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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그러기 전만 하여도 마을 앞 갈림길 솔밭 옆의 비오리네 주막은 밤낮으로 흥청거렸었다.
"아이고, 그 오살 노무 철동가 머싱가 날라먼 요 앞으로 나제, 멋 헐라고 존질 놔두고 대가리 홰액 틀어 갖꼬 죄며을 허고는 저 지랄을 허고 절로 가, 개기를, 잘 오다가."
이제는 딸 비오리한테 술청 일을 다 넘기고 뒷전이나 살피는 비오리어미가 손님이 뜸한 날이면 손님 대신 주막의 평상에 우그리고 앉아 하는 말이었다.
생김새가 매초롬하고, 몸매가 호리낭창한데다가, 저 혼자 서거나 앉아 있어도 감기는 듯한 태가 있는 비오리는, 그렇지만 온몸에서 파르스름한 찬 빛이 번져 났는데, 한창 나이가 되면서 물이 오르던 열아홉 스무 살 때는 새침한 얼굴에 도화색이 발그롬하여, 인근 사람들 입살에 어지간히 오르다가 결국 남의 집 소
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몇 해 못 지나, 어느 봄날, 고리봉에 진달래 애터지게 붉은데 꼭 제 어미 그만한 나이 때 모양으로, 작은 보퉁이 하나를 가슴에 보듬고, 다시 고리배
미로 돌아왔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비오리는 제 몸뚱이 저 혼자서 오고, 맞아주는 어미와 집이 있다는 것이며, 비오리어미는 모가지가 실내끼 같은 젖먹이 비오리를 등에 업은 채, 올 데 갈 데가 없어 막막하게 떠돌던 끝에 고리배미로 들어왔는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비오리어미를 내쫓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네는, 누더기가 다 된 헌 옷 보따리 하나에 애기 하나 업고 고꾸라져 주저앉은 마을 앞 솔밭 옆에 그대로 터를 잡은 것이다. 그것이 벌써 삼십 년 전 일이었다.
"애기 이름? 가이내년이 이름은 무신 노무 이름. 애깅게 기양 애기, 그러먼 되제."
"그런 이름이 어딨다요?"
"어딨어. 여그 있제."
"커도 애기여? 나중에 인자 안 크간디?"
"크먼 큰애기고."
"하이고매."
"다 쓰잘디 없는 짓들이여. 이름 있으먼 멋 히여, 불르기 조먼 대답허기만 귀찮제. 상놈의 이름은 안 불릴수락 존 거이여. 멀 알도 못험서. 아조 없으먼 더 좋고. 왜 그런지 알어?"
"일이나 시길라먼 불릉게 그러겄지맹. 이뿌다고 씰어 줄라고 부를랍디여?"
"아네. 성도 귀찮시러. 부모한테 받응 거잉게 엇다 띠어 내불도 못허고 자석한테로 물려쥐기는 해야겄지마는. 머 써먹을 디가 있어야 생광시럽제. 나 그렁 거멀라고 있능가 모르겄데잉. 산에 낭구는 이름도 성도 없어도 잘만 크등만."
"왜 이름이 없어? 도토리나무우, 상수리나무, 옻나무우."
"에라이, 그러먼 사람 보고는 씨리둥 사라암 그런당가? 그럼사 좋겄지, 오직이나. 우리가 산에 나무 허로 가서 너 이름이 머이냐, 안 그러고, 너 무신 성짜 쓰냐, 안 그러고, 양반이다, 쌍놈이다, 안 그러고, 딱 생김새 바서 그거 한나로 씰거잉가 안 씰 거잉가 정허디끼. 사람도 사람 볼 직에 본성만 봄사 누가 마대?"
하고 말하던 비오리 아비는, 걱실걱실한 생김새 그대로 성질도 별로 조인 데 없던 도부장수였었다.
이름 이야기를 몇 번인가 하다가 흐지부지되어 그냥 '애기'라고 부르던 비오리와 비오리어미를 남겨 두고, 그 아비는 별 것도 아닌 일로 그만 어이없이 생목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때 일찍이 부모 동기를 잃어버리고 저 혼자 때갈로 크던 비오리어미는 세상에 핏줄이나 연고라고는 머리에 쇠똥 갓 벗어진 딸년 비오리 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 이얘기 허먼 멋 히여. 기양 그렇게 생긴 사람이지 머. 너 맹이로 생겠능가아, 누구맹이로 생겠능가아."
열아홉이 되도록 '애기'라고 부르는 딸이 한번은, 저희 집 술청에 들러 탑탑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도부장수의 뒷등을 이만큼 벗긴 곳에 앉아서 무슨 생각에 잡힌 것처럼 바라보면서
"울 아부지는 어뜨케 생겠능고."
하고 혼자말로 묻는 말에 어미가 한 대답이었다.
비오리는, 제 아비가 도부장수라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혼자서 짐작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큰집 작은집도 없능가?"
"내가 말은 들었는디. 늑 아부지는 에레서부터 그러고 등짐 지고 댕겠다등만.
어디 한 간디가 붙어 살어야 그렁 것도 챙계진디이. 나는 가본 일도 없고, 찾도 못해. 말만 들어 갖꼬 알 수가 있간디? 머 재 넘고 물 건네 어디라고 그러등만, 조선에 재 너고 물 건네는 디가 어디 한두 간디냐?"
"긍게, 어머이허고는 장에서 만났당가?"
"내가, 장에 있는 주막에서 기양 심바람도 허고, 정지꾼맹이로 불도 때고, 그륵도 싯고, 빨래도 허고, 그러고 있는디, 늑 아부지를 만났제. 그 주막에를 늘 댕겠잉게."
"아부지가?"
"잉."
"아부지 이름은 머이간디?"
"본쇠."
"본쇠..."
입 속으로 그 이름을 되받아 뇌어 보던 비오리는, 두 팔로 깍지를 낀채 괴고 앉은 무릎에 턱을 받친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나 울 아부지 한 번만 봤으먼."
그 말에 비오리어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무슨 생각을 저만치 밀어내듯이, 번지는 소리로 말끝을 흐렸
다.
"어디 가서 바. 없는 디."
"큰아부지라도, 작은아부지라도, 누구 아부지 피이고 탁인 사람 한 번만 봤으먼. 그런 사람 만나먼, 이어어케 손 한번 대 보먼 아부지 살 같을 것맹이여."
"살."
"잉."
막걸리를 마시던 술청의 도부장수는 어느결에 일어나 가 버리고, 저무는 주막의 됫박만한 방에 비스듬히 마주앉은 두 모녀는, 말이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양반, 상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못 배워 모르면 그것이 상놈인 것이다. 근본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라도이 세상에 났으면 낳아 준 부모가 있고 또 그 부모의 부모가 있지 않으냐. 헌데 그 가닥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 가닥을 놓쳐 버리면 그것이 곧 상놈이니라. 곧 선조의 유래를 모르고, 제 아버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군지를 모르고, 그 위 상대도 모르고, 지금의 자기가 있게 된 그 말미암음을 모르게 되면, 상놈이라고 한다.
자기의 선조가 미약하고, 향고 출입을 못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없지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모르고 사는 것하고는 다르지.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잘알면, 어디서 어떻게 무슨 가닥으로 무슨 파가 갈려 나왔는지, 또 그 가닥들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허는지 챙겨 볼 수가 있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자연히 서로 연락도 되고, 출입도 넓어져 견문이 생기고 아는 사람도 많아져서, 사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 사람은 어쩌든지 제 조상줄을 놓치며 안된다."
언젠가 주막에 들러 목을 축이던 매안의 사람이 어떤 젊은이를 상대하여 하던 말이 귀에 남았지만, 비오리나 그 어미는, 어느 누구 단 한 사람도 찾아볼 만한 붙이라고는 없었다.
그런 중에도, 남 다르게 태깔이 고와지는 비오리를 위하여 비오리어미는 황아 장수한테서 옷감을 끊어 놓기도 하고, 방물장수 서운이네 한테서 시집가는 데 필요한 바느질 용품이며 하얀 분백분을 사두기도 하였다.
