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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36-43절 고넬료 집에서 전한 베드로의 설교
36절.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word which He sent to the sons of Israel, preaching peace through Jesus Christ (He is Lord of all)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τὸν λόγον ὃν ἀπέστειλεν τοῖς υἱοῖς Ἰσραὴλ
the word that He sent to the sons of Israel
‘보내신’(ἀπέστειλ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ent) 과거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낸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복음을 전하사
εὐαγγελιζόμενος
proclaiming the gospel
‘전하사’(εὐαγγελιζ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proclaiming) 복음을 전하고 계신 모습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εἰρήνην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peace through Jesus Christ
만유의 주 되신
οὗτός ἐστιν πάντων Κύριος.
He is of all Lord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1. 이제 베드로는 36절부터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하 인간에 구원하실 주님을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행4:12).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주님만이 아니라 만백성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화평은 우리의 선행이나 종교 행위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로 인해서 옵니다.
화평의 결과는 정결함과 자유와 만족과 활기찬 삶을 가져다줍니다.
십자가의 속죄가 아니면 하나님과 인간도 죄로 불화하고, 유대인과 이방인도 불화할 것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수직적으로도 화평하고, 수평적으로도 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이제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37절.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ou yourselves know the thing which took place throughout all Judea, starting from Galilee, after the baptism which John proclaimed.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ὑμεῖς οἴδατε τὸ γενόμενον ῥῆμα καθ’ ὅλης τῆς Ἰουδαίας,
You yourselves you have known the having come declaration through all of the Judea
‘너희도’(ὑμεῖς: You yourselves)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전파된’에서 동사(γενόμενο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과거에 확실히 전파된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알거니와’(οἴδατε)는 완료형으로서(have know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ἀρξάμενος ἀπὸ τῆς Γαλιλαίας
having begun from the Galilee
‘시작하여’(ἀρξ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gun) 과거에 확실히 시작한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μετὰ τὸ βάπτισμα ὃ ἐκήρυξεν Ἰωάνης
after the baptism that proclaimed John
‘반포한’(ἐκήρυξεν)은 부정과거로서(proclaimed) 요한이 과거에 반포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세례 요한 이후에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 전도를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복음 전도사역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복음 전도사역에는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심지어 죽은 자들도 살아난 표적들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들을 로마 사람인 고넬료 집안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건인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예수님 믿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ou know of Jesus of Nazareth, how God anointed Him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power, and how He went about doing good and healing all who were oppressed by the devil, for God was with Him.
나사렛 예수에게
Ἰησοῦν τὸν ἀπὸ Ναζαρέθ,
Jesus the from Nazareth
하나님이---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ὡς ἔχρισεν αὐτὸν ὁ Θεὸς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δυνάμει,
how anointed Him the God Spirit Holy and power
‘기름 붓듯 하셨으매’(ἔχρισεν)는 부정과거로서(anointed) 과거에 성령과 능력으로 그에게 기름 부으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ὃς διῆλθεν εὐεργετῶν
who went about doing good
직역하면 ‘선을 행하시면서 두루 다니셨다’는 뜻입니다.
‘선을 행하시면서’(εὐεργετῶν)는 현재분사이고(doing good), ‘두루 다니셨다’(δι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went about) 과거에 선을 행하시면서 두루 다니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καὶ ἰώμενος πάντας τοὺς καταδυναστευομένους ὑπὸ τοῦ διαβόλου,
and healing all those being oppressed by the devil
직역하면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시면서’ (두루 다니셨다)는 뜻입니다.
‘눌린’(καταδυναστευομένους)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oppressed) 현재 눌려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고치셨으니’(ἰώμενος)는 현재 분사로서(healing) ‘고치시면서’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ὅτι ὁ Θεὸς ἦν μετ’ αὐτοῦ·
because the God was being with Him
‘함께 하셨음이라’에서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계속 함께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1.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셔서 갈릴리와 유대 지역을 두루 다니시면서 착한 일을 하시되 즉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자유케 해주시고, 모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는 사역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누가복음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러한 예수님의 성공적인 복음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e are witnesses of all the things He did both in the land of the Jews and in Jerusalem. They also put Him to death by hanging Him on a cross.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καὶ ἡμεῖς μάρτυρες πάντων ὧν ἐποίησεν ἔν τε τῇ χώρᾳ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Ἱερουσαλήμ·
and we (are) witness of all that He did in both the region of the Jews and Jerusalem
‘행하신’(ἐποί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He did) 과거에 그가 행하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ὃν καὶ ἀνεῖλαν, κρεμάσαντες ἐπὶ ξύλου.
