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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산 왕 옥을 치다
신 3:1-11
1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넘기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니라
5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6 우리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성읍들을 멸망시키되 각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멸망시켰으나
7 다만 모든 가축과 그 성읍들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8 그 때에 우리가 요단 강 이쪽 땅을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에까지 아모리 족속의 두 왕에게서 빼앗았으니
9 (헤르몬 산을 시돈 사람은 시룐이라 부르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 불렀느니라)
10 우리가 빼앗은 것은 평원의 모든 성읍과 길르앗 온 땅과 바산의 온 땅 곧 옥의 나라 바산의 성읍 살르가와 에드레이까지이니라
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아직도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니라)
신 3:1-11 / [바산의 왕 옥을 쳐서 이기다] 우리가 바산 땅으로 올라가자 바산 왕 옥이 전군을 거느리고 나와서 에드레이에서 우리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 여호와께서는 내게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그 왕만이 아니라 모든 군인들과 그 땅까지 이미 네게 넘겨 주었다. 네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한 것처럼 그에게도 똑같이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3) 과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군인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 주셔서 우리가 그들을 모조리 쳐죽였습니다. 그때에 살아서 도망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4) 그때 우리는 바산 왕 옥이 다스리던 아르곱 전지역의 60개 성읍을 남김없이 모두 정복하였습니다. 5) 이 성읍들은 모두 높은 성벽으로 튼튼하게 둘려 있고 성문마다 빗장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 밖에 성벽이 없는 마을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6) 우리는 시혼왕의 성읍들에서 한 것처럼 바산왕의 성읍들을 멸망시키고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모든 주민을 죽였습니다. 7) 그러나 모든 가축과 그 성읍들에서 탈취한 귀중품들은 우리가 전리품으로 가졌습니다. 8) 이렇게 해서 우리가 그때에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산에 이르기까지 요단강 동쪽의 땅을 아모리 족속의 두 왕에게서 빼앗았습니다. 9) (헤르몬산을 시돈 사람들은 시룐이라 부르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고 불렀다.) 10) 아르논강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평원의 모든 성읍들과 길르앗 전지역과 바산왕 옥이 다스린 성읍 살르가와 에드레이에 이르기까지 바산의 전지역을 우리가 차지하였습니다.' 11) (바산의 왕 옥은 가나안 원주민이던 라파 거인족 가운데서 남은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의 관은 쇠로 만든 것이다. 아직도 암몬 족속의 수도 랍바에 보관되어 있으며 길이는 4미터가 넘고 폭은 1.8미터가 넘는다)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을 차지하고 있던 두 왕 중 나머지 한 왕인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1-2) 바산은 요단 동편 길르앗 북쪽 지역의 비옥한 땅입니다. 바산은 문자적으로 비옥하다는 뜻입니다. 바산 왕 옥이 군대를 이끌고 에드레이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고자 합니다. 에드레이는 아모리 왕국의 중요한 요새로서, 길르앗과 헤르몬의 고원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옥에게도 행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무리 강한 대적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참된 신자는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승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슥 4:6).
옥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다(3-10) 이스라엘 군대가 바산 왕 옥의 군대를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합니다. 모세가 승리의 상황을 묘사하는데 헤스본 왕 시혼에게 이겼을 때에 사용한 용어들을 거의 그대로 사용합니다. 시혼과 옥은 둘 다 이스라엘이 몰아야내야 할 아모리(가나안) 사람들입니다. 앞선 전투에서처럼 이번 전투에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고,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고, 헤렘의 원리에 따라 남녀와 유아까지 죽였습니다. 그들을 살려둘 경우 또 다시 땅을 더럽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옥 왕국의 중심부인 아르곱에 있던 큰 규모의 성읍들 육십을 전부 빼앗았고, 그 외에도 성벽 없는 심히 많은 고을들까지 전부 차지합니다. 그 때에 차지한 땅이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까지 약 225km에 달하는 넓은 면적입니다. 평원은 서쪽에서 요단 계곡으로 이어지는 긴 평지를 말하며, 살르가는 바산의 동쪽 경계지입니다(10).