"나는 어머이 탁ㅇ다고 넘들이 그러든디."
"아이고오, 몸썰난다. 나를 탁에서 무신 존 일이 있다고 나를 탁에."
"어머이가 머이 어디가 어찌간디?"
"그런 소리 말어라. 당최 허들 말어. 이? 너는 인자 말 헐만 헌 디서 말이 나먼 기양 치워 불란다. 고온 때 가시기 전에."
하던 비오리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꽃심이 진분홍으로 피어나는 복사꽃 가지 아래로, 남의 소실이 되어 집을 떠나갔다.
남원 읍내에서 꽤 큰 한악국을 하는 진의원을 따라간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는 마흔두 살로, 비오리 나이의 꼭 두 배였다.
"고리배미 솔밭 주막에 큰애기가 그렇게 이쁘다고 소문이 자자허든디."
맨 처음 그가 주막으로 찾아왔을 때 한 말이었다.
그는 흰 두루마기를 떨쳐입은데다가 머리는 상투를 쳐버리고, 발에는 하얀 백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때는 막 봄이 무르익으려 할 때여서 주막 옆구리의 솔밭 언저리에 저절로 벙그는 각시복숭아꽃 숨결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었다.
남의 중매도 더러 심심찮게 하는, 방물장수 하던 서운이 할미가 그날 따라 일부러 맞춘 것처럼 같은 시간에 주막으로 놀러 나왔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진의원을 반가워하였다.
그네는 진의원에게, 방물짐을 막 며느리에게 넘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그간 댁에서 신세 많이 졌었노라는 것을 말하고, 앞으로 며느리의 방물도 많이 팔아 주시라고, 한 가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꼽박, 꼽박, 하면서 숙이곤 했다.
서운이 할미는 비오리어미와 나이도 비슷하고 처지도 닮은 점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 서로 더 허물없이 지내왔었다.
두 노파는 둘 다 영감이 없었고, 기대고 살 만한 남정네나, 아들이 없는데다
한쪽은 과년하여 시집 보낼 딸이 있고, 한쪽은 며느리가 혼자되어 갓난이 하나 품에 안은 과부가 되었는데, 그 모습이 자신의 젊었을 때 같아서 비오리어미는 서운이네한테 마음을 많이 써 주곤 했다.
"마은 살이 넘었잉게 벌쎄 메느리는 봤제잉. 그래도 자개가 의원이고 약국도 헝게로 녹용으로 인삼으로 존 약은 다 혼자 먹고, 속상헐 일 벨라 없이 살어 놔서 사람 땅땅히여. 인심도 무던허고, 나보고 말 잘해 돌라고 그러등만."
며칠 후에, 서운이 할미가 조심조심 눈치보는 척하면서 옆에 앉은 비오리한테 들으라고 말했다. 비오리어미는 속으로 반은 접어 넣고 밖으로 반은 펼쳐 보이 는 소리로
"마흔이며, 호박이 노랑물이 막 들라고 헐 땐디."
하고 미심쩍은 듯 입맛을 다셨다.
"노랑 호박, 잘 익으면 그것같이 해먹을 껏 많고도 맛나까? 깎어서 호박 오가리 해 놓고, 눈 펑펑 쏟아지는 날이먼 호박떡 해먹고, 누렇게 조청맹이로 풀어서 호박죽 쒀 먹고, 또 있제잉. 호박 범벅도 맹글어 먹고, 아이고, 맛나라. 그것뿐이여? 늙은 호박은 약에도 좋잖이여?"
"노랑 호박 한 뎅이 갖꼬 아조 물고를 낼라고 작정을 했그만이."
"나이는 좀 있제. 말이사 바로 말이지만. 그런디 차라리 이런 자리가 실속 있고, 사람 점잖고 갠잖다고오. 솔직이 이짝 헹펜도 있는디이"
"헤기는, 나이 마흔이먼 쉬염도 지댄허니 지룰라고 허고, 이자 어른 가락을 뺄라고 헐 때지."
"진의원이 거 할량이라고. 놀 찌 알고, 여자 애낄 찌 알고. 왜, 약도 잘 짓고, 글도 많이 허고. 유식허잖여?"
진의원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오리에게 하루는 금방 시집가게 생겼는데 아직도 애기냐고, 이름을 하나 지어 주겠노라 하였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비취 비 자, 달 월 자, 비월이었다.
"꼭 너한테 맞는 이름이다. 너는 비취로 깎은 달이로다."
고 몹시 흥겨워하던 그는
"저만한 적송 속에 초당이 서 있는데 이름이 없을 수 있느냐."
하면서, 하루는 좁으장한 현판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왔다.
"못 쓰는 글씨지만 손수 썼다."
하는 현판에는 '송풍정'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잔 재미가 많았던 그는, 비오리에게 소리선생을 하나 붙여 주기도 했다. 남원 권번 출신인 소리선생은 비오리를 데리고, 요천수가 푸른 비단 띠처럼 흘러가는 흰 모래밭으로, 또 요천수에 발을 담근 암벽 위에 날아갈 듯 서 있는 정자 금수정으로, 같이 다니면서 소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저 소리 맛만 보는 것이지 테머리를 하고 덤벼들어 배우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이나 제자나 심심파적
으로 하는 셈이었다.
두어 해를 그렇게 보내고는, 어찌 되었든 다시 고리배미로 돌아온 그네에게 나은 것은 '비월'이라는 이름과 검푸른 적송 숲의 모정에 걸린 숭풍정의 현판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그네를 보고 수군거리면서 그냥 부르기 쉽게 비오리, 비오리 하고 불렀다.
"비오리가 왜 못 살고 왔당가?"
"그 속이야 누가 알어? 팔짜겄지."
"술에미 딸이라고 첩으로도 안 쳐 주었으까?"
"모르고 데리갔간디? 첨부텀."
"아니, 무신 흉악헌 소문도 있기는 있등만."
"흉악이라니?"
"아이고, 내 입으로 욍기든 못허겄어."
사람들 귀가 쫑긋 일어섰다. 고리배미로 돌아온 비오리는 한동안 덧문을 깊이 닫고 그림자 얼씬도 하지 않은 채, 죽은 듯이 지냈다.
"무던히 울었드라대."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내외간의 정이란 것이 열 살 줄에는 몰라서 살고, 스물 줄에는 좋아서 살고 서른 줄에는 정신없이 살고, 마흔 줄에는 못 버려 살고, 쉬흔 줄에는 서로 가여워 살고, 예순 줄에는 등 긁어 줄 사람이 필요해 산다."
고 하더라만. 첩이라 하는 것은 본디 맹랑하여 그 어디에도 들지 않는 모양인가. 홀로 무색하게 돌아온 비오리를 두고 고리배미 사람들은 샘가에서, 동네 사랑에서 모이기
만 하면 수군거렸다.
"왜 저러고 왔이까잉?"
"말도 말어. 나도 어디서 들은 소린디. 저렇게 태깔도 곱고 목청도 좋은 비오리를 마흔 넘은 중늙은이 진의원이 기양 덤썩 물어갔어니. 살진 암캐 물어간 호랭이맹이로 아 통으로 씹어 먹어도 비린내 한나 안나고, 눈에다 넣어도 아픈지 모리게 이뿌지 않겠능가? 진의원 따라간 그날부텀 진의원 물팍이 비오리 요대기
고, 진의원 품속이 비오리 베람박(바람벽)이여. 오직허먼 심지어 약을 지을 때도 보듬고 앉아서, 한 손으로는 버들가지맹이로 낭차앙헌 비오리 허리를 감고, 남은 한 손 갖고 마지못해 보도시."
"옘병을 허등게비."
"너 같으먼 앙 그러겄냐?"
"그렇기도 허겄어."
나무장수 부칠이가 하릴없이 맞장구를 치고 말자 나막신 깎아 파는 모갑이는 이야기하는 사람 앞으로 무릎을 당겨 앉으며 물었다.
"그런디 왜 더 못 살고 기양 와?"
"왜는 왜여? 진의원 마느래 땜이 그렇제."
"마느래?"
"옳제, 투기를 했등게비구나?"
