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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오늘도 만나는 내린다”
설교본문 : 출애굽기 16장 11-21절
당진의 한 교회를 다니는
여자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월급도 많이 받고,
신앙이 깊은 가정의 멋진 남자와 함께 살면서
아이까지 가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 가서 진찰을 받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차트를 뒤지며
절망적인 말을 했습니다.
“젊은 분이 안타깝네요.
짧으면 3개월이고 길면 9개월입니다.”
알고 보니 뇌종양이었습니다.
그때 기도하시는 시어머니께서
이해되지 않는 말씀하셨어요.
“수진아 하나님께서 너를 정말 사랑하시나보다.”
그녀는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면
이렇게 열심히 믿고 착한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뇨.
이건 아니잖아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오늘 본문에도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난 여행은
신혼여행이나 가족 여행,
혹은 비전트립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들은
이집트를 도망치듯 빠져나왔어요.
정신없이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 눈앞엔
넓은 광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제 이들은 거친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일입니다.
여기는 한증막보다 더 뜨겁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소리치죠.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 방식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와
‘주려 죽게 하는 도다.’입니다.
그들은 지금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입니다.
이집트에서 살던 때가 더 좋았다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집트에서
이들은 노예였습니다.
그들은 착취와 학대를 받던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벽돌을 굽기 위해 지푸라기를 구하러
넓은 땅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손에는 늘 물집과 상처로 가득했을 것이며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의 현재는 어떤가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지푸라기를 주우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벽돌을 굽기 위해
뜨거운 불가마 앞에 있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원망합니다.
그때 더 좋았다며
자신의 기억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고기 가마 곁에서 앉았고,
떡고 배불리 먹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그럴 수는 없죠.
설령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자유인이라는 해방감이
이젠 느껴지지 않나봅니다.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주는
구름 기둥이 있었지만
그들의 배고픔은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경험이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진 못했습니다.
은혜를 경험하고도 문제를 만나면
이전 은혜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게
우리 인간 아닙니까?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와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저를 내버려 두시나요?
왜 여기로 인도하셨나요?”
복음서에 보면 오병이어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 후에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시죠.
제자들이 열심히 노를 저어
육지에서 한참 떠나 왔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거대한 풍파가 이들의 배를
집어삼킬 것처럼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생각했겠죠.
“아니, 예수님은 왜 우리를
여기로 가라고 한 거야?”
“순종했더니 문제만 생겼네.”
이게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말씀대로 살고자 했더니, 문제가 생기는 삶.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그들을 보시며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우리 함께 4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16:4
그때에 여호화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양식을 내릴거다!”
주님이 하시겠다는 말씀,
이것은 모세에게 특별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80세 할아버지가 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리라”
이때도 주님은 ‘내가 할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반문합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갑니까?”
주님은 대답하세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하나님은 약속대로 모세와 함께하셨고
바로 왕의 높은 콧대를 꺾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가 내린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믿었습니다.
‘아, 정말 하나님께서
풀 한포기 없는 이곳에서
기적을 행하시겠구나!’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에도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거야!’
‘내가 너의 인생을 책임질 거야.’
‘광야와 같은 인생길 속에서
너희 가정에 일용할 양식을 내릴 거야!’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이러한 은혜가 꼭 임하길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먹게 될 양식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이슬이 이스라엘 진영 사방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슬이 마르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은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텐트에서 나온 사람들은 서로 묻습니다.
“이게 뭐야?”
“정말? 이게 뭐지?”
서로 ‘이게 무엇이냐’가
히브리어로 “만후”이며
나중에 “만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리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본문 4절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16:4
그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오늘 읽은 본문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법도와 율례를 주십니다.
오늘날로 하면 법과 규칙을 주신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하나님의 테스트 앞에 서게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를 통해서 말이죠.
하나님은 만나를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거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당 거둬야 할 분량도
정해 주셨습니다.
한 오멜인데 2.2리터 정도 됩니다.
적은 양이 아니죠.
그런데 만나는 햇빛을 받으면 녹아버려요.
그러니 아침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이들은 일찍 일어나 잠을 깨워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아침일까요?
시원한 늦은 오후나
해가 질 때 주시면 좋은데 왜 그럴까요?
여러분, 광야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곳입니다.
이전에 이집트에서는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었어요.
그러나 광야는 다르죠.
해야할 일은 이동하는 것 뿐이예요.
아침부터 누가 깨우지도 않아요.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자칫 잘못하면 이전보다 더 게으른 삶,
나태한 삶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는 말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 있어요.
그건 심는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신 일반 법칙이예요.
그래서 옛 말에 “일찍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빨리 찾는다”고 했잖아요.
