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삶에서의 변화는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감정이나 느낌,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 어디에 두고 있느냐를 말합니다.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가지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골로새서 3:3~4)’에도 나와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보수의 정의는 도덕적 가치관을 수호하고 민족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진보는 나눔과 평등을 말하며 세계주의의며 인류 보편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는 친일을 하고 진보는 친북을 합니다. 지난 정권 때는 진보진영의 목사들의 친북행태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현 정권에는 소위 애국 우파 전광훈 목사는 보수롤 논하면서 예수 한국이라는 미명 아래 기독교와 세상 정치를 뒤섞는 것에서 모저러 보수를 말한다면 불교나 카톨릭 성직자도 얼마든지 손잡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탈퇴 당했던 장로교 합동 새샘교회 이정우 목사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치 기준은 이 세상의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는 진보진영 목사들에게 묻겠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북한의 김정은 정권입니까? 아니면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입니까? 보수진영 목사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일본의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주장할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치기준은 보수나 진보냐 좌파냐 우파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를 말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거짓말 하지 말라. 너희가 그 행위ㅘ 함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를창조하신 분의 형상 안에서 새롭게 된 새사람을 입었으니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쿠디아인이나, 종이나자유인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또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골로새서 3:9~11)
이전 행실에 관해서는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4)
위의 두 구절을 종합해본다면 그리스도인은 이미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신분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도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분과 상태를 구분함으로서 실제적인 적용을 하는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언행일치가 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그 육신을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성령 안에서 행하자.(갈라디아서 5:24~25)’입니다.
저도 한때는 한국의 보수적인 교단을 대표하는 장로교 고신은 다른 합동이나 통합보다는 좀 낫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로교 고신 다닌다는 사람들을 겪고 나니 실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자신은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하니 자기만 일요일은 빼달라하며 특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면서 비번을 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자기만을 아는 것이며 자기가 십일조를 얼마를 냈다느니 헌금을 얼마를 했다느니 자랑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일하는데 조금만 손해가 가더라도 언성을 높이며 트집 잡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엣 집단 이기주의가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은 제쳐두고 자기사람, 자기 교회만 우선시하는 교회주의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신 쪽 목사라는 사람과 기독교서적 독서회를 하는데 장로교 고신과 다른 입장인 것입니다. 예수 말고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단이라는 말에 예와 아니오라고 확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위 다양성과 포용이란 미명아래,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예전 동료는 소위 모태신앙이라고 하지만 14살 때 이미 혼전성교를 했으며 지금은 기초수급자가 되기 위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잘사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로마서 6:1)’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장로교 고신도 실천에 있어서는 합동이나 통합과 다를 바 없구나 하며 왜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말하는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예비하고(베드로전서 3:15)
요즘 JMS로 안 그래도 구원파, 신천지로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이 사건으로 기독교는 목사는 잠재적 강간범이며 예수 믿는 사람은 이중인격자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들이 몰래 들어왔기 때문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정죄를 받기로 미리 정해진 자들이며 경건치 않은 자들이라.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유다서 1:4) 구원은 쉽게 받을 수 있으며 구원은 영원히 보장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므로 형제이지만 마귀의 자녀인 거짓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파, 신천지, JMS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이 심화되어서 불거져나온 것입니다. 이점은 한국 기독교의 책임이 큽니다.(성직자주의, 기복신앙, 신비주의, 성서비평학, 로마 카톨릭의 전통에 근거한 비성경적인 교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빠지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과 다를 바 업습니다. 사람들은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말하는데 기독교를 과소평가하지 말기 바랍니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그나마 양심적으로 나은 점은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간접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한말 유교질서가 무너져서 도덕적 가치기준이 땅에 떨어졌을 때 기독교가 상륙해서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찔림을 주었으며 회개를 하였던 평양 대부흥이 한 예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문제는 결국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잘되는 이유는 부분적인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안식일교는 사람들의 엄격한 절제로 심성이 선한 자들이 많고 구원파는 와서 보라(요한복음 2:39)을 적용해서 성경강연회를 열며 신천지는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라(마태복음 10:8)을 적용해서 무료 신학교를 운영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 그게 맞는가보다 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가식적이지만 선한 모습으로 다가간다는 점을 유의하십시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행하는 변화된 삶임을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요약: 당신의 가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언행일치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