"투기라도 기양 머 첩의 년 머리 끄뎅이나 조께 잡우댕기고, 세간살이 뿌수거 시끄럽게 해 놓는 정도가 아니라, 아조 제대로 했능갑서."
"어뜨케?"
"진의원이 왕진가는 날을 지달르고 있다가잉, 그 마느래 수족 같은 예편네 몇 이서 작당을 해 갖꼬는, 불문곡직 달라들어 질질질 끄집어다 비오리 꾀를 활씬 벳겨서, 터럭이라고는 다 쥐어뜯고 뽑아내 민둥이를 맹길었다대."
"어, 독헌 년들."
부칠이와 모갑이는 머리를 털었다.
"거그서 끄쳤드라먼 그래도 낫었을 것을."
"더 헌 짓이 있었어?"
"하문에다 박달방맹이를 쑤셔 박었드래."
"다들이질...허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엄청난 말이라 사람들은 더 이상 무어라 덧붙이지 못한 채 모두 얼굴이 흙빛으로 질려, 서로 눈길을 피하며 우물쭈물 하였다.
"진의원이 돌아와서 울어도 쇠용이 없고, 광생당 한약국에 있는 온갖 약재를 다 써서 고쳐 볼라고 해도 이미 될 일이 아니였드라대. 아 저 중국으로끄장 사람을 보내서 약재를 구해다 써 봤당만그리여. 옆에서 본 사램이, 진의원 정성이 하도 가련해서, 하늘이 다 무심하다 싶드랑만..."
동네 사랑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샘가에 모여 앉은 아낙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비오리가 못 쓰게 된 것까지는 같은 내용이었으나, 그렇게 누더기로 만든 사람이, 진의원의 '마느래'가 아니라 바로 비오리를 소실로 데려간 진의원 자신이
었던 것이다.
"아니 암만 질같(길가)에 꽃이라도 맘에 있어 꺾었으먼 애지중지 허든 못헐망정 그 지경으로 모질게 짓뭉개서 사람 구실도 못허게 맨든당 거이 말이나 되야? 허이구, 참. 세상에나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능갑드라고."
배추거리를 다듬던 아낙이 퍼르르 성질을 돋우었다.
"샛서방을 봤능갑대."
"잉? 비오리가?"
"진의원이 분을 못 참고 기양, 연놈을 잡어 족치다가 미친디끼 비오리한테 달라들어 쥑일라고 작정을 험서, 못 헐 짓 없이 맹글어 부렀능갑등만. 그때 비오리 안 죽은 거이 천행이라든디?"
"암만 그렇다고 소위 의원이람서 사람의 낯가죽을 쓰고 그럴 수가 있어?"
"아이고매. 찢어 쥑인대도 헐 말 없지 머. 일부종산디."
"첩도 일부종사 해양가?"
"아, 첩은 머 벨 거이여? 여자로 났으먼 헐 수 없능 거이제."
"어이. 수악허다. 참말로."
아낙들은 쌀을 씻고, 배추거리를 다듬으며, 물을 긷는, 저 할 일을 다 마친 뒤에도 샘가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느 하루는 떡장수 곤지어미가 새 말을 물어 왔다.
"이런 경천동지를 헐 일이 있능가이? 아이고머니나, 그, 비오리 샛서방이 긍게 진의원 아들이었드라네. 진의원이 벌쎄 마흔 넘었잉게로 그 아들도 한 스무나뭇 이짝 저짝 안되ㅇ겄다고? 이런 말 욍기는 내 입이 더렁가?"
그 자리에 있던 방물장수 서운이네는 곤지어미 말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진의원으 아들이라먼 나도 본 일이 있는디?"
"어뜨케 생겠등고? 말 딛기로는 즈그 아배를 탁에서(닮아서), 매꼼허고 내노라 허는 할량이라든디. 놀 찌 알고."
"나도 머 방물 짊어지고 그 집이 갔다가 실쩍 지내감서 봐 갖꼬잉. 잘은 모르겄는디, 기양 시악씨맹이로 뵈이등만, 얌전허게."
"얌전헌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은단 말, 듣도 못 했능가?"
한량이 되었든 숙매이 되었든, 진의원의 아들이 제 아비의 첩과 농탕치게 어우러졌다는 말은 고리배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만고에 한량인 진의원 아들이 색태 자르르한 비오리를 보고 그만 앞뒤 분별을 잃었다는 말도 있고, 젊은 비오리가 매일 늙은이처럼 소리선생이나 데려다 주는 진의원한테 별 마음이 없이 시들어가던 중, 어처구니없게도 아들한테 반하여 사생결단 목을 매고 그를 홀렸다는 말도 있었느나, 누가 직접 본 일이 없으니, 진위를 어찌 알리. 그러나 이미 그 이야기는 맹렬하게 불이 붙어 걷잡을 수 없도록 온 마을 고샅 고샅 번져 나갔다. 전에 비오리가 진의원의 마누라에게 도륙을 당하다시피 했다, 하는 말이 돌 때
"나도 님의 마느래지만 본마느래 권세가 그렇게 대단헌 거잉가. 첩도 사램인디, 어뜨케 차마 그 지경을 맨들 수 있당가."
하고 편역을 들었던 아낙도, 이번에는 한 마디로 잘라서
"참, 상종 못 헐 개상년이로그만."
해 버렸으며. 거꾸로 비오리가 샛서방을 보아 진의원이 물고를 낸 것이라는 말이 돌았을 때 역시
"사람이 지 분수를 알아야제, 암만 돈이 많다고 나이 생각도 안허고, 젊으나 젊은 첩을, 자식보다 에린 것을 데꼬 살라고 욕심 내다가 낭패를 본 거이제 머. 아 호강도 좋지만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 먹고 입는 호강만 갖꼬 살 수 있간디?"
하면서 은근이 두둔해 주었던 사람도 이버 소문에 대해서만큼은
"더러운 년."
이라고 거두절미 단호히 매도하였다.
"추접시러서 어디 고리배미 산다고 말 허겄능가?"
"이래 놓으니, 양반들이 민촌것 민촌것 험서나 우리를 하시하고, 사람 취급도 않는 거이라고."
"헐 말 없지 머."
"개 뒤야지 한 가지로, 에민지 애빈지 구분도 못허고 그저 아무케나 들러붙어서, 인륜도 없고, 도리도 없고, 못 헐 짓이 없응게."
아무리 술파는 계집이라지만, 한 동네에 머리 두고 같이 사는 것이 창피하다고, 아낙들은 솔밭 삼거리 주막집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으며, 남정네들도 발길을 끊었다. 동네의 풍속을 더럽힌 년의 집인탓이었다.
"그 주막 술은 구역질이 나고 던지러서 못 먹겄다."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리배미 토박이로 이 마을에서 남부럽지 않게 농사를 많이 지으며 어른 행세로 자못 위세를 떨치고 있던 엄병곤이, 이 소문을 듣고는 노발대발하며
"진상을 가려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본때를 보여 조리를 돌리라."
고 했던 것이다. 지금껏 웅성웅성 뒷소리만 하고 있던 사람들은 삽시간에 벌떼처럼 일어나 금방이라도 주막집으로 쳐들어갈 것처럼 사납게 흥분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리하지 못하였다.
부칠이와 모갑이를 비롯하여 떡장수 곤지어미와 방물장수 서운이네, 그리고 비오리를 진의원에게 중매했던 서운이 할미 등 몇 사람이 우선 작당을 하여 선발대로 노기등등 몰려가자, 뜻밖에도, 반항할 줄 알았던 비오리가 선뜻 덧문을 열어젖히며 방으로 들어오라 하였다. 그리고는 술상을 내왔다.