whom also they put to death, having hanged [Him] on tree
‘달아’(κρεμά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anged) 과거에 나무에 달았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죽였으나’(ἀνεῖλ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put to death) 과거에 죽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베드로 자신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들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실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죽을병을 누구에게 고침받았다면 그 사람을 증인으로서 간증하고 다닐 것입니다.
39하.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1.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전했습니다.
모든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는 자신이 세상을 정복한 것과 성공한 놀라운 사실을 전하고 업적을 자랑하면서 자기를 믿고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비참한 사실을 전합니다.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세상에 성공한 사람을 믿고 따르라고 해야지 실패하고 죽은 사람을 따르라고 하니 말이 됩니까?
군수나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만 보아도 자기가 행한 훌륭한 일들을 자랑하면서 자기를 믿어주고 밀어주라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온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분이 죄수로서 십자가에 벌거벗고 죽은 사실을 선전하다니 말이 됩니까?
이처럼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전하는 종교입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왜 죽으셨습니까?
베드로는 이 십자가의 죽음을 베드로전서에서 정확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죽을 죄인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 우리가 의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대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5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도 이 사실을 잘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베드로의 영적 아들이라고 하는 마가도 예수님이 오신 것은 왕처럼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고 목숨까지 주려고 오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베드로복음’이라고도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교통사고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누가 우리 대신 죽고 나를 살렸다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빚진 마음을 갖겠습니까?
내가 불에 타서 죽을 것인데 어머니가 불속에 들어가서 나를 살리고 어머니가 나 대신 죽었다면 나는 얼마나 엄마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황태호나 김홍석이처럼 아버지에게 간을 내어주고 아버지를 살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콩팥을 이식해준 사람도 있습니다.
황태호는 어린아이에게 골수를 이식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나를 대신해서 희생을 당한 사람에게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빚진 마음을 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영원히 마귀와 함께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인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내가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며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 기독교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님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성찬식을 갖습니다.
3. 이처럼 죄 용서와 영생의 복을 받고 예수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이 모습을 잘 나타내 준 장면이 누가복음 7장에 있습니다.
즉 죄를 많이 지은 여인이 예수님께 죄 용서와 영생을 얻고 감사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7:37-38.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아마 이 여인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여인처럼 죄로 인해서 죽을 위험에 빠졌으나 예수님의 용서로 다시 살아난 여인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8:7-9.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4. 이런 용서와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자기도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일반 작품에서는 장발장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감방에서 나와서 음식점에 가도 음식을 팔기를 거절하고 잠을 자고 싶어도 여관에서 쫓겨났는데, 교회의 성직자가 집에 맞아들여서 무료로 음식을 주고 잠을 재워주었고, 자기가 은쟁반을 훔쳐는데 경찰 앞에서 ‘내가 금촛대도 주었는데 안 가져갔다’고 말해줌으로써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장발장을 한없이 울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발장을 새 이름으로 바꾸어서 성공한 공장장이 되고, 시장이 되어 많은 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평생 죽이려고 따라다녔던 제베르 형사마저 독립전쟁 시에 살려주게 됩니다.
그러자 양심에 가책을 느낀 자베르 형사는 자살하고 맙니다.
이처럼 장발장은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서 자기도 평생 사랑하며 봉사하며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갑니다.
