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는 결코 빌 곁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빌은 기적처럼 소생하였다. 기도의 힘일까, 사랑의 힘일까?
한국전쟁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빌이란 이름의 미군 병사로부터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큰 포탄이 터져, 빌과 함께 전방 철책을 순시 중이던 다른 순찰병 일곱 명이 죽었다. 빌만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미국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에게 남겼던 그의 약속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져서일까?
“여보, 스텔라, 난 꼭 돌아올 거야. 약속하지!”
이것이 그 아내에게 했던 그의 마지막 약속이었다. 여하간 빌은 죽지 않았다. 순찰대원 중에서 그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를 살아 있는 시체라고 불렀다.
사실상 빌은 시체와 같은 존재였다. 전신이 거의 마비되어 손이나 발은 움직이지도 못했고, 전혀 머리를 돌리지도 못했고,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빌은 뉴욕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그의 침상 곁에선 매일 저녁 직장에서 돌아온 그의 아내 스텔라가 그를 돌보고 있었다. 때때로 스텔라가 남편의 이름을 부를 때, 빌은 그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그는 언제나 얼빠진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어느 날 밤, 스텔라는 늦도록 일하고 있었고, 일이 끝나갈 즈음 직장의 상사인 보험회사 부사장이 그녀에게 함께 나가서 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그는 아주 친절한 사람이었고, 스텔라와 마찬가지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5년 동안 홀아비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의 헌신이, 그리고 그녀의 기도가 헛되이 끝나 버릴 것을 염려했다.
의사의 말로도 빌은 결코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빌은 20여 년이나 더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기의 남은 여생을 이렇게 낭비하고 희생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보험회사 부사장은 스텔라가 허락만 하면 언제든지 결혼하여 행복한 미래를 가꿀 수 있다고 말했다.
스텔라는 그날 또다시 빌의 병상 곁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끝없는, 정말로 끝없는 시간의 연속으로만 생각되었다. 희망과 변화가 없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욕망과 유혹도 생겨났다. 다시 재혼하기로 결심만 한다면 모든 것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밤 스텔라는 빌의 침대 곁에 앉아서, 만일 자기가 다시 이 침상 곁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빌은 그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은 상당히 동요되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는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지난 수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빌은 아내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래서일까? 스텔라는 한참 흐느껴 울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아니, 작으면서도 괴로운 신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마치 침대에 누워 있던 빌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여 스텔라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보, 가버려요. 당신의 행복을 찾도록 해요!”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왔을 그 신음소리 이외에는 또 다른 아무 소리도 없었다. 오히려 기진해 버린 듯 빌의 얼굴이 창백한 모습으로 굳어져 가고 있을 뿐이었다.
스텔라가 소리쳤다.
“이것 봐요, 간호사! 환자가 죽나 봐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빌의 침대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텔라에게 더 이상 곁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줄 뿐이었다. 스텔라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힘없이 어두운 층계를 내려오면서 계속 입 속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가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어요. 빌이 나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나더러 떠나가라고 소리친 거예요.”
이제 스텔라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빌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영원히 한 몸이란 생각이 더욱 굳어져 갔다.
아마도 이 세상에 이적(異蹟)의 시대가 있었던 적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시대가 있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런 이적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아니, 기적적으로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빌이 그의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입을 열어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서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된 것이다. 산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기도의 힘일까, 아니면 사랑의 힘일까?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