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또랑 산다 / 양선례
비몽사몽으로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는데 그가 묻는다. “파스 어디 있어?” “왜요?” “어제 감 따다가 발목을 살짝 접질렀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프네.” “부었어요? 그거 오래 가는데. 웬만하면 병원에 가요. 반깁스라도 하는 게 좋아요.” 깜짝 놀라서 일어나며 말한다. 그런데도 그는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이쪽저쪽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만 한다. 파스는 없다.
지난 10월에 그 혼자서만 주말 주택에 다녀왔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몰랐다. 그런데 큰딸이 깜짝 놀라면서 아빠 손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제야 살피니 오른손이 퉁퉁 부어 두꺼비가 한 마리 앉은 듯했다. 게다가 손등 가운데는 여러 개의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장대로 감을 따다가 땅벌 집을 건들었단다. 양손에 한 방씩 두 군데를 쏘여 방에 와서 프로야구 경기를 보다가 이제는 벌이 사라졌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나갔다. 벌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었고, 이번에도 장갑 낀 손등 위를 또 쏘이고 말았단다. 딸과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자고 졸랐으나, 그는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튿날 그는 친목회원들과 장성으로 야유회를 갔다. 저녁에 다시 본 그의 손등은 어제보다 더 부어오르고, 수포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손등에 이어 손목까지 번져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처 부위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손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고, 만지면 뜨근뜨근했다. 함께 간 지인들이 깜짝 놀라며 병원행을 권해 한 시간이나 기다려 진료까지 받고 왔다고 했다. 어제 갔더라면 고생은 좀 덜했을 텐데, 나와 딸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
포도를 따다가 벌에 쏘인 적이 있다. 딱 한 방이었지만 얼마나 가려웠는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 없어서 월요일 아침에 병원 문을 열자마자 해독 주사를 맞았다. 벌겋게 붓기만 했지 수포까지 잡힌 건 아니었는데도 그렇다. 그에 비해 손등과 손목까지 물집이 잡혔는데도 그걸 참아 내다니? 보약 여러 방 먹었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건 인내심이 아니라 미련한 거다. 주사 한 방 맞으면 간단한 일을 키운다. 엄살이 너무 없는 것도 병이다.
잠들기 전, 잠깐이라도 매일 책을 읽는 나와 30년 넘게 살면서도 그가 책을 읽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연달아 소설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집에 있는 그녀의 책을 찾아서 읽은 거다. 한강은 정말 대단한 작가다.
차에서는 라디오가 친구다. 클래식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 그가 내 차를 운전하면 채널부터 돌린다.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일할 때도 틀어놓는 방송이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리모컨을 찾는다. 거실 한쪽 벽을 거의 채울 정도로 큰 82인치 텔레비전에서 쉴 새 없이 소리가 흘러나온다. 온 집안에 가득 찬다. 나 역시 그의 취향에 따라 축구, 야구, 낚시, 골프까지 섭렵했다. 웬만한 스포츠 규칙에는 박사가 되었다. 드라마를 주로 보는 나와는 달리 그는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즐기는 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것은 실화다.’ 등의 엽기적인 사건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프로그램도 자주 본다. 리모컨을 배 위에 올려 두고 왕왕대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게 취미다.
매운탕을 끓이면 그는 생선만, 나는 무만 먹는다. 닭볶음탕에서는 그는 닭만, 나는 포슬포슬한 감자만 골라 먹는다. 그나마 비슷했던 잠자는 패턴도 50대가 지나서는 정반대가 되었다. 그는 초저녁에 잠들어 새벽이면 깬다.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여는 수영장이 열리기도 전에 기다리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새 나라의 어른’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나는 부부싸움도 이성적으로 하고 싶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한 사람이 한마디 하면 또 한 사람이 그 말에 반박하며 차근차근 따지고 싶었다. 그는 몇 마디 주고받다가 “그래, 니 잘났다.” 머리끝까지 화를 내며 나가 버린다. 1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강도가 세지다가 마지막에 10으로 화를 내는 게 내가 아는 상식인데, 그는 2쯤에 왔다가 바로 10을 만든다. 가랑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양동이로 퍼붓는 여름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나는 당혹스럽다.
2년 전 이맘때 평생을 소원하던 수필집을 한 권 냈다. 그의 권유로 시작한 글쓰기라서 자랑하고 싶었는지 초등 동창 친구들 몫으로 챙겨 갔다. 정작 그는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없더니 술 마신 어느 날, 순 자기 흉만 썼더라면서 화를 냈다. 미움도 사랑이라는 것도 모르냐고, 원한다면 앞으로는 절대 당신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맞받았다.
한동안 그 약속을 잘 지켰다. 그런데 교수님이 나쁘다. 글감을 보고는 이번 주엔 쉬어 가야지 했다. 9학기를 수강하면서 매주 빠뜨리지 않고 글을 쓴 나 스스로가 좀 지겨웠다. 융통성 없는 ‘선생 티’ 내는 것처럼 불편했다. 언제 이 틀을 깨지? 은근히 기다렸다. 이번이 바로 기회라고 벼렸다. 그런데 밤이 오니 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럼 딱 한쪽만 써야지 하고 컴퓨터 앞에 앉은 게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나도 참 못 말린다.
그래도 보험용으로 한마디만 더 붙인다. 이건 그의 큰 장점이자, 내 복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는 뭐든지 잘 먹는다. 반찬 투정이라는 게 없다. 짜고 매운 것만 싫어할 뿐, 어떤 요리든지 맛있게, 또 많이 먹는다. 접시를 싹싹 비워서 설거지할 게 없다. 반찬에 배를 맞춘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그러니 아무리 많이 해도 한 끼 먹으면 끝이다. 내 손이 점점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도대체가 안 맞는, 나는 로또랑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