"내가 신세 처량하게 소박을 맞고 왔더니, 입에 못 담을 소문들이 제멋대로 돌았능갑습디다잉. 태생이 비천헝게 누가 지내가다 매급시 한대 쥐어박어도 말 못 허고, 아닌 말로 때려도 변명 못허고... 사램이 어디 독(돌)으로 쳐야만 아픈 거잉가요. 말로 치먼 멍이 더 깊제.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멍은 날짜 가먼 풀리지
만, 말로 맞은 자리는 죽을 때 끄장 풀리덜 않고 원한이 되능 거 아닝교? 내가 고리배미로 돌아온 그날부텀 알게 모르게 떠돌던 말, 그게 다 헛소문이요. 나는 날마동 그 말매를 맞고 살었소. 이 멍을 다 어쩌실라요? 안 그래도 서러운 인생, 죽기 전에 풀어 주실라요? 예?"
허기 쉬운 넘으 말이라고 그렇게 막 허능 거 아니그만요잉.
비오리가 하도 찬찬하게 변설을 하매. 우우하니 몰려갔던 사람들이 도리어 무 색하게 공연히 방바닥만 문대여 만지작만지작 하는데, 서운이 할미가 중매 선 연고로, 남들 앞에서 비오리를 씻어 주려고 짐짓 물었다.
"아니 땐 귀뚝에 연기 나라는 속담도 있지마는, 왜 무단히 그런 숭악헌 소문이 다 갖꼬 생사람을 잡는당가. 참말로 그런 일이 없었어?"
"없당게요."
비오리는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서운이 할미 얼굴에 이윽고 미심쩍으나마 안도의 빛이 번지는데, 곁에서, 나이 그 중 많은 부칠이가 머뭇머뭇 무슨 말을 얼른 꺼내지 못해 움찔거린다.
"그런디 말여, 자네는 그렇게 확실히 월백 같고 설백 같지만, 동네에는 또 동네법이 있잉게로. 풍행이 난잡헌 것 아니란 징명을 헐라먼, 저 그 동엄에 어른한테로 조께 같이 가야겄는디, 어쩌까잉. 거그가서 자네가 직접 발명을 해 보소. 시방 자네 오기를 지달르고 지실 거잉만."
그러자 비오리가 하얀 이를 싸악 드러내고 웃었다.
갑작스러운 그 웃음에 등골이 쭈뼛해지며 놀란 것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동엄 어른네 마당으로 가능 것은 에럽잖으나, 징명은 에럽겄소잉? 버얼 건 대낮에 사람들 다 둘러선 마당에서 멍석을 깔어 놓고 머엇을 어뜨케 징명을 허까요? 암만 해도 그 징명을 헐라먼 동엄 어른보톰 하나씩 번을 갈라 나를 봐 얄 거잉게 요리 오시얄랑갑소. 이번 일은 내가 절단난 것 아니랑 것만 아시먼,
다른 말은 다 뜬소문인 것도 자연히 알게 되실 것 아닝가요?"
하도 막 대고 하는 말이라 듣는 쪽이 오히려 민망해진 사람들이 서로 면구스러운 눈치만 보는데, 비오리는 썩 한 무릎을 내앉으며 팔을 쑥 내밀더니 모갑이 손을 나꾸어 잡는 시늉을 했다.
"누구, 아재가 몬야 징명을 해 보실라요?"
모갑이가 악연하여, 잡히지도 않은 손을 뿌리친다.
"이 사램이 시방 누구 망신을 줄라고 작정을 했능가?"
얼굴은 물론 목덜미 손등까지 벌겋게 물드는 모갑이를 보고, 눈시울에 핏기가 오른 비오리는
"이판사판, 나도 죽냐 사냐요."
하더니만 고개를 숙이고 투두두둑, 눈물을 떨구었다.
"동엄 어른도 징명을 헐라먼 이리 오시라고 허시요. 내가 해 디리께."
그 말을 던지면서 비오리는 훌떡 일어나 술청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구슬픈 목소리로 천역덕스럽게 흥타령 한 대목을 길게 토해 냈다.
월명사창에 슬피 우는 저 두견아
네가 울랴거든 창전에 가 울지
세상을 잊고 사자는데
앞에 와 슬피 울어
남의 심사를 산란하게 하느냐아
아이고 대고오 어허어어
성화가아 났네에 흐으으응
그날로부터 비오리는 술청에 나앉았다.
사람이 보이니 소문도 조금씩 누구러져 누가 더 이상 비오리한테 무슨 말을 캐묻지는 않았다.
비오리는 손님이 뜸하고 호젓한 날이면 모정에 혼자 나와 앉아 구슬프고 서러운 목으로 흥타령을 하였다.
적송의 붉은 몸뚱이를 부여 안은 소리는 한 굽이를 휘돌아 감으면서 푸른 머리 솟구친 공중으로 소리의 머리를 풀며 처창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을 쪽으로 파고들어갔다.
"우리 동네 황진이 났네 그려."
"황진이는 무신 황진이. 비오리는 기양 풋소리 해 보는 거인디."
"아, 죽은 황진이 엇다 쓸랑가? 산 비오리가 낫제."
"비오리가 황진이 될라먼 말여, 저 호성암으 중 한 놈 호레야제잉."
"지적선사만헌 주이 있어야 호리제."
"앗다. 구색한 갖추먼 되ㅇ제. 멀 그리 까락까락 따져, 따지기를."
"긍케, 도 따는 사람들이 따으라는 도는 안 따고 떡만 달어 먹어서 저렇게 젤이 멩색도 없이 없어졌이까? 시방은 머 페사 다 되다시피 해버리지 않이여."
"거 빈 말은 아니네."
"오직허먼 호성안 중 떡 달디끼 헌다는 말이 다 속댐이 되었이까."
"아이고, 그 이얘기는 언지 들어도 재밌등만, 호성암이 그게 상댕이 큰 절이였 능갑드라고. 중들이 한 삼십 명씩 뫼아서 수도를 허는디, 해마동 오얼 단옷날이 되먼 떡을 맨들어서 잔치를 허는 전통이 있었드리야, 거창허게 떡을 해 갖꼬는 몬첨 불전에다 불공을 올리고는 어뜨케 되겄어? 부처님이 그 떡을 참말로 야몽
야몽 잡숫겄어? 결국은 중들 차지제잉. 근디 이 시님들이 욕심이 많아서 서로 한 볼테기라도 더 먹을라고 쌤이 난단 말이여. 수선시럽고. 그런디다가, 낮에 떡을 나누먼 불공 디리로 온 신도들한테도 다 나눠 줘얄 거 아니여? 글 안해도 아까워 죽겄는디. 그래 생각다가, 낮에는 아닌 데끼 점잖허게 그대로 놔 뒀다가, 해가 떨어지고 한밤중이 되먼 신도들이 다 간 뒤에 기양 막 뎀베들어서 서로 먹
을라고 헌단 말이여? 젊은 중들은 더군다나 한 입이라도 더 먹을라고 야단법섹 이여. 그래서 씰 거잉가? 그래 서로, 누구든지 공평허게 떡을 먹을라먼 어치게 헐 거이냐, 존 방안이 없겄능가, 궁리를 했드라네이."
"그래서 저울로 달어 먹기로 했그만."
"그렁게. 저울로 달어서 나누먼 머 털끄터리만치도 틀림이 없잉게. 그러기로 헌 담에는, 오월 단옷날 한밤중에 넘들은 다 자는디, 호성암 중들이 촛불을 써 놓고 두세두세 둘러앉어서 저울로 떡을 달고 있드라네. 도 ㄸ는 시님들이 허는 짓인디 얼매나 우숩겄어? 첨에는 그런 말이 배깥으로 안 나가고 비밀이 지켜진
뫼양이지만,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소문이 한 입 건네 두 입을 지내갔네. 그리 갖꼬는 왁짜허니 나 버렀지."
"아 긍게, 저 노적봉 밑이 매안서는, 농사철에 비가 안 오먼, 산 밑잉게 물이 귀허잖이여. 서로 논에 물 댈라고 물쌤이 안 나겄능가. 서로 자개 논에 물 댈라고 넘으 논으로 들으가는 수통을 막고, 밤을 새워 지키고 그런단 말이여. 그러다가 니 물이니, 내 물이니 쌤이 나. 그럼서니 논에 물이 얼만큼, 내 논에 물이 얼
만큼 있다고 서로 재 보고 비겨보고 양보를 해라 마라, 그렇게 시끄럴 때, 옆으서 점잖게 한 마디 헌당만, 거 호성암 중 떡 달디끼 허능가?"
