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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5일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예배
성경 창1:26-31절(구2)
제목: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들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최종적인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인 성경의 첫 장인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기 전에 먼저 고려할 사항들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 창조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언약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첫째 날의 창조(3-5)를 예로 들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시고, 단순히 빛과 어둠을 낮과 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그의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렘33: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창1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듣는 그 피조물은 절대 순종함으로 존재하게 됨으로써 ‘창조주(왕)와 그의 종(봉신)’의 관계인 ‘창조(행위) 언약’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이름들을 짓는 것도 이 언약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언약에서의 신원확인(주와 종,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그래서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4)는 빛의 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창조 언약에 따라 빛이 그의 종으로 창조주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기에 윤리적으로 선하고 아름답고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 명령에 적절하게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고든 스파이크만은 “언약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세상을 언약적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언약적 관계는 모든 창조된 실체 안에, 그 실체와 함께, 그 실체를 위해 주어졌다. 태초부터 창조물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과 하나님 앞에서의 반응이라는 언약적 관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약적인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모든 언약(계약)에는 약속과 그것을 성취하는 목적이 있는 것과 같이 창조 언약에도 분명한 목표, 즉 종말론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타락 이전에도 창조세계는 창조 언약에 따른 그 종말론적 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에서 창2:2-3절은 이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것은 창조의 목적이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안식하신 사실에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진 날은 여섯째 날까지입니다(2:1). 그러나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 이것은 하나님의 안식이 창조 사역에 포함되며, 그것의 완성임을 시사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그의 안식으로 완성되었지만, 땅, 즉 아담이 창조 언약에 따라 그의 사명(1:28)을 다 이루고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참여할 때까지 그 창조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론의 관점에서도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1. 우리는 창조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존재한 언약적 인간, 즉 그의 종입니다.
하나님 창조의 이야기(창1장)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 그대로 되니라(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하나의 패턴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 패턴을 따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26, 29), ‘창조하시고(하시니라, 그대로 되니라)’(26, 27, 28, 30)와 31절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것은 우리 인간도 다른 피조물과 같이 창조주가 말씀하시매, 그의 종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의 말씀으로 철저하게 유지되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근현대에서 주장하는 우리는 ‘소유된 자아(나는 나의 소유)’가 아니라 창조 언약에 따라 ‘창조주의 소유(종)로서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창조주에게 절대 의존과 순종하여야 하는 윤리적(율법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DNA(유전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몸에 우선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며, 우리의 마음에 우선하는 것이 우리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그의 언약적 종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뜻)과 일치가 될 때 창조적 질서(order)에 따른 평화(살롬)가 있을 것이지만, 그것과 불일치할 때는 고장 난(out of oder) 자아로서 깊은 흑암(혼돈)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입니다(26-28).