옥의 철 침상(11) 바산 왕 옥이 요단 동편에 남아있던 거인족 르바임의 마지막 왕이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38년 전 출애굽 1세대의 사람들에게 겁을 주었던 거인 족이 요단 동편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길이가 아홉 규빗(약 4m), 너비가 네 규빗(약 1.8m)인 옥의 침상은 그의 거대한 체격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침상이 아니라 석관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침상이든 석관이든 그의 거대함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침상이 암몬의 수도인 랍바에 박물관 소장품으로 보관되어 있을 뿐입니다.
적용: 이스라엘이 38년 전에 두려워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우리는 날마다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좋은 판단을 받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주님이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 보다시피 평결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이 평결에 따라 행동합니다. 참된 평결을 내리시는 그 분이 나를 보시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보석보다 더 가치 있는 자로 여기십니다.
< 설 교 >
신 3:1-11 강해
지난 주에는 헤스본 땅과 그곳 왕 시혼을 평정한 기록을 소개했습니다. 헤스본도 요단강 동편의 땅입니다. 오늘은 바산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땅입니다. 바산 왕 옥을 제압하고 그가 다스리던 땅을 정복한 얘기입니다.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함께 바산을 점령한 것은 가나안 정복의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교두보를 마련한 전쟁이었습니다. 헤스본과 바산 땅을 정복함으로써 가나안을 치고 들어갈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두고두고 그 역사적 사건을 잊지 못해 감사했습니다. 시편 136편에 보면 이 사건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그들은 자자손손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바산 왕 옥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본문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에 앞서서 가장 많이 당부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명기 1장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동요하며 가나안에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하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후에 여호수아의 영도로 요단을 건널 때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적과의 싸움을 앞두고 계속해서 두려워말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 아픔, 병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전에 부딪치면 우리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분명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해 싸울 것이다,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할 것이다, 너의 모든 적을 너희 손에 넘길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적과는 자기 혼자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싸움 앞에서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모세도 그 점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신명기 1장 32절에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는다.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미소년 다윗은 아무 무장도 하지 않았음에도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으로 나에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와 너의 모든 군사를 내 손에 붙인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음을 너희로 알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이 대단한 장수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용기 충천했던 겁니다. 사울의 군대는 이것을 믿지 못했으나 다윗은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확실히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백기를 들게 하기 위해, 우리를 거저먹으려고 우리 안에 불어넣는 패배의식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대신해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약속하셨고 천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헤스본뿐만 아니라 바산 왕 옥까지도 진멸합니다. 4절 이하입니다. “[4]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니라 [5]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쟁에 임한 결과 완벽히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11절은 바산 왕 옥이 얼마나 기골이 장대한 거인이었는지를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마치 골리앗과도 같은 영웅이었는데 결국 이스라엘이 그를 정복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힘이나 전술적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대신 싸워주셨기에 거둔 대승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세상살이에서 담대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비하면 무엇으로 보나 열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담대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대신해 싸우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이 우리더러 용기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주셨습니다. 이 승리의 전제는 담대함,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1-4절입니다.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이 말씀은 잘 아시는대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미션을 주시는 대목입니다. 이때 모세의 반응은 두렵다고 했습니다. 백성들도 나를 믿지 않을뿐더러 바로도 내 말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하시며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하니, 그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코브라가 된 것입니다. 코브라는 애굽의 수호신이자 바로의 상징입니다. 바로는 코브라의 화신입니다. 또한 뱀은 사탄입니다. 뱀의 머리를 누가 상하게 하십니까?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입니다. 뱀은 급소가 머리입니다. 머리가 상하면 그 뱀은 죽습니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가 코브라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던지라 하니 뱀이 되었는데, 꼬리를 잡으라 하십니다. 왜 머리가 아니라 꼬리입니까? 머리는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뱀은 이미 죽은 뱀입니다. 머리 상한 뱀입니다. 죽은 뱀의 꼬리도 못 잡습니까? 물론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습니다. 꼬리를 잡아도 그 뱀은 머리 상한 뱀이어서 물지를 못합니다. 그저 꿈틀거릴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꼬리를 잡으라고 한 것입니다. 제 아무리 코브라라 하더라도 이미 머리 상한 뱀이라는 겁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피했습니다. 꼬리를 잡으라 하셔서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 뱀은 이미 머리가 상했습니다. 더는 우리를 물지 못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이미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치명적으로 상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은 다 그렇습니다. 다 머리 상한 뱀입니다. 주님이 두려워 말라, 안심하고 꼬리를 잡으라 하실 때 싸움을 피하지 마시고 머리 상한 뱀의 꼬리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세상과의 싸움, 헤브론 왕 시혼이나 바산 왕 옥과의 싸움은 사실상 머리 상한 코브라의 꼬리를 잡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싸우기 전에는 두려우나 막상 싸움에 임하면 문제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대승했습니다. 결국 오합지졸 이스라엘이 다 정복했습니다. 빼앗지 못한 성이 한 곳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게 다 머리 상한 뱀의 꼬리를 잡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항복을 선언하지 않는 한, 반드시 세상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이깁니다. 주님이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이스라엘처럼 대승하는 성도되십시다.
