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의 푸른 허리쯤 숨어 건너다보는 일처럼
진 란
허공을 북북 그어대면서 비가 왔다
오른쪽 귀를 나무에 대고 왼쪽 귀는 바깥의 숨을 더듬었다
후끈한 수피와 그 바깥을 가르는 차가운 소리
세상의 지붕처럼 뒤덮고 있는 잎사귀가 소란해지다가
내 가슴께에서 종소리처럼 출렁거렸다
불현듯 울음이 차올라, 저 빗길을 흘러가
어느 바닷가에 닿아 공룡처럼 발자국 찍어놓고
남해 깊이 잠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유쾌해진다
물고기들에게 먹히는 살들이 팔랑거릴 것이다
문득 사라지고 없는 나를, 그래 나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찾는 소리가 명랑하다
짜르르 왼쪽 심장에 경고음이 울렸다
빗소리에 방전된 비명들이 날아올랐다
시나브로 세상의 모든 구멍을 채우려는 듯
어설픈 지도를 만들면서 장맛비는 쏟아지고
점점 기울어지는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헐렁해졌는지 싶게
기울어지는 구름의 중심에서 번쩍 섬광이 일었다
후박나무 넓은 잎을 조롱하는 듯 빗방울이 성기어지고
그 초록의 넓이에 미끄러지는 물방울들이 햇살에 쨍하다
태양전열 판이 되어버리는 아스팔트에 훅훅 숨이 찼다
비릿한 비 냄새를 털면서 푸른 잎사귀들이 깃을 세웠다
바다에서 막 돌아온 초록물고기들이 가오리연처럼 생생하게 흔들렸다
내 가슴에 북북 그려진 먼 얼굴도 잎사귀를 털고 뛰어내렸다
세상 어느 구멍에 숨었다가 물떼를 만났던,
퉁퉁 불었던 먼 그리움 몇 마리 햇볕에 자지러졌다
진 란
2002년 계간 주변인과 詩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혼자 노는 숲, 현재 문학과 사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