"왜 여그서도. 고리배미 나가시 걷을 때나 먼 일이 있어서 추렴헐 때 안 그런다고? 으레 욕심이 과헌 사람 나오고, 남달리 인색헌 사람도 나오고, 그러먼 한 마디 허제."
"호성암 중들 저울에 떡 달디끼 헐 수는 없느니이."
뒷목을 꾸욱 누르면서 사또 목소리 시늉을 하는 바람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한바탕 웃고 말았다. 어쩌면 은연중, 그 욕심 과한 사람과 인색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둘러앉아 하고, 재미나게 어울리던 시절도 옛날인 것만 같다.
둥그렇게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고리봉도 고리봉이지만, 이상하게 마을의 지형도 마치 초승달 두 조각을 동쪽과 서쪽에 맞물려 놓은 것 같은 모양이어서, 어찌 보면 동그란 보름달의 속을 도려낸 것도 같고, 아니면 가락지 같기도 한데, 누구는 그보다는 말발굽 같은 모양이라고 하는 이 고리배미의 각성바지들은, 고달픈 생업에 자신의 무겁고 헐벗은 세상을 의탁하며 오늘 하루, 내일 하루를 그런대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하게 고달픈 것은, 동척의 농사를 맡아 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웬일인지, 자신이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라는 생각보다는, 꼭 무슨 하루살이 농사 품팔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참혹한 중에도 불안이 가실 날이 없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어중"
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종이에, 지문도 없이 닳아져 버린 엄지손가락을 눌러 인주 범벅이 되고 만 계약서 한 장. 이것은 참으로 낯선 문서였다. 지금까지 작인들은, 소작을 부치거나 뭇갈림을 할 때, 무슨 문서를 쓰고, 계약
을 하고, 지어 먹는 기간을 정하고 해 본 일이 없었다.
"네가 짓도록 해라."
고 말하면 그것으로 되었고, 한번 부치게 된 땅은, 웬만한 변동이 없는 한 짓던 사람이 그대로 짓는 것이며, 아무리 자주라 하여도 작인의 기득권을 가벼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를 물려 어느 한 집의 논을 부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동척은 달랐다. 연, 월, 일을 정한 기간 동안만
계약을 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그 규정이 까다로운데다가 소작료 또한 엄청나서 일년 내내 뼈가 빠지게 일을 하고, 가을이면 추수를 다한 다음에도 빈껍데기만 남게 되고 말았다.
소작계약서
귀사 소유의 이면 기재의 토지를 금반 본인이 경작의 목적으로 소작하도록 승인하여 주심에 대하여 하기 조항을 확약함.
1. 소작계약의 기간은 소화 년 월 일로부터 소화 년 월 일까지로 함.
으로 시작되는 이 계약서에 깨알같이 박힌 조항들은 글자를 모르고 고리배미 농사꾼에게는 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읽을 수 없다고 해서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
27. 본 계약에 관한 소송은 귀사 이리 지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재판소를 관할 재판소로 함.
에 살벌하게 적힌 것처럼 아차 잘못하면 재판소로 끌려 갈 판이어서, 동척 농사 맡은 사람들은 늘 전전긍긍, 가슴이나 손바닥에 예리한 칼날을 품고 사는 것같이 아슬아슬하였다.
거기에는, 본인 스스로 경작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소작지 및 소작지에 관계되는 경계, 도로, 수로, 휴반(밭도둑), 물꼬 등 경작에 필요한 것은 본인의 비용으로 관리 수선하겠다는 약조로부터, 귀사의 허가 없이는 소작지의 경계, 지형 또는 토지의 주된 사용 목적이나 성질 등에 따라 전, 답, 과수원, 임야 등
으로 토지의 종류를 표시한 지목을 임의로 변경하지 않음은 물론, 가옥의 건축 등도 일체 하지 않겠다는 항목, 그리고 귀사가 지정한 보통 작물을 토지의 용법에 따라 재배하겠다는 것들이 세세 낱낱 적혀 있었다. 그것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소작인은 소작지를 애호하고, 조금이라도 지력 소모를 가져올 것 같은 것을 경작하지 않음은 물론, 모두 귀사의 지도에 따라 전심으로 농사 개량에 정려하고 이를 열성, 충실히 실행하겠다고 하는, 말 같잖은 말 같은 것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숨이 다 막혔다.
하늘 아래, 내 땅이야 있건 없건, 농사꾼이 농사를 지으면서 누가 제 자식 같고 어버이 같은 땅을 아끼지 않겠으며, 또 어느 누가 열심을 다하지 않겠는가. 말하지 않고도 너무나 당연한 것까지 위압적으로 적어 놓은 그런 항목들은, 순리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라는 차꼬를 차고 앉아 오도 가도 못하게
갇혀 버린 징역살이 같은 생각이 들게하여, 소작인의 며가지를 조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말이 좋아 '지도'지 사실은 '감독'인, 동척의 유사 행차도 참으로 못 당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또 백 보 양보해서 아무래도 좋았다.
집조지, 그러니까 도조 세 잡을 땅의 소작료는 총 수확의 백분지 오십, 말하자면 오할로 하되, 그 집조지가 수리조합 구역 내에 있다든가 혹은 개량 공사를 시행할 토지일 경우에는 소작료가 총 수확고의 백분지 오십을 초과하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만은, 그야말로 두 눈깔이 튀어나올 노릇이었다.
"그렁게 순 날강도지, 날강도. 뻬 빠지게 농사 지어 갖꼬 딱 절반을 뺏깅게 두 눈꾸녁 번언히 뜨고 날강도를 당허는 거이여."
"절반? 전부 다제. 그거이 어찌 절반이여? 껍데기만 냉기고 다 갖다바치는디."
그것도, 수리 조합이 있는 구역 내에서는 물세를 포함하여 소작료 육할을 거두어 갔다. 열 가마 거두면 다섯 가마나 여섯 가마를 소작료로 내야 하니, 동척의 농사 지도원이
"검견."
하겠다고 구두로 통지를 해 오면, 사람들은 머리 속이 아찔하게 휘돌리며 다리에 힘이 수르르 빠지는 것이었다.
소작료를 매기려고, 논에 서서 눈을 가무스름하게 뜬 채로 휘이휘이 사방을 둘러보는 유사의 얼굴을 헐끔헐끔 바라보는 작인의 허옇게 메마른 입술은 애가 타다 못해 다닥다닥 딱지가 앉아 있곤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매겨진 소작료는, 동척이 지정한 기일에 지정한 장소로 가서 바쳐야 했는데 마일 기한 내에 내지 못하면, 그 미납액에는 월 이푼의 과태료를
물렸다. 그리고 만일 소작료가 체납되어 소작 해제를 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토지의 작물을 모두 무조건 내놓아야만 했다. 혹시 이것에 대하여 보상을 할 경우에 그 평가액은
"귀사 사정에 따르겠다."
고 계약서에는 박혀 있었다. 그러나, 소작료를 못 내서 빼앗기는 작물에 보상을 해 주는 일은 거의 없어서 다만 허울뿐인 구절이었다.
그 대신
15. 소작료는 곡물 검사규칙대로 하여 한 가마니 미만의 우수리일지라도
가마니에 넣어 납입하겠음.
이라고 되어 있으니, 다만 몇 되, 몇 홉일지라도 모두 깡그리 훑어 빼앗아 가는
이것이 바로 야차나 두억시니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그 모습이 흉칙 추악하고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해친다는, 잔인하고 혹독한 귀신 염마졸도 이보다는 덜 악착스럽고, 더 인정이 있을 것만 같았다.