두려움의 거인을 무너뜨린 약속
신 3:1-11 / 코너스톤장로교회
어제 새벽에 이어 오늘 본문도 출애굽 2세의 요단 동쪽 지역 정복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어제 새벽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혼 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헤스본을 정복하는 이야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했고, ‘바산’이라 불리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바산은 매우 비옥한 땅으로 가축을 사육하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살기 좋은 땅인만큼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강한 민족이 이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산 지역에 다다르자, 바산 왕 옥은 모든 군대를 이끌고 포진했습니다. 이처럼 이들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진을 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혼 왕을 무찌르고 헤스본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바산이란 또 다른 큰 적을 앞둔 이스라엘 입니다. 전쟁이란 것이 과거에 한 번 승리 했어도, 또 다시 전쟁을 치르려면 겁나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도 바산과의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바산은 높은 성벽을 가지고 있었고, 군사력도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산 왕과 그의 군대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 3: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모든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승리를 약속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산과의 전쟁에서 하나의 성읍도 남김 없이 모두 다 빼앗는 대승을 얻게 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전쟁 가운데서도 모든 바산 사람을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바산의 싸움이 일반적인 전쟁이 아니라, 바산의 죄악을 심판하는 전쟁이었기 때문 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적군을 진멸함으로써 이 전쟁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운 적군을 앞두고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전쟁에 참여하여 큰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40년 전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여 전쟁을 포기하고 도망치려 했던 출애굽 1세대의 모습과 대조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가나안과의 전쟁을 포기 했습니다. 만일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순조롭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그 어떤 장애물도 하나님은 뛰어넘게 하시고, 어떤 상황과 환경도 능히 극복하게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계신 성도 여러분,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순종하면 승리한다” 한 번만 더 따라해 주십시오. “순종하면 승리한다.” 네 맞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복한 헤스본 왕 시혼이나, 바산 왕 옥은 둘다 전쟁에 능한 적군이었고, 견고한 성읍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스라엘이 둘을 상대해서 이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을 상대한 출애굽 2세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경험도 전무한 풋내기 병사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적군을 그들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니, 이들은 용기를 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8-11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한 땅의 경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경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헤스본과 바산 땅만 차지하고, 그 이상을 넘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에돔, 모압, 암몬 족속의 땅은 한 평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상대했던 적군들은 키고 크고 힘도 센 사람들이었습니다. 11절을 보면 바산 왕 옥이 사용하던 침대의 사이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그 장이 아홉 규빗이고 광이 네 규빗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크기로 환산해 보면 침대 사이즈가 길이가 약 4미터, 넓이가 약 2미터 입니다. 침대 길이가 4미터라는 것은 이곳에 아낙 자손과 같이 키가 큰 장대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일 만큼 키와 덩치가 큰 적들과 싸워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에 처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쟁에 참여하여 완전한 승리를 일구어 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제 아무리 강한 군대라 해도 막아낼 수 없는 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세상이 강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간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종하면 승리합니다. 이 단순한 믿음의 원리를 꼭 기억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신명기 3:1-11 / 충일교회
전쟁 중에도 지킨 믿음
하세가와 다모쯔 장로는 일평생 예수님의 사랑으로 결핵환자들과 고아와 미망인 불우한 노인들을 보살펴 일본을 사랑의 도가니로 융화시킨 인물입니다.