아침부터 수고하고 노력하면
그 날 하루가 보람찹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바닥과 친구 삼고 있으면
그날 하루는 더 피곤한 하루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길 원하셨어요.
아침부터 ‘나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를 알려주고자 하셨어요.
그래서 이들은 아침부터 눈을 비겨가며
눈꼽 떼고 만나를 거두기 위해
밖으로 나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거두며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을 겁니다.
“얘야, 이건 만나란 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매일 내리시는 선물이란다.”
반면 어떤 이들은 늦은 아침에 나갔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던 거죠.
또한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나가 오늘만 내리고 내일부터
내리지 않으면 어쩌지?
또 굶을 수 없지!
오늘 미리 내일 것까지 챙겨두자.’
그래서 적게 먹고 나머지는 남겨 둡니다.
다음 날 코를 찌르는 독한 썩은 냄새가
텐트에 진동합니다.
알고 보니 어제 남겨 두었던 만나가
썩어서 냄새를 풍기는 거였습니다.
그 안에는 벌레들이 가득했죠.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했습니다.
불순종은 “불신앙”에 기반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깐
나가지 않는 겁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앞세워
스스로 대비하기에 급급하죠.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시편 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만나는
순종의 자세를 얻게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 40년간이나
쉼 없이 내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은 은혜의 만나를 내려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세상 속에 사는
주의 자녀들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채우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앙인 중에
조지 뮬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20세 이전까지 방탕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난 뒤
고아원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놀라운 기적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오늘 돈이 거의 다 떨어졌다.
남은 돈이 2실링 밖에 없어서
빵을 살지 저녁거리로
고기를 살지 망설이고 있는데
빵 가게 주인이 와서 빵을 주고 갔다."
"고아원에 석탄과 약품이 다 떨어졌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공급해달라고 기도했다.
저녁에 한 고아가 도착했는데
그 아이 편에 보내온
귀금속을 팔았더니 16파운드나 되었다.
이 돈으로 많은 경비를 지출할 수 있었다."
"돈이 전혀 남지 않았다.
기도모임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다가
한 형제를 만나 인사했는데
그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10파운드를 주었다."
저에겐 왜 이런 사람이 없을까요?
이 외에도 수 많은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만나를 경험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급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매일 우리의 만나를 거두기 위해
아침을 깨우시길 바랍니다.
만나의 은혜는
나의 삶을 주님의 말씀 중심으로
정돈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만나를 거두기 위해 아침을 깨웠듯이
우리의 삶이 말씀에 따라
순종을 실천할 때
그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문자적으로 아침은 해뜨기 전이지만
우리에게 아침은 주님과의 고요하고
친밀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밤새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오후에 잠을 자고 일어난
그 시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첫 시간을
만나를 거두는데 드리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만나가
오늘날 우리에겐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침에 현관 문을 연다고 해서
파리바게트에서 빵을 보내주는 건 아니잖아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2-33절 입니다.
요한복음 6:32-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내리는 광야의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의 참된 영적 만나가 되어주셨습니다.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해
영원한 배고픔과 갈증에서 해방됩니다.
요한복은 6장 35절입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하나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우리의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우리는 여전히 목말라합니다.
돈이 우리를 영원히 배부르게 할 수 없습니다.
멋진 외모, 좋은 배우자, 자녀의 성공 등이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될 수 없습니다.
광야 같은 인생 속에서 진정한 만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이상 썩을 것을 위해 일하지 맙시다.
영원히 썩지 않는 일을 합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일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영원한 만나임을 고백하고,
그분을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27,29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스라엘에게 만나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40년동안 만나를 먹으며
‘아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시구나.’를
배웠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긴 힘들었겠죠.
‘혹시 내일 아침엔 만나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키시는 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은
늘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연단이 있습니다.
<참 좋은 친구들> 대표 장로님.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섬기십니다.
어느날 한 노숙자가 장로님께
초코파이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로님은 가진 게 없었기에
조지뮬러처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님이 아시잖아요. 채워주세요.”
얼마 뒤에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대문구에 있는
교회인데요.
이번에 참 좋은 친구들을 돕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지체없이 ‘초코파이요.’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주에 서울역 노숙자들은
초코파이 파티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책임지십니다.
사업장, 직장, 미래는 광야라고 여겨질지라도
주님께 여쭤보라.
“하나님 저의 만나는 어디 있나요?
저는 무엇을 순종하면 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며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마태복음 6:33,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하나님의 만나는 때로
우리의 생각과 달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좋은 만나를
예비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이 땅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오늘의 만나를 구하며
나아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시고
가장 선한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이러한 만나의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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