3부에 계속
혼불 최명희 5 1985
2권
1부에 이어
8
혼불4
지은이: 최명희
출판사: 한길사
10 귀.천
"그런 좋은 육송은 참 흔치 않을 것이다. 나도 보고는 놀랐더니라. 수령이 한 이백 년 가차와 보이던데, 물고기 비늘 같은 노송의 송린은 차라리 용의 비늘이라 하는 것이 옳더라. 그 둥치의 기상이 땅의 정기를 뽑아 올려 하늘로 토하는 용틀임 그대로인데 , 또 어떤 이는 화제에 적갑창발이라 쓰기도 했으니, 소나무가 붉은 비늘 갑옷을 입고 그 머리를 검푸르게 두른 모양을 말한 것 아니냐. 예전에 이영구라고도 하고, 이성이라고도 하는 사람은 뛰어난 소나무를 많이 그려 이름이 높았더란다. 항상 용반봉저로, 마치 용이 구불구불 굼틀거리며 몸을 서린 것같이 몸통을 그리고, 봉황이 날개를 솟구쳐 하늘로 날으려는 것처럼 송엽 상서로운 머리를 그렸다 하더라. 본디 송이란, 유덕 심정한 단인정사의 품격으
로, 기개는 준초하고 자태는 잠룡이니, 이 속된 세상의 먼지 속에 서 있으나, 저 깊숙한 산속에 홀로 서 있으나, 그 나무 있는 곳은, 물 속 같은 유곡의 그윽함을 느끼게 하지 않느냐. 비록 젊어도 예스러운 풍치를 저절로 지니고 있는 것이 소나무지만, 또 해가 묵어 둥치가 늙어도, 늙을수록 그 자세와 기상이 힘있고 젊어서 감히 범하기 어려운 것이 소나무인지라, 신묘한 풍모라 아니하랴. 무릇 형체 가진 것 중에 그만큼 아름다운 모양과 기를 타고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니라. 그런 소나무가 한 그루도 아니고 두세 그루도 아니고 오죽하면 내가 일일이 세어 보았다. 마흔 몇 그루가 그리 똑같이 아름드리로 무성허드구나. 그 군송은 흡사 붉은 주칠 두리기둥들이 두뚝우뚝 무리를 지어 서 있는 것 같았는
데, 그 늠름 기품이라니. 어떤 것은 여윈 듯 메마르고 단단한 것이 위로 휘익 치솟다가 철장을 구부린 것처럼 목을 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곧게 뻗어 직간 대송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데, 또 어떤 것은 살지고 윤택해서 풍모 넉넉하고, 어떤 것은 가지 꺾인 자리가 해묵어, 마원이 그린 파필의 노송인 양 고기가 울
연하더라. 그 나무들이 들어찬 기세 성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고, 우리 집안이 저처럼 가득 차서 창성한다면 얼마나 좋을 꼬, 탄식이 절로 나왔었다."
생전의 청암부인은 민촌 고리배미를 지나오다가, 그 경관에 놀라 가마를 멈추고 내려서 보났던 적송 수풀에 대하여 이기채에게 이야기 했었다. 그때 이기채의 나이는 스물하나였다.
"나는, 아깝다, 했더니라. 저 볼 만한 군송 송림이 매안에 있었더라면 이 굽이에, 아니면 저 굽이에... 그러면 창송취죽, 푸른 솔에 푸른 대가 어울려 참으로 보기 좋은 성관을 이루었을 터인데. 그랬다면 온 마을에 그 푸른 기운이 청청 가득차고 솔바람,대바람 소리도 언제나 소소하여 귀를 적시었으련만."
"그곳에 어찌 정자가 없으리까."
"여부가 있겠느냐, 좋은 이름 짓고, 좋은 글씨 현판해서 두렷하게 달어야지. 어떠냐, 정자 이름은 네가 한번 지어 볼래?"
청암부인은 눈에 웃음을 머금고 지긋하게 이기채를 바라보았다. 반은 희롱삼아 해 보는 말이었지만, 반은 그 소나무 둘레를 그대로 떠다가 매안의 어디쯤에 옮겨서, 절가의 경관을 만들어 놓기라도 한 것 같은 음성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기채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솔바람 소리 귀를 적시리란 말씀을 들으니, 문득 들을 청에 솔 송짜를 써서 청 송정이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호."
"솔바람 소리야 사시에 좋지만, 그 중에 일품은 역시 흰 눈 성성한 설송에 이는 바람 소리 아닐까요? 이는, 귀만이 아니라 뜻에까지 들릴 것이요, 뜻이라면 바로 소나무의 선비다운 자태와 기상이 지닌 천품에서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이름이로구나. 가히 속으로 새겨들을 만하다."
"그곳에 서 있는 정자 이름은 무엇이던가요?"
"없었다."
"아예 정자조차도?"
"오냐."
"어찌 그러하리까? 정자가 당치않으면 모정이라도 있을 법한데."
"모르니 그러는 것 아니냐. 므릇 좋은 산수 가운에 당호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의 얼굴에 미목이 있는 것이나 같이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낯바닥만 있고 눈과 눈썹이 없으면 맹라, 곧 눈먼 문둥이일 것이다. 산수 경관도 마찬가지니라. 모든 사람 눈에는 그저 거기가 거기같은 지형을 보고도, 명사 신안은 땅의 정기가 모인 혈의 자리를 알어보고, 용한 의원은 표시 없는 신체에 침구를 놓을 때도 올
바른 혈을 귀신처럼 짚어내는 법. 산수 경관, 그 면목 생김새를 살피면 반드시 천연에 스스로 지닌 혈이 있느니. 고리배미 적송 수풀도 예외가 아니리라. 바로 그 숲자리 혈에 정자를 하나 단아하게 세운다면, 다 그려 놓은 용의 얼굴에 눈을 그려 넣는 것같이, 멍머구리 눈먼 풍경에 점정이 되련만. 그 정자 한 점이
지어져 눈으로 찍혀야 비로소 적룡의 무리 등천하려 하는 풍경이 완성될 것인데. 우선은 보는 눈이 뜨여야 이런 저런 무엇을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안고수비라는 말이 있어서, 마음은 크고 눈은 높아도 재주가 모자라 손이 눈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기도 하다만, 수비는 나중 이야기고 우선은 안고가 되어야
한다. 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분별을 하게 되고, 눈에 격이 생겨야 그 격에 이르려고 부지런히 손을 익힐 것 아니냐. 타고난 재주가 아무리 출중허고, 일평생 익힌 솜씨가 아무리 능란해도, 눈이 낮은 사람은 결국 하찮은 몰풍정을 벗지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사람은 눈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우리 사람의 정신 속에도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있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 하지. 허나 쑥대강이 어거진 더벅수풀 뒤범벅인 정신 가진 사람 보고는 '미쳤다'하고, 정신 속으로 난 길이 항상 어수선하여 무슨 사지곡직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을 보고는 '정신이 없다'고 하느니. 허지만 애초에 그 사람들이라고 그런 정신을 타고났겠느냐. 물론 그 중에는 남보다 부실한 정신을 타고난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제 정신 간수를 잘못해서 그 모양이 되었을 것이니라. 혹은 방심하고, 혹은 게으르고, 혹은 몰라서. 아니면 헛군데 정신을 다 쏟아 버려서. 아무리 칠흑같은 비단 머리라도 단 사흘만 안빗고 방치해 두면 금방 짚북 더미 되는 것이나 같지. 그러니 사람은 제 정신 돌보고 가꾸기를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하고 거르지 말어야 한다. 그렇게 단정하고 맑은 정신을 갊아 놓고, 밝은 눈으로 들여다보면 거기 혈이 어찌 보이지않으랴. 이제는 바로 그 자리에 꼭 알맞은 모양의 당호를 앉혀야 하리라. 집이
든 정자든. 그런다면, 그 정신의 경치가 수려,우미함이 어찌 빼어난 산수보다 아름답지 않겠느냐. 그런 정신은 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둘레를 두루 향기롭게 만들고, 제 몸 담은 주변 풍경까지도 귀격으로 높여 놓으니, 어느 누가 그것을 고귀하다 하지 않으리.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라 하는데, 큰 정신 하나의 그늘이야 어찌 기껏 팔 십 리에만 미칠 것인가. 세월을 넘어 팔백 년, 팔천 년을 뻗어오는 정신가진 분을 우리는 성현이라 하지만, 그만은 못하다 할지라도, 구슬같이 영롱한 제 정신의 눈을 바로 뜨고 있어야 비로소 산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그뿐이냐.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역시 형이 있을 것인즉, 그 형을 찾고 다루는 일이, 정신에 그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제 인생의 맥 속에서 참다운 혈을 못 찾는 사람은 헛되이 한평생 헤맬 것이요, 엉뚱한 곳에 집착한 사람은 헛 살았다 할 것이다. 사람마다 제 인생의 결혈을 찾는 간절함이, 채금하려는 자가 광혈을 찾아 산천을 누비고 다니는 것만큼 절실하다면, 비록 폐광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 노정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리라. 하물며 제 혈을 제대로 찾은 경우에야 . 오직 혼신의 힘을 다하여 채굴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꼭 알맞은
정자를 짓는 일이나 같다. 즉 그것이 인생의 경영이니라. 만일에 정신이나 인생에 그 형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아무것도 모르고, 설혹 안다 해도 못 찾고, 또 찾았대도 그 자리를 그냥 방치하여 비워 둔 채 쓸모없이 버려 둔다면, 이는 제 정신이나 제 인생을 눈먼 문둥이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아니, 눔먼 문둥이는 그대로 눈의 시눙이나 있지, 아예 민투름한 살덩어리에 구녁도 뚫리지 않은 얼굴 형상을 생각해 보아라. 불구가 아니냐. 어찌 참혹다 하지 않으리. 그러니 사람이라면 마땅히 제 자신이나 인생에 꼭 갖추어야 할 모양이 있는 것이다.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면 '비었다' 하는데, 빈 것은 허하지. 허한 것은 힘이 없느니."
