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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학병원 응급실
아직도 저녁 해는 제 몫을 다하려는 듯싶었다. 붉게 물들어 다소 크게 보였다. 평소 같으면 아주 환상적인 모습으로 비쳐져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게 무관심해졌다. 어딘가 다급해 보이기도 하고 다소 느긋하기도 한 사람들이 오간다. 어디 주말에는 아프면 절대 아니 된다던가. 중얼중얼 대학병원에 들어섰다. 여기도 일반접수창구는 폐쇄가 되어 응급실체재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불빛이 환한 쪽으로 다가가니 응급실이다. 접수창구에서 의사의 소견서를 내밀었다. 얼마 후 딱딱한 침상에 길게 누웠다. 어디가 아프냐고 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냐고 한다. 나는 무용담처럼 거침없이 펼쳐놓았다.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대여섯 번을 똑같이 묻는다. 나는 앵무새처럼 답했다. 한 편으로는 나를 실습 상품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에 불쾌하기도 하였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동안 그렇게 명치를 비비꼬고 당기며 못살게 굴더니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약삭빠른 녀석은 눈치가 빨라 더는 어쩔 수 없어서 도망치거나 납작 엎드렸는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다. 왜 여기 누워있나 싶어졌다. 조금 후에 주위가 정리되고 의견이 정리되었는지 한 의사가 앞으로 나섰다. 원인은 심장박동이 고르지 못하고 불규칙적인 상태로 부정맥이란다. 그런데 어쩌자고 체기라고 혼자 진단하며 여유 아닌 여유를 부렸을까.
곧바로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마음대로 체기라고 단언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였다. 참으로 부끄럽고도 죄인이 된 마음에서 맥없이 침상에 다리를 길쭉하게 뻗었다. 벌러덩 누운 침상은 수술실로 옮겨갔다. 떠밀려 가는 그 순간에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따끔따끔 마취에 들어갔다. 나는 부정맥, 부정맥, 부정맥하며 마취에 빠져들었다. 그 사이 열심히 시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괜찮으냐고 묻는다. 나는 퉁명스럽게 수술은 언제 하느냐 하였더니 끝났다고 한다. 아마 한 시간쯤은 흘렀나 보다. 어떤 통증이나 느낌마저도 없다. 눈치조차 채지를 못하였는데, 대단한 의술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응급병실에 보내려 했다가 경과가 좋아서 일반병실 6인실로 갔다. 몇몇 환자들이 누워있다. 나도 침대에서 내려 나의 새로운 자리인 침상으로 갔다. 여기에서 며칠 동안 약을 먹으며 증상을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수술이 잘 되어서인지 정말 거짓처럼 통증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가슴을 어루만져 보아도 아무렇지 않다. 이러니까 병원을 찾고 치료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침상에 누웠더니 조금 후에 숨이 가쁘면서 옆구리가 아프다. 아마도 수술 후유증이거나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며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대학병원의 입원실에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는 생각이었다. 어깨를 조심조심 비껴 누워도 통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간호사가 왔기에 명치의 통증이 옆구리로 옮겨왔나 보다고 하였더니 진통제를 가져다주며 곧 가라앉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별 차이가 없다. 당직 간호사를 찾아갔더니 의사 선생님에게 전하겠다고 한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찾아왔다. 상태를 물으며 배와 오른쪽 옆구리 주위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어디가 아프냐고 한다. 손길에 따라 아픔을 호소하였더니 아마 이것은 심장이 아닌 간 쪽에 문제가 있지 싶다고 한다. 내일 CT를 한 번 찍어보자고 한다. 잠자리에 들었다. 온몸이 후줄근하게 땀이 흐른다. 머리를 감은 것처럼 축축하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니 발바닥이 싸늘하도록 차갑고 몸뚱이가 서늘해지다가 다시 평온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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