다(그러니까 월[越] = 비엣 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비엣남의 옛 이름이기도 한데, 이는 대한민국과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의 옛 이름이 ‘고리(高麗)’[왕건이 세운 후기 고리]인 것과 같은 이치다.
(서기 1200년대에 펼쳐진 박달민족[‘倍達’을 ‘배달’로 읽지 말고 ‘박달’로 읽어야 정확하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을 따라, 이렇게 표기한다]의 갈마[‘역사’]를 설명할 때, “한국”이라는 말 대신 “고리”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면, 마찬가지로 중세시대에 펼쳐진 비엣남의 갈마를 설명할 때, 오늘날 쓰이는 이름인 “비엣남” 대신, 당시에 쓰이던 “다이비엣”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정확하다고 해야 한다)
‘쩐 왕조’는 ‘쩐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세운 왕조’를 줄인 말인데, ‘쩐’은 비엣남의 성씨며, 한자로는 ‘진(陳)’이다. 나라 이름을 ‘다이비엣 쩐 왕조’로 부르는 까닭은, ‘다이비엣’이라는 나라 이름은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으나, 대신 왕조는 - 그러니까 황제를 배출하는 집안은 - 여러 번 바뀌었기 때문에, 나라 이름(정식 국호) 뒤에 황제 집안의 성씨와, ‘왕조’를 줄인 말인 ‘조(朝)’를 붙여서 시대와 정권을 구분하는 것이다.
(쩐 왕조는 서기 1225년 ‘쩐 까인’이 세운 왕조고, 서기 1400년에 망했으며, 도읍은 오늘날의 ‘하노이’ 시인 ‘탕롱[한자로는 승룡(昇龍)]’이었다. 탕롱은 “미르[龍]가 [하늘로] 올라가는[昇] [곳]”이라는 뜻이다. 하노이의 옛 이름이 탕롱인 것은 서울의 옛 이름이 한성이며, 개성의 옛 이름이 송악/개경인 것과 같다. 쩐 왕조를 비롯한 중세 비엣남 왕조들은 오늘날의 비엣남 북부 를 다스렸고, 오늘날의 비엣남 중부에 있던 ‘참파[Champa]' 왕국과 여러 번 싸웠다)
(비엣남의 임금은 나라 안에서는 -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는 - 자신을 ‘천자/황제’로 일컫고, 제하[諸夏]에 보내는 외교문서에는 자신을 ‘왕’이라고 일컬었다. 이는 침략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주지 않고,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한자말로는 ‘외왕내제[外王內帝]’라고 한다. ‘바깥[外]에서는 제후[王]로 굴고, 안[內]에서는 천자[帝]로 군다.’는 뜻이다. 중기 고리[당나라가 붙인 이름은 ‘발해’]와 [몽골에 무릎 꿇기 전 나라를 다스렸던] 후기 고리의 임금들도 외왕내제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이는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이 서기 670년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쓰이고 있으나, 그 안에서 정부 조직인 막부(幕府)는 여러 번 바뀌었기 때문에, 일본사의 시대를 구분할 때 그냥 ‘일본’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일본 가마쿠라 막부 시대’나 ‘일본 무로마치 막부 시대’나 ‘일본 에도 막부 시대’라는 말을 쓰는 것과 같다.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은 바로 그 쩐 왕조 사람이 남긴 병서(兵書 : 병법서[兵法書]와 같은 말. 병법을 다룬 책)인데, 책 이름은『 병서요략( 兵書要略 ) 』이고, ‘쩐흥다오(한자로는 “진흥도[陳興道]”)’ 대원수(아래 ‘쩐 대원수’)가 썼다. 박달민족에게 연개소문이 쓴『김해병서(金海兵書)』(후기 고리 시대의 중기까지는 남아 있었다고 하나, 불행히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가 있다면, 비엣족에게는『 병서요략 』이 있는 것이다.
『 병서요략 』은 ‘병법서의 글들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골라 뽑고, 다른 것은 생략한 것’이라는 뜻인데(요략[要略]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 뽑고, 다른 것은 생략함”이라는 뜻이다), ‘간추린 병법서’로 의역할 수 있다.
쩐 장군은 왜 이 책을 썼을까? 그것을 알려면 쩐 왕조의 갈마(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지금(서기 2026년 현재)으로부터 740년 전인 서기 1286년, 몽골 제국의 카안(몽골 말로 ‘천자 天子’/‘황제’라는 뜻.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진 ‘칸’은 ‘천자’가 아니라 ‘제후’/‘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몽골제국이 무너진 뒤, 이 구분이 희미해지다, 서기 16세기 이후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쿠빌라이의 군사가 다이 비엣 쩐 왕조(이하 ‘다이 비엣 제국’)를 침략했다.
이때 다이 비엣 제국의 황족이었던 ‘쩐흥다오’는 자기 나라의 군대와 백성들에게『 병서요략 』을 나누어 주며 “달단(몽골)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했으며, 쳐들어온 몽골군이 육군이었고『 병서요략 』은 몽골의 다이 비엣 침략 이전의 게릴라전 경험을 정리해서 전법과 무기를 소개했기 때문에 이 책을 가진 사람들이 (책에 든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몽골군을 무찌를 수 있었다. 몽골군은 결국 처참하게 깨진 뒤 물러났다.
그로부터 두 해 뒤인 서기 1288년에는 몽골제국(원나라)이 수군(水軍)으로 다이 비엣 제국을 침략했는데, 이때도 쩐 대원수는『 병서요략 』에 쓰인 방법을 이용하여 침략군을 무찔렀다. 이때 몽골군 6000명이 죽고, 몽골군 군선 800척 가운데 400척이 가라앉아, 다이 비엣 제국의 군사는 크게 이겼고 몽골제국의 군사는 처참하게 졌다.
서기 20세기 중반에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던 비엣남 독립군과 서기 20세기 후반에 미군과 싸웠던 베트민(월맹) 군대도『 병서요략 』에 나온 무기와 전술을 써서 큰 효과를 보았으며, 지금(서기 2010년 현재)도 비엣남 정부는 이 책을 철통같이 지키며 이 책의 중요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 참고 자료 :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인 < 고대의 발견들(Ancient Discoveries) >
(지금으로부터 열여섯 해 전인 서기 2010년에 정리했던 글을 다시 고쳐 써서 올린다)
- 음력 6월 11일에, ‘비엣남은 자기 나라 사람이 중세시대에 쓴 병법서(병서)를 현대전에서도 써먹었고, 그 책을 오늘날까지 보존하는데, 한국과 조선 공화국(평양)은 자신들의 조상이 중세시대에 쓴 병법서(연개소문의『 김해병서 』)를 보존하지 못하고 잃어버렸어. 이건 박달민족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야.’하고 생각하며 키보드의 글쇠(‘자판’)를 두들기는 아사달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