그때 이기채는 오직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비록 취처하여 장가는 들었다 하나, 아직 스물을 막 넘긴 나이로, 어머니 청암부인의 말씀을 깊은 속으로 알아듣기에는 어린 때였던 것이다.
"허나,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눈일지라도, 그것은 귀하고 아름다워서 오직 있을 만한 곳에만 있어야 하니라. 사람의 얼굴에도 눈과 눈썹이 아주 없어도 안되지만, 거꾸로 너무 많아서도 안되지 않겠느냐. 가령, 아무리 오색 광채 찬란한 눈이라도, 어떤 사람이 얼굴 사방에 눈이 달려 있고, 또 그것도 모자라 온몸에 다닥다닥 눈이 달려 눈투성이라면 어떻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것이다. 마치 산수 너무 찬란하여 여기도 아깝고 저기도 아까워, 군데군데 층층 누각을 겹쳐서 상첩하게 짓는다면, 그 경치 단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란하기 시정 같지 않으리. 그곳에는 잡배들이 끓기 마련이라, 바쁘고 시끄러울 뿐 도무지 고졸한 맛이 없고, 주인 많은 나그네 밥 굶는다고, 실이 없느니, 사람이 뜻이 너무 많고, 뜻마다 착수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성공투성이여서 좋을 것 같지만, 한 군데 정신을 쏟아 정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고, 복도 또한 그러해서, 복투성이 인생이란 어쩌면 눈투성이 몸뚱이처럼 오히려 기괴한 것일는지도 모르지. 경치고, 정신이고, 인생이고, 결혈의 묘처는 오직 한 군데 아니면 많아야 두 군데에 불과할 것인즉, 이 자리를 수중하게 아끼고 잘 갊아서 제 새애를 다한 집을 세워야 하리라. 그래야만, 생애는 이 집을 바라보고, 집은 생애를 돌아보는 묘미가 있지 않겠느냐."
청암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만한 적송의 무리를 동네 어귀에 수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리배미 사람들은 그저 범경의 범백사물로 그것을 대하니, 그 무심을 순박하다 하랴, 어리석다 하랴."
"허면, 정자를 앉힐 만한 자리에는."
"소를 매 놓았더라."
"무엇을요?"
"제 소똥을 깔고 앉아 새김질을 하는 황소였다."
"저런."
"사람이 자기 정신의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면 그 정경이 꼭 그와 같지 않겠느냐. 눈이 밝아야 세상이 바로 보이는데, 눈구녁 자리에 소똥을 범벅해 놓고 짐승이 짓이기게 해 놓는다면 그 인생이 걸어가는 앞길이 오죽할까. 차라리 가련하다고 해야 하리. 눈이 없어 어둡고 미련한 사람이 한낱 무지랭이라면, 저
혼자서나 미물로 굼벵이처럼 구부린 채 뒹굴다 가지만, 만일 한 집단의 어른이나, 남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 또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 가진 사람이 그런 눈을 하고 있다면, 온 집안, 온 나라를 미욱한 어둠 속으로 캄캄하게 처박으면서, 온통 짐승들이 횡행하는 똥밭으로 만들고 말 것이니. 얼마나 겁나고 무서은 일이냐. 눈은 곧 빛인데, 빛이 밝으면, 저 혼자서만 제 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에 의지해서 모인 다른 사람들 것도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랏님도 다를 바 없지만, 아무쪼록 너는 한 가문의 종손이니, 부디 이런 말을 명심하거라."
"어머니, 잠깐 다른 생각이온데, 그 고리배미 송림이 타고난 제 값을 못하는 것은, 그 주변 경관 탓도 있지 않을까요? 만일, 금 송곳으로 돌을 쪼고 학의 부리로 무래를 그은 것 같은 절묘한 풍관 속에 그 수풀이 앉았더라면, 그런 무지몽 매한 대접을 받을 리 있겠습니까? 고리배미야 그저 민틋한 동산 아래 두리두리
멍석을 펴 놓은 것 같은 마을일진대, 송림 홀로 울연 창창하다 하나, 그런 범하지골의 풍경 속에서는 제격이 제대로 드러나기도 어렵고, 심지어는 개발의 편자처럼 제 격을 갖추었다 하기도 어렵겠습니다."
"옳다. 내 그래서, 그 붉은 용의 무리 같은 육송들을 바라보면서 한탄했더니라. 어쩌다 저만한 귀골의 씨앗들이 이런 민촌으로 날아와 떨어졌을까. 그 풍향의 곡절은 알 리 없었으나, 자리를 잘못 앉은 것만은 분명하고, 애석했었다. '삼밭의 쑥'이라고 옆구리로 기어 크는 구불구불한 쑥도 곳곳하게 위로 크는 삼밭에 들면, 저절로 반듯하게 자라나지만, 거꾸로 쑥밭에 떨어진 삼씨는 제 본성도 다 잊어 버린 채 쑥을 따라 구불구불 땅바닥으로 크는데, 그것이 하찮은 풀뿌리라 서만 그렇겠느냐. 아무리 크고 좋은 유자라도 강을 건너 다른 나라 땅으로 가면 탱자가 되고 만다 하더라. 그래서, 저 적송, 귀문의 종자들이 한미하고 변변치 못한 민촌 어귀에 잘못 앉아, 하릴없이 그 격으로 되고 말았구나 싶었다. 주위 경관하고 격에 맞게 어우러지지도 못하고, 누가 제대로 알아보는 이도 없어, 자연히 마땅한 대접조차 못 받으니, 저 무성한 군송의 기개와 풍자가 참으로 속절없지 않으냐, 하였다. 사람이라고 무엇이 다르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있지만, 용은 개천에서 살 수 없다. 개천에 빠진 용은 제 비늘도 다 못 적시는 개
골창 물 속에서 뒤척이며 몸부림치다 죽든지, 아니면 굳이 그렇게라도 살아야겠으면 미꾸라지가 되어야 하리. 눈에 보이는 세상살이도 그렇지만 안 보이는 정신 자리, 사는 자리도 똑같다. 그것을 천한 곳에 두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내 마음을 추리고, 추리고, 또 추려서 균형을 잡고,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받아 그 자리를 밝혀 가는 수련을 하는 것이 바로 '공부'니라. 부디 이 갈고 닦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오직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숨 쉬는 일처럼 몸에 익어 일상이 되도록 자신을 건사하고, 이재를 하듯이 정신을 관리해야만 정신의 토양이 비옥해 질 것이다."
그리고는 한동안, 세운 무릎 위에 한 손을 얹은 채, 청암부인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말했다.