그가 젊은이 때 중일전쟁에 출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주여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지금 저는 싸움터에 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서에서 ‘살인하지 말라, 너의 적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컨대 단 한사람도 상하지 않고 죽이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옵소서. 저는 중국 사람을 사랑합니다. 미력이오나 할 수만 있다면 빨리 전쟁이 끝내도록 하는 일에 저를 써 주시옵소서”라고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장교 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가 속한 군대의 창설이래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군도와 권총을 살 돈 없습니다’라고 신고하고 장교로서의 임관을 거절하고 일반 병으로 입대한 것은 일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중국의 전쟁터에 갔습니다. 그런데 첫 출정에서 우연히도 중국에서 홍수를 만나게 되었고 홍수로 인하여 강변에서 물에 빠진 한 어린아이를 구해 주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홍수로 집과 가축, 식량, 가족까지 떠내려 보낸 많은 수재민들에게 구호양식을 공급하고, 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기도한대로 중국대륙에서 4개월의 전쟁기간을 보내면서 중국 사람 한 명도 다치게 하지 않았고, 죽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수백이 넘는 중국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일본의 집을 떠나기 전에 철야기도가 응답되어진 것으로 믿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기적이 상식이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변의 상황과 환경, 사람들을 통해 돕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새벽이 믿음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길 기도합니다.
본문 설명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신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세대는 불순종으로 인해 열하루 길 광야를 40년 동안 방황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신세대는 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승리를 하게 됩니다.
모세의 1차 설교(1장 6 - 4장 42절)가 진행되는 중, 하나님께 반역하여 멸망한 구세대의 경우와 달리 출애굽 제 40년에 재출발한 이스라엘 새세대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 순탄하게 진척된 가나안 행군 과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아모리왕 시혼을 전멸하고 이어서 바산 왕 옥 정복 사건을 회고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는 어떠한 전쟁도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2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1.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함을 주십니다.
1, 2절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1.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아직도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니라)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바산 왕 옥은 르바임 족속의 후손인 거인 르바임 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산 왕국에는 견고한 성읍 60개가 있었습니다.
또한 남쪽으로 길르앗 경계로부터 북쪽으로 헤르몬 산 비탈까지 뻗쳐 있던 그의 왕국은 숲이 우거지고 비옥하며 목축이 성하고 국력이 부했으며 그들은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매우 완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침상의 재료와 구조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장대한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침대 길이가 4m, 폴이 1.8m입니다. 최소 2m이상되는 엄청나게 체격이 좋은 사람이 바로 바산 출신의 르바임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과 상대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의 본성을 가진 백성입니다. 주인 의식이 없습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식욕, 성욕-가 해결되지 않을 시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대항할 수 있는 족속입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기에 제대로 된 군사 훈련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기 또한 철제 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르바임 족속들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들 앞에 있는 거대한 르바임 족속과 60개의 성읍, 강력한 국력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더 큰지 나타내 보여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3절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넘기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기골이 장대한 르바임 족속들과 철옹성과 같은 60성읍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십니다.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결코 실패가 아닌 승리로 믿음으로 행하는 자는 어떠한지 하나님이 친히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에게도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빠져 두려움에 놓여져 있지는 않습니까?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의기소침하며 낙심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선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길 축복합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될 때, 현실과 상황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함으로 기대감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들은 모두 패하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약한 우리의 삶이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2. 화석화 된 신앙에서 매일 신앙의 생생한 체험을 주십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던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매일 불기둥과 구름기둥, 만나와 매추라기, 수많은 적군들과의 전쟁,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고, 쓴 물이 단물로 변화는 등 무수한 기적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애굽에서 나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입니다.
