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구간 뉘우치는 길, 창평지에서 동명성당(동명면사무소)까지.... (3월 9일 토요일)
다시 신발끈을 고쳐매고 길을 나서다.
창평지 호수에 나를 비추어 보다.
수녀님들과 아쉽게 헤어진 후 창평지 못둑을 따라 걷다. 창평지 둑길은 내내 넉넉함을 보여준다.
어느 나무의 수꽃일까?
급한 오름길에서 또박또박 걷다.
한참을 걸어올라 위에서 내려다 보는 재미가 있다.
거의 다 올라왔다. 휴~ 쌀바위가 지척에 있는 것과 함께 3구간의 오름길은 이 곳 밖에 없어 동명으로 내려설때까지 여유와 걸으며 두리번 거리며 둘러보는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다.
쌀바위에서 문득 가야할 길을 바라보다. 칠곡 동명면과 지천면을 경계짓는 건령산. 그 아래 오늘의 봄길이 있다.
봄 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해 이 일대에 심어진 자작나무들이 온전히 살아있을까? 걸어가는 길 속에서 몇 그루가 송두리째 부러져 쓰러져 있는 자작나무를 아프게 발견하다. 이들에게 지난 겨울,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나만의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겨울 추위, 매서운 바람, 가뭄 ? 나무가 온통 분질러져 있는 것은? 사람들 ?
요즘의 우리들은 팍팍하고 바쁜 삶 속에서 나 스스로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서 왔는 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묻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어느 듯 그런 여유가 없어진 것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오늘날 인간의 역설.
쌀바위에서 건령산 자락으로 넘어가며 다시 봄길을 걷다. 한티가는 길에서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 번 걸어봄으로써 느껴보는 색다른 매력. 여름과 겨울의 땡볕과 칼바람 속의 길이 오늘은 봄의 문턱에 들어선 길로 인해 여유와 따뜻함으로 다가와 있다. 같이 걸어가며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걸어가며 나 스스로에게 뭔가를 물어보기도 한다.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을 한 계절, 한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나의 나이보다 훨씬 오랜 세월에 걸쳐 살아온 허리 굵은 나무를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저 말없이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얘기만 들어주기만 할 뿐.... 요즘 말이 많아지는 나의 교만을 질책하다.
금락정에서 쉬면서 차 한 잔하고 다시 길을 나서다. 언제나 금락정을 뒤돌아보며 바라보는 것은 어느 화가의 풍경화를 바라보는 것.
지난 겨울, "그 분의 별을 보고....."라는 한티가는 길을 걸었던 초중고 주일학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십자가상 아래에 놓아둔 이들의 버려야 할 것과 꿈을 문득 슬며시 엿보다. 아울러 이 때 동방박사처럼 앞에서 걸었던 신부님은 지난 1월 본당을 떠나 남자들 누구나 한 번도 가기 싫어하는 군대 훈련소를 다시 입소하다. 어느 날 당신께서 군종신부로 늠름하게 잘살고 있다는 늦봄의 반가운 소식이 나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린다.
한티가는 길, 작은 차마고도 길을 걷다가 꼭 이 곳에서 한 번은 멈추기를 한다. 일렬로 산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송전탑의 행렬에 그냥 도시화된 인간들의 띠를 가늠한다.
여부재를 거쳐 내려오다 이날따라 송산지에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잠시 멈추었다. 따뜻한 봄날 오후이어서 그런 지 걷는 가운데서도 웬지 약간의 졸음과 피곤함이 몰려왔다. 의자에 앉아 따뜻한 봄 햇살로 에너지를 충전하다. 하나의 태양이 이 세상을 골고루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다.
작은 산이 거꾸로 작은 연못으로 내려와 있다.
송산지에서 내려와 동명면사무소에서 3월 9일 나그네의 발걸음은 멈추었다. 동명면사무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순례객으로 찾아왔던 자매님과 우리는 또 다시 아쉬운 이별. 태전역에서 하차해서 차를 회수하기 위해 250번 버스를 타고 다시 신나무골로 돌아왔다.