5. 춘추전국 시대에 위나라 <오기 장군>이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오기 장군은 말을 타지 않고 군사들과 같이 자기도 개인용 식량과 침구를 지고 행군했으며 군사들과 똑같이 밥을 먹고 땅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많은 군사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하의 등에 악성 종기가 났는데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수술을 할 수 없고 오직 입으로 고름을 빨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기 장군이 친히 부하의 종기를 입을 빨아서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러니 부하들은 오기 장군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이것을 <연저지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오기 장군이 부하의 종기를 입으로 빨았다는 소문이 부하의 어머니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좋은 사령관을 만나서 참 좋겠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하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의아해서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말하기를 ‘그 아이의 아버지도 등에 종기가 나서 그 사령관이 입으로 빨아주어서 아버지는 죽기 최전방에 나가서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또 아들의 종기마저 빨아주었으니 이 아들도 그 장군을 위해 충성하다가 죽을 것이 뻔하니 내가 울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사랑과 은혜를 입으면 죽기로 충성하게 됩니다.
6. 성경에서 이런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죽기까지 충성한 사람이 있지요? 누구지요?
네, 바울이어요.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때리고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바울을 예수님이 용서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자 바울은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전도하고 죽기까지 충성했지요.
그래서 바울은 세상에서는 선인이나 의인을 위해서 혹 대신 죽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서 죽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5장 7-8절.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40절.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God raised Him up on the third day and granted that He become visible,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τοῦτον ὁ Θεὸς ἤγειρεν ἐν τῇ τρίτῃ ἡμέρᾳ
this One the God raised up on the third day
직역하면 ‘이 사람을 하나님이 제 삼일에 다시 살리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살리사’(ἤγειρεν)는 부정과거로서(raised up) 과거에 다시 살리신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나타내시되
καὶ ἔδωκεν αὐτὸν ἐμφανῆ γενέσθαι,
and gave Him manifest to become
직역하면 ‘그를 나타나게 되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뒤의 동사(γενέσθ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come) 확실하게 되도록 하신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앞의 동사(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gave) 나타나도록 하신 확실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긴 설명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사실 그대로 전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의미도 설명하지 않고, 부활에 대해서도 놀라운 기적 사건이라면서 자세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체험한 사실을 그대로 단순하게 전했습니다.
우리도 불치병을 치료받은 사실이 있으면 그대로 사실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신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최대 원수는 사망입니다.
만일 사람이 병들어 죽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과 죽음이 원수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이기신 분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승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고린도전서 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3.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부활은 일반 세상 철학에서 말하는 부활과 개념이 다릅니다.
즉 애굽 사람들이 기대한 부활은 지금 이 육신 그대로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피라밋을 지어서 언젠가 이 죽은 육신이 다시 살 것을 믿고 그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병들고 죽고 썩을 육체적 부활이 아니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의 부활입니다.
또한 플라톤이나 헬라철학에서 말하는 부활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부활입니다.
즉 사람의 육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의 교훈과 정신이 후대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서 표현되면 그것이 바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부활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육체적인 부활이면서 다시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신령한 몸으로서의 부활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1절.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t to all the people, but to witnesses who were chosen beforehand by God, that is, to us who ate and drank with Him after He arose from the dead.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οὐ παντὶ τῷ λαῷ,
not to all the people,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ἀλλὰ μάρτυσιν τοῖς προκεχειροτονημένοι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but to [the] witnesses the having been chosen beforehand by the God
직역하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선택받은 증인들에게’란 뜻입니다.
‘미리 선택받은’(προκεχειροτονημένοις)은 완료분사 수동태입니다(having been chosen beforehand).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ἡμῖν, οἵτινες συνεφάγομεν καὶ συνεπίομεν αὐτῷ
to us who did eat with and did drink with Him
직역하면 ‘그와 함께 먹고 마신 우리에게’란 뜻입니다.
‘함께 먹고’(συνεφάγομεν)는 부정과거로서(did eat with) 과거에 함께 먹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함께 마신’(συνεπίομεν)도 부정과거로서(did drink with) 과거에 함께 마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부활하신 후
μετὰ τὸ ἀναστῆναι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after the to have raised up Him from dead
직역하면 ‘그를 죽은 자로부터 살리신 후에’란 뜻입니다.