야곱 이야기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가는 중 루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던 중 하나님이 꿈에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 계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창세기 25장에서 아브라함은 죽었고, 자신의 아버지 이삭은 늙어서 장남을 장남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육신적 영적 무지에 있고, 그 당시 신 개념은 한 지역에 그 신이 종속되어 있는 신 개념이어서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 85KM 거리가 넘는데, 그 지역의 신이 이곳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야곱은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만이 아닌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임을 루스-벧엘에서 처음으로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야곱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그는 인간적 방법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의 삶을 병행하며 좌충우돌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은 경험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그의 신앙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의 신앙과 동일합니다.
영적 죽음의 특징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영적 죽음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1. 활동이 없습니다.
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영생에 대하여 무능력합니다.
2. 감각이 없습니다.
죄와 더러운 양심으로 꽉 차 감각이 없습니다.
3. 냄새가 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죄와 사망의 냄새가 납니다.
4. 매장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욕과 악습과 죄의 무덤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술과 음탕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매장된 자들입니다. 더러운 무덤이나 깨끗한 무덤이나 똑같이 무덤에 불과한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든 추한 사람이든 주님이 없는 사람은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5. 묶여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근심, 불안, 사람들의 평가에 묶여 있습니다.
6. 다른 사람과 교제가 없습니다.
진정 마음을 열고 생명을 나누지 못합니다. 죽은 자들에게는 생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다니기도 하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율법적으로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한 걸음씩 살아가 보십시오. 오늘 하루 하루, 내 호흡과 내 발걸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날마다 경험할 것입니다.
양육자 반 11기
양육자 반 11기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양육자 반 과정을 공부하면서 큐티에 대해 가르치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이며, 오직 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을 개입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큐티하는 방법을 쉽게 가르쳐 드렸습니다.
이분이 그 이후부터 매일 큐티를 합니다.
만날 때마다 이분이 하시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습니다. 오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고, 순간순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큐티 시간이 기다려지고 오늘 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적입니다.”
이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활자 속에 갇혀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군가의 간증으로만 들려지는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사건 속에서만 역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도 내 일상의 삶 속에서, 내 호흡 속에서, 내 가정 속에서, 내 발걸음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화 되어가고 화석화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생생한 살아있는 신앙의 경험과 체험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들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혹시나 아직까지 수십 년 전 경험한 그 과거의 하나님으로만 묶여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내 호흡과 내 발걸음에 생생하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내 방법과 내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만이라도 믿음으로, 말씀대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될 때,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함을 주십니다.
상황과 환경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인해 대적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화석화 된 신앙에서 매일 신앙의 생생한 체험을 주십니다.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오늘도 내 삶의 순간순간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살아있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바산 왕 옥의 정복
신 3:1-11
지난 시간에는 아모리 족속의 헤스본 왕 시혼을 격파한 사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헤스본 왕 시혼을 격파한 사건은 새로운 일이요, 기억할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이나 홍해 바다를 건너는 사건과도 견줄 수 있는 새로운 사건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가지는 새로운 지위, 새로운 힘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또 다른 나라 바산을 어떻게 정복하였는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바산 왕 옥의 대적
신 3:1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는지라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1절 상)라는 표현은 헤스본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입성하지 않고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야르묵 강 북단의 고원 지대로 계속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요단 동편에는 얍복 강을 경계로 두 아모리 왕국이 있었는데, 곧 헤스본을 중심으로 시혼이 통치하는 아모리 남 왕국과 바산을 중심으로 옥이 통치하는 아모리 북 왕국이 그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모리 남 왕국을 점령한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북 왕국을 향하여 진격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요?
바산 왕 옥은 자기의 형제 나라인 헤스본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만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유한 성읍은 60개로서 요새였고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에 자신만만하게 대항을 한 것입니다. 바산 왕 옥은 자기 나라의 지리적인 요건을 이용하여 싸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군대가 올라간 이유는 옥의 군대가 그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내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와서’라는 표현은 바로 이들의 지역이 위에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에드레이에서 싸웠습니다. 자신만만한 옥의 군대와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의지하고 나간 이스라엘과의 역사적인 접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옥은 시혼과 같이 승리를 확신하고서 “그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온 것입니다. 그에게 이와 같은 승리의 확신이 없었다면 그가 결코 싸움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사실을 교훈하여 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옥이 어떤 사람입니까?