4구간 용서의 길, 동명성당에서 진남문까지.... (3월 16일 토요일)
2, 3구간을 3월 9일 걸은 후 1주일 후인 3월 16일 토요일에 먼저 1구간을 걸었다. 그리고 오후에 따뜻한 봄날 대구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같이 일행들과 헤어진 후 우리들은 동명성당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내의 친구 부부들을 불러내어 4구간을 이어서 걷기로 했다. 아내 친구부부가 오기 전, 우리들은 동명면 마트에서 새로운 간식 장보기를 했다. 하나로마트에서 방울토마토, 초컬릿, 캔맥주를 사고 한티가는 길 덕분에 알게 된 한 떡집에서 콩가루가 뜸뿍 묻혀진 쑥떡을 샀다. 오후 3시반을 넘어선 즈음에 동명성당에서 동행하게 된 부부를 만나서 이내 동명수변공원으로 들어왔다.
동명수변공원 개가 제법 짖는 곳을 지나자 동명수변공원 신규 공원 조성지로 들어오니 스템프 장소가 왼편으로 옮겨져 있었다. ^^ 공원은 아직 현수교가 개통되지 않아서 그런 지 정식 개장은 하지 않은 듯. 곳곳에 '출입금지'라고 표시되어 있다. 한티가는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동명면 구덕리 마을을 거쳐 보쌈식당을 지나고 양지교를 건너서 바로 작은 징검다리로 들어서다.
남원리로 가는 길목에 이 곳에서도 매화를 만나다. 매화향기가 길손에게 청량제.
지난해와는 달리 제법 성숙해진 대나무밭.
30년은 훌쩍 넘어선 듯한 나이테.... 모든 피조물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청산농원을 가로 지르다.
팔각정 스템프 site를 지나 올라가는 가운데 돌밭 길에서 지나가는 이들마다 하나, 둘씩 세워서 만들어진 돌탑이 서 있다. 이들의 기도는 무엇일까?
뜻하지 않게 연보라 제비꽃이 땅 속을 힘들게 비집고 슬며시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다.
팔공산 가산 바위와 가산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다.
남원리에 들어서서 남원리교회를 지나서 올라오다가 커다란 느티나무 보호수앞 쉼터에서 잠시 쉬고 난 뒤 남원공소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옆을 되돌아보다. 이 곳이 한티가는 길 3구간의 View Point가 아닐까? 논밭과 마을, 그리고 멀리 색다르게 생긴 도덕산 자락까지......
남원리 남원(원당) 공소.
공소 맞은 편의 시골집에서 할머니께서 가마솥 군불을 피우고 있다. 아궁이 안이 그냥 궁금했다. 어릴 때 시골에 내려가면 내내 할머니 핀잔 들어가면서 아궁이 앞에서 불장난 했던 나만의 기억들...할머니가 땔감을 더 넣지 말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웬지 불이 꺼지는 것이 아쉬워서 마른 볏짚이나 땔감 나무를 핀잔을 들으면서도 그냥 넣곤 했다.
남원리에서 진남문 아래 도로로 들어서기 전, 미처 몰랐던 전원주택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 마을같은 바깥에서 조심스럽게 알맞은 높이의 담장 밖에서 안쪽까지 슬며시 보여서 자연스럽게 길손의 눈에 고목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고목이 신기하게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나무인지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때마침 이 집의 안 주인이 동네 개 한 마리에게 먹거리를 준다고 나와 있어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니 '산수유'였다. 그리고 안 주인의 배려로 이 집의 안까지 들어가 보게 되었고, 집 마당 아래에 심어져 있던 나무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그러는 사이에 이 집 바깥 주인장께서 나오더니 우리들 보고 편하게 차 한 잔하고 가라고 하신다. ^^ 그냥 이 집의 나무들 사연과 한옥 집의 담장 높이로 세워진 것이 나로서는 궁금해서 해가 지는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차 한 잔 마시며 정담을 나누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 해는 어느 듯 서쪽 여릿재 방향으로 저물어가고 땅거미가 밀려오고.....