‘부활하신’(ἀναστῆναι)은 부정과서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raised up) 과거에 확실히 부활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환상이 아니고 확실한 실제적인 부활임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활의 증인은 모든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함께 음식을 먹고 실제로 부활의 몸인 것을 확신하는 제자들만이 부활의 산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수제자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도한 것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활의 전도는 성령 받은 사람에게서 성령 받은 사람으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42절.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ordered us to preach to the people, and solemnly to testify that this is the One who has been appointed by God as Judge of the living and the dead.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καὶ παρήγγειλεν ἡμῖν κηρύξαι τῷ λαῷ
and He instructed us to have proclaimed to the people
직역하면 ‘백성에게 전도하도록 그가 명하셨다’는 뜻입니다.
‘명하사’(παρήγγειλεν)는 부정과거로서(He instructed) 과거에 엄히 명하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전도하되’(κηρύξ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proclaimed) 확실하게 전파하도록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증언하게 하셨고
καὶ διαμαρτύρασθαι
and to have testified fully
‘증언하게 하셨고’(διαμαρτύρασθαι)도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testified fully) 앞의 ‘명하사’(παρήγγειλεν: He instructed)와 연결되어, ‘확실하게 증언하도록 명령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ὡρισμένο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that He is the (One) having been appointed by the God
직역하면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지신 자가 이 사람인 것을’이란 뜻입니다.
‘정하신’(ὡρισμένος)은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appointed) 이미 정해지신 것을 뜻합니다.
앞의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Κριτὴς ζώντων καὶ νεκρῶν.
(as) Judge of living and dead
‘살아있는’(ζώντων)은 현재분사이고(living), ‘죽은’(νεκρῶν)은 형용사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재판장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아 있는 자’(ζώντων: living)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살아 있는 자를 가리키고, ‘죽은 자’란 그 이전에 죽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Baker.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재판장이 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사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심판하실 때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최후의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행전 1장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승천하신 예수님은 가실 때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바울 사도도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에 대해서 증언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18.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주의할 것은 이단자들의 잘못된 재림에 대해서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시대에도 재림에 대한 잘못된 이단 사상을 경계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그래서 1992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속였던 이장림이나 예수님의 영적 재림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던 박태선이는 잘못된 이단자들입니다.
즉 박태선이는 예수님이 영적으로 재림했고, 자기는 보이는 재림주라고 속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천지 <이만희>가 예수님이 영적으로 자기에게 재림해서 자기는 보이는 재림주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태선>이처럼 이만희도 죽으면 그 거짓이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서 재림하신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산 자와 죽은 자는 살아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누가 영원히 살 사람이고 누가 영원히 죽을 사람인 것을 밝히 심판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즉 영원히 산 자는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가리키고, 죽은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마귀 따라서 우상에게 제사하는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마태복음은 양과 염소로 표현하면서 재림하신 예수님이 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여기서 산 자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죽은 자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영생 천국은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슬픔도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3.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이 전도하라고 명하신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왜 불렀냐고 반문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주님의 명령대로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산자와 죽은 자를 재판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을 갈라서 재판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와 영원한 사망을 얻을 자를 재판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전도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고 영생 얻으라고 권합니다.
43절.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f Him all the prophets bear witness that through His name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receives forgiveness of sins.“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τούτῳ πάντες οἱ προφῆται μαρτυροῦσιν,
to Him all the prophets bear witness
‘증언하되’(μαρτυροῦσιν)는 현재형으로서(bear witness) 증언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λαβεῖν διὰ τοῦ ὀνόματος αὐτοῦ πάντα τὸν πιστεύοντα εἰς αὐτόν
forgiveness of sins receives through the name of Him everyone the believing in Him
직역하면 ‘그를 믿는 모든 자는 그의 이름을 통해서 죄들 용서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믿는’(πιστεύοντα)은 현재분사로서(believing) 현재 믿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받는다’(λαβεῖν)는 현재형으로서(receives) 죄 용서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가리키고, 현재 용서함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1. 이제 베드로는 가장 중요한 복음 진리를 전합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종교와 다른 종교창시자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주신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행 4:12).
지옥 갈 영혼이 예수님 이름 믿고 죄 사함 받으면 영생 천국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 전도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으로 선교사로 가야하는데 도망하고 싶어서 그렇게 방황했을 때 고열이 나면서 자기의 귀에 수백 만 명이 지옥으로 가는 그런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그 놀라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넬료 같은 이웃들이 우리와 함께 영생 천국의 복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