신 3: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지금 오히려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장이 아홉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니라)
옥은 ‘르바임’ 족속입니다. 르바임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 훨씬 이전에 가나안 땅에 거하였던 원주민들을 가리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거인족’이란 뜻의 giants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낙족속도 포함됩니다. ‘르바’라는 말은 ‘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옥은 철 침상을 사용하였는데 그 크기가 대단합니다. 장이 아홉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크기로 표현한다면 옥이 사용한 철 침상은 길이가 4.1m 너비가 1.8m에 달합니다. 옥의 신장이 꼭 그렇게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토록 큰 침상을 사용한 사람이라면 골리앗처럼 거인에 속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바산 왕 옥은 조금의 저주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장이나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의 중심을 보시고 믿음을 보십니다. 옥은 자신을 믿고 자기의 세력을 믿은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과신은 비극을 초래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격려와 도우심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거인 옥이 군대를 거느리고 그것도 고 지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호령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마치 블레셋 장수였던 골리앗이 연일 이스라엘을 비웃고 조롱하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아마도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옥이라는 왕을 선두로 막강한 화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지금 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기가 죽지 않겠습니까? 그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까요?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자기 힘으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은 칼과 단창으로 나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의 승패는 어디에 달려 있습니까? 군사의 규모나 그 군대의 위치가 어떠하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에서 하나님이 어느 편을 드시느냐가 관건인 것입니다. 어느 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옥의 군대는 자기들의 장수와 군대의 수와 위치를 믿고 자신감을 갖고 나섰으나 하나님은 ‘내가 그와 그 모든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격려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승리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시혼에게 하신 것과 같이 이들에게도 행한다는 확신을 모세에게 심어 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고부동한 보증입니다.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3절을 보십시오.
신 3: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에서 ‘붙이시매’라는 말은 ‘나탄’이라고 하는 말인데 ‘위임하다, 주다, 더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일정한 권한을 인간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아무런 해나 두려움 없이 바산 왕 옥을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얼마나 대단한 승리입니까? 여기에서 아모리 족속에게는 ‘헤렘의 원리’가 적용된 것입니다. ‘헤렘’이란 ‘저주받은 것’, ‘없애기 위해 바쳐진 것’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을 위해 특별히 죽임(멸절) 당하기로 결정된 것들을 가리키는 제의(祭儀) 용어입니다. 이런 헤렘의 원리가 왜 적용되었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너무나도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악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떤 대적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내편이 되신다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3. 옥의 파멸과 이스라엘의 점령지
모세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바 이 승리에 대하여 감사와 경외함으로 “그때에 우리가”(4절)라고 하여 지난 일을 회고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회고하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회고를 하십니까? “그때에”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옥에 대한 승리는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그 성읍들을 어떻게 하였다고 하였습니까? 6절에 보면 “그 성읍들을 진멸하되”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이 다스리는 모든 성읍들을 전멸시킨 것입니다. 그 성읍의 수가 60입니다. 그 모든 성읍에 높은 성벽이 둘려 있고 문과 문빗장이 견고하였습니다. 이런 견고한 성읍들을 어떻게 점령할 수 있었을 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심히 많은 고을들을 차지한 것입니다.
옥이라는 한 사람의 교만 때문에 바산 왕국은 하루아침에 멸절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옥은 자신의 실수와 허세로 말미암아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죽게 만들었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그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헤스본 왕 시혼을 만나고 바산 와 옥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사탄의 세력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미 머리는 깨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는 사자와 같이 아직도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이빨 빠진 사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머리가 이미 깨졌는데 뱀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습니까? 뱀은 머리가 상하면 힘을 못 씁니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할 근거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았기 때문에 담대해야 합니다. 사단은 소리만 요란할 뿐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믿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골리앗을 물리쳤듯이 우리 삶 속에 찾아오는 모든 사탄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