이 나무들에게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면..... 주인장의 의도도 역시 그러했다. 한티가는 길 속의 뜻밖의 작은 전시관 관람. 나무 구경도 구경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집 주인 내외 분의 마음 씀씀이가 우리에게는 바로 '봄'이었다.
어느 듯 진남문에 들어서자 해는 서산으로 벌써 내려가 있고 야간조명이 가산산성 성곽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넉넉한 마음으로 봄날 저녁 식사후 마실 걸음 거리마냥 진남문에서 5구간을 따라 방턱골 버스 정류장(칠곡 3번 버스 종점)까지 걸어내려가다. 대구식당 누른 호박 전 한 접시와 칼국수 한 그릇으로 이 날의 여정을 마감했다.
5구간 사랑의 길, 진남문에서 한티까지.... (3월 23일 토요일)
3월 16일 4구간 이후 또 다시 1주일 후, 5구간을 걷기로 했다. 한티성지에 작은 일거리가 있기도 했지만 걷기에 앞서 사순절인만큼 미사부터 먼저 참석하고 역순으로 십자가의 길, 인내의 길과 겸손의 길, 그리고 방턱골에서 성지 아래 옛길을 걷기로 하다. 11시 조금 직전에 겨우 도착해서 순례자 성당에 들어서니 오늘따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례해 있다. 마칠 무렵, 알고 보니 매주 네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한티성지 후원회 미사였다.
돌아온 탕자의 복음이야기. 또박또박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관장 신부님의 복음 말씀에 작은 아들의 탕자와 큰 아들의 모습이 모두 나에게 투영되어 있음을 알게 되다. 미사 중의 작은 피정 시간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보좌신부님의 PPT를 통한 조선교구의 파리외방선교회 편지 전래과정 설명까지.... 이런 탓에 1시를 훌쩍 넘어선 시간에 마지막 사랑의 길을 걷기 위해 한티마을 사람들 앞에 섰다.
한티에는 이제서야 산수유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외딴 곳에 가서 좀 쉬자.... 1991년 11월 무렵인가 본당 청년피정을 하다가 그룹 나눔 시간에 아내를 우연찮게 이 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 해가 한티피정의 집이 처음 열린 해였으니 지금 피정의 집도 햇수로 어느 듯 28년이나 되었다.
따뜻한 봄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티에서 멀리 가야산 자락까지 그리움으로 눈에 들어왔다.
억새마을 복원, 조성을 위해 옛공소터 자리의 초가집도 오래된 한 채를 놔두고 어느 듯 사라지고 없다.
순교자 묘역, 한티마을 사람들을 찾아가다.
14처를 따라 기도하면서 걷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12처 서태순 베드로 묘소 앞에서...
인내의 길로...
새삼스럽게 물줄기가 만들어져 있다.
숯가마터. 이 곳은 아직 여전한 겨울.
인내의 길에서 내려와서 겸손의 길을 걷다.
그리고 다시 방턱골로 내려와 득명리 숲길 대신 마을 길을 따라 걸었다. 선원사 앞을 지나고 마당재-한티성지 입석을 거쳐 옛길을 따라 걸었다. 5구간을 마치 헐어진 옷을 헝겊 짜맞추고 깁듯이 걸었던 탓에 연속적으로 걷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지에서 미사를 비롯한 나만의 작은 피정 덕분에 이 걸음 역시 소중했다.
한편, 봄날씨 속의 5구간을 마무리하고 한티에서 대구로 되돌아가는 춘분을 지난 3월 차창밖은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바람이 거세어지고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의 시간에 대구에 들어오면서 멀리서 바라보는 팔공산은 어느 듯 산마루금을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지금 내리는 봄눈은 분명 그칠 것을 믿는다. 4월의 또 다른 '한티 가는 길'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오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축복~ 한티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첫댓글 아 사진과 글....해박한 지식....마스터이십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존경스럽습니다.
시 한 수는 감사하게 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