"하기는 무엇이 귀한 것이고, 무엇이 천한 것이랴. 또한 양반은 무엇이고 상늠은 무엇이겠느냐. 귀천에, 반상에, 격조와 운치를 아는 풍류나, 도무지 그런 것이라고는 모르는 몰풍이나, 모두다 사람이 만들어 낸 편견이요 생각의 오랜 관습일 뿐, 본디 그 사물이 가진 본성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르지. 소나무는,
그 종자가 무엇이든, 그것이 어대에 떨어져 어떻게 뿌리 박고 서 있든, 그저 오직 소나무일 따름, 저한테 단아하고 어여쁜 정자를 지어 주든 소똥 깔고 앉은 황소를 누렇게 매어 놓든, 거기 따라 소나무 자체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면 사람은 또 사람대로 천연인으로서 다만 사람일 뿐, 무슨 무슨 분별이란 다 헛된 것이 아니겠느냐."
청암부인은 이기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하오나, 소나무라 하지만 그것도 하나하나보면, 해송, 육송, 적송, 백송, 거기다가 다박솔. 성질도 다르고 생김새됴 다른데, 사람 또한 조상 따라 근본이 다른즉 후에 태어난 자손도 다 달라서 분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씨가 다르니..."
"씨라. 그 씨의 근원은 또 무엇일꼬. 어느 누구라도 선조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애초에 미련한 선조가 어디 있겠느냐. 허나, 어진 현조의 자손들은 그 조상이 밝힌 정신의 등을 받어서 불을 댕기어다른 등으로, 또 다른 등으로 연방 옮겨 붙여 고금에 이어 내려오면서 훤하게 불울 밝힌 집안을 이루겠지만, 아닌 경우에는 상어오는 중간에 못난 사람이 생기고, 무식해지고, 선대와의 끈도 끊어지고 집안가지들도 흩어져 각동백이가 되면서 빈곤해지면, 발등 비출 등불조차 어두워져 상놈들이 되겄지. 그러다가 죄를 짓고 등불이 아주 꺼지는 일을 당허면 천인이 되고 말아 그 인생이 깜깜한 밤중을 헤맬 것 아니냐. 저 하나만 그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엄하고 혹독하게 서러운 굴레를 써야 하니, 불행히도 그런 사람을 선조로 둔 후손은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상고에서는, 살인한 죄인을 참수하고 그 처자를 몰수해서 노비로 삼었다는데, 백제에서는, 간음한 여자를 노비로 만드는 형법이 있었다더라."
그러니 죄의 씨가 종인가. 이렇게 죄를 지어 그 벌로 한번 노비가 되면 그는 종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신분을 물려받은 신분 노예가 생기고, 또 다른 곳에서는 지은 빚 때문에 몸이 잡힌 부채 노예가 생겨났으며, 나라가 멸망하면서 끌려 간 포로들이 노예의 멍에를 쓰기도 하였다. 또한 역모를 꾀한 자의 집안 가솔들도 공천,사천노비로 곳곳에 박히었다. 심지어 몹시 곤궁한 집에서는 제 가족을 노비로 팔기도 하였으며, 일반 양인의 붙이라 할지라도 어쩌다 가족을 잃고 저 혼자 떨어져 궁글어 다니다가, 할 수 없이 누구네 종으로 주저앉는 경우도 있었다. 그 연우 곡절이야 어떤 것이든, 한번 사내 종 노와 계집 종 비가 되어 신분에 낙인이 찍히면 그들은 그날로 저의 주인 상전의 마소나 전답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세습되었다. 백 년, 이백 년이 아니고, 천 년, 이천 년만이 아닌 기나 긴 세월을 두고, 일찍이는 고조선에서 만든 법인 범금팔조에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하며
남의 물건을 도독질하면 그 주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원칙인데, 만일 속죄하고자 한다면 매인당 오십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힌 그때로부터, 노비의 수가 크게 늘어난 고려에 이르러, 원래 양민이었다가 노비로 된 자를 해방시켜 주려는 노비안검법에, 해방되엇던 노비들을 다시 노비로 만드는 노비환천법이 엎치락뒤치락 하던 시절을 지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노비 제도는 깊고도 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조선의 노비는 칠반천역, 팔반사천에 드는 천민으로, 칠천,팔천 중에서도 가장 낮은, 이름만 사람일 뿐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이들을 다시 공노비인 공천과 사노비인 사천으로 나뉘었다. 장례원에서는 이들의 호적을 철저히 조사하여 노비안을 작성해 두었는데, 공노비는 장례원에서 직접하고, 사노비는 지방의 수령이 삼 년마다 속안을 만들어 변화 정황을 적은 뒤에, 이십 년마다 정안을 기록하여 본조, 의정부,장례)원,사섬시,본사,본도,본읍에 보관하였으니. 이렇게 숨통을 조이는 신분의 족쇄로부터 달아난다는 것은 주먹속에서 뛰는 벼룩과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집안에 묶인 노비로 꼼짝못하는 사천보다는, 밖에 나가 살면서 제 식구와 가계를 꾸려 갈 수 있었던 공천은 처지가 좀 나았다. 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 잡화와 노비 들을 맡아 보는 내수사에 속하였다 하여 내노비, 혹은 궁노비라 부르던 공노비를 비롯하여 관아에 소속된 관노비, 역에 박힌 역노비, 그리고 향교에 딸린 교노비, 또 고려의 사찰에 있었던 노비들을 조선 초기에 나라를 세우면
서 모조리 몰수하여 공누비로 만든 사노비들은 공천이었는데, 이 공노비 공촌 중에서도 선상노비와 납공노비는 서로 일이 달랐다. '선상'은 서울에 있는 각 관아의 사역에 종사시킬 사내 종을 지방 관아에서 뽑아 바치는 일이었다. 일년에 여섯 달씩 교대로 고되게 노역하는 이 경중 공천 선상 노비는, 일년에 일곱 번씩 교대하는 지방 관노보다 훨씬 무거운 일을 하는 셈이어서, 이들에게는 시중드는 봉족 두 명을 붙여 주었다. 이 봉족꾼은 선상 노비를 위해서 해마다 두 필씩 포를 바쳐야만 했다. 입역이 고달픈데다가 선상 노비들을 대부분 지방에 늙은 부모와 그리운 처자식을 떼어 놓고 온 처지라서 몹시 괴로워하던 끝에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을 하거나, 포 열두 필에서 열다섯 필이나 되는 막대한 선상 대립가를 치르고 피역을 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금액이어서 아주 특별한 노비의 경우말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몸으로 신공을 바치던 선상 노비가 아닌 납공 노비는 신역 대신 매년 자신이 노비인 값, 노비공을 사섬시에 현물로 바쳤다. 이 납공 노비가 짊어진 부담은 실로 무
거워서, 해마다 사내 종이 포 한 필에 저화 스무 장이고, 계집 종이 포 한 필에 저화 열 장씩이었다. 저화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불환 지폐인데, 정화와 바꿀 수 없는 이것을 사람들이 기피하여 나중에는 저화 석 장에 쌀 한 되로까지 그 가치가 떨어졌지만 처음에는 한 장에 오승포 한 필이나 혹은 쌀 두 말에 맞먹는 값이었으니, 저화 스무 장이면 오승포 스무 필이거나 쌀 네 가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제 몸뚱이 가릴 베 조각 하나 변변치 못하고, 제 입에 넣을 좁쌀 한 숟가락 넉넉지 못한 노비들에게는 연자맷돌같이 무거운 납공이었지만, 피할 수 없이 목을 조이고 있는 톱니이기도 하였다. 선상,납공말고도 공노비들은 제가 속한 관아의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공궤를 담당해야 했고, 노비 공물우 부가세로 작지를 납입해야만 했다. 작지는 호조나 광흥창같은 수세창고에서 징세 사무를 보는 데 필요한 종이를 마련하기 위하여, 공세를 받을 때, 공세미 한 말에 종이 다섯 장, 열 말에는 스무 장이 한 권인 종이책 두 권씩을 덧붙여 내게 하였다.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