먼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창조세계에 대하여 그를 대리한 통치자(왕)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26, 28). 이것은 인간의 창조 언약적 지위와 사명을 가리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는 단수형 주어와 단수형 동사이지만,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다스리게 하자’는 복수형 주어와 복수형 동사로서 긴장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지만 복수의 성격을 가지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 즉 우리의 형상과 모양’은 무엇일까요? ‘형상’과 ‘모양’은 하나님과 인간의 ‘닮은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서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아들로서 인간의 언약적 지위나 사명을 가리키며, 또한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인 하나님의 은사(신성과 능력)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언약적 지위와 사명이 일차적이고 그 은사는 이차적일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아들로서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왕권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형상(아들)으로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이 통치권은 하나님의 위임에 달려 있지 인간 본질의 속성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그의 아들로서 언약적 충성이 없이는 어떤 지배권도 없습니다. 이는 인간은 창조주의 말씀으로 순종함으로 존재하게 된 ‘언약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으로 이것에 실패한 아담을 대신해 창조 언약에 따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아들로서 만물의 주(왕)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1:12), 즉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이 통치권(왕권)도 회복되는 자입니다. 계5:9-10절입니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세계에 대하여 ‘속박된 노예(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참된 왕의 노릇’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아들(왕)로서 위임받은 언약적 사명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언약적 사명은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일인데, 본문은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27-28a),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명령하신 후에 ‘다스리라’라는 통치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명령들은 종착점, 곧 종말론적 목표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러한 명령들은 ‘다스리라’ 통치 명령에 선행합니다.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야, 땅을 충만하게 채울 수가 있고, 땅을 정복할 수 있고, 마침내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가 그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을 많이 낳는 것이 이 통치 명령에 필수적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초 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28)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 언약에서 반복되며(창9:1-2),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명령이 아니라 일방적인 약속으로 반복됩니다(창12:2-3).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녀들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28)가 언약적 사명인데, 아담은 실패하였고, 노아도 실패하였고, 아브라함 후손인 이스라엘도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창조(율법) 언약을 범한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가진 자녀들을 낳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적 사명은 단순히 번식을 통해 완수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이 명령은 생육과 번식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돕는 배필)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많은 자손을 낳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이 땅을 충만하게 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상실되었기에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가진 자녀들이 아니라 오히려 원죄를 가진 자녀들을 출산하여서 더는 이 창조 언약적 사명을 수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창조 언약적 사명은 어떨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을 통하여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시고 성령으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사 새 창조의 둘째 아담이 되셨습니다. 그는 이 통치의 언약적 사명을 담당하셨고 자신의 돕는 배필, 즉 둘째 하와인 교회를 통하여 지금도 그 명령을 수행하고 계십니다(마28:18-20).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창조 언약적 사명(28)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생육과 번식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를 통해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 자녀를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고전4:15). 그 자녀들이 복음으로 인해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54:1절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고난받은 종’(사53장)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많은 영적 자식으로 인하여 큰소리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영원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의 순종(구원)을 위하여 그의 아내인 우리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창조 언약적 사명)을 하시기 때문입니다(롬15:18-19).
셋째,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있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신성과 능력(롬1:20), 즉 그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의 영광의 개념과 연결합니다(고전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또한, 고후3:18절입니다. “우리가 다 ...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이니라.” 이것은 새 언약에 근거하여 주의 영광을 보고 성령을 통하여 그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는 말씀이지만, 본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누구인가’를 암시합니다.
만물이 원래 ‘하나님의 형상’(골1:15, 고후4:4)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1:16, 요1:3). 특히 히1:2-3절입니다. “이 모든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여기서 ‘이 아들’은 그리스도시며, ‘만유의 상속자’는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령으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성령의 성전으로 창조되었고(1:2, 창2:7), 그리스도의 형상과 영광으로 창조되었습니다(26-28). 따라서 구약의 선지자적 사상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들이 ‘그리스도 모형적 자아’로서 파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에 의해 성부의 영원한 아들의 원형적 형상으로 재창조되는 것입니다(롬8:29-30).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령으로 창조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창조 언약적 사명(28)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아담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을 통하여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셨다는 ‘하나님의 의’를 받으사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을 통하여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히2:8). 그래서 우리의 주와 남편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아내인 우리를 통하여 이 언약적 사명(28)을 위하여 성령으로 평안의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엡2:17, 롬15:18-19).
3. 하나님의 일인 이 창조 언약적 사명에 충성할 때, 언약의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책임지십니다(29-30).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 그대로 되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마6:33). 이것이 창조 언약적 종인 우리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언약적 존재 즉 그의 종이라는 존재입니다. 진정한 우리 자아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율법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 본성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아들로서 창조세계를 통치하는 왕이며, 그의 형상-아들들로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창조 언약적 사명 받은 자입니다.
이제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를 통한 그의 복음과 성령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완전히 성취되면 하나님 창조의 종말론적 목적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이 창조 언약적 사명(28)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배필)로서 많은 영적 자손들을 낳아 크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믿고 기도하시며, 주님의 사역에 함